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시민사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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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박사 sjsj500@hanmail.net

2017년 5월 시민들의 열망으로 만들어진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 및 100대 공약과제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의 비준을 제시했다. 그리고 ILO 100주년인 2019년에 핵심 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요즘 언론에서도 많이 나오는 ILO 핵심 협약core conventions이란 회원국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사항을 규정한 규범으로,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1) 핵심 협약은 노동권에 관한 가장 기본적 규율 원칙을 천명한 것으로, 모든 ILO 회원국은 비준에 대한 사실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이에 따라 ILO는 미비준 회원국에 대해서 비준 전망 및 미비준 사유를 매년 보고하도록 하는 한편, ‘결사의 자유’에 관해서는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결사의 자유위원회>를 통하여 해당 회원국 정부에 ‘권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본협약은 1998년 ILO 기본원칙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 1998)에서 열거한 4개 원칙과 관련된 8개 협약이 대상이 된다. 결사의 자유(제87호,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제29호, 제105호), 차별 금지(제100호, 제111호), 아동노동 금지(제138호, 제182호)로 총 4개 분야, 8개 협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핵심 협약 8개 중 4개(제138호 협약, 제182호 협약, 제100호 협약, 제111호 협약)만 비준하고, 4개(결사의 자유와 관련한 87호, 98호 협약,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한 29호, 105호 협약)는 아직 미비준 상태이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의 효력
 
회원국이 협약을 비준하면, ILO는 협약의 이행에 관한 상시적인 감시·감독 체계를 가동하게 된다. 이에 따라 회원국은 비준한 협약에 대한 이행 여부에 관하여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여야 하고(ILO 헌장 제22조), 이에 따르지 않는 경우 다른 회원국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거나 해당 회원국의 노동조합 등에서 진정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ILO 헌장 제24조 및 제26조).
ILO 이사회Governing Body는 필요한 경우 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에 문제를 회부하여 협약의 이행 여부에 대한 정밀 조사를 할 수 있다(ILO 헌장 제26조~제29조). 조사위원회는 조사결과를 협약 적용에 대한 전문가위원회Committee of Experts on the Application of Convention와 검토한 후 보고서를 발간할 수 있으며, 이 보고서를 토대로 이사회는 해당 회원국에 대한 ‘권고문’을 채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보다 정밀한 조사를 위하여 특별위원회를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ILO 헌장 제25조).
한편, ①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권고에 대한 무조치 ② 협약의 이행에 관한 지속적인 무반응 등 해당 국가가 회원국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를 불이행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ILO 총장은 별도의 심사위원회를 개최하여 보고서를 채택하고 이에 대한 수락 여부 및 수락하지 아니할 경우에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에 회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해당 회원국에 통지할 수 있다(ILO 헌장 제29조 제1항 및 제2항).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절차
 
헌법 제73조는 “대통령은 조약을 체결·비준하고,…”라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 제60조는 “국회는 …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 …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약 체결 및 비준과 관련된 절차는 다음과 같다. 주관부서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비준안을 마련하면 외교부에 비준 의뢰를 한다. 법제처는 협약과 국내법 합치 여부를 검토해 합치하지 않을 경우엔 국회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비준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통해 의결된다.
ILO 핵심 협약도 조약에 해당하고 입법사항이 수반되므로 국회가 동의권을 가진다. 그리고 아직 우리가 비준하지 않은 결사의 자유 협약(제87호, 제98호)과 강제노동 금지(제29호, 제105호)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결사의 자유 협약에 위반되는 노동관계제도들에는 공공부문의 단결권 범위, 기업별노조 중심 체계에서 비롯된 실업자,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문제와 설립신고제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에 관한 근로시간면제제도, 필수유지업무제도의 적용 대상, 파업에 대한 처벌 및 기타 통제와 형벌 위주의 법제도 등이 있는데, 그 유형이 매우 다양하며 전반적인 노동관계법령에 퍼져 있다. 또한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 위반되는 제도에는 비군사적 대체복무와 강제노동 문제 등이 있다. 즉, 이러한 국내법령과의 충돌 문제로 인해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서는 법 개정 절차가 필요하다.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입법을 통해 비준하려는 협약에 맞도록 국내법령을 정비한 후 비준하는 방법(‘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국제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그에 충돌하는 국내법령의 제·개정을 추진하는 방법(‘선 비준 후 입법 방식’)이다.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의 장점은 우선 국내법령과 국제법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규범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과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비준 이후와 국회의 비준 동의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를 방지한다. 현재까지 비준된 국제협약의 약 80% 이상이 국회 비준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반면에 이 방식의 단점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노동법령의 성격상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법령의 제·개정의 내용과 방향 자체뿐 아니라, 선 입법의 대상 법령을 확정하는 단계부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한다. 이는 주요 국제협약에 대한 국내 비준이 늦어지는 이유의 하나이다.
‘선 비준 후 입법 방식’의 장점은 협약 비준에 소요되는 국내 절차를 단축한다는 것이다. 우선 비준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계 등에서는 현재 이 방식으로의 비준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협약이 국내법령과 충돌되는 경우 법제처,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심의 결과를 확정할 수 없고, 결국 국회 동의로 넘어가게 되었을 때 국회의 논의 과정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시민사회의 과제
 
ILO 핵심 협약 비준에 대해서 선 비준 후 입법 방식과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이 대립하고 있다. 그리고 비준 준비 과정에서도 정부 주도의 입법 개정안 마련의 필요성을 중시하는 입장과 노사정 대화를 통하여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의견이 나뉘고 있다.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앞두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비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ILO 핵심 협약은 단순히 비준함으로써 모든 논의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향후 그 이행과 준수에 관하여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받기 때문에 노동권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즉, ILO 핵심 협약 비준은 목적이 아니라, 우리나라 노동권을 정상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라 생각한다.
ILO에서 형성한 결사의 자유 원칙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법제도와 법적용 실태를 모두 충족하는 것은 다른 모든 국가가 그러하듯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결사의 자유 원칙과 국내법이 상충되는 모든 영역을 제도적으로 시정한 후에 관련 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2)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관계법령에는 ILO 핵심 협약에 상충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선 입법 후 비준 방식의 경우에는 입법 절차에서 국회가 관여하게 되고, 선 비준 후 입법 방식의 경우에는 동의 절차에서 국회가 관여하게 된다. 방식이 어찌되었든 간에 국회의 결의가 필요하다.
현재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핵심 협약 비준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그에 비해 야당과 경영계는 소극적 또는 반대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ILO 핵심 협약을 위한 우리의 과제는 국회의 결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시민사회 및 노동계가 국회를 압박하여 국회가 ILO 핵심 협약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갖고 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보수적인 분들이 좋아하는 나라의 ‘국격’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
 
 

주 

1) ILO 협약은 중요성 내지 지위(status)를 기준으로 분류할 때는 크게 기본 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거버넌스 협약(Governance conventions), 테크니컬 협약(technical conventions)으로 나눈다. 기본 협약은 1998년 ILO 기본원칙선언(Declaration on Fundamental Principles and Rights at Work, 1998)에서 열거한 4개 원칙과 관련된 8개 협약이다. 거버넌스 협약은 2008년 사회정의 선언(‘공정한 글로벌화를 위한 사회정의에 관한 선언’: Declaration on Social Justice for a Fair Globalization, 2008)의 내용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ILO 이사회가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priority) 비준하여야 할 협약으로서 지정한 4개 협약을 말한다. 여기에는 제81호 근로감독협약, 제122호 고용정책협약, 제129호 근로감독(농업)협약, 제144호 노사정협의(국제노동기준)협약이 해당된다. 테크니컬 협약은 그 밖의 협약으로 나머지 177개 협약이 여기에 해당한다.
2) 이승욱 외, 「국제노동기준과 우리나라 노사관계 법제의 비교 연구」, 노동부 용역보고서, 200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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