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평가,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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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본래 산업화 초기단계에서 신흥계급으로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며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노동자들이 정치의 장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동조합이나 정당의 조직화를 시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개념은 산업화가 한참 지난 후, 이미 실질적으로 보편선거권이 도입된 지 7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논의되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물론 그 이유는 권위주의체제에 의해 긴 기간 동안 ‘노동’이 정치적으로 배제되고 희생되어 왔고, 민주화 이후에도 그러한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정치적 대표성 및 다원성의 제고 등 ‘민주주의 심화democratic deepening’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반드시 노동자들만을 위한 정당의 창당 혹은 세력 확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맑스K. Marx가 노동자들을 보편적 계급으로 규정한 이유는 자본주의체제의 사회구성원이 모두 노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계급적 이익과 본성, 그리고 지향이 이 체제의 한계를 극복한 미래사회에 닿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자들의 이해와 함께 사회의 보편적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을 생산하고 이를 집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정치세력의 성장을 의미한다. 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단순히 노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한국 정당체제의 전환과 민주주의의 심화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와 같이 노동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
 
6.13 지방선거, 양당체제를 깨뜨리다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재보궐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종결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17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 14명을 당선시켰고, 17개 광역시도의회 가운데 15개 지역에서 원내 제1당이 되었고, 12명을 선출하는 국회의원재보궐선거에서 10명을 당선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승리했고, 허세를 부리던 홍준표와 그가 이끌던 자유한국당은 패배했다. 민정당에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에 이어, 한국의 보수정당을 대표하던 자유한국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대구·경북의 지역정당으로 추락했다.
 
 
바른미래당은 22명을 선출하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명의 당선자도 배출하지 못하였으며, 824명(지역구 737명, 비례 87석)을 선출하는 광역의원선거에서 5명(비례 4명), 2,926명(지역구 2541명, 비례 385명)을 선출하는 기초의원선거에서 21명(비례 2명)만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관심을 모았던 서울시장선거에서 안철수 후보가 불과 19.6%의 득표율로 김문수 후보에게도 뒤쳐지며 3위에 그친 것은 치명적이었다. 민주평화당은 그나마 호남에서 5명의 기초단체장, 3명의 광역의원(비례 2명), 46명의 기초의원(비례 3명)을 당선시킬 수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속 국회의원 수가 6명에 불과한 정의당은 바른미래당(소속 국회의원 30명)이나 민주평화당(소속 국회의원 14명)에 비해서 더 많은 11명(비례 10명)의 광역의원을 보유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역비례대표선거에서 8.97%의 득표율로 전체 87개 의석 가운데 11.5%를 차지하게 되었다(제20대 총선 당시 정의당의 비례대표선거 득표율은 7.23%). 기초의원선거에서도 정의당은 26명(비례 9명)의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정의당이 지난 2014년 제6회 동시지방선거에서 단 한명의 광역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하였고, 11명의 기초의회의원(비례 1명)만 당선시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고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당을 포함한 진보정당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거둔 성과는 결코 만족할 만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의당이 차지한 광역의원 11명은 전체 광역의원 824명 가운데 고작 1.3%, 기초의원 26명은 전체 기초의원 2,926명의 0.8%에 불과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 선거에 참여한 민중당이나 노동당은 단 한명의 광역의원도 확보하지 못하였으며, 그나마 민중당이 11명(비례 0명)의 기초의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초라하지만 의미있는 진보정당의 성적표
 
물론 진보정당들의 이처럼 초라한 성적은 애초에 예견되었던 것이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17명을 선출하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9명, 민중당은 6명의 후보를 공천하였다. 그러나 737개의 광역의회선거구에는 정의당이 17명, 민중당이 54명의 후보를 공천하는 데 그쳤다. 이들을 모두 합한 71명은 전체 선거구 수의 9.6%에 불과하다. 기초의회선거에는 이보다 높은 비율의 후보자들을 공천하여, 전체 1,035개의 기초의회선거구에 정의당이 133명, 민중당이 146명의 후보를 공천하였다. 이들을 모두 합한 후보자 수는 279명으로, 이는 전체 1,035개 선거구 가운데 27.0%에 해당한다. 광역비례대표선거의 경우 정의당은 전체 17개 선거구에 30명, 민중당은 이보다 약간 적은 28명의 후보자들을 공천하였다. 기초비례대표선거에서도 전체 226개 선거구에 정의당은 37명, 민중당은 26명을 공천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소규모의 후보공천에 그친 것은 노동당이나 녹색당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의회선거에 6명, 기초의회선거에 8명, 광역비례대표선거에 9명을 공천하는 데 그쳤으며, 광역 및 기초단체장선거는 물론 기초의회비례대표선거에는 아예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녹색당은 광역자치단체장선거에 2명(서울, 제주), 기초단체장선거에 1명, 기초의회선거에 12명, 광역비례대표선거에 16명, 기초의회비례대표선거에는 1명을 공천하였으며 광역의회선거에는 한명도 공천하지 않았다.
물론 진보정당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노력이나 성과를 단순히 공천자 또는 당선자의 규모로만 환원시킬 수는 없다. 이미 앞서 언급하였듯이 정의당은 8.97%의 득표율을 광역비례대표선거에서 얻었으며, 이는 바른미래당이나 민주평화당이 각각 7.81%와 1.52%의 득표율에 그친 것을 고려할 때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는 정의당이 박근혜 정부 시기 강제해산된 통합진보당을 대신하여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의석수만 보더라도 지난 제6회 동시지방선거에서 민중당의 전신이었던 통합진보당이 3명(비례대표 3명)의 광역의원과 34명(비례 3명)의 기초의원을 당선시킨 것과 비교하여 크게 뒤쳐지지 않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진보정당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력
 
1987년 민주화 이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첫발을 내딛었던 한국의 진보정당들이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조금씩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모습은 감격스러울 정도이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진보정당들은 지역 자치self-governing의 주체로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이들이 비록 그 수는 많지 않더라도 더불어민주당 혹은 자유한국당의 틈바구니에서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대변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왜 선거 때마다 다수의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문제인가 아니면 정당이 문제인가? 한국에서 추진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후발주자로서 2004년 총선에서야 국회에 진입할 수 있었던 진보정당들은 이미 노동자들의 지지를 선점한 기성정당과의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으며, 한국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반공주의와 반노동의 정치문화 속에서 대안적 정책과 이념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던 이들은 대체로 두 가지 경로를 고민해왔다. 첫째, 기성정당이나 정부 내부에서 노동부문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과거 권위주의시절부터 집권여당이나 야당은 노동부문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거나 대표자들에게는 전국구나 비례대표의원직을 부여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지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적진’으로 들어간 이들은 당내에서 고립되었고,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임기를 마치곤 했다. 그런 점에서 이 방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정상적 경로라고 보기는 힘들다.
둘째, 노동부문을 대표하거나 중심이 되어 ‘독자 정당’을 창당하는 경로이다. 그런데 이 경로는 결코 그 목표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앞서 언급했듯이 기성정당에 의해 선점된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유권자로서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대표할 정당을 선택할 때 정당일체감, 인종·언어·계급·지역과 같은 소속집단, 이념, 정책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계급적 속성만으로 투표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자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정당은 이들이 기성정당을 대신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선전과 교육을 통해 이념적으로 동질성을 갖도록 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실현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정의당과 민중당, 노동당, 그리고 이들의 선행 정당들이 단기간 내에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일상을 함께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전망이 그다지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유권자들이 기성정당들에게 느끼는 정당일체감의 수준은 비교적 낮은 편이다. 통상적인 여론조사에서 ‘정당일체감’보다는 ‘정당선호’를 통해 정당에 대한 태도를 묻는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태도는 최근에 예상을 뛰어 넘는 큰 폭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는 ‘3김’의 퇴장 이후 지역주의가 상대적으로 약화된 탓도 있겠지만, 한국정당들이 선거 시기에만 유권자들과의 연계를 형성하려는 선거정당의 특성이 강하고,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치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기성정당이 유권자들과 맺고 있는 ‘연계’의 강도가 약하고 조직적 기초가 취약하기 때문에 후발주자인 정당들이 이들을 대신하여 지지를 받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가 동원했던 반공·반북주의와 경제개발 우위의 가치체계를 그대로 재생산하여 통치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던 박근혜의 정부와 새누리당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밝혀지면서 좌표를 상실하였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로 인한 평화로운 흐름은 그동안의 이념균열을 약화시켰고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국정당정치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올 것이 틀림없으며, 이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 등 노동과 관련한 이슈가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요구도 팽창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결코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임에 틀림없다.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지향을 무기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혁을 가장한 기성정당들의 유혹과 이들과의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는 행위자의 선택에 의해 결과가 바뀌는 ‘아트art’의 영역이다. 노동자들과 함께 일상에서 호흡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당, 이들에게 필요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능력을 갖춘 정당, 이들이 끝까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 간다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를 위해서는 소선거구제하의 단순다수제를 비례대표제 기본으로 하는 선거제도로 개혁하고, 노동이슈에 대하여 주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선거에서 유권자는 냉철하며, 노동자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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