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 속의 민주노총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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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으로 기억한다. 당시 민주노총 대변인 역할을 하던 손낙구 실장이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한국에서는 경선을 하면 반드시 이겨야 할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한일전 축구시합이고, 또 하나는 선거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들 웃음이 터졌다. 또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절은 정말 그랬다. 한일 축구시합은 무조건 이겨야만 되는 경기였다.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반일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보수 세력이 더 심했다. 해마다 3.1절이나 8.15가 되면 우익들의 혈서 퍼포먼스가 심심찮게 등장할 때였다. 심하면 손가락도 잘랐다. 정부와 언론이 부추긴 측면이 컸다.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87년 민주항쟁을 통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게 되면서, 선거 문화가 전 사회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노동조합에서도 선거가 일상화되었다. 노동운동의 영향도 컸다. 회사가 지원하는 후보에 맞서 민주노조를 만들어야 했고, 선거에서 치열하게 붙었다. 선거는 노사의 대리전이었다.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정파운동의 시대가 본격화되었고, 이 또한 선거가 활성화되고 과열되는 것에 일조했다. 각 정파는 노선을 관철하겠다는 목표로 치열하게 붙었다. 
 다시 민주노총 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민주노총의 각 정파세력, 그리고 선거에서 본인의 직접 출마를 희망하는 개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민주노총 선거에 쏠리는 안팎의 높은 관심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선거다. 우선 기본적으로 3년 임기의 민주노총 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을 새로 선출한다. 거기에 더해 16개 지역본부가 동시에 선거를 치른다. 지난 선거에서는 일부 지역본부만 동시에 치렀는데, 이번에는 모든 지역본부가 임기와 선거 시기를 맞췄다. 그것만이 아니다. 민주노총 선거에 시기를 맞춘 산별노조가 몇 개 더 있다. 공공운수노조와 공무원노조, 보건의료노조 등이다. 민주노총의 모든 세력이 어떤 단위로든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보 등록은 10월 31일부터 11월 6일까지다. 전국노동자대회 때는 각 후보가 어깨띠를 두르고 참여하지 않을까 싶다. 1차 투표는 한 달 뒤인 11월 30일부터 12월 6일까지다. 누군가 50%를 넘긴다면 1차에서 끝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1·2등을 한 후보들로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 결선은 12월 14일부터 20일까지다. 이런저런 확인 과정을 거치더라도 해를 넘기기 전에는 민주노총 차기 위원장이 확인될 것이다.
 민주노총 안팎에서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한다. 누가 될 것 같아요. 어떻게 할 거예요. 벌써 두어 달 전부터 묻는 이들이 많았다.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몇 가지 지점에서 노선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날카로운 핵심은 두 가지다. 
 대표적인 것은 노·정-노·사-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관점과 태도의 문제다. 특히 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입장의 차이다. 새로 재편될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핵심이다. 이것은 민주노총 외부의 주된 관심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한편 민중당 창당을 계기로 전면에 부각될 것으로 예상되는 진보정치 대통합에 대한 입장 차이가 선거에서 작동할 것이다. 
 
민주노총 차기 집행부 앞에 놓인 핵심 과제
 첫째, 노동계급이 해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단화된 노동격차의 해소 문제다. 이것을 해소하지 못하면서 노동운동을 도모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박사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분석에 의하면, 노동자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격차는 2014년 5배에서, 2015년에 5.25배로 벌어지더니, 2016년에 5.63배로 벌어졌다. 5배도 심각한 격차인데, 더욱 암담한 것은 5배가 5.25배에서 5.63배로 해마다 가파르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라면 불과 몇 년 안에 10배까지 벌어질 것이다. 
 노동격차의 문제를 단적으로 확인하는 통계가 또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조사한 2014년 기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관련 노동자들의 임금격차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단식 임금구조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정규직 평균연봉은 9,700만 원이고 비정규직은 5,000만 원이었다. 1차 하청, 정규직은 4,700만 원이고 비정규직은 3,000만 원이었다. 2차 하청, 정규직은 2,800만 원이고 비정규직은 2,200만 원이었다. 사내 복지와 연금 따위 혜택을 합친다면, 격차는 더 심하게 벌어진다. 현 체제를 통해 지킬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9,700만 원 연봉을 받는 노동자와 현 체제에서 숨 붙이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2,200만 원 연봉을 받는 노동자가 어떻게 하나의 계급으로 같은 목표를 향해 투쟁할 수 있단 말인가. 
 둘째,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한 전교조 태도를 계기로 뚜껑이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한 전교조의 실제 태도와 세부 방침이 어떠했는가와 상관없이, 전교조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으로 사회화되어 버렸다. 판도라 뚜껑이 열린 것이다. 그것이 신호였다. 공공기관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정규직에 준하는 처우개선을 정규직이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흐름으로 확산되고 있다. 노조 없는 사업장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 전통이 살아있는 노동조합 조합원들도 차별 합리화의 대오에 합류하고 있다. 한정된 예산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처우를 개선하면 결국 정규직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 이유다. 오로지 나뿐인 나쁜 사회로 치달은 대한민국 신자유주의가 만든 슬픈 자화상이다. 
 평등과 연대라는 노동운동의 가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의 주력이 되기는커녕 반동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민주노총과 정파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안이 결합하면, 노동운동이 민주노총을 통해 무언가를 도모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차기 집행부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백척간두 진일보의 결기로, 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꼬까지는 터야 한다.
 
민주노총의 또 다른 난제들
 첫째, 진보정치 대통합 문제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진보정치의 탄생과 성장은 민주노총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을 이끈 것은 민주노총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 두 차례의 진보정당 분당 사태를 겪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진보정당이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변혁당, 녹색당 등으로 다당제 시대가 되었다. 변혁당·녹색당은 진보정당운동을 바라보는 노선에서 큰 차이가 있다. 진보정치 통합 그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정치 통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 정의당과 민중당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자본에 대한 불신 못지않다. 민주노총의 결의를 통해 진보정치를 통합하려는 시도는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이미 현 집행부에서의 16년 정책대대와 17년 정기대대를 통해서 확인된 바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쟁점이다. 슬기롭게 중지를 모으지 않는다면 매우 곤혹스러운 문제가 될 것이다. 
 둘째, 노사정위원회 참가 여부 및 대응전략의 문제가 있다. 차기 집행부로 그 어떤 정파가 당선되든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자기 노선으로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반대하는 집행부가 당선된다고 해도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은 이미 일자리위원회 참가에서 확인되었다.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일자리위원회에 부정적이지만, 다수의 뜻에 따라 참가하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위에 참가하든 불참하든 민주노총 다수의 뜻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차기 집행부가 들어선 뒤의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되든,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결정되든 결론은 날 것이다. 문제는 결론으로 가는 과정을 얼마나 잘 진행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 결정이든 저 결정이든 서로 존중할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충분하게 중지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래야만 2005년과 같은 정파 간 격한 충돌을 막을 수 있다. 그러려면 때를 놓쳐서도 안 되고 성급해서도 안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셋째, 투쟁력을 복원하는 문제다. 노동조합 힘은 투쟁력에서 나온다. 민주노총이 사회적 영향력과 교섭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투쟁력의 복원은 기본이다. 한상균 체제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투쟁력을 복원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한계가 컸다. 한상균 체제의 총파업도 기존의 총파업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총파업 때마다 금속노조가 하느냐 마느냐, 그중에서도 현대자동차가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의해 판가름 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마저도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위력시위는 민중총궐기의 후과 때문에 당분간 꿈도 못 꾸는 처지에 직면했다. 민주노총 차기 집행부는 70만 명 조합원이 단 1시간이라도 공동행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노총 투쟁력을 복원하는 출발이 될 것이다. 그것을 통해 한국사회 양극화 극복을 위한 촛불 시즌2를 열어야 한다. 
 넷째, 그 외 모든 세력이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들이 있다. 16개의 산별을 4개 안팎의 대산별로 재편하는 문제,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을 독립기관으로 만들어서 정책 역량과 내용을 풍부하게 만드는 문제, 덧붙여 국제사업을 확대하는 문제, 그리고 조합원의 구획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조직 갈등 문제 등이다. 퇴직자와 불안정 청년, 뿔뿔이 흩어져 있는 비정규직의 전략조직화도 있다. 이 중에서 몇 가지는 마음만 먹으면 쉽게 풀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이른 직선제도 평가 
 민주노총 선거를 바라보면서, 또 하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있다. 조합원 직선으로 선출하는 제도의 문제다. 이전에는 대의원대회에서 간선으로 선출했다. 선거제도를 둘러싸고 오랜 논란이 있었고, 그러다 지난 선거부터 직선이 시행됐다. 첫 위원장은 한상균이다. 
한상균은 직선의 성과였다. 정파 입김이 강하게 작동하는 대의원 간선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면, 단위사업장 경험밖에 없는 한상균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의 속성 상 경험과 연륜, 정파성을 더 밀도 있게 따졌을 것이다. 
불안한 것은 민주노총의 수준과 상태가 직선제의 의미를 제대로 채우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특히 선거부정 시비로 확인되는 선거 행정의 차원에서 불안한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선거부정은 진보정당의 두 차례 분당사태를 불러올 만큼 파괴적인 것이다. 그러나 선거만 되면 여전히 민주노총 내부를 혼란스럽게 하고 위태롭게 만드는 요소다. 최근의 금속노조선거에서도 시비가 있었다. 민주노총 선거에서 특정 정파에 의해 조직적 부정행위가 자행된다면 악몽이 될 것이다. 
 직선제가 성공하려면, 기존 언론매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신문·방송에서 민주노총 선거가 다뤄지고, 후보들의 면면과 정책이 소개되고, 후보들의 공개토론이 노출된다면, 조합원의 관심은 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요원한 실정이다. 
 이번 선거는 두 번째 직선이다. 간선으로 돌아갈지 직선을 유지할지, 지금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두어 차례 더 진행된 뒤에 판단해야 유의미한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다. 
 
투쟁과 교섭을 병행할 차기 집행부 
 문재인 대통령이 양극화 극복과 격차 해소,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의 진전이라는 기조를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서 하는 예측이다. 그렇게 되면, 내년 상반기 언제쯤인가 민주노총은 새롭게 재편되는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나름대로 근거는 있다.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둘러싸고 대의원대회 폭력사태까지 갔던 당시의 상황과 비교할 때, 많은 지점에서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민주노총 조합원의 평균소득이 상위 10% 안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청년노동자와 같이 밑바닥 주변부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한 과정과 논의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자칫하면 민주노총이 재벌 또는 정부와 공방을 벌이는 차원을 넘어 밑바닥 노동자들로부터 규탄되고 배척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
 둘째, 총파업과 위력시위로 상징되는 전통적 투쟁 방식을 통해 문제를 푼다는 전략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대표적 지표가 바로 앞에서 언급한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격차 추세다. 전통적 방식의 투쟁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한상균 집행부에서도 격차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급하게 벌어졌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효과가 확인되는 2018년의 상황까지 놓고 평가를 해야겠지만, 박근혜가 퇴진하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한 최저임금이었기에, 그 또한 전통적 방식의 투쟁 효과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전교조와 공공부문 정규직 조합원의 문제점을 풀려면,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으로 민주노총 정파들의 의견이 수렴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개선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대체로 인정한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도 개선의 문제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다만,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반대하는 입장에 우려가 있다. 결국 노동이 무언가를 양보할 것이라는 우려다. 유럽의 사회적 합의가 그랬고, 지난 노사정위원회 과정이 그랬다는 경험과 불신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합의가 되지 않도록 민주노총의 전략전술을 짜는 과정과 그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반대하는 정파에서도 격하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민주노총 내부의 과정이라고 본다. 차기 집행부가 슬기롭게 풀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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