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논의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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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책이라도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얼마 전 대통령주재 경제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당연히 모든 정책추진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책방향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변화는 소득조절이 아니라 궤도 수정이다. 2019년 2월까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최근 경기침체와 고용지표 악화 국면 속에서 문재인 정부의 핵심 노동정책인 최저임금에 있어서 결정구조 개편과 노동시간 단축정책에 있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는 궤도 수정을 넘어선 명백한 노동정책의 후퇴이다. 정부와 국회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적극 추진하자 “이러려면 주 52시간 노동시간 단축을 왜 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주 52시간제를 넘는 상시적 장시간노동 관행과 노동시간 규제가 헐거운 우리 노동현실과 노동법 체제하에서 정부가 탄력근로 확대를 대책 없이 추진하면 결국 주 64시간이 노동시간 상한선이 되거나 실노동시간 단축 정책자체가 무의미 해진다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우리 노동현실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가 올바른 해법인지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 도입 의도
 우리 노동법이 하루 기준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규정하고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정한 것은 그 이상의 장시간노동은 신체에 무리를 일으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이와 같은 법정노동시간의 기준에서 벗어나 기업 업무량의 변동 폭이 커지거나 일시적으로 급증하는 경우에 대처하기 위해 한시적인 단위기간 동안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제도다. 대신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 동안의 노동시간 운영계획을 사전에 면밀히 짜고 노동자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는바 1997년 제도 도입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현장에서의 활용은 미미하다. 최근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률은 3.4%에 불과했다.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들이 활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부분이 크다. 그럼에도 사용자단체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도입 시 노동시간 및 노동력 활용에 재량권이 기업에 넘어갈 수 있다. 기업들은 2주 또는 3개월 단위 기간 내 평균적인 기준 시간만 맞추면 초과 노동 할증률을 적용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노동자 입장에선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넘게 일하더라도 할증률 적용이 안되고, 노동주기가 불규칙해진다. 기업 입장에선 특정한 날에 집중적으로 초과노동을 시키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평균 노동시간이 기준을 초과하지 않으면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니 비용부담을 없애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반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기간이 최대 3개월인 현행 탄력근로제에서도 6주 연속 주 최대 64시간까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이 확대될수록 기업 입장에선 노동력  및 노동시간 활용의 주도권, 다시 말해 기업의 노동력 활용의 재량권이 확대되는 것이다. 
 둘째, 사용자에게는 할증임금 부담을 덜어주고 노동자들에게는 1일 8시간, 주 40시간을 넘어서는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가산수당을 받지 못해 임금삭감 문제를 초래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한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150%인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탄력근로제를 하면 주 52시간까지는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고, 즉 한 주에 최대 12시간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다. 단위기간이 3개월, 6개월, 1년으로 도입·확대될 경우 임금감소분의 규모는 더욱 증가한다. 한국노총이 자체 분석한 바에 따르면,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할 경우, 약 7%의 실질임금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 액수로 환산하면 시급 1만원 노동자가 3개월 단위 탄력근로를 했을 경우, 연장근로수당을 받지 못한 손실액이 최대 39만 원(5,000원×12시간×1.5개월)이지만 단위 기간이 6개월이 되면 임금손실액이 78만 원, 1년이 되면 156만 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현행 근로기준법 법 제51조 제4항에서는 사용자에게 임금보전방안을 강구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실질적으로 사용자에게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셋째, 단위기간이 최대 3개월인 현행 탄력근로제에서도 6주 연속 주 최대 64시간까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다.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반복적으로 시행할 경우 연속 3개월까지 최대 64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다. 고용노동부가 뇌심혈관질환 직업병을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과로’는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 일한 경우’로 보고 있다. 현행 탄력근로제 아래에서도 ‘과로사’가 가능한 정도까지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 기간을 1년으로 확대한다면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되기 이전 사업장의 경우 26주 동안 주 80시간 합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노동자가 과로사하기에 충분한 노동시간이 얼마든지 가능해지는, 그래서 노동자들을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이도록 만드는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시도에 노동자들은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
 넷째, 현행제도로 산업현장의 수요에 대응할 수 없는가? 우리 근로기준의 경우에도 일시적 작업물량의 급증에 대처하거나 계절 변동이 심한 업종에 한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할 수 있다. 현재 2주 단위, 또는 노사 합의를 조건으로 3개월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행정해석으로 주당 68시간까지 연장근로가 허용되어 왔던 상황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란 복잡한 제도를 굳이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연장근로 포함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서 산업현장에서 현행 제도하에서의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기도 하다. 
자본은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신제품 출시 경쟁해야 하는 스마트폰 등 연구개발 분야, 발주기간을 맞춰야 하는 건설이나 조선업 분야, 주문 생산이 많은 노동집약형 중소기업, 냉난방기-빙과류 생산 분야 등 계절적 업종, 영화산업이나 노동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특례업종 등에서 탄력근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현행 제도 하에서도 3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반복적으로 연간 시행할 경우 3개월간 주당 64시간 연속근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노동시간 상한규제가 요구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3개월 이내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시행하는 경우에도 1일 10시간이내, 주 52시간 이내, 연간 360시간 등 상한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본질적으로 노동자의 필요·욕구·선택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적극적 필요에 의한 것이다. 또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압축노동과 장시간노동을 유지시키는 체계이기 때문에 정부가 공언한 바 있는 “휴식 있는 삶을 위한 일·생활의 균형 실현” 관련 노동시간의 단축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제도이다.
 연간 노동시간이 1,300~1,700시간대인 선진국(OECD 평균은 2015년 기준 1,692시간)과 2,071시간인 한국에서 탄력근로제를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더구나 올해 2월 국회를 통과한 주 52시간 상한제가 온전하게 시행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탄력근로제 기간을 확대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노동조건이 개선되기도 전에 후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경우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무분별한 확대 도입과 임금삭감 문제를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위험위해 업무와 장시간노동에 방치된 미조직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도입은 ‘삶과 죽음’의 문제일 수 있다. 
 
장시간 근로체제에서 연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없다
 서구 국가들은 주 40시간 미만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때 자투리 시간으로 인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고, 노동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한 타협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독일은 금속노조와의 단체협상으로 기준 노동시간을 1984년 주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바꿀 때 2개월 단위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처음 도입됐고, 1987년 37.5시간제와 37시간제로 바꾸면서는 6개월 단위로 확대됐다. 프랑스에서도 1980년대 주 39시간제 시행과 함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처음 도입됐다. 우리나라와 같이 상시적 장시간노동과 연장근로를 전제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논의한 나라는 없다. 1998년엔 주 35시간제를 적용하면서 1년 단위의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논의됐다. 일본의 경우도 주당 40시간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운영되며 우리나라와 같이 당사자 합의로 추가적으로 64시간까지 가능한 체제가 아니다. 이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의 경우 1주일을 5일이라고 보는 비상식적인 행정해석을 바로잡아 주 68시간까지 허용되는 체제를 주 52시간 체제로 정상화하는 일이다. 이때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를 쟁점으로 삼는 건 논리적인 타당성이 없다. 
더구나 2018년 2월 28일 국회를 통과한 현행 근로기준법은 부칙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여부에 대해 주 52시간 상한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는 2022년에 검토하도록 정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연초에 관련 근로기준법을 개정하면서 스스로 약속한 정치적 타협이다. 여·야·정은 스스로의 정치적 약속을 무시하고 노동계의 반대 목소리를 외면한 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내년 2월까지 처리하겠다고 입장을 뻔뻔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지 고작 4개월 밖에 되지 않은 현시점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도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아직 시행해보지도 않은 제도를 손보겠다는 것과 같다. 
 최근 정부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대부분 주 52시간제가 무리 없이 정착되고 있다고 한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모든 사업장에 전면적으로 적용되는 시점이 되면 연간 2,700시간(52시간×52주) 이상 노동이 허용된다. 현행 탄력근로제 안에서 사업운영이 어려운 사업장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하며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가 진정한 해법인지도 제대로 검토되어야 한다. 따라서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OECD 평균 노동시간인 1,700시간대에 진입하는 시점에서야 논의가 가능해지는 사안이며, 백보 양보하더라도 2022년 이후 현장의 부작용 등을 점검하고 검토한 후 논의되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논의해야 할 노동시간 단축 관련 법·제도는 공짜노동이 남용되고 법정노동시간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는 일이다. 연장노동을 포함한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되었음에도 우리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체 종사자, 근로시간 특례적용 사업장, 적용제외자, 관리감독자 등 넓은 노동시간 적용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만큼 이 문제부터 해소되어야 한다. 사실상 노동자들에게 실제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공짜노동을 강요하는 포괄임금제의 금지가 요구된다. 그동안 무분별한 장시간노동에 노출되어 있던 저임금노동자들에 대한 임금보전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실노동시간 단축 제도의 성공적 연착륙과 일과 삶의 질 개선은 실현되기 어렵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성패를 가를 탄력적 근로시간제 논의 신중해야
 지난 11월 5일, 여·야·정 협의체 회의에서는 정의당을 제외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연내 추진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최근 대통령 주재 경제장관회의에서도,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 역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내년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회적 대화를 존중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와 같이 사회적 대화를 들러리로 세우려는 것일까? 12월 20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가 출범하였으나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란 결론을 정해놓고 진행되는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턱이 없다. 회의체에 참여한 경제단체들은 이미 다 정해진 마당에 사회적 논의를 거쳤다는 명분만 쌓으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하냐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2월 18일, 한국노총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일관되게 지적된 사항이 이것이다. “당·정·청이 이미 가이드라인을 짜 놓고 사회적 대화를 빨리 끝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모처럼 새롭게 출범한 사회적 대화기구의 성패를 가를 첫 의제가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되고 말았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운명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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