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화의 새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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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유수 같다고 하더니 벌써 2019년이다. 새해는 3·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는 의미가 특별하니 특별히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3년차로 접어든 문재인 정부도 뭔가 성과를 내기 시작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1년 반의 시간 동안 남북 관계에서는 획기적 발전이 있었으나 국내의 사회경제적 정책에서는 이렇다 하게 내세울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다가오는 총선을 생각하면 사실 문재인 정부가 큰일을 할 시간은 2019년 한 해밖에 남지 않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연쇄 효과
 
2017년은 촛불혁명의 결과로 들어선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가 자못 컸다, 세계인의 찬탄과 축복 속에 성립한 문재인 정부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새 정부는 경제정책 기조로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채택하여 참신한 면모를 보였다. 과거 수십 년간 성장 일변도의 전략, 낙수효과 중심의 경제정책만을 보던 국민에게 소득주도성장이나 공정경제는 새로운 개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기대를 걸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경제, 민생 지표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남북관계는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한 뒤, 과거와 비교한다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해도 좋을 정도로 개선되었으나, 국내 정책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다. 임기 초 80%를 넘던 대통령 지지율이 이제는 45%로 떨어졌다. 과거 대통령들에 비하면 여전히 양호한 지지율이지만 문제는 지지율 하락 속도가 심상찮게 빠르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지지율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깊은 주의를 요하는데, 이는 청년들의 일자리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새해에는 문재인 정부로서 반전의 계기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노사문제에서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내정책에서 문재인 정부 1년 반 동안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인상됐고, 2019년에는 10.4% 인상이 예정돼 있다. 두 해를 합하면 29% 인상으로서 이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속도다. 경제학 교과서가 가르치듯이 최저임금의 상승에는 고용 감소라는 대가가 따라온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한국의 현재 경제발전 수준에서 최저임금의 과도한 인상은 그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 위의 수준에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연쇄 상승 과정을 밟게 된다. 최저임금 위에 있는 중간 정도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과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저임금, 비숙련, 저연공 노동자 사이에는 회사 안에서 상대적 임금 질서가 형성되어 있는데, 아래층의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그 위층에 있는 노동자들과의 상대 임금이 헝클어지므로 연쇄적 조정 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은 보기보다 큰 연쇄효과를 가지므로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결코 과소평가해서 안 된다. 현재 한국에서 최저임금 밑에 있는 노동자의 숫자가 10%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는 최저임금 인상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음을 시사한다. 
 
수출주도형 국가와 소득주도형 성장의 간극 
 
더구나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경제에서는 내수중심형 경제에 비해 임금 인상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특별히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내수중심형 경제에서는 임금 인상은 기업 측의 비용 증가인 동시에 내수 시장에서 소득 증가, 소비 증가 요인이므로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수출주도형 경제에서는 ‘임금 인상-소비 증가’라는 내수 진작 효과보다는 비용 인상으로 인한 국제경쟁력 상실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다. 임금 인상은 비용 증가와 소득·소비 증가의 두 측면을 가지는데, 그 상대적 중요성이 경제구조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소득주도성장은 국민경제에서 수출의 비중이 낮은 내수중심형 경제에서 더 성공하기 쉬울 것이다. 
스웨덴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출주도형 경제인데,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과거 중앙집중식 임금협상을 할 때 수출시장에서의 경쟁 상대국들의 임금 인상률을 중요한 참고 지표로 삼았다. 경쟁 상대국들의 임금이 많이 오르면 스웨덴도 임금을 크게 올릴 여지가 있고, 반대인 경우에는 임금 인상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그만큼 스웨덴 경제에서 수출이 중요하고, 임금이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변수였다는 뜻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몇 째 안에 들어가는 수출주도형 국가이다. 그만큼 임금 인상에는 신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노동시간을 주당 52시간으로 제한한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뉴딜정책을 하면서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제한했던 것과 비교하면 아직 우리의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수출주도형 경제로서 한국경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임금 인상에 신중해야 한다. 
 
켜켜이 쌓인 난제들,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게다가 정책의 앞 뒤 설계가 다소 정교하지 못하며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뒤에 주휴수당 처리에서 후퇴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는 선물을 주었다가 빼앗는 형식이 되어 버렸다. 그 바람에 노동자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결국 민주노총으로 하여금 대규모 시위에 나서게 하고 급기야 노사정 대화에서 탈퇴하도록 만든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의 상황은 각종 파업과 노동자 투쟁이 심각하던 참여정부 첫 해를 연상시킨다. 다만 첫 1년간은 노조에서 상당한 인내, 지지를 보였으나, 이제는 정부에 대한 지지가 한계에 도달하고, 불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참여정부 첫 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때의 무조건적, 자연발생적 파업과 투쟁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은 중대한 역사적 고비다. 노동 변호사, 인권 변호사 출신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노총의 대표적 투사 출신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도 노사정 대화가 안 된다면, 도대체 언제 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의 노사정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경제지표, 고용지표, 분배지표가 모두 나쁘게 나오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로서는 새해에는 심기일전해서 정책 방향을 일대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더 이상 노조를 자극하는 발언을 삼가고, 노조를 정식 대화상대로 협상테이블에 초대해서 노사정 대화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 현재 민노총 지도부도 진퇴양난의 상황에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려니 내부 강경파들의 반발이 걱정이고, 그렇다고 대화에 손을 놓고 있자니 노선 결정의 중대한 기로에서 역사적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부담감이 클 것이다. 이를 잘 헤아려 정부가 먼저 자세를 낮추어 대화 제의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노사정 대화는 3자간 신뢰가 바탕인데, 무엇보다 정부의 적극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하겠다. 정부가 나서서 노조와 사용자 측을 설득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 나오도록 초청해야 한다. 거기서 재벌개혁, 비정규직 문제, 중소 상공인의 어려움, 복지 증세 등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하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문제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 말고는 현재의 어려운 경제사회적 문제를 풀 방법이 없다고 본다. 이들 문제는 하나같이 풀기 어려운 난제들로서 이것을 하나씩 공정위,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에 맡기면 해결과 타협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오직 경사노위에서의 오랜 대화 끝에 주고받는 식으로 결단해 풀어갈 수밖에 없는 문제다. 
 
새해엔 노사정 대결단의 멋진 장면을 볼 수 있길 
 
새해에는 부디 노사정 3자가 심기일전하여 사회적 대화에 적극 임하여 커다란 성과를 내기를 바란다. 물론 내부에서 일부 반발이 있을지 모르나 먼 나중에 돌아보면 큰 역사적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기를 바라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네덜란드의 빔 콕 총리는 노조위원장 시절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바세나르 협약에 서명해서 빈사 상태의 경제를 살려내서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새해에는 한국에서도 이런 대결단의 멋진 장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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