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일가의 부정과 전횡 막기, 그리고 노동자이사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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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물컵이다. 땅콩 하나로 나라 전체를 시끄럽게 했던 한진 총수일가가 이번에는 물컵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번에는 땅콩이 이른바 갑질사태로 이어지더니, 이번에는 물컵이 밀수, 탈세 등 명백한 법 위반 혐의로 이어지고 있다. 3년 전 일가의 장녀가 카메라 앞에 서서 잔뜩 움츠린 채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음에도, 한진일가는 달라진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땅콩을 이유로 자사 비행기를 회항시키고, 거래처 직원에게 물컵을 집어던지며, 심지어 항공사를 경영하면서 세관을 통하지 않고 물품을 몰래 들여오는 일련의 행위가 반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라기보다, 쌀 한 톨 만한 책임에 쌀 한가마니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재벌이라고 하는 ‘한국적 기업 지배구조’에 더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땅콩에서 물컵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면, 마치 조양호 일가가 총수일가 갑질의 대명사가 된 듯 보이지만, 이게 어찌 그들만의 문제일까. 재벌대기업, 재벌총수일가의 소위 ‘갑질’ 은 다양한 방식으로 행해졌다. 총수일가의 운전기사에 대한 폭언·폭행 관련 증언 등은 기업명만 바뀐 채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원청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각종 불공정행위, 재벌총수일가의 일감몰아주기 등 사익편취 행위, 대리점·가맹점 본부의 점주들에 대한 물량밀어내기 등 재벌총수일가와 재벌대기업의 갑질 행태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를 통해 기업 경영 전반을 좌지우지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사익을 편취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지배구조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땅콩 그리고 물컵으로 대변되는 갑질과 편법 상속, 그리고 불공정거래를 통한 대·중소기업의 양극화 등의 부작용만 남았다. 재벌이라는 기업지배구조가 과거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들이 막강한 경제권력을 등에 업고 자행하는 불·편법 등의 횡포는 우리 국민경제에 있어 큰 골칫덩어리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약 일 년 전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민주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고, 오랜 기간 재벌개혁을 주장해 온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우리 국민들이 재벌이라는 한국적 기업 지배구조의 부작용을 이제는 해소해야 될 때라고 소리높이고 있는 것이다.
 
적은 지분, 과도한 권한
 
그러한 국민들의 바람에도 지난해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벌의 총수일가는 갈수록 더 적은 지분으로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른바 소유-지배의 괴리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이라고 평해지는 삼성(0.99%)을 비롯해, 에스케이(0.32%), 현대중공업(0.89%) 등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재벌대기업들의 계열사 전체 자본금 대비 총수 지분이 1% 미만 불과하다.
특히, 총수 있는 상위 10대 집단의 경우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회사 출자를 통해 지배하는 구조가 더 현저하게 나타났는데, 계열사 전체 자본금 대비 총수일가 지분율은 2.5%, 총수 지분율은 1%에 불과했다. 특히, 총수 있는 상위 10대 집단의 경우 총수 지분율 감소(1998년 2.9% → 2017년 0.9%)에 비해 계열회사 지분율 증가(37.9% → 55.5%)가 훨씬 커서 내부지분율까지 대폭 증가(45.1% → 58.3%)했다.
 
그림 
 
최근 20년간(1998년∼2017년) 총수 있는 상위 10대 기업집단의 총수 및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감소추세에 있지만, 내부지분율은 전반적으로 증가추세에 있다는 점은,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출자를 이용하여 그룹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해온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재벌이 그동안 쌀 한가마니 만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쌀 한 톨의 책임이 있었다면, 이제는 쌀 반 톨의 책임으로 권한을 행사하게 된 셈이다.
 
다양한 방법의 사익편취 행위
책임은 아주 적고 권한은 매우 큰 비정상적인 지배구조 아래서, 그 정점에 있는 총수일가가 기업 전반을 지배하고, 다양한 방법의 사익편취 행위를 통해 부를 축적해왔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만연해 있는데, 최근에는 직접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신용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한 우회적인 지원 등도 활용되고 있다. 2018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공시대상 기업집단 57개 중 총수일가 보유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 계열사가 하나라도 있는 곳은 38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대기업 총수일가 3곳 중 2곳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대상 비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018년 6월 <재벌닷컴>에 따르면, 공시대상 기업집단 중 계열사로부터 연간 10억 원 이상의 상표권 사용료를 받은 32개 그룹 39개사를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이 2017년 한 해 동안 계열사에서 벌어들인 상표권 사용료가 1조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39개사 모두 지주회사이거나 총수와 일가족의 지분이 많은 회사로 상표권 사용료가 사실상 총수일가의 사익편취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총수일가는 불·편법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축적한 부를 다시, 각종 불·편법을 동원해 승계해 왔다. 재벌총수일가가 작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하고 재벌총수가 경영권을 승계시키는 과정에서 경영상의 비효율과 불·편법적인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이들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비하면, 땅콩이나 물컵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다.
 
총수일가 전횡 방지를 위한 제도적 방안이 필요
 
책임에 비해 권한이 과하면 그 권한을 남용하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그 정점에 있는 총수일가가 기업 경영 과정에서 전횡을 일삼는 게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총수일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가 일천하다는 점이다. 총수일가를 견제하도록 하는 법·제도의 추진은 번번이 발목을 잡혀왔다. 대다수의 기업 이사회가 총수의 불법지시에 대한 거수기가 되어온 현실에서, 기업지배와 승계, 재벌총수의 사익추구 등을 위한 재벌총수일가의 불·편법적인 행태를 차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참여연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정책 개혁과제를 제시해왔다. 우선 소액주주에 의한 감시와 기업 투명성 강화 장치를 통해 기업 내부에 재벌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내부적 견제장치 마련을 위해 감사위원의 분리 선출, 독립적 사외이사제도 구축, 집중투표제 의무화, 전자투표제 단계적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및 단독주주권제도 도입 등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또한 대표소송제도의 활성화를 위해 상장회사의 경우 1주만 보유해도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독주주권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재벌 총수일가는 적은 지분으로 기업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시키기 위해 지주회사, 공익법인, 자사주 등을 활용하고 있다. 본래 지주회사는 경제력 집중을 조장할 수 있어 설립 및 허용이 금지되어 왔으나, 재벌그룹의 복잡한 출자구조로 인한 불투명성을 해소하기 위해 엄격한 행위제한 조건으로 1999년 재도입된 바 있다. 그러나 재벌들의 규제완화 요구로 3차례에 걸쳐 규제가 완화되어, 애초의 지주회사 전환 입법취지와 달리 현재는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회사 전부에 대한 지배력을 온존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의무주식 보유비율을 지주회사 도입 당시의 수준으로 회복(상장회사 30% 이상, 비상장회사 50% 이상 의무보유)하고, 손자회사에 대한 지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등 현재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지주회사제도를 원래 도입 취지에 맞게 되돌려야 한다.
재벌총수일가가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공익재단이 재벌총수일가의 계열사 지배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공익재단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백지신탁 등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소위 ‘자사주의 마법’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분할 시 모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게 자회사의 주식을 배정하지 않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등의 입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총수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공정거래법주1)상 사익편취 규제를 받는 상장사에 대한 특수관계인 지분율 기준을 20%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규제 기준인 30%를 피하기 위해 많은 상장사들이 총수일가 지분율을 고작 몇 주 차이로 30% 미만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장치가 모두 작동한다고 해서 국민들이 바라는 경제민주화까지 달성된다고 볼 수는 없다.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시작이지, 전부라고는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재벌개혁은 물론, 경제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 특히 노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노동자들의 경영참여는 비단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뿐 아니라 총수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유럽의 경우 노사 간 세력균형을 통한 산업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해 노동자대표 이사제도를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노조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31개 주요 유럽 국가 중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나라는 19개에 달한다고 한다.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모두 노동이사제를 강력하게 시행하는 나라는 독일·스웨덴·프랑스 등 13개국이고, 공공부문 등 부분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는 스페인·체코·그리스 등 6개국이다.주2) 반면, 미국과 영국의 경우에는 노동이사제를 법률이 아닌 노사 간 합의라는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주로는 일부 사기업과 공기업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주3) 이러한 외국의 사례는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가능하고, 또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있겠으나, 방법의 측면에서 사회경제적 구조와 문화가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노동자의 경영참여 시도는 이제 시작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노동자의 경영참여가 시행되는 곳이 있다. 2016년 9월 <근로자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공포한 서울시는 정원 100명 이상인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을 노동이사제 의무도입기관으로 하고 있으며, 2018년 3월 노동이사제 의무도입기관인 16개 기관에 22명의 노동이사 임명을 완료했다. 서울시의 노동이사제 도입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헌법 119조2항에서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이사제를 통한 참여민주주의 실현은 헌법의 기본 가치와 맥을 같이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한 공공뿐 아니라 민간영역에서도 노동이사제 도입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비록 최종 성사되지는 못했으나, 2017년 11월 KB금융노조가 노동이사제 도입을 시도해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찬성을 얻어내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으며, 2017년 12월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최종 권고안을 통해 금융공공기관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노동이사제가 그저 이상향으로만 존재했던 시절에 비하면 최근 관련한 논의들이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재계를 중심으로 ‘경영권 침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과거 거수기 노릇을 하던 이사들을 생각하면 총수일가 입장에서는 노동이사라는 존재가 꽤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한두 명의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한다고 해서 경영권이 침해된다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다. 또한, 실제 기업의 임금채권자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사주조합원으로서 주주의 성격을 띠는 소속 노동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경영권 침해라고 할 것 같으면, 미미한 지분으로 계열사 간 복잡한 출자구조 등을 이용해 기업 내부에서 마치 신과 같은 권력을 행사하는 총수일가의 행태는 무엇으로 그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6월 5일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대한항공에 한진그룹 총수일가가 받는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과 해결방안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송하기도 했고, 오는 7월부터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한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책임 투자 원칙에 입각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를 공약한 바 있기는 하지만, 이는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총수일가에게 휘둘려온 경영감시 및 견제역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진 데에 따른 조치이기도 하다.
박근혜 게이트 등으로 그 저열한 민낯이 드러난 바 있는 정경유착이 근절되지 못하는 데에는 총수일가의 전횡을 견제하고 제동을 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탓 또한 컸다. 재벌이라는 한국적 기업 지배구조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방안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고, 노동이사제도는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주1) 공정거래법은 총수일가의 지분이 상장사의 경우 30%, 비상장사의 경우 20% 이상이면서 내부거래가 200억 원 이상이거나 매출의 12% 이상이면 규제하도록 정해놓았다.
주 2) 2017.2.14. 한겨레 <유럽 선진 경제·노사관계 뒤엔 노동자 경영참여>
주 3) 2016.1.12. 사회공공연구원 <노동자 경영참여의 쟁점과 과제: 노동자대표 이사회 및 경영협의회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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