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내기 한국노총 정책활동가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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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15년 봄이었다. 대학원에서 노사관계학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이 지방의 한 대형 조선소의 연구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상주하며 연구를 보조할 인력을 구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방 생활에 대한 부담감과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져 선뜻 결정하기 힘들었지만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당시 조선소 연구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는 임금, 생산, 직급 체계 등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합의점과 대안을 제시해주는 것이었다. 그때 그곳에서 노동조합과 노조 간부들을 처음 가깝게 접하게 되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외적인 모습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이라 적힌 조끼를 입으며 어딘지 모를 강인한 말투와 인상을 가지고 계셨지만, 나를 비롯한 연구진을 대할 땐 무척 따뜻한 분들이셨다. 하지만 그분들이 협상에 임하는 자세는 사뭇 진지했다. 사용자 측과 협상이 잘 안 되는 날은 확성기를 틀며 조합원들에게 투쟁 홍보를 하거나, 부분파업과 같은 쟁의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협상 과정에서 사용자 측과 의견차이가 심할 때는 고성도 오고 갔다. 
그렇게 나의 노동조합의 첫인상은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혔다. 일 년 남짓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제 현장 경험을 통해 노사관계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고,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노사관계를 직접 경험한 값진 시간이었다.
 
일반 직장인이 한국노총에 지원한 이유 
 
연구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나는 일반 기업에 입사해 지난해 11월까지 일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었기에 선택한 진로였다. 일반 기업에서는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의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었다. 업무를 하며 기술적이며, 전문적인 지식도 습득할 수 있었고, 배운 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회사원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일하는 도중엔 단 한 순간의 여유도 없었다. 또한, 정시에 퇴근하는 ‘칼퇴’는 조직 내에서 예의가 없는 행동으로 비춰졌고, 상사의 허락을 받아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어느 정치인의 말에서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들이 습관처럼 부르던 “저녁이 있는 삶”은 나와 동료 그리고 대다수 회사원에게는 사치일 뿐이었다. 지나친 경쟁과 통제가 만들어 낸 비인간적, 비민주적인 노동환경은 우리나라의 현실이었으며, 나와 대다수 동료 회사원들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평범한 삶이라 생각하며, 부당함을 알아도 잘못되었다는 생각 이전에 순응하며 살아야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기에 회사 생활은 늘 긴장과 불안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즈음 한국노총 정책본부에서 신규 인력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지원해 보고 싶었지만,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노총이라는 곳은 일반 기업과는 다르게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를 자신감과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총에 지원하기까지 결심하는 데 몇 해 전 조선소 연구 프로젝트의 좋은 경험도 한몫했던 것 같다. 결정하는 순간에 나는 ‘내가 관심 있나?’ ‘공부하며 배울 수 있을까?’ ‘내가 맡은 역할로 인하여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세 가지 물음을 던졌고, 한국노총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 후, 두 차례 전형을 거쳐 합격하게 되었다.
   
사명감을 갖고 분주히 움직이는 따뜻한 사람들
 
한국노총에 온 뒤 느낀 첫 인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편안함’이었다. 노동조합의 총연맹이라 하면 뭔가 시끌벅적한 분위기일 걸로 짐작했다. 그렇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매우 차분했고 마치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고, 동료들은 따뜻하고 편안하게 나를 맞아주셨다. 두 번째로 느낀 점은 ‘분주함’이었다. 정부기관과 단체에서 발간한 서류와 책들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한국노총은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복지, 고용, 법률, 여성 등 노동문제와 관련한 모든 분야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느 하나 결코 가볍지 않은 영역에서 많은 인력이 함께 매달려도 힘든 일을 소수의 인력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주함은 일반 회사에서 경험한 여유가 없는 느낌의 분주함과 바쁨이 아니라, 뭔가 사명감을 가지고 분주히 일을 하고 계신 듯 보였다.
나는 한국노총의 노동정책이 대한민국 노동 환경에 미치는 파급력은 절대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책 하나하나의 방향성에 따라서 수많은 노동자의 생활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그렇겠지만 나 또한 노총에 들어오기 전 노동문제에 대해 ‘관전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노동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들어오면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항상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에서 노선의 대립은 노동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다수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노동자를 대표하기 위해 단위노조와 상급단체는 무엇을 해야 하나. 궁금했지만 그 답을 찾기는 매우 어려워 보이고, 앞으로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총에서 들어온 뒤 내가 느낀 힘들거나 어려운 점은 지금까지 두 가지 정도가 있다. 하나는 항상 설명하는 것이다. 복잡한 임금 구조, 근무 형태, 휴가 사용, 복지 혜택 등 운영 주체들이 만들어낸 제도는 일반 노동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복잡하다. 자신이 무슨 임금을 받는지 알지도 못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노동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다른 하나는 노동조합에 대한 따가운 시선이다. 노동조합이라 말하면 시위만 하고 이익만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거부감을 갖는 목소리도 들었다. 현재 노동조합이 아직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일부 비판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매우 어렵고, 나는 앞으로 노총에서 일하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할 것이고 해결해보고 싶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끊임없이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노동환경이 나아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루 8시간 근무, 주5일 근무 등 지금은 자연스럽게 느끼는 제도들이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한 일이 아니었던가. 
 
다양한 의견들을 모으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초심자의 시각이지만 앞으로의 노동운동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노동운동의 발전은 다양한 주체와 소통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한국노총 김주영 위원장은 취임 후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설립을 제안했고, 최근 사회적 분위기 또한 긍정적이다. 기존의 노사정위원회를 뛰어넘는 ‘새집’이 만들어지기 직전이다. 대화의 새로운 장이 만들어지고, 각 주체가 입장이 다르더라도 테이블에 나와 난상토론이라도 한다면, 노동자들을 위한 더 좋은 정책들이 만들어지는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얼마 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라는 작품을 보았다. 그 뮤지컬에서는 사용자, 정부단체와 힘겨운 싸움을 하며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노동자 가족들과 노동조합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었다.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위해 주며 단단하게 뭉쳤다. 그 모습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새겨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현재 너무 많은 노동조합이 서로 갈등관계에 있으며,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가고자 하는 서로의 최종 목적지는 같을 것이다. 내가 이제 막 몸담은 노총은 그러한 조직들이 그러한 목적지로 잘 항해할 수 있도록 올바른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나 또한 노동자들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기쁨을 배가 되게 하는 좋은 정책 연구를 통해 노동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그런 날을 꿈꾸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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