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투쟁 12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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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개통과 더불어 이 사건은 시작되었다. 철도청(현 코레일)의 KTX 승무원을 속인 것도 모자라 전 국민까지 속인 취업사기극. 모든 것은 KTX의 홍보를 위해 무엇이든 써먹겠다는 것,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최저임금만을 주고 인건비 내역을 줄여 철도청 간부들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들이 버무려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기가 시작되었다.
“지상의 스튜어디스”라는 수식어를 내세우며,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KTX의 하나의 매력인 듯 철도청은 승무원을 이용한 홍보에 열을 올렸었다. “준공무원 대우”, “정년보장” 이라는 홍보는 누구에게나 혹하는 취업조건이었기에 합격발표가 났을 때 주위사람들의 축하와 부러움을 샀었다.
그러나 처음 KTX 승무원 연수를 받기 위해 들어간 순간부터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홍익회(현 코레일유통)라는 회사의 간부들이 간간히 나서는 것하며, 기대했던 교육은 단 2주 만에 수박 겉 핥기 식인 것, 회사의 공지를 포털 사이트 카페를 통해서 전달 받는 것 등 주먹구구식 운영은 곳곳에 드러났다. 그런 의문들에 대해 교육하는 철도청 교수님과, 함께 일하는 철도청 직원들에게 물어봤을 때 들었던 답변은 같았다. 지금은 철도청이기에 공무원 정원이 확보되지 못했다, 내년 철도공사화가 되었을 때 승무원을 직접고용하여 정규직화할 것이다.
 
KTX 개통과 함께 투쟁이 시작되었다
 
2004년 4월 1일 KTX의 운행이 시작되었고, 전 국민의 관심과 기대에 못 미치는 모든 것들은 승무원들에게 민원으로 전달되었다. 왜 300Km로 달리지 않는가, 왜 거꾸로 가는가, 왜 이리 시끄러운가, 욕설과 폭행, 성희롱에 그대로 노출되었지만 회사는 책임지지 않았다. 그저 참으라는 말뿐이었다. 하지만 정작 참을 수 없는 것은 승무원 간접고용이 불법파견임이 불거지자 안전업무에서 배제하고, 교육도 사라지고 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과의 소통마저 막아버리는 처사였다.
우리가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노조에 가입을 하면서였다. 개인적으로 불만 사항들이 차고 넘쳤지만 이것을 사측에 표현하는 것은 사회초년생인 우리에겐 힘든 일이었다. 홍익회의 어용노조를 거쳐 철도노조로 이적하면서 본격적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서울역 집회와 선전전 등이 시작되면서, 너무할 정도로 억지스러운 ‘휴가 제비뽑기’, ‘퇴사자의 헌 유니폼 신입승무원에게 지급’ 등은 사라져갔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2006년 3월 1일 파업이 시작되었다.
KTX 승무원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철도노조와 시작한 파업은 우리 문제를 제외한 다른 부분의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KTX 열차승무지부만의 장기파업으로 진행되어갔다. 당시 철도공사 이철 사장은 조합원 가족들에게 “여러분의 딸들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다”며 협박 편지를 보냈고, 결국 2006년 5월 26일 승무원 280명에게 문자로 해고통보를 했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인 한명숙 취임 하루 전, KTX 승무원은 같은 여성으로서 면담을 요구하며 국회 헌정기념관을 점거하고, 의원실에 찾아갔지만 결국 총리는 면담을 거부했고, 우리들은 경찰에 의해 한명씩 끌려나왔다. 처음 경찰의 연행으로 48시간을 구류당한 조합원들은 많은 심리적 충격을 받았었다.
이후에도 코레일 서울지역본부 점거농성을 통해 사측을 압박했고 그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 찾아가 문제해결을 촉구했었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강금실 선거사무소를 점거를 했을 때는 결국 이철 사장이 찾아와 면담까지 이뤄졌지만, 아무런 성과없이 우리는 경찰에 또 한 번의 연행을 당했다.
노동부와 국가인권위원회 제소도 했었다. 그러나 노동부에서는 조사과정에서는 “무리 없이 불법파견일 것이다”라는 의견을 들었음에도 결과보고서 작정 며칠 전 보고서 작성자가 바뀌고, 관련 법률 자문단이 변경되는 등 조작의 움직임이 보였다. 이를 막기 위해 노동부 지역본부 점거 농성을 하기도 했지만, 노동부는 결국 “불법파견 증거들은 있지만 불법파견은 아니다”라는 결과를 제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들의 손을 들어준 유일한 기관이었다. 2006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구성원이 전부 여성인 KTX 승무원과 대부분 남성으로 구성된 철도공사 소속 열차팀장은 같은 일을 하지만 근로조건은 천지 차이가 나는 것은 성차별적 고용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철도공사는 성차별을 가리기 위해 업무가 다르다는 이유를 대었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결과 발표를 미루고 미룬 끝에 승무원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소송으로
 
코레일 서울지역본부를 시작으로 국회 헌정기념관,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캠프, 국가인권위원회, 서울지방노동청 등의 점거농성과 서울역에서의 천막농성, 철탑농성, 단식, 그 당시 지부장 언니의 삭발까지, 언론에 조금이라도 더 알려질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모든 수단을 다 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싸우면 철도공사와 합의하여 더 빨리 KTX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노동 사건들은 사측의 자료를 얻는 데 어려움들이 많아 증거확보가 어려운 케이스가 많지만, KTX 해고승무원 문제의 경우 사측의 홍보물과 직접 지시내린 공문 및 매뉴얼 등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았기에, 법적으로 따질 경우 거의 승무원의 승소가 확실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소송으로 갈 경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기에 빠른 복직을 원한 우리들은 최후의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소송을 가기 전 우리는 마지막 힘을 모아 철탑농성을 했다. 서울역 옆에 다 쓰러져가는 철탑 위에 승무원 2명과 철도노조원 3명이 함께 올라갔다. 하지만 그도 무색하게 마지막 합의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의 판결단에 맡겨보고 1심 판결이 나면 그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도 무색하게 1심 판결에서 법원은 KTX 해고승무원이 철도공사의 직원임을 인정하는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서 승무원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철도공사는 바로 항소했다.
2심에서마저 승무원이 승소했지만, 잠시 승무원 직접고용을 고려했던 철도공사는 결국 대법원에 상고했다.
 
 
파기환송과 함께 찾아온 임금환수 조치
 
대법원의 판결이 2015년 2월 26일 발표되었다. 원고패소 취지의 ‘파기환송’. 듣고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그 판결. 이후 판결문을 보고는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안전사고가 이례사항에 불과하니 승무원 업무가 아니다. 조목조목 철도공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적어 승무원 측을 패소시키기 위해 끼워맞춘 판결문. 그 많은 증거들을 다 부정하고, 불법파견에 대해서는 묵과하면서 이전 판결에서 증거가 인정되었던 것들을 합리적인 운영 차원에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해석하면서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판결을 내어놨다.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지만, 정작 문제는 패소만이 아니었다. 1심 판결부터 철도공사의 직원임이 인정되면서 받았던 임금이 전부 ‘부당이득’으로 산정되어 철도공사에 돌려줘야 상황이 된 것이다. 투쟁하고 있던 우리의 생계를 이어준 돈이었고,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주었던 그 돈이 모두 빚이라는 짐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에게까지 부담을 지운다는 사실에 모두 감당하기 힘들어 했다.
그래도 10년 넘게 투쟁을 이어온 사람들이기에 믿었다. 그래도 강한 사람들이 남았으리라. 다 훌훌 털고 또 다시 일어나 투쟁을 이어가리라. 나의 오판이었다는 것을 그리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한 친구가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 친구가 세상을 져버렸다는 것을 수소문 끝에 알게 되었다. 그것도 대법 판결 2주 후에 말이다. 우리가 강한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쓰러질 수 있는 상태였구나 하는 두려움에 전 조합원의 심리상담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아무런 전망도 보이지 않는 시간들, 지지부진한 선전전과 집회 등을 지속했지만, 미래의 투쟁전망이 보이기 때문에 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문제가 잘못되었다고 외치는 사람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우리마저 그만둔다면 10년 투쟁이 결국 빚만 떠안고 뿔뿔이 흩어졌다는 결과를 만들 텐데, 그런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지난한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어느 순간 조금씩 희망이 찾아 왔다. 촛불집회가 생겨나고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면서 우리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다시 생겨났다. 정말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을 때 함께했던 종교계를 시작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이 동참하면서 ‘KTX 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꾸릴 수 있게 되었다. 문재인 후보 캠프와는 철도노조와의 정책협약을 통해 “KTX 해고승무원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정권이 바뀌고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이 KTX 해고승무원 문제를 노사전문가협의회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언급도 하고, 2017년 12월에는 직접 철도노조를 찾아와 승무원을 격려하였다. 얼마 안 있어 종교계의 중재로 빚 문제가 철도공사와의 조정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빚이 사라진 것은 그제야 우리가 처음 싸웠던 그때로 돌아간 것뿐이었다. KTX의 안전을 담당하는 승무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승무원들의 처음의 외침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여전히 KTX 해고승무원들은 서울역 천막에 있다. 아직 KTX로의 복직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범행정권 남용의 희생이었음이 드러나다
 
 
그러던 중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태가 드러났다. 대법원 판결을 받았을 때부터 예상했던 것이지만, 그 증거가 드러났다는 사실에 먼저 간 친구가 더 안타깝고, 대법원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대법원 앞에 가서 대법원장 면담신청을 했고 그 과정 속에서 대법정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가 온 것이다.
언론에서 대한민국 최초 대법정 농성이라며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부 판결의 주요한 피해자로 KTX 해고승무원 문제가 보도되었다. 이제 더 이상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미룰 명분도 사라졌다. 현재의 철도공사 사장인 오영식, 국토부장관 김현미,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정부가 나라가 국가기관이 만든 KTX 해고승무원 문제, 이제 해결해야 할 때이다.
KTX 승무원이 자회사에 간접고용 되어있는 한, KTX에 타고 있더라도 승무원은 안전을 담당할 수 없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1천여 명의 승객이 타는 KTX에 안전담당 승무원은 열차팀장 1명 뿐이다. 그러한 고용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안전교육도 안전사고 매뉴얼도 없이 오늘도 KTX는 달리고 있다.
대법원의 판결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철도공사가 범법성은 다시금 확인되었다. 대법원의 뒷거래 판결로 KTX 승무원은 불법파견 상태이고 여전히 성차별적 구조 속에 존재하고 있다. 진정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철도공사는 KTX 승무원을 직접고용하고, 사법부는 스스로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이 문제의 재심을 실시해야 하며, 정부는 12년이 넘는 시간동안 거리에서 투쟁해온 승무원들을 위로하고 보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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