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해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 금속노조 현대모비스아산지회 건설 사례

반갑습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모비스아산지회입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노동사회』의 원고청탁을 기회로, 저희 현대모비스아산지회의 설립 과정 및 현재의 모습에 대하여 글을 남겨 봅니다.
 
 
반노조전략과 고강도노동이 지배하는 현장
 
먼저 일터에 대해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희가 일하는 공장은 ‘현대모비스 아산공장’으로, 완성차의 핵심 모듈(기능 단위 부품들을 결합해 둔 덩어리)을 조립해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납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산하는 모듈의 종류는 크게 보면 △cockpit(운전석) 모듈 △front end 모듈 △chassis(front, rear) 모듈 이렇게 3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현대자동차가 1대를 만들면 저희도 1대를 만들어 서로 결합되게 하는, 노동과정에서 재고가 생기지 않도록 설계된 이른바 직서열 납품업체입니다. 우리는 1시간에 67.5대를 생산해 고객사(현대차 아산)에 제공합니다. 편성률(주어진 시간 가운데 실제 작업에 투여되는 시간)을 따지면 평균 95%에 달하는, 고강도노동이 이루어지는 생산현장입니다. 현대자동차 완성차공장의 평균 편성률은 58.9%라고 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저희가 현장에 노동조합 깃발을 세운 지 약 8개월 정도 되었습니다. 이번에 노조를 만들어내기 전까지, 사실 다들 현대모비스(주)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현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아예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하려고 사내하청업체를 여러 개로 분리를 하였고, 그 분리된 업체들 안에서도 관리자를 통해 현장 직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윗선에 보고했습니다. 노동조합의 ‘노’자만 나와도 회사가 뒤집어졌습니다.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는 직원들은 ‘특별관리’를 하며, 지속적인 압박과 불합리한 처우를 통해 어떻게든 회사에서 내보내 노동조합의 싹을 자르려 했습니다.
노동조합이 정말 무섭고 만들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직원들에 대한 처우라도 좋아야 할 텐데, 사측은 어떻게 하면 10원이라도 더 빼먹을까를 연구하고 실행하며 직원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매년 뉴스에서 최저임금 인상액을 보면 우리의 임금을 알 수 있었고, 새로운 자동화 설비가 들어 올 때마다 동료들 서너 명씩이 사라져 갔습니다. 2004년 직원 수와 현재의 직원 수를 비교하면 원청과 사측이 얼마나 잔인하게 인원감축을 해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50% 수준이니까요.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감사 때만 되면 갑자기 전에 없던 공정과 인원이 생겨났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22명이 일하는 라인이 30명이 일하는 라인으로 변경되어, ‘유령 인원’들이 라인을 채우고 편성률을 떨어트려 감사를 받아 통과시켰습니다. 물론 감사가 끝나면 바로 그 유령 인원들이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직원들에게 줘야 할 돈과 인력은 어디로 갔을까요?
 
꾹 억눌러둔 울분, 사람 취급을 받고 싶다!
 
회사는 말 잘 듣는 직원들에게는 말 안 듣는 직원의 시급을 빼앗아 임금을 올려주었고, 1년차 사원이나 10년 이상의 직원들 월급은 차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신입사원이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더 받아가는 경우가 일반화되었습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은 그저 그러려니 해야 했습니다.
약간의 시간만 생기더라도 설비를 닦고, 바닥에 조금만 스크래치가 나면 광나도록 콤파운드를 문질러야 했고, 쉬는 날엔 회사로 불러내어 재고조사와 페인트칠을 시켰습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근무가 종료된 후 새벽에 바닥 코팅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정당한 임금은 꿈도 못 꾸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눈치를 봐서 아파야 했고, 집안 제사가 있어도 참석을 못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면 현장직원들은 동물원 원숭이마냥 구경거리가 되어야 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완성차공장으로 가는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러 다녔습니다. 추운 날 기온이 떨어져 현장 직원의 손이 얼어가는 데도 히터를 틀어주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게도 제품이 깨져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히터를 가동해 주었습니다. 직원들을 손이 어찌되던 제품에만 온 신경을 다 바쳤습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손님이나 높으신 분이 오는 날이면 날이 따뜻함에도 하루 종일 히터를 가동했습니다.
인원감축을 해가며 들여온 설비가 고장이라도 나는 날이면, 허겁지겁 밥을 먹고 생산에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개인적인 일로 필요해서 연차휴가를 사용하려면 모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업체소장들은 자기가 돈이 필요하면, 라인의 인원이 부족하든 말든, 직원들에게 강제로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강요하여 그 돈으로 자기 배를 채웠습니다. 심지어 어느 업체소장은 부친상 때 직원들을 대동하여 도우미로 사용하는 상식 이하의 행위들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가족이다. 나는 한 점의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며 자기 합리화시키기에 바빴습니다.
이외에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많은 일들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지만, 어떠한 불평과 불만도 할 수 없었습니다.
 
노조 설립에 이르기까지, 그 긴박했던 순간순간들
 
그러던 2017년 현장의 두 직원이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 충남지부의 담당자는 노동조합의 확실한 설립을 위해서 인원을 더 조직하라고 요구하였고, 두 조합원은 자신 있다며 조직해서 다시 오겠다고 말을 하고 돌아가서 현장의 직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 뜻에는 공감하면서도 선뜻 나서는 직원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사측의 귀에 노동조합을 설립한다는 첩보가 흘러들어갔고, 그 주동자 두 명은 사측의 협박과 탄압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 두 직원은 꿋꿋이 버텨냈습니다. 충남지부와 협의하여 사측의 동태가 잠잠해 질 때까지 숨고르기를 하고 나중에 다시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된 이야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시기에 현장의 5개 업체 조장들과 반장들 또한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현대모비스 아산공장의 노동조합 설립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조·반장들이었습니다.
이 조·반장들의 움직임은, 앞서 말한 두 직원으로 인해, 사측의 감시의 눈을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지나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에서 우리보다 먼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사측의 감시가 강해지고, 노동조합의 결성을 원천봉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현장은 화성지회의 소식으로 들썩였습니다. 그동안의 억압과 탄압,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들이 직원들의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스쳐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사측은 조·반장들을 통하여 현장을 통제하려 시도했습니다. 가장 먼저 사측이 한 것은 ‘조·반장 달래기’였습니다. 사측은 노동조합의 확산을 방지하려고 조·반장들과 원청(공장장 포함)의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그 간담회에서 사측은, “앞으로는 최저임금보다 10원과 20원 많은 시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근속년수에 맞게 임금을 차등지급해서 주겠다”, “노조가 없어도 노조가 있는 회사만큼 복지혜택을 다 해주겠다” 등등의 당근책을 내밀었습니다.
업체소장들이 현장관리자들과 술 한 잔 하자며 불러낸 자리에선, 원청직원이 참석하여 “조합을 만들고 있느냐?”, “조합을 만드는 주동자가 누구냐?”, “노조 만들면 우린 죽는다, 그러니 만들지 말아라”, “○○○이 주동자 같은데 맞냐?”는 등으로 찔러 보기 식의 질문과 협박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항상 가슴 속에 감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측의 협박에 흔들리지 않았던 조·반장들입니다.
사측이 눈치를 챘다는 것을 알아버린 조·반장들은 이때부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야간근무 때 직원들 개별 면담을 통하여 조합원들을 모집했고 직원들에게 노조 가입을 설득했습니다. 직원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조·반장의 말들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100%는 아니지만 과반 이상의 확답을 받았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조직화가 시작됐습니다. 금속노조 충남지부 회의실에서 첫 회의를 할 때 28명이 모였고, 두 번째 남산도서관에서의 회의는 76명이 모였습니다. 세 번째 지부회의에서 임원들을 임시로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사측에 또다시 정보가 흘러 들어갔습니다.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정말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대로는 공중분해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결단해야 했습니다. 결국 노조 설립 총회를 열고 깃발을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디데이’를 잡고 카운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017년 10월 15일, 바로 그날 드디어 우리의 현대모비스아산지회가 설립되었습니다.
 
금속노조와 현장노동자가 만들어낸 탄탄한 조직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는 개인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편하게 살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권리를 잃지 않고 인간답게 살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동안 권리를 모르고 잃어버리고 살았고,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면, 이제 하나하나 되찾아가고 있는 과도기입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그렇게 가축 같이 쳇바퀴 굴레 속에서 살아왔던 삶을 벗어던졌습니다. 우리가 일한 만큼 땀 흘린 만큼의 임금과 한 회사의 직원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우를 받고자 뭉쳤습니다.
우리는 지난 14년간 권리가 무엇인지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우리에게 없었습니다. 원래 일만 하는 남편, 항상 피곤한 아빠, 늘 바쁜 아들로 살아왔습니다. 30명이 일해야 할 라인에 24명, 22명이 일을 해야 했고, 근속년수가 높은 장기근로자에 대한 대우는 회사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장기근속자들은 고인 물 취급이었습니다.
우리는 굳은 의지와 신념이 가득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하고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금속노조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초기 조직 결성 과정에서 금속노조의 조언과 자문을 받아서 90% 이상의 가입률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체계적이고 탄탄한 조직을 구축하면서 현재는 가입 대상 노동자 307명 중 304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조직률 99% 라는 압도적인 숫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드리십시오,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노동조합이 생긴 후 현장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강제 바닥청소와 조합원의 동의 없는 휴일근로가 사라졌습니다. 사측의 강압적인 지시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사측이 직원들을 인격체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의 가장 큰 부분도, 인간답게 살 권리, 당당한 노동, 행복한 노동이니까요.앞서 언급했듯이 저희는 개인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편하게 살려 노동조합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권리를 잃지 않고 인간답게 살아보고자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습니다. 우리가 일한 만큼 땀 흘린 만큼의 임금과 회사 직원으로서의 최소한의 대우를 받고자 뭉쳤습니다.
앞에서 말한 우리가 자본으로부터 당해왔던 일들은, 1970년대나 80년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한 부분인 어두운 그늘입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그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사측의 억압과 탄압 속에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하지 못하며, 언제 잘려나갈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희가 그분들에게 작을지는 몰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노동조합을 갈망하는 노동자 분들에게 저희 현대모비스아산지회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헌법에도 노동 3권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누려야 합니다.”
“헌법 어디에도 자본이 말하는 경영권과 인사권은 없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혼자서는 힘이 들어도, 노동조합으로 뭉치면 자본과 싸울 수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두드리십시오,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노동조합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대모비스아산지회도 해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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