초보 전문위원의 분투기 "ILO기본협약 털고 다시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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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처음이었고 모든 상황이 처음이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지난 2018년 11월에 출범한 ‘초짜’였고,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주제를 다루기로 한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그보다 더 ‘초짜’였다. 사회적 대화라는 단어도 생소한 공익위원과 노사위원이 대부분이었다. 간사를 맡은 전문위원은 ‘전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법 전공의 비정규직 강사로 10년을 생활했는데, 출근한지 한 달도 안 되서 맡은 일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주제로 하는 노사정회의체였으니 말이다. 국회나 정부가 아닌데, 노사정 대표들이 ILO 기본협약 비준에 관해 갑론을박을 하는 상황은 황망할 지경이었다. 
 이건 무엇일까? 짝퉁 단체교섭인가? 아니면 노사협의회의 아류인가? 그간의 지식으로 어떻게든 그 실체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공부도 했고, 논쟁도 했고, 비난도 했고 실망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눈물도 흘렸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모두가 처음’이라는 것이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게 다르더라.” 
 알려진 바와 같이, ILO 기본협약은 4개 분야 8개 협약들의 모음이다([표] 참조). 강제노동, 결사의 자유,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고용평등, 그리고 아동노동 분야로 나뉜다. ILO 기본협약 비준 문제가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 8개 협약 중에서 이미 4개는 비준되었다. 현 시점에서 ‘처음’인 것은 국회나 정부가 아닌, 노사정 대표가 그 비준에 관한 쟁점을 토론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낯설고 상대방의 의도가 의심스러우며, 그 파장을 예측하기 어려운 실험이다. 
 
[표] ILO 기본협약(1998)과 한국의 비준 여부
 
 노사정 대표가 논쟁하는 전체회의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 자신의 주장만 끝없이 풀어놓는 연설장이었다가 어느 순간에는 개별 기업의 교섭장 같이 변했다. 정부 정책을 설명하는 공청회였다가 또 어느 순간에는 부당노동행위의 실태를 고발하는 자리가 되었다. 고성이 오가고 냉랭한 분위기에 숨이 막힐 것 같은 때도 있었다. 다행히 모두들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당사자들이 서로가 처한 입장을 인정하는 상태까지 도달하는 것만도 큰 성과로 보였다. 
 ‘서는 곳이 다르면,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말은 협상과 토론의 장에서 필요한 타자 인식임을 깨달았다. 
 
뜨거운 관심을 받은 ILO 기본협약 노사정 논의, 그리고…… 
 노사정 대표의 주장은 세 방향으로 내달았다. 어떤 주장도 100% 거짓이거나 100% 진실인 것은 없었다. 각자가 서있는 곳이 달랐을 뿐이다. 공익위원들은 세 방향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논의의 중심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쪽저쪽에서 비난을 받았다. 사실, 나는 닥치는 서류업무들 때문에 논의가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다. 우왕좌왕, 좌충우돌은 이런 경우에 딱 맞는 말이다 싶었다.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12차례가 넘는 전체회의와 10차례 가까운 공익위원 및 간사단회의를 개최했다. 1주일에 2회, 3회를 개최한 적도 있고, 주말에는 집중회의를 열기도 했다. 시작부터 많은 이들이 예상했듯이 노사정 합의를 이루진 못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ILO 기본협약의 비준에 관한 쟁점을 구체적으로 정리했고, 정확한 정보와 연구 성과를 확보하여 사회적으로 공론화할 수 있었다. 토론이 길고 이해관계가 복잡했던 만큼이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많은 정보와 전문적인 연구조사 결과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ILO 기본협약 비준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과 과도한 위기의식 사이만 오가던 사회적 논의를 한 단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몇 개월의 강행군 동안에 위원들은 많이 지쳤고 피로감이 높아져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노사정 합의가 안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 모두들 힘들어 보였다. 구경만 하던 나까지 심신이 지쳤던 지라 사표를 써야 되는 건가 싶었다. 그간 위원회의 논의 내용과 과정이 아쉽기도 했다. 언제 이런 논쟁의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은 심정도 들었다. 
 공익위원들도 입장이 모두 달랐다. 다들 공익위원 합의도 불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공익위원 합의안은 나왔다. 지난 2018년 11월 20일 발표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관계제도 개선에 관한 공익위원 의견」이다. 노사정 합의가 아니라고 폄하하는 의견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마라톤에서 42.195킬로미터를 완주하면 제일 좋겠지만, 그 절반인 하프 마라톤을 달렸어도 경기에 참가한 선수는 관중보다 힘이 들고 박수 받을 자격이 있다. 
 공익위원 합의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았다. 공익위원 개인뿐 아니라 경사노위, 고용노동부까지 기자들의 문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결국 2018년 12월 5일 추가적으로 공익위원 합의안에 대한 기자설명회를 개최하였다. 기자들이 참석하여 질문하고 위원장과 공익간사 위원이 설명하는 자리였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참석해서 다들 놀랐다.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와서
 이제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는 한 차례 매듭을 짓고 다음 마디로 나아가는 준비를 하고 있다. 그냥 ‘ILO 기본협약 위원회’ 정도였으면 좋았을 텐데, 노사관계의 제도와 관행을 개선하자는 목표를 정한 위원회이다. 그러다 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심정으로 한번을 넘긴다고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실수 연발하는 초보 전문위원인 나로서는 난감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노사정 대표 위원들과 공익위원들은 다음 의제를 정하기 위한 논의에 꾸준히 참석하며, 발제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출한다. 또 다시 처음부터 바퀴를 굴리는 것이다. 서로가 주고받은 상처가 흉터로 남을 수 있겠지만, 더 시간이 흘러서는 우리 사회의 무늬로 새겨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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