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 협약 비준의 의미와 노동법·제도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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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이면 국제노동기구ILO가 창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ILO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 노동기준의 저하를 통한 국가들 간의 부당 경쟁과 시장 쟁탈을 막고 항구적인 세계평화는 사회정의를 바탕으로 하여야만 확립될 수 있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ILO는 협약이나 권고의 형식으로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표준적인 노동기준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마련하고 회원 국가의 노동법과 정책에 대한 규제를 통하여 그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그런데 또다시 치러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경험은 ILO가 국제연합UN의 전문기구로 편입되면서 인간의 존엄 및 인권존중의 이념을 보다 뚜렷이 하는 계기가 되었다.
 
ILO 핵심 협약과 결사의 자유, 그리고 인권
 
즉, 1944년 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지속적인 발전에 필수적이다.”라는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사람이 경제발전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취급되거나 단순한 보호대상이 아니라 그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게 된다. 이리하여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두 개의 기본협약이 연이어 제정되었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1948년)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의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 1949년)이 그것이다. 같은 시기에 국제연합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 선언」(1948년)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제23조 4항)고 규정함으로써, 결사의 자유가 기본적인 인권의 하나임을 명확히 밝혔는데 이 역시 같은 맥락에서이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ILO 자체가 노사정 3자 구성 원리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결사의 자유는 이 기구의 필수적인 존립요건이라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ILO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두 기본협약의 기준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여 ILO 가입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가 1991년 국제연합의 가입과 동시에 ILO 헌장의 비준에 의한 자동가입이라는 우회방식을 통하여 비로소 ILO의 회원국이 되었다. 이후 ILO는 인권존중의 기본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1998년 6월 총회에서 「노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하고 앞의 두 협약을 비롯하여 모두 8개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존중하고 촉진하고 실현해야 할 기본적인 협약으로 선언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최근 ‘ILO 핵심 협약’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8개 핵심 협약 가운데 차별금지와 아동노동의 폐지에 관한 4개 협약, 즉 「균등 보수 협약」(제100호), 「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관한 협약」(제111호), 「최저 연령 협약」(제138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철폐 협약」(제182호)을 비준하였다. 반면 노동기본권의 보장과 직접 관련된 위 제87호 협약과 제98호 협약, 그리고 강제노동의 금지에 관한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제29호)과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제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직 비준하지 않은 이들 협약은 185개 회원 국가 중 대부분이 비준하고 있는 것들이고(2018년 현재 제87호 155개국, 제98호 165개국, 제29호 178개국, 제105호 175개국 비준), 우리나라도 국제사회에 여러 차례 비준을 공언한 바 있어 이제는 더 이상 비준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와있다. 특히 제87호 협약과 제98호 협약의 주된 내용인 노동기본권의 보장은 세계 인권 선언의 주요 원칙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가 이미 비준한 두 개의 국제인권규약에서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를 거부할 아무런 명분이 없다. 시민권 규약은 “모든 사람은 자기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이에 가입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과의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제22조 제1항)는 것을, 그리고 사회권 규약은 “모든 사람은 그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을 증진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관계단체의 규칙에만 따를 것을 조건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가 선택한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권리를 갖는다.”(제8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고, 이는 위 두 핵심 협약의 기본원칙과 거의 일치한다. 국제법 존중주의를 헌법 원리로서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국제연합 및 ILO의 회원국으로서 또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같은 노동기본권 관련 국제법규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입법, 행정, 사법 모든 차원에서 이를 무시하거나 괴변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국제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비판과 권고를 받아왔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 및 국정과제로서 “ILO 핵심 협약의 비준”을 기본으로 한 노동기본권의 회복을 약속하였다. 지난 7월에는 집권당의 원내대표도 정부 국정과제인 노동 존중 사회와 지속성장을 위해 ILO 핵심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면서 올 하반기 국회에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법·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대통령 산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를 발족시켜 ILO 핵심 협약의 비준에 필요한 의제와 법률 개선방안을 정기국회가 시작되기 전인 올 8월까지 논의를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에 관한 ILO 핵심 협약의 원칙과 내용은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와 워낙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거의 혁명적인 수준의 입법적인 개선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비준절차에 있어서도 국회의 동의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등 여러 난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입법적인 개선과 비준 간의 시간적인 선후를 둘러싼 논란도 그치지 않고 있는데, 국내법령이 핵심 협약과 비록 상충하더라도 협약의 효력 자체가 비준 통보일로부터 12개월이 지난 이후에나 발생하므로 실제로 중요한 것은 비준의지이지 그 순서에 본질적이거나 또는 법리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회의 정치지형, 노동기본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었던 관료집단의 저항, 노조활동에 늘 공격적인 태도를 보여 왔던 보수성향의 언론이나 경영자집단의 반발 등 비준과 입법적인 개선 과정이 거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그렇다하더라도 이들 핵심 협약에 포함된 기본적인 원칙이나 권리들은 비준여부에 관계없이 ILO 회원국이라는 사실만으로 ILO헌장에 입각하여 신의에 따라 준수하고 존중하며 촉진하고 실현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ILO 회원국이기 때문에 이들 핵심 협약은 이미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노동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로서도 더 이상 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결사의 자유의 보장은 인간의 존엄 또는 인권존중의 보편적인 차원에서 제기되는 문제인 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실정이 어떠니, 정치적 상황이 어떠니, 또는 문화적 전통이 어떠니 하는 식의 변명은 국제사회에서 전혀 통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핵심 협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그간에 우리의 노동관행이 얼마나 왜곡되어 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로 삼고 핵심 협약에 직접적으로 저촉되거나 양립할 수 없는 관련 법령들과 판례 및 행정지침 등을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ILO 핵심 협약의 내용과 현행 노동법·제도의 과제
 
ILO 제87호 협약 제2조는 “노동자와 사용자는 누구나 당해 단체의 규칙만을 따를 것을 조건으로 하여 사전 승인 없이 스스로가 선택한 단체를 조직하거나 그 단체에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조 할 자유’를 매우 간결하고도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 문장은 결사의 자유가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법적 권리라는 점과 이를 보장하기 위하여 회원 국가의 관련 노동법과 제도가 어떠한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이 협약은 결사의 자유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서, △조합규약의 작성 △자유로운 대표자의 선출 △노조운영 및 활동의 보장과 이에 대한 공공당국의 권리제한이나 간섭의 금지 △행정기관에 의한 노조해산이나 권리정지 처분의 금지 △연합단체 결성 및 가입권의 보장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제98호 협약은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취급이나 반反조합계약 등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용자의 각종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고,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증진하기 위한 국가의 조치의무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제87호 협약이 국가로부터의 자유의 원칙을 규정한 것이라면 제98호 협약은 사용자로부터의 자유의 원칙을 규정한 것이다. 결국 이 두 협약의 핵심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과 자본권력 모두로부터 자주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헌법도 진작부터 이러한 의미의 결사의 자유를 노동3권의 일환으로서 개별적인 유보조항 없이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노조 할 자유’는 ILO 핵심 협약의 비준 없이도 보장되었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번 ILO 핵심 협약 비준에 관한 논의는 국제기구가 작성한 특정 조약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수준이 아니라, 차제에 노동기본권의 헌법적 의의를 새롭게 재규정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정립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ILO 핵심 협약의 비준에 관한 논의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쌓여온 법적·제도적·이데올로기적 장해물이 켜켜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일일이 지적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의 집단적 노동관계법의 체계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보편적인 기준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그동안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제소된 여러 사례만 보더라도 법과 제도상의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실례로 ① 노조의 설립 및 가입 주체의 제한과 관련해서는 △교사, 공무원, 대학교수, 특수고용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노조설립신고 거부 또는 법외노조 통보 △복수노조 금지 ② 노조활동과 관련해서는 △제3자 개입 금지와 처벌 △사용자의 노조파괴 공작 및 원청의 노조탈퇴 협박에 대한 수사의 미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부당노동행위 처벌 △근로시간면제제도의 상한선 통제 ③ 단체교섭과 관련해서는 △행정관청의 단체협약 시정명령과 단체협약 체결에 관한 정부의 지침이나 예산을 이유로 공공부문 임금체계 일방적 변경 △전교조와의 단체교섭 거부 △원청의 단체교섭 거부와 계약해지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에 의한 소수노조 단체교섭권 박탈 △건설노조의 단체교섭에 대한 강요 및 공갈죄 처벌 ④ 단체행동권과 관련해서는 △교원의 쟁의행위 및 정치활동 금지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파업 및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 △노조집회에 대한 경찰력 투입과 조합원의 체포와 구금 등이 있다.
이렇듯 수많은 사례들에서 ILO 헌장 및 핵심 협약 위반이라는 판단이 내려졌지만 한국 정부, 국회, 법원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이 점에 대한 문제인식 자체가 결여되어 있다. 기본적인 인권의식의 박약으로 인하여 노조활동에 대한 국가의 극단적인 관리와 통제 체제가 우리나라 노동법과 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현행 노동 관련 법령과 ILO 핵심 협약의 충돌 지점들
 
ILO 핵심 협약의 내용 및 원칙과 관련하여 비준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현행 노동법과 제도의 주요 내용을 ILO의 내부기관인 <결사의 자유위원회> 및 <조약의 적용 권고에 관한 전문가위원회>의 유권해석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⑴ 직업적 범주와 관련하여 제87호 협약은 결사의 자유 원칙의 적용에서 제외되는 예외적인 직종으로서, 군대와 경찰의 구성원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군인과 경찰공무원 외에도 소방·교정공무원을 포함한 여러 특정한 직무의 종사자 전부와 5급 이상의 모든 영역의 공무원, 청원경찰과 대학교원의 경우에는 파업뿐만 아니라 노조의 조직, 집회나 시위를 비롯한 일체의 집단적인 행동이 국가공무원법 등 관련법령에 의하여 금지되어 있다. 나아가 위반 시는 해고와 함께 형벌을 받게 된다. 특히 공무원 신분도 아닌 사립학교 교원과 청원경찰의 경우에는 헌법상의 명시적인 제한 근거가 없음에도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결정하였다. 이와 같이 군인과 경찰을 제외하고 노동3권을 일체 부정하는 법령들은 차별 없는 단체의 설립 및 가입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결사의 자유 원칙에 반하거나 양립할 수 없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노조설립신고나 부당노동행위 심판 및 재판과정에서 노조법상의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기본권이 부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ILO는 일반적인 자영업자나 자유직업 종사자와 같이 고용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단체결성의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태도는 제87호 협약에 위배된다.
⑵ 노조 설립 및 조합원의 자격인정 여부에 관해서는 당국의 사전승인 없이 노조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노조 등록에 관한 절차도 법률상이든 사실상이든 허가제도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87호 협약의 원칙이다. 따라서 노조법상 행정관청에 의한 노조설립 사전심사, 노조설립신고서 반려제도, 노동조합이 아니라는 통보 절차 등은 이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노조설립신고제도는 그 자체가 제87호 협약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기관이 등록을 거부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지는 등 실질적으로 사전 승인과 같은 효과를 가지도록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노동조합의 등록유무를 법적 책임의 면제, 쟁의조정기구의 이용, 부당노동행위 구제절차의 이용 및 특정 노동단체의 단체교섭 대표권을 부여하는 조건으로 설정하는 노조법의 각종 규정도 제87호 협약에 위배된다.
⑶ 노조 운영 및 활동과 관련해서는 단결자치의 원칙이 적용되고 공공기관에 의한 권리의 제한이나 간섭·방해 행위 등이 금지된다. 따라서 현행법상 노조임원의 자격요건이나 선거 및 해임 절차에 대한 국가의 개입, 조합규약·노조의 결의나 처분에 대한 행정관청의 시정명령과 형벌 적용, 노조전임자의 조합활동시간 상한선 제한 등도 제87호 협약에 위배된다.
⑷ 사용자의 노동3권 침해행위인 부당노동행위의 금지는 제98호 협약의 주된 내용이지만 우리나라도 노조법에서 동일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협약 비준에 있어서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실제의 법 집행에 있어서 행정관청이나 사법당국이 미온적인 태도로 이를 방관하거나 수사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 등 불법을 용인하는 관행이 고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전향적이고 근본적인 태도변화가 따르지 않는 한 협약 위반으로 지속적으로 제소될 수 있다.
⑸ 단체교섭권의 보장과 관련하여 노사가 집단적으로 교섭할 권리는 결사의 자유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이고 단체교섭의 단위는 노사당사자가 국가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배타적인 교섭대표권 인정 제도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경우에는 허용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단체교섭권이 근로자 개인의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 노조나 협약체결 후 새로 설립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부정하는 교섭창구 단일화제도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헌법재판소는 합헌으로 판단). 그밖에 현행법상 행정관청의 단체협약 시정명령권, 단체협약의 해석과 이행방법에 관한 분쟁에 행정관청의 개입과 쟁의금지 등은 단결자치의 원칙에 반하는 과도한 간섭으로서 제98호 협약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⑹ 파업권에 관해서는 핵심 협약에서 별도의 권리로서 명시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제87호 협약의 ‘노동자단체의 활동에 대한 권리’ 및 ‘노동자의 이익을 증진·옹호하기 위해 이용 가능한 수단’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 결사의 자유에 고유한 필연적인 결과 또는 경제적·사회적 이익의 촉진 및 방어를 위한 본질적인 수단이라는 것이 ILO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파업권은 단체행동권의 일환으로서 헌법에 의한 보장을 받고 있다. 하지만 파업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노동관계 법령이나 이에 터 잡은 판례가 합법적인 쟁의행위의 범위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탓에, 평화적인 파업조차 민사책임은 물론이고 각종 노동 관련 법령에 따른 형벌뿐만 아니라 업무방해를 이유로 일반 형법상의 책임까지도 질 수 있다. 사법당국의 형벌권의 남용과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 및 보복적인 해고에 의하여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특히 노조법은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노동조합이나 노동자가 지켜야 할 규칙과 처벌 조항으로 가득 차 있어, 노조활동을 촉진하고 보호해야 하는 노동법으로서의 성격이 거의 없고 오히려 이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치안경찰법’에 가깝다. 이 때문에 파업현장에서는 노조지도부와 조합원에 대한 체포·구금 등 경찰력의 남용과, 회사 측이 동원한 용역폭력배의 무자비한 폭력 등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사례들은 국제연합 사회권위원회나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에 의해서 사회권규약 또는 제87호 협약에 위반되는 것으로 누누이 지적된 바 있다.
 
노동법과 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 존중 사회’란 아마도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보다 구체적으로는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의존적인 대상이 아니라 사용자와 동등하게 자유를 누리면서 사회경제적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일 게다.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노동3권을 사회적 인권의 가장 핵심적인 권리로 보는 이유도 경제적 과실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가 자본이라고 하는 사회적 권력의 지배와 남용으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내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법의 세계에서 노동3권이 인권으로서 자리하게 된 역사적인 과정을 보더라도 역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을 통하여 스스로 일구어낸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 헌법의 노동3권 조항이나 ILO 핵심 협약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은 바로 노동3권의 자주성 보장이다. 최저임금 등 개별적인 노동기준의 결정이 국가에 의한 적극적인 보호를 필요로 하는 반면 노동3권의 보장은 오히려 국가나 사용자의 간섭이나 방해로부터의 자유가 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되는 이유이다.
지난 40여년 가까이 지속된 경제의 글로벌화나 노동법의 규제완화라는 반인권적인 흐름에 대항하여 노동 존중 사회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노동기본권의 강화를 통한 사회경제적 균형의 회복이라는 역사적이며 전통적인 방법 외에 달리 뾰족한 묘수를 찾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의 보장에 관한 두 핵심 협약의 비준은 매우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개혁에 있어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최저 수준인 노조조직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단체교섭을 촉진하며 단체행동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에 온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해방 이후 오래도록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짓눌러 온 법·제도적 틀의 근본적인 혁신이 불가피하다.
끊임없이 고용·노동조건과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는 자본운동을 제어할 수 있는 노동의 사회적인 힘을 보호하고 키우지 못하면, 경제적 불평등의 완화는커녕 촛불혁명으로 겨우 회복의 기미가 보이는 정치적·사회적 균형 자체가 또다시 무너질 수 있다. 생존의 벼랑 끝에 몰려있는 근로대중의 손을 잡는 대신 자본투자나 고용창출이라는 자본가 중심의 논리에 시선을 빼앗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한국적 상황은 경제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도 노동기본권의 강화를 통하여 이를 헤쳐 나갔던 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정부와 같은 혁신적인 방향 설정과 개혁의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루스벨트 정부는 대량실업과 심각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과감한 복지정책 및 세제 개혁과 더불어, 위헌판결로 대응하던 보수적인 법원의 저항을 무릅쓰고 부당노동행위 제도를 도입하여 노조조직률 및 단체교섭권을 획기적으로 강화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량을 뒷받침했던 것이다.
 
민주주의 도약의 계기, 정부가 주도해야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ILO 핵심 협약의 비준이라는 사회적 의제는 뒤틀리고 왜곡된 우리나라 노동법과 제도를 바로잡아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앞서 살펴본 대로 핵심 협약의 비준을 위해서는 노동관련 법령의 몇몇 조항의 손질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동인권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의 전환과 관계법령의 전면적인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집단적인 노동관계는 노사당사자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 원칙을 잘 견지하는 한 입법적인 개선 작업 그 자체에 기술적인 어려움이나 시간상의 한계에 부닥칠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노동개혁 과제에 맞닥뜨릴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입법부에게 책임을 떠넘겨 지루한 정치적 공방으로 몰아가거나 사회적 합의를 빌미로 차일피일 시간만 끌었던 지난 정부들의 소극적이고 무책임한 행태이다.
현 정부는 과거 잘못된 노동정책 및 행정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는 모습과 함께, 주도적으로 입법안을 마련하고 추진해가는 적극적인 개혁의지와 실천을 보여야 한다. 또한 ILO 핵심 협약의 비준 여부에 관계없이 노동3권은 이미 헌법적 차원에서 보장하고 있는 만큼, 사법부도 재판에서 노동3권이 훼손되거나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결실을 맺기까지에는 많은 저항과 난관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루거나 방치할 수도 없다. 이 상태로서는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그에 따른 노사 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는커녕 훨씬 더 심각한 경제적·사회적 대가를 지불해야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노동인권 탄압국으로 지속적으로 낙인찍히면서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키게 될 것이다. 결사의 자유를 비롯한 노동3권의 온전한 보장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여 민주적인 복지사회로 가기 위한 주춧돌이자, 사회적 안정을 보장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해야만 확립될 수 있다는 ILO의 기본 정신을 돌이켜본다면, 핵심 협약의 비준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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