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들처럼’ 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 : 『그림자 노동』, 『그림자 노동의 역습』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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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바로 한가한 삶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능한 한 적게 일하고 가능한 많이 놀며 충분히 자는 삶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적게 일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노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을 피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 중에서 어떤 것이 노동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노동』: 산업화 이전에는 없었던 구별과 임금노동의 그림자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그림자 노동’은 고용의 그늘에 가려진 무급 노동이자, 산업노동에 종속된 노동입니다. 일리치가 들고 있는 ‘그림자 노동’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주로 여성이 수행하는 가사노동인데, 이는 임금 노동을 위한 재생산, 재충전 및 자극제 역할을 하도록 강제한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일리치에 의하면 성별에 따른 작업(직업)은 산업화 시대 이전에도 있었으나, ‘유급노동과 무급노동’, ‘생산적으로 취급되는 노동과 재생산 및 소비에 관계된 노동’, ‘중요하게 간주되는 노동과 그렇지 않은 노동’의 구분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일리치는 산업화와 성장의 역사가 곧, 차별과 구분의 역사임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리치는 그가 『그림자 노동』을 쓸 당시인 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들어 생산과 소비의 역할 구분이 없어지며, 비공식 부문에서 벌어지는 활동에 그림자 가격을 매기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성장과 완전 고용이라는 목표를 여전히 포기하지 않는다면, 훈련받은 사람들을 금전적 보상 없이 일하게끔 만드는 경영방식이 ‘발전’의 최종 형태로 펼쳐질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림자 노동의 역습』 : 오늘날 우리가 ‘숨 쉬듯’ 하고 있는 노동
 크레이그 램버트의 『그림자 노동의 역습』에서는 ‘그림자 노동’의 개념을 빌려, 우리가 살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림자 노동’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특히 일리치가 예언한 ‘금전적 보상 없이 일하게끔 만드는 경영 방식’이 약 40년이 흐른 지금 얼마나 교묘하게 실현되고 있는지 책은 설명합니다. 
 램버트가 다시 정리한 ‘그림자 노동’은 “구조적 실업에 기여하는 새로운 요인이 그림자 노동의 형태로 등장”하는 것입니다(p.49). 쉽게 말해서, 이전에는 노동자가 했던 일을 소비자 혹은 다른 노동자들이 기꺼이 맡아서 한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는 수많은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가장 와 닿은 것은 이전에는 여행사 직원이 하던 일들을 ‘익스피디아’와 ‘호텔스닷컴’과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서 소비자가 스스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집에서, 그리고 시장에서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새로운 플랫폼과 콘텐츠가 생기며 늘어나는 업무량을 (추가 고용 없이) 기존 노동자들이 고스란히 감내하는 한편, 시장에서는 자동화로 인해 노동자들이 있던 자리에 기계가 서 있게 되었습니다. 시장에서는 매장 직원이 줄어들면서 소비자는 직접 제품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선택권’을 얻으나, 결과적으로 매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계획하지 않은 소비까지 하게 됩니다. 램버트는 고용주는 인건비를 줄이고, 소비자는 ‘선택권’을 가지는 동안 “유일하게 사라진 것이 있다면 인간”임을 통찰하며, 동시에 “무한한 선택권은 사람들을 멀티태스킹의 덫에 꾀어 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일상의 상품화와 그림자 노동의 사이 
 의도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책의 후반부에서 램버트는 우리 일상 전반이 상품화되는 현실과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게 되는 현실을 섞어서 보여줍니다. 이전에는 어린이들이 공터에서 자유롭게 놀이를 하며 자신들만의 규칙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으나, 이제는 그 놀이에 어른들의 규칙이 생기며 그림자 노동과 일상의 상품화가 동시에 발생합니다. 어린이 스포츠리그가 조직되고, 학부모가 멘토 역할을 하고(그림자 노동), 운동 도구와 시합을 위한 기업 스폰서가 조직되는 것(일상의 상품화)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일상의 상품화와 그림자 노동의 혼용 예는 인터넷상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SNS를 하며 단순한 유희로 ‘좋아요’를 누르지만, 이것은 기업의 광고비 투자로 이어져 결국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노동으로 변합니다. 나아가 SNS에 내 정보를 자발적으로 내어주면서 “내가 바로 상품이 되는 것”은 ‘그림자 노동’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우리 삶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
 『그림자 노동』과 『그림자 노동의 역습』은 우리 일상에 빼곡하게 들어찬 노동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가 없는 노동에 대한 긴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씁쓸한 마음부터 들게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에 위안을 얻게 됩니다. 덕분에 “어떻게 하면 더 적게 일할 수 있을까?”라는 개인적인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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