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교육감 선거운동의 성과와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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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끝난 ‘장미대선’ 이후, 울산에서도 보수집권의 시대를 끝낼 세력교체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져갔다.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 도입 이후 지속되었던 보수세력의 집권을 마감하고 새로운 개혁진보세력의 집권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희망사항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징표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집권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당원의 수가 폭증했고, 과거 보수정당에 속했던 정치인들의 민주당 입당 또한 줄을 이었다. 한편, 민주당의 성장과 반비례하여 진보정당들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때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던 울산에서의 진보정당운동은 연이은 진보정당의 분열과 새로운 진보의제 발굴 실패 등을 겪으며, 지역사회와 노동현장에서 그 존재감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민주노총 울산지부
 
 
울산에서도 진보교육감을 만들자!
 
그럼에도 세력교체 상황에서 의미 있는 도전을 해보자는 울산 민주진보진영과 시민사회단체들의 공감이 형성됐다. 이러한 공감은 이번에는 울산에서도 진보교육감을 만들자는 논의로 구체화되었다. 울산에서는 초대부터 7대까지 교육감들이 연이어 선거법 위반 및 부정부패 등으로 구속과 논란에 휩싸이며 교육혁신이 지체되어 왔다. 2010년과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총은 진보교육감 후보를 추대하고 - 후보 선출을 위한 단일화 투표 등의 절차 없이 진행됐음 - 선거운동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나 준비기간의 부족, 진보정당들 간 분열의 여파, 자발성에 기초하기보다는 당위에 근거한 선거운동, 그리고 후보에 대한 ‘호불호’ 등이 겹치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2017년 10월 경부터 시작된 민주진보교육감 만들기 과정에는, 3개월의 초동주체들의 내부회의를 거친 후, 2017년 12월 말이 됐을 때는 YMCA,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와 지역여성회 등 풀뿌리단체, 그리고 개별 노조 및 현장의 노동조직 등 54개 지역사회단체들이 함께했다.
개별 노조와 현장조직의 참여는 지난 시기 진행되었던 울산의 탈핵운동 과정에서 얻어진, ‘현장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참여뿐만 아니라 개별 조직들의 실질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성찰의 반영이다. 2018년 3월 말에 진보교육감 후보가 확정된 이후에야 노동조합들의 지지 선언과 참여가 이루어지면 늦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17년 12월 18일 54개 조직이 참여한 <2018 울산 희망교육감 만들기 시민네트워크>(이하, 희망교육넷)가 발족하고, 본격적으로 민주진보교육감 후보들의 단일화 과정에 돌입했다. 당시 민주진보진영에서 울산교육감 후보로는 정찬모(전 울산교육위원장, 2014년 민주진보교육감 후보), 노옥희(전 울산교육위원) 등 3~4명의 인사가 거론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 저런 이유로 출마 예상자는 결국 앞에서 거명한 2명으로 좁혀졌다.
그런데 희망교육넷에 대한 부정적 판단을 근거로 정찬모 후보가 단일화 경선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희망교육넷은 등록을 마친 노옥희 후보만을 대상으로 한 회원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2018년 3월 12일, 노옥희 후보를 ‘울산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추대하고 이를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단독후보 등록, 그리고 언론에서의 소외 - 언론은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며 교육감 선거에서 7명 후보 모두에 대한 시간 안배 등을 선거 마지막까지 고집했다 - 등이 겹치면서, 울산 시민사회 내에서의 흥행은 희망교육넷이 가진 기대만큼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발적 열정으로 극복한 경험 부족
 
희망교육넷이 후보를 선출하고 해산함과 동시에, <노옥희 교육감 선거캠프>(이하 캠프)의 구성이 본격화됐다. 그동안 몇몇 지지자들에 의해 움직이던 캠프는 희망교육넷 관계자들이 결합하며 조직의 골격을 완성해 갔다. 그러나 아직 선거가 본격화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단체들의 실무역량이 부족해서인지, 54개 단체의 움직임은 기대에 못 미쳤고, 캠프로 결합하는 인원은 당초의 기대보다 적었다. 노동현장 조직들의 결합은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018년 5월 마지막 주에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캠프가 감당해야 할 선거는 구청장이나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울산시 전체를 대상으로 치러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캠프엔 이런 경험을 갖춘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큰 선거 경험의 부족은 곳곳에서 시행착오를 발생시켰다. 그렇지만 캠프 구성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부족함을 스스로 나서서 해결하고자 하는 자발성으로 채워나갔다. 노옥희 교육감 후보의 당선 요인에 대한 여러 가지의 평가가 존재하겠지만, 캠프 구성원들과 봉사자들의 자발성에 기초한 활동이 선거승리의 핵심 요소였음은 분명하다. 5월 초 선거운동본부를 발족하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5월 30일까지, 캠프는 5개 구군의 연락소 마련과 선거운동원 모집, 자원봉사자들의 조직 등을 진행하며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편, 울산도 이번에는 시장과 교육감을 바꿔야 한다는 흐름이 시민사회 내에서 영향력을 획득하자, 후보자의 삶의 궤적이나 신념 등의 문제는 도외시하고, 이른바 “표의 확장성”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망교육넷을 통해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선출되었음에도, 노옥희 후보의 확장성과 희망교육넷 구성의 폐쇄성을 운운하며 “정찬모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한 실질적 민주진보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찬모 후보 캠프는 2014년 교육감 낙선 이후 민주당 입당(2015년, 문재인의 영입)과 2016년 울주군 국회의원 선거 출마와 낙선(2017년 민주당 탈당) 등의 경험을 근거로 표의 확장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4월 중순까지 진행된 교육감 선거 여론조사에서, 노옥희 후보는 10%대 중반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1·2위를 기록했으나, 정찬모 후보와의 격차를 오차 범위 밖으로 벌리지 못했다. 캠프 내에서는 노옥희 후보의 ‘7자 구도 필승론’과 “희망교육넷의 선출 절차를 거친 후보가 여론에 떠밀려 단일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했으나, 노옥희 후보의 결단으로 단일화 과정에 임했다.
4월 26일부터 1주일 동안 중재단에 의한 후보단일화 협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중재단이 제시한 최종 중재안을 정찬모 후보 측이 거부함으로 인해 후보단일화 협상은 결렬되었다. 정찬모 후보 측의 중재안 거부와 예비 선거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혐오’ 표현 등의 문제 등으로 인해 정찬모 후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민주진보단일후보에 대한 논란은 서서히 정리되어 갔다.
 
ⓒ민주노총 울산지부
 
 
감동 없는 ‘진보단일화’, 그리고 교육감 선거로의 집중
 
진보정치 1번지의 명성을 되살리고자 하는 시도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를 중심으로 한 진보단일후보 선출 과정으로 가시화됐다.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지방선거의 후보들을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고, 북구 구청장 선거와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경우에는 정의당과 민중당 후보들의 경선을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5월 중순 총 47명의 민주노총 지지 후보를 결정했다. 노옥희 후보도 3월 말경 민주노총 지지후보로 결정됐다.
그러나 진보정당들 간의 후보 조정 과정이 어떤 원칙 속에 진행되었는지 현장의 노동자들과 유권자들은 알 길이 없었다. 또한 북구 구청장과 북구 국회의원 단일 후보 결정을 위한 경선은 2달간의 지리멸렬한 신경전과 상대 정당에 대한 비난 속에서 진행됐다. 그 결과 경선의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됐다. 진보후보단일화 과정엔 어떤 감동도, 진보세력의 새로운 전망과 관련된 선언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노총 지지후보 결정과정의 불철저함과 찜찜함 등은 현장 노동자들의 선거에 대한 방관적인 태도로 연결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교육 민주화 선언으로 해고된 이후의 노동과 시민사회와 함께하는 변함없는 삶의 궤적을 보여준 노옥희 후보의 진정성 어린 삶에 대한 인정 속에서, 공식 선거기간을 앞두고 현장조직들 내에서 교육감 선거만이라도 힘을 모아 보자는 흐름이 급격하게 형성됐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이후 민주노총 소속의 울산 사업장 내에서도 문재인 또는 민주당을 통한 변화를 지지하고, 이를 통한 노동의 가치 실현에 동의하는 흐름이 크게 성장했다. 그렇게 민주당 지지와 진보정치 지지로 나뉜 현장의 정서 속에서도, ‘2018년 지방선거에서 노옥희 교육감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모두가 공감대를 이루었다.
준비된 교육감의 면모가 부각되다
예비후보 등록에서부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노옥희 후보는 31차례의 공약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부패교육에 맞선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에서부터 ‘동물사랑교육’까지, 그리고 교육현장의 변화와 교육복지 실현, 학생인권 보장에서부터 학생들의 주도적인 학교생활 참여, 교사들의 행정업무 간소화 등 학교와 울산교육을 바꿀 수 있는 ‘큰 그림’에서부터, 교육현장 구석구석의 요구들을 받아 안은 ‘깨알 공약’까지. 발표하는 공약 하나하나는 표를 얻기 위한 공수표가 아닌, 그간 울산의 교육변화를 준비해 온 고민의 결과물이었고, 실현 가능성 역시 충분히 검토된 약속이었다.
‘준비된 교육감’의 이미지가 울산의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던 계기는 두 차례의 텔레비전 토론이었다. 교육철학과 교육혁신 방향에 대한 막힘없는 모습을 보여준 토론 과정은, 지지자들은 물론 아직 후보 결정을 미루고 있던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노옥희 후보가 교육감 직책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준비된 후보의 모습, 이번에는 울산에도 진보교육감을 만들자는 지지자들의 결집, 그리고 교육감 당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 진행된 노옥희 교육감 후보의 ‘공업탑 출정식’에서부터 확인되었다. 선거운동원보다 많았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속에서 현장에 모인 모두가 이번엔 뭔가 되겠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노옥희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의 개시와 함께 연이어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계속 1등의 자리를 차지하였고, 마지막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는 드디어 20%를 돌파한 24%의 지지율로 다른 후보들과 격차를 벌렸다.
자원봉사자들은 각 지역에서 즐거운 율동을 이어갔고, 현장의 노동자들은 휴가를 내고 선거유세에 결합하였다. 노옥희 교육감 후보의 소셜미디어에는 연일 “주변의 지인들에게 준비된 교육감 후보 노옥희의 지지를 당부했다”, “오늘 몇 표를 확보했다”는 무용담이 줄을 이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선거운동은 최종 득표율 35.6%라는, 캠프도 놀란 결과로 나타났다.
 
노동-시민 연대와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망
 
노옥희 후보 선거운동은 자원봉사자들의 열정과 참여의 장이었다. 그 기저에는 40여 년을 한길로 교육 민주화와 지역사회 개혁을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해왔던 후보의 삶에 대한 믿음이 자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울산에서도 진보교육감을 탄생시켜 뒤처진 울산교육의 혁신을 이뤄야겠다는 열망의 부채질이 있었다. 또한 진보단일화가 특별한 희망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육감 선거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암묵적인 합의까지, 이런 모든 것이 결합되어 가능한 선거운동이었고 결과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노옥희였기에” 가능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공유되고, 후보의 삶이 지지자들의 열정을 끌어 모은 이번 노옥희 교육감 선거운동 과정은, 지역 풀뿌리정치 선거운동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모범 사례로 기록되고 널리 공유되어야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선거과정에서 현장 노동자와 시민사회가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점이다. 그간 노동과 시민사회의 결합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주로 현안에 대한 직접적인 대응 또는 단체와 단체 간 상층 중심의 형식적인 연대활동이었다. 물론 선거란 정치적 계기 속에서 시도된 만남이란 조건이 있는 것이긴 했지만, 그간 진보정치운동이 추진한 노동과 시민사회의 결합이 보여준 일정한 한계는 아쉬운 부분이었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계기로 노동과 시민사회 모두에서 새로운 접근, 새로운 연대 활동에 대한 상상력이 발동한 듯하다. 선거 이후에도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고리가 울산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꽃피울 수 있다면, ‘파란물결의 쓰나미’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걱정에 작은 해답이 제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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