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힘찬 연어’들을 위하여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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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책이다. 첫 페이지를 열고 마지막 장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단숨에 다 읽었다. 이 책은 “꿈을 잃고 추락하는 대기업노조, 보수의 길로 나아가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이다. 출판사 <레디앙>에서 지난해 12월에 펴낸 책이다.
 
 
참 좋은 책이다
 
책을 쓴 사람은 이범연씨. “‘내부자’의 눈으로 본 대기업 정규직 노조 & 노동자”라는 홍보 문구가 말해주듯이, 이 책은 한국GM 부평공장 생산직 노동자로 30년을 보내고 ‘방황하는 50대’가 된 노동자의 진솔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그저 지난 추억을 돌아보는 회고담이 아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1년 대학에 들어갔다가 ‘위장취업’의 길을 택하며 이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함께 한 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노동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노동자가 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간 지 어언 30년”, 푸른 청춘을 다 바친 한 노동자의 진한 사색, 노동운동에 대한 치열한 자기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누군가로부터 “귀족노조에 계시네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화를 낼 수도 대꾸할 수도 없지만 알 수 없는 서글픔을 느낀다는 그는, 어쩌면 바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길을 잃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길을 잃었다는 것은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의 장래,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장래가 불투명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그냥 그저 현상 유지는 될 수도 있다. 절망감은 바로 현상 유지라는 단어에서 온다. 그것은 가난한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민주노총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에서 오는 절망감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것만 챙기고 있는 모습을 볼 때의 절망감이다. 그리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함께 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내가 어찌하다 정규직이 되어 나만 잘 먹고 잘 살고 있고,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자책에서 오는 절망감이다.”
 
아프고 서글픈 현실이다. 바람에 나부끼던 깃발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운동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부지런히 남 탓하기 바쁜 시절이다.
 
 
“귀족노조에 계신” 이들의 거울이 되는 책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무엇보다 관료주의에 대한 이야기에 자꾸 눈길이 갔다. “노동조합에는 활동가는 점점 줄어들고 반복적인 일들만 관리하는 관리자만 늘어난다. 관료주의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그동안 해왔던 관성대로 사업을 하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태도를 말한다. 관료주의는 창조적인 발상과 변화를 귀찮아하고 심지어 적대시하기도 한다.”라는 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책을 찾아보았다. 책장 한 켠 낡고 빛바랜 책, 리차드 하이만이 쓴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운동』에서 미헬스는, “단체교섭이나 파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을 겸비한 간부들이 지도하는 조직이 필요하며, 노조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관료적 지도력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하기 때문”이라며 노동운동이 과두지배로 흐르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일반 조합원들은 간부들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적절한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과두지배는 대중의 무관심에 의해 강화되고 결국 유권자 대다수가 국회에 무관심하듯이 조합원 대다수는 조합에 무관심해진다고 말했다.
같은 책에서 밀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그는 “노동조합의 성장 곡선이 완만해지고 이에 따라 미묘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청년의 패기와 열의, 새로운 운동을 전파하고자 하는 정열은 점차 사라진다. 행정기구가 확립되고, 의사소통 경로가 최고위 사람에 의해 엄격히 통제를 받게 되며, 전문직원에의 의존이 커짐에 다라 의사결정은 중앙에서 이루어진다.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관리 문제가 부각되고, 강조점이 조직에서 행정·교섭·협약체결로 옮겨진다.”고 분석했다.
 
활력이 떨어진 노동조합은 둔해지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그러다가 기득권에 안주하게 된다. 조직 확대로 탄생한 새로운 노조들은 조직 전체에 활력을 가져다준다. 사람도 마찬가지고 조직도 마찬가지다. 돌아보면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한 지도 20년이 넘었으니, 30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나온 세월만큼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둔감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딱히 전문 능력도 없는 처지에서 노동조합에서 일하면서 관료주의라는 비난을 받지 않을까 두렵다. 관성으로 일하고 무책임하고 무능하지 않으려고 늘 경계하고 반성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귀족노조’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불편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개인의 성찰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더불어 구조적으로 개선해야할 지점은 없는지, 무엇을 바꿀 것인지 살펴볼 일이다.
 
 
노동운동의 현실에 아파하는 이들에게 널리 공유됐면
 
저자는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늘 책을 읽고 언제나 글을 쓰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는 노동운동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더불어 눈여겨 볼만한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어 있다. 대공장 노조는 왜 쇠락했나?, 균열된 노동, 배제된 노동자, ‘만남의 조직학 ’개론과 각론 , 활동가론 등 크고 작은 담론과 실천해볼 만한 제안들이 들어 있다.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공감하기 쉽게 써져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모쪼록 노동운동의 현실에 아파하고 고민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그의 말처럼 함께 꿈꾸며 세상을 바꾸는 ‘힘찬 연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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