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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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활동의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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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는 한 겹 한 겹 쌓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견고하게, 첨탑처럼 쌓인 그것 앞에 누군가는 적당히 타협하고 누군가는 좌절한다. 또 누군가는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고용노동부는 ‘노동’부가 아니었다. 일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대변하지 않았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100만 비정규직 실업대란설’을 주장하며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앞장서 추진했던 것도 노동부였다. 경제부처 못지않게 기업 편에 서면서 노사 중립성에 의구심을 들게 했다. 노동자들과 학자들은 노동부를 ‘기업부’라고 명명하며 불신을 드러냈다. 그 당시 노동부는 약자인 노동자들에게 있어 적폐나 다름없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웠다. 정부 출범 후 대부분 부처에서 진상조사위·개혁위·개선위 등의 이름을 단 태스크포스(이하, TF)가 만들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서 지난해 11월 1일에서야 TF를 만들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일명 ‘노동부 적폐청산위원회’는 고용노동행정 분야에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찾아 개혁하려는 취지로 설립돼 9개월간 활동했다.

 

관심과 지지, 그리고 불편한 기색… 개혁위 출범을 둘러싼 반응들

개혁위는 김영주 당시 노동부 장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개혁위원들의 의욕도 높았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이병훈 중앙대 교수를 비롯해 내·외부 전문가 10명으로 구성된 개혁위원들은 두 달 간 노사단체, 전문가 집단 등 현장간담회와 고용노동행정 개혁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결과를 반영해 15개 주요 조사 과제를 선정했다. 다른 부처들이 위안부 합의(외교부), 국정교과서(교육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문화체육관광부) 등처럼 이슈가 됐던 사안을 중심으로 ‘원포인트 TF'’를 꾸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었다. 그만큼 풀어야 할 숙제가 넓고도 깊었던 탓이었다.

개혁위가 선정한 15대 조사과제에는 △노동행정 △근로감독 △노사관계 △산업안전 △권력개입·외압방지 등 5개 분야별로 현장에서 사회적 이슈가 됐거나 심각하게 문제제기 됐던 사안들이 담겼다.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노동자 블랙리스트처럼 현장에서 논란이 된 분야가 집중 점검대상이 됐다.

조사 과제가 정해지고 범위와 대상이 추려질수록 노동부 안팎의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렸다. 공무원들 속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라 일한 게 죄냐”며 개혁위 활동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내부는 급속도로 위축됐다. 노동부 직원들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란 단어 앞에서 말 수가 적어졌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개혁위에 대해 물어보면 모두 “모른다”거나 “관심 없다”며 조개처럼 입을 닫아버렸다. 입조심을 하면서도 불편한 심기는 감추지 않았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정권-자본-보수언론’ 삼각동맹에 의해 탄압받던 노동자들은 개혁위가 적폐를 어디까지 들춰내고, 환부를 어디까지 도려낼 수 있을지 궁금해 했다.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철저하게 파괴됐던 유성기업·갑을오토텍 노동자들, 2010년 대법원의 불법파견 확정 판결 후에도 수년 간 방치됐던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 14년간 합법노조로 활동하다 하루아침에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던 전교조 조합원들이 특히 그랬다.

 

 

박근혜 정부 노동시장 개혁, ‘비선기구’가 불법으로 주도했다

개혁위는 올해 3월 28일 첫 공개 브리핑을 통해 권력개입·외압 방지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드러난 ‘박근혜 표 노동시장 개혁’의 민낯은 미루어 짐작했던 것보다 더 적나라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노동시장개혁 상황실>이라는 ‘비선기구’를 만들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밀어붙였다. 정부 예산과 고용보험기금을 가지고 정부 입맛에 맞는 기사를 사들였다. 쉬운 해고, 기간제 기간연장, 파견업무 허용 확대만이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나는 길이라는 식의 기사와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이를 반대하는 노조를 ‘이기적인 귀족노조 집단’으로 몰아세웠다.

보수청년단체는 야당 비판·노동계 압박을 위한 전위부대로 활용했다. 상황실을 지휘한 김현숙 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보수청년단체 동원을 지시하면, 공무원들이 이를 전달했다. 보수청년단체들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앞으로 쫓아가 노동개혁을 받아들이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피켓시위를 벌였다.

노사정위 불참을 선언한 한국노총을 돌아 세우기 위해 돈줄을 쥐고 흔들었다.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참가 여부에 따라 국고보조금 지급 여부를 결정했다. 개혁위 발표에 대해 한국노총 관계자들은 “국고보조금 지급 중단은 빙산의 일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해 2월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2015년 4월 8일 노사정 대화 결렬을 선언한 다음부터 사정 대상에 오른 것 같다”며, “일부 산별 대표자들도 사찰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사석에서도 종종 그 시절 겪은 고충에 대해 토로하곤 했다.

개혁위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상황실 운영에 대한 장관의 유감 표명과 김현숙 전 수석·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를 권고했다.

그런데 “노동개혁 전도사”란 별칭이 붙을 만큼 적극적으로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기권 전 노동부 장관 이름이 빠져 있었던 것은 이상했다. 게다가 노동개혁 홍보 예산으로 고용보험 기금이 전용됐는데, 이를 지시했을 법한 주체가 빠져 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개혁위 조사 과정에서 상황실 상주 공무원들과 노동부 직원들이 입이라도 맞춘 듯 김현숙·이병기 두 사람의 이름만 댔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만천하에 공개된 삼성과 노동부의 은밀하고 끈끈한 관계

개혁위는 당초 올해 4월 말까지였던 활동 기한을 3개월 더 연장해 9개월 동안 조사했다. 방대한 고용노동행정 전반에 걸친 방대한 조사범위 탓이 컸지만, 노동부가 개혁위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점도 활동 기간 연장에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개혁위 조사위원들이 “자료 협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노동부에 공식·비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일이 잦았고, 언론을 통해 양측의 갈등이 보도되기도 했다.

위원들과 노동부 사이를 중재해야 했던 이병훈 교수는 지난 9월 『매일노동뉴스』 인터뷰에서 “(노동부와 개혁위 간) 긴장관계가 조성될 수밖에 없었다”며 “조사위원들이 문제를 포착해 관련 자료를 해당 부서에 요구하면 쉽게 내놓지 않았다. 분명히 있는 자료인데 없다고 하거나 자료 제출을 질질 끌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가 왜 그렇게 자료 주기를 꺼려했는지 짐작케 하는 개혁위 조사결과가 7월 1일 발표됐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감독의 적정성에 관한 조사결과’였다.

개혁위 조사 결과 의혹만 무성했던 노동부와 삼성의 유착관계가 사실로 드러났다. 노동부 노동정책실장 주재로 열린 ‘2013년 7월23일 회의’에 참석한 고위공무원들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업체 관계를 불법파견으로 본 지방노동관서의 수시감독 결과 보고를 뒤엎었다. 고위공무원들이 현장 감독관들이 있는 자리에서 “불법파견임을 전제로 한 문구를 중립적 용어로 수정하라”거나 “판단을 배제하고 사실관계만 나열하라”며 감독결과를 바꾸라는 시그널을 노골적으로 보냈다. 결국 같은 해 9월 6일 차관보고회의에서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은 ‘합법도급’으로 결정됐다.

노동부는 감독결과를 놓고 삼성과 출구전략을 함께 모색하기도 했다. 정현옥 당시 노동부 차관은 “원만한 수습을 위해 삼성 측의 개선안 제시가 필요하다”며 노동정책실장에게 삼성 임원을 접촉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삼성은 노동부에게 첨삭지도를 받았다.

삼성이 자율 개선방안을 전달하면, 노동부가 이를 검토해 보완사항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노동부가 시간을 벌어주면서 삼성전자가 불법파견 요소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맞춤형 족집게 과외’를 한 셈이다.

파장은 컸다. 개혁위 발표 사흘 뒤 금속노조는 노동부 전·현직 고위공무원들을 공무상비밀누설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의 노동부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문제의 2013년 7월 23일 회의 참석자들 중 두 명은 퇴직하거나 본부 요직에서 물러났다. 공무원들 속에서는 “회의 참석만 했는데 가혹한 처사”라거나 “사기가 떨어진다”는 불만 섞인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노동부가 조직적으로 삼성전자서비스의 법 위반 행위를 묵인하고 ‘과외 선생’을 자처하고 있는 동안, 삼성의 노조와해 공작은 장기간 치밀하게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 2명은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각 분야마다 무게감 있는 권고안을 남긴 개혁위 활동

올해 8월 1일 개혁위가 공식 활동을 마치고 발표한 최종 조사결과를 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자동차 업종의 거의 모든 공정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한 법원 판례가 쌓여가고 있는데도 노동부는 사실상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10년 이상 합법노조로 활동한 전교조에 대한 법외노조 통보 처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끝내 ‘노조 아님 통보’를 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유성기업·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노조파괴 공작에 창조컨설팅·경찰·노동부 등과의 협조체계가 존재했으며, 노조파괴가 성공한 사업장에는 ‘국민노총 가입 권유’가 뒤따랐을 것으로 추단되는 여러 증거들도 나왔다.

개혁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 이뤄진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를 직권으로 취소하거나 법외노조 통보의 법적근거가 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했다.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사건은 법원 판결에 따라 조속히 직접고용 명령을 내리라고 주문했다. 이 외에도 △사전통보 없는 불시 근로감독 원칙 수립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노조 무력화 공작 진상조사 △산재 판정구조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 등 15대 과제마다 무게감 있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실행계획을 내놓지 않는 고용노동부

남은 과제는 노동부가 개혁위 권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행하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혁위 활동이 종료된 지 석 달 째 접어든 지금, 노동부는 조용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개혁위 권고가 이행된 건 부처 예산을 동원해 박근혜 정권 노동개혁을 홍보하고 노동계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이병기·김현숙 씨를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뿐이다.

그 사이 김영주 장관에서 교체된 이재갑 장관은 “개혁위 권고 취지를 존중해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은 내놓지 않고 있다.

최근 노동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도 “권고 취지를 충실하게 이행할 생각”이라면서도 “다만 그중 일부 과제는 사실관계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권고사항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동부는 국가기관이 개입해 노조무력화 공작을 벌이고 노조파괴 컨설팅업체인 창조컨설팅과 유착한 의혹을 조사할 별도의 진상조사기구 설치 권고를 가장 난감해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검찰에서 재수사 지시가 내려오면 모르겠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별도의 진상조사기구를 만들어 재수사하기는 어렵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부당노동행위 수사혁신방안을 만들어 다시는 비슷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데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며, “노동부가 아무 것도 안한다고 단정하는 건 곤란하다”고도 했다. 앞으로 잘 할 테니, 과거는 묻어달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노동부가 묻고 싶은 과거 때문에 어떤 노동자들은 거리로 밀려났고, 삶이 파탄 났고, 또 죽었다. 이쯤 되면 노동자들은 노동부에 이렇게 묻고 싶을 것 같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대사처럼. “말해 봐요. 우리한테 왜 그랬어요.”

노동부가 개혁위 권고를 존중한다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선 잘못된 과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개혁위 권고 이행 로드맵부터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견고하게 쌓인 첨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노동행정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진정한 노동존중 사회 실현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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