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존중 사회, 실현 가능한 미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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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항쟁의 결과로 지난 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노동 공약을 집약하는 핵심적인 슬로건으로 ‘노동 존중 사회’를 제출하였다. 후보 시절 공약으로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조가입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을 획기적으로 높여 노동 존중 사회 실현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만들어 노동 존중 사회 기본계획 수립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시기 노동절에 한국노총과 ‘노동 존중 정책연대 협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민주노총과는 올해 1월19일 김명환 위원장 등 민주노총 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노동 존중 사회 구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재천명하였다. 
민주노총은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는 자리에서 노동 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기본권과 노조 할 권리의 대폭적인 신장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를 포함해 산별교섭 활성화, 노정협의 정례화 등의 다양한 교섭과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 한상균 전 위원장의 조속한 석방도 거듭 요청하였다. 이후 양대 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에 참가하여 논의 중에 있다. 결국 현 정부와 양대 노총은 노동 존중 사회 실현에 대해, 각론에 대해서는 이견들을 갖고 있지만, 총론적 지향에서는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노동 존중 사회를 외치는가
 
‘노동 존중 사회’라는 용어는 사실 2010년 당선된 김영훈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즐겨 쓰던 것으로, 노동이 없는 민주주의,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동을 존중하도록 노력하자며 외친 담론이었다. 그리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여러 개혁 후보들이 제출한 담론이기도 하였다. 여당 내에서 이재명 후보는 자신이 노동자 대통령이 되겠다며 처음 근무했던 사업장 앞에서 노동 존중 사회를 외치고 출사표를 던졌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노동 존중 특별시 서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노동(이 있는) 헌법 개정’으로 노동 존중 사회를 열겠다는 출사표를 밝히기도 하였다. 결국 노동 존중  사회는 문재인 대통령의 독자적 공약이라기보다는, 지난 촛불항쟁의 과정에서 탄생한 공통 담론으로서 양대 노총의 공감대 위에 서 있다고 하겠다. 
노동 존중 사회가 지금 대통령 공약으로, 나아가 현 시대의 담론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실 문재인 정부의 탄생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으로 드러난 권력의 사적 남용과 제왕적 통제 등 권력의 적폐와 민주주의의 부재가 가장 두드러진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의 시민들이 촛불항쟁에 참여하고 권력교체에까지 이르게 된 데는 한국사회의 분절화 되고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불평등 문제와 ‘헬조선’으로까지 불리는 저복지와 고용불안 문제가 그 밑바탕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임금 노동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나라,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큰 나라, 여성 고용의 비중이 낮고 성별 임금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 사회보장의 수준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에 크게 미달하는 나라, 높은 청년 실업률에 좌절하고 그나마 노동시장에 진입해서도 대다수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연애·결혼·육아를 다 포기해야 하는 나라,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률이 가장 높고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양극화되고 분절화된 노동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자본이 추구한 신자유주의 노동체제 때문이라고 하겠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노동자의 소득 분배율이 증가되고 노동시장의 격차가 축소되어 왔으나,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노동시장의 유연화, 구조조정, 그리고 생산의 세계화는 질 좋은 일자리의 축소와 더불어 저임금 비정규직의 확산, 그리고 노동자 간 분단을 가져왔다. 2008년 세계경제 침체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극복이 논의되었지만, 당시의 보수 정권은 대안은 없다며 더욱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면화했다. 더구나 보수 정권 10년의 적폐로 인한 노동기본권의 억압은 노동자를 더욱 옭아매었다. 신자유주의 노동체제는 무려 한 세대에 가까운 20여 년간 구축되어 왔으며, 이는 박정희 정권의 철권통치 18년을 뛰어넘는 세월이다. 그러나 결국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광범위한 사회연대와 국민적 항쟁에 의해, 낡은 노동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노동 존중 사회로 나아가자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불확실성과 마주한 노동 존중 사회
 
그런데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라는 공약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얼마나 실현 가능한가? 우선 긍정적 변화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 오던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과 무분별한 해고를 가능케 하는 인사관리규정 및 취업규칙 개정 지침이 폐기되었다. 또한 주요 공기업의 해고자들 복직도 이루어지고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인천공항 3천 명 직접고용 및 7천 명 자회사 직접고용 등에서 드러나듯,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일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며,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463만 명, 전체 노동자의 23.6%로 역대 최고다. 또한 최근 민주노총 내에서도 민간제조업 노동조합이 38곳이 신규 결성되고 공공부문과 사립대병원 등에서도 신규 노조 결성 사업장이 늘고 있는 등 노조 조직률 제고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벌써 보수언론과 재계는 올해 최저임금이 너무 올랐다며, 내년 최저임금은 ‘3년 내 1만 원 실현’이라는 공약에 얽매이지 않고 조정해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고 있다. 심지어 자영업자가 파산지경이고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다며,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시늉까지 한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기존의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시키거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최저임금 무력화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교에서는 청소 노동자의 임금이 너무 올라 알바 노동자로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풀타임 노동자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배부른 자의 투정으로 치부하며, 학교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처사를 하고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외침은 사업장 차원으로 내려가면서 개개의 실정에 따르는 것으로 되면서, 여러 사례에서 실제로 거의 해당 사항이 없음으로 결정되는 등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촛불투쟁의 도화선이 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여전히 감방에 갇혀 있으며, 행정부에 의해 노조가 아님을 통보받은 공무원노조, 전교조는 여전히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지 못한 채 법외노조의 상태에 있다.
대통령은 높은 지지율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국회 내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에 놓여 있다. 이는 현 집권여당이 제출한 공약도 국회를 통한 법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대통령의 권한 아래에 있는 행정조치나 행정지침의 변경 외에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은 국회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정부 공약인 공무원 증원도 예산 삭감으로 축소된 바 있다. 결국 노동 존중 사회의 실현은 지금 상태에서 확정적으로 단정할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으로, 노사정 주체의 노력과 의지, 전략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적폐 해소를 위한 노사정의 역할과 과제 
 
노동 존중 사회는 어느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체제의 주체인 노사정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담당하고, 기존의 양극화된 노동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할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정부의 몫이 가장 크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명백할 것이다. ‘좌파/신자유주의’라는 노무현 정부의 자조적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구호와 실천이 따로 놀아서는 노동의 공감도 얻을 수 없을뿐더러 노동 존중 사회를 실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최소한 정부는 노동 존중 사회 공약과 관련해서는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계획과 의지를 드러내고 이를 실현함으로써 노동을 파트너로서 존중해 나가야 한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의 비준, 특수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과 공무원·교사·교수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그 핵심이다. 산별교섭 등 중층적 교섭의 제도화, 단체협약 효력확장 제도의 개정 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최저임금 미달,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등 법 준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노동법이 준수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을 극복하고 근로빈곤층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복지와 사회안전망 강화 등 고용연계 복지영역으로 의제를 확대하여 ‘노동 존중 기본 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세부 내용과 실행 계획이 무엇인지 로드맵을 제출하여야 할 것이다. 
사용자 측에서는 더 이상 정부의 억압적 노동정책과 낡은 적폐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노동기본권 존중, 노동법 준수를 기본으로 노사관계의 민주화에 앞장서야 한다. 노사 간 대화를 활성화하여 산업, 업종별 대화도 자주적으로 임하여야 할 것이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 간의 상생과 공정거래질서를 확립하여야 한다. ‘갑질’과 ‘노동자 쥐어짜기’는 우리사회 불공정의 가장 으뜸가는 표본으로 없애야 할 적폐다. 
노동 존중 사회는 그 무엇보다도 주체인 노동이 앞장서서 실현의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1987년 이후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일반화 되고, 촛불항쟁도 일터 앞에서는 막혀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주체인 노동의 잘못된 전략과 낡은 관행 탓이 크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산별노조 전략과 노동자 정치세력화 전략은 사실상 모두 실패로 끝났다. 산별노조 건설은 산별 노사관계를 만들지도 못했고 기업별 노사관계나 기업별 노동운동을 혁신하는 데 미흡했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정파 간 갈등과 노조 내 분열을 불러오고 진보정당의 왜소화와 난립으로 마감했다.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도 크게 미흡했으며, ‘전략’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행되지 못했다. 물론 실험이 실패했다고 낡은 관행과 1987년 당시의 운동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세에 걸맞게 새로운 운동의 전략과 전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이나 정치세력화도, 조직 형식이나 체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기업을 뛰어넘는 산별적 내용이나 정치적 각성을 실질화 하고 내면화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노동에게 보다 담대한 걸음이 요구되는 때이다. 
 
대대적 조직화와 일터 민주화로, 담대한 한 걸음을!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은 주체의 계급적 대표성과 조직률 제고에 앞장서야 한다. 청년, 여성, 이주/비정규, 노년 노동자 등의 대대적 조직화와 계급대표성 확보를 위해 전 조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촛불항쟁과 적폐청산, 최근의 ‘미투(Me, too)’ 운동은 민주주의를 일상과 사업장으로까지 확대할 주체적 고양기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조운동이 전 조직적 역량을 투입하여 노조 조직률을 20%대로 끌어올리고, 정규/비정규, 청년/중장년, 남성/여성, 노동/시민의 분단을 넘어서서 연대하고 하나가 되는 운동으로 승화시켜나갈 때, 비로소 노동 존중 사회는 이루어질 수 있다. 노동 스스로가 분열되고 갈기갈기 분단된 상태에서 노동 존중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다. 노동대중의 대대적 조직화와 일터의 민주화로 이어질 때에야 새로운 노동체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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