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공론화’가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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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公論)이란 “정제된 공공의 여론(Refined Public Opinion)”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공론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 것인가? 공론화는 시민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되 어떻게 하면 이러한 권력의 행사에 대해서 숙고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이다. 공론화는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민주국가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 아이디어를 부활시켜, 오늘날 민주주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에서 착안하게 되었다. 즉, 시민들이 면대면(face-to-face)의 직접적인 참여 기회와 토의를 통해서 한계를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의를 보완하는 다양한 공론화 기법들
 
공론조사의 창시자인 피시킨(James S. Fishkin)은 민주주의의 조건으로 정치적 평등, 숙의, 비독재성을 들고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평등을 실현하고, 다수의 독재를 방지할 수 있어야 하며, 정책 결정이 토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에게 권력을 부여하되, 자신이 부여받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토의와 숙고가 가능할 때에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숙의(淑義)란 “여러 사람이 모여 어떤 문제 혹은 의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논의함”을 뜻하는 말로, 시민참여형 의사결정의 핵심 내용에 해당한다.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5·6호기의 건설 재개와 중단 여부를 둘러싼 공론화 실험(이하, 신고리 공론화)은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평가와 함께, 소통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공론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바람직하게 활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향후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론화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아래에서는 지난 신고리 공론화 경험을 바탕으로 갈등과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노동현장에 시사하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 어떻게 공론화했는가
 
신고리 공론화의 목표는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신고리의 원자력 발전소 5·6호기의 공사를 중단 또는 재개할지의 여부에 대해서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사 중단을 원하는 측과 재개를 원하는 측간의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입장과 가치를 조정하여 사회적 통합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표성 있는 시민들로 하여금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제공하고, 찬반 대립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끌어낼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단재개에 대한 결정과 보완조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참여형 의사결정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신고리 공론화가 채택한 공론화 방식은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였다. 공론조사를 기본으로 하되 우리나라 현실에 맞도록 대폭 수정·보완하였다. 공론조사란 전체 모집단을 대표하는 다수의 시민참여자(200~500명)를 선정하여, 해당 의제에 대하여 학습과 토론 과정을 거쳐, 개인의 선호에 따른 변화의 정도를 파악하여 결론에 도달하는 기법이다. 공론조사의 핵심은 ‘대표성’과 ‘숙의성’이다. 대표성은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다수의 참여자를 선정할수록 높아진다. 반면 숙의성은 참여자 수가 많을수록 숙의가 어려워 저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에서 대표성과 숙의성을 조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신고리 공론화의 시민참여단은 모집단의 층화표본추출에 의해서 대표성 있는 500명을 선정하였고, 해당 의제에 대해서 자료집, 동영상 등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였으며, 2박 3일(종합토론회) 동안의 학습과 토론(소그룹)을 거쳐 개인의 선호 변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결론을 도출하였다.
 
신고리 공론화의 의미와 향후 과제
  
신고리 공론화가 남긴 의미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정한 절차의 중요성이다. 공론화는 단순히 잘 짜여 진 각본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공론화 설계 및 운영의 전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하고, 중단·재개의 이해관계자가 함께 과정을 설계했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대부분의 갈등은 정책입안자 일방의 결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절차가 공정하고 투명할수록 이해당사자의 수용성은 증대된다.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공표한 뒤 공격이 들어오면 방어하는(DAD, decide-announce-defence) 정책 추진 방식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과거 정부는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대부분 일방적인 결정-공표-방어 전략을 취해왔다. 이러한 추진방식은 공정성 및 수용성 측면에서 오히려 갈등을 촉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 일반 대중도 충분히 숙의를 통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객관적인 정보를 학습하고 토의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못지않은 합리적인 판단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원전과 같은 난제를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결정한다는 우려는 기우가 되었다. 그동안 전문성을 이유로 극소수에게만 열려 있던 주제가 일반 시민으로 하여금 충분히 논의되고 숙고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오히려 전문가들이 시민들에 대해 무지했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대립과 갈등의 난제를 사회적 대화로서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을 보여주었다. 우리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 갈등을 갖고 있다. 이번 공론화는 이해관계가 첨예한 주요 갈등 상황을 사회적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 상호 토론과 숙의과정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갈등해결의 모델을 제시해 주었다. 
넷째, 공론화 결과에 대한 수용이다. 공론화 과정을 통해서 시민들은 나와 다른 상대의 의견일지라도 수용할 수 있다는 존중의 미덕을 보여주었고, 이러한 시민의 수렴된 의견은 정책 추진에 반영되었다. 
신고리 공론화가 이러한 함의를 담고 있음에도 향후 풀어나가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먼저 공론화가 만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공론화’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해당 사안이 공론화의 의제가 적합한 지의 여부도 중요하다. 공론화 대상은 해당 국민들에게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의제가 공론화 대상으로 보다 적합하다. 
둘째는 공론화 환경이다. 공론화 실행주체는 중립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공론화 추진 근거는 존재하는지, 공론화 실행 예산은 확보할 수 있는지, 공론화 결과에 대한 채택 근거 및 실행의지가 있는 지의 여부를 살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정치권과 언론,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자칫 공론화를 하나의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거나 언론의 공격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공론화가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시민의 의견을 존중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정치권과 언론은 조력해야 한다. 또한 참여주체로서 시민들은 존중하고 배려하는 토론문화를 정착하고,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노동계가 공론화 기법을 활용하고자 한다면
 
공론화는 노동정책의 입안이나 결정 과정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다만 무엇을 공론화 의제로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사회복지 등과 같이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고루 미치는 보편적인 주제는 공론화 대상이 될 수 있다. 공무원의 경력 및 처우개선(브라질, 2009), 연금개혁(일본, 2011), By The People(미국, 2011: 교육, 실업, 빈곤, 주택 등 경제문제) 등에 대한 공론화는 노동정책에 관한 공론화가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공론화의 추진주체 및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노동계에는 비정규직,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정책, 고령화정책, 4차 산업혁명 등 해결해야 할 쟁점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쟁점들은 노사정의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해결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첨예한 노사정의 입장은 좀처럼 타협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사 당사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이러한 의제들로 공론화를 시도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론화 방식은 다양하다. 공론조사, 합의형성, 규제협상, 시나리오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 볼 수 있다. 어떠한 방식이 적합할 수 있을 지는 참여자의 대표성, 결과 도출 방식, 시민 참여자 활동 등을 고려하여 보다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노사 관행으로 보건대 공론화를 추진한다면, 가급적 이해당사자가 직접 공론화 운영주체로 참여하는 것은 배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 과정의 설계 및 운영은 중립적인 제3자에 의해서 수행하되, 다만 노사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하여 절차 설계에 반영하도록 하는 간접방식을 권하고 싶다. 예컨대 비정규직에 대한 공론화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설계 과정에 반영해야 할 것이며, 고령화정책에 대해서는 장년층을 대표하는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모든 과정은 일반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문제해결을 위한 창의적인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노사갈등의 해소 측면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제3의 대안이 개발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을 적극 발굴하여 중립적인 시각에서 선택지를 제공하고, 객관적인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공공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입장이 달라도 신뢰하며 토론할 수 있다는 깨달음”
 
공론화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일반 국민들이 모여 의논하고 공론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공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개인은 사익을 넘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공공의 선을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특정한 공공정책 혹은 노동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일반적인 추진보다는 이해관계자, 전문가, 일반시민 등 다양한 사회계층 구성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숙고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다는 사실, 토론을 통해 나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신뢰,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정책을 추진하려는 정부에 대한 신뢰 등에 대해 새롭게 깨달아 가는 과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는 시민참여단의 소회가 진정한 숙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론화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신중한 접근을 통해 노동계는 물론 우리 사회가 진정한 통합과 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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