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노조 분리 사태와 민주노조운동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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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의 모범사례였다. 금속노조가 2006년 ‘1사 1조직’ 원칙을 세운 후 최초이자, 완성차 업체 중 유일하게 1사 1조직으로 통합했다. 그러나 최초이자, 유일했던 기록은 9년 만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기아차지부가 지난 4월 말에 규약을 개정해서 비정규직을 조합원에서 배재하고, ‘정규직 노조’가 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기아차 정규직은 왜 비정규직의 손을 놓았나
기아차 화성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2005년 금속노조 경기지부 기아차 화성 비정규직지회를 설립했다.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 강화와 ‘1사 1조직’ 원칙에 따라 기아차지부는 2008년 4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 분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약을 개정했고, 비정규직지회를 사내하청분회로 편입시켰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기아차지부의 조합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쌓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극심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고, 2·3차 하청노동자 등은 여전히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우산 아래 모였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는 셈이었다. 
잠잠했던 불씨는 2016년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다시 타올랐다. 2014년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직접공정뿐만 아니라 간접공정에서 일해 온 사내하청도 불법파견”이라며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결 취지에 따라 사내하청분회는 비조합원을 포함한 4천여 명의 사내하청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는 지난해 11월 4천여 명 중 1,049명만을 특별 채용하는 것에 사측과 합의했다. 사내하청 조합원이 가장 많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는 “3천여 비정규직 조합원 중 2천명은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라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독자적인 파업을 세 차례 진행했다. 이러한 독자 행동에 기아차지부는 불만을 숨기지 않았고, 지난 1월12일 발행한 지부소식지 ‘함성소식’에 “화성 사내하청 일부 간부와 활동가의 잘못된 상황인식과 이를 그대로 현장 조합원에게 접목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제는 기아차지부에서 사내하청을 분리해 사내하청 독자노조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현장조합원뿐만 아니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까지 공식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직 내 갈등은 점차 커졌고, 결국 4월6일 열린 지부 대의원대회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사내하청분회가 특별교섭 진행을 중단하고 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발의했는데, 느닷없이 한 정규직 대의원이 “1단위 사업장 1조직 유지에 대해 조합원 의견을 묻는 총회를 진행하자”는 수정안을 낸 것이다. 이 안은 참여자 중 절반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지부 전체 대의원 460여 명 중 비정규직 대의원은 40여명에 불과했다. 
1사 1조직 재검토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아차지부는 1사 1조직 분리 총회를 앞두고 4월17일 발행한 소식지에서 “1사 1조직 조직형태로 변경하지 않는 노조는 노동운동의 원칙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라며 “조직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지와 실천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분리 총회를 중단할 것을 공식 요청했고, 최상급단체인 민주노총도 성명을 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했다. 기아차지부 내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분리 총회를 앞두고 기아차지부 옛 지부장들은 “분리 총회의 결말은 분열과 부끄러운 상처로 남을 것”이라며 총투표 중단을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냈다. 또한 기아차지부 전체 대의원 460여 명 중 170여 명이 분리 총회를 하루 앞둔 26일 총회 중지를 위한 임시대대 소집을 요청하기도 했다. 전체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요청하면 임시대대를 소집할 수 있다는 규정을 충족했지만, 분리 총회는 결국 강행됐다. 
기아차지부는 4월27일과 28일 지부 조합원 자격을 “기아자동차 내에 근무하는 자로서 조합원 규약에 해당되는 자”에서 “기아자동차(주)에 근무하는 노동자”로 제한하는 규약 개정을 위한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3만 1,082명 중 2만 6,711명(85.9%)이 참여했고, 투표 결과는 찬성이 1만 9,150명(71.7%), 반대가 7,397명(27.7%)으로 규약 개정은 가결됐다. 규약을 개정하려면 조합원 과반 투표에 투표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지부 전체 조합원 3만 1천여 명 중 정규직은 2만 8천 명, 비정규직은 3천 명 정도이다. 사실상 정규직이 찬성하면 개정안이 통과되는 상황이었다. 또한 지부 내에 사내하청분회를 둘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도 삭제하기로 하면서, 기아차지부는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밀어냈다. 
 
(2005년 옛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농성을 진행하는 기아차지부 화성지회 사내하청분회 조합원들 ⓒ금속노조)
 
 
분리 사태를 바라보는 노동계의 우려
민주노총은 4월24일 분리 총회를 앞두고 중앙집행위원회 차원의 입장문을 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을 해치고, 민주노조운동의 가치와 정신에 역행한다”며 즉각 분리 총회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분리 총회 강행은 그 결과를 떠나 민주노조운동의 최선두에 서왔던 기아자동차 노조 역사에 큰 오점이고 오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분리 후인 5월1일에도 “사내하청분회를 정규직 지부에서 분리하는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 노동자의 단결 원칙을 심각히 훼손하는 것”이라며 분리 결정을 다시금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조합원 투표를 실시한 28일에 즉각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금속노조는 성명서에서 “(기아차지부가) 총회 중단 요청을 수용하지 않고 강행한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결정으로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한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드리게 되어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 없으며 대표노조로서 책임감을 갖고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정규직화를 실현하는 과제는 포기되어서는 안 된다”며 “자정운동과 현장의 갈등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즉각 ‘노조운동 자정과 혁신 TF’를 설치하여 다각도의 대책 방안을 수립할 것이며 이를 전 조직적으로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아차지부의 분리 결정은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에도 충격을 안겼다. 노동계에 우호적인 시민사회단체의 전문가·활동가들은 5월5일 총회 가결을 반대하는 서명을 냈다. 이들은 “정규직 노조가 조직 분리 총회를 가결시킨 것은 민주노조로서 본분을 저버린 채 단일노조로 공동투쟁을 해야 할 당사자들 간의 분열을 공식화한 결정적 자충수였다”며 “민주노조운동의 본산에서 어느새 적폐로 전락한 대공장 노조운동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참담할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내부에서 진지하게 다뤄서 해소했어야 할 쟁점을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의를 훼손하고 드러내면서 최악의 결과를 자초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는 과오”라고 거듭 비판하며 “총회 결정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인 만큼 무효이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반대를 묵살하고 총회를 강행한 기아차지부 집행부에 대해 응당한 징계 처분을 내려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여진과 ‘대기업노조 권력화’에 대한 비판
기아차지부의 비정규직 분리 사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연대에는 균열이 생겼고, 민주노조운동은 큰 상처를 입었다. 누국가는 보수 수구세력의 ‘귀족노조’, ‘강성노조’ 이데올로기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한다. 지부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등 비정규직 단체들은 5월1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아차 1사 1노조 조직 분리를 통해 본 민주노조운동 평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번 사태의 파장과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김혜진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투쟁, 소위 ‘통제되지 않는 투쟁’에 대한 (정규직의) 불만이 적극적 배제로 나타났다”며, “(지부가) ‘조합원의 요구’를 중심으로 조직분리의 근거를 찾는 것은 자본의 통제 전략에 순응하겠다는 의미이며, 안정화된 현재 구조를 지키겠다는 태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민주노조운동은 너무나 훼손되었다. 민주노조의 원칙이었던 민주성, 자주성, 연대성은 형해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권영국 변호사는 “대공장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이 노동 내부의 차별과 이기적 행태로 인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기아차지부가 보인 행위는 노동자의 단결을 심각하게 해치고 노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더욱 증폭시킨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2015년 한국지엠 군산공장의 정규직 고용보장을 위한 비정규직 해고 노사합의, 2000년 비정규직 사용을 인정한 현대차지부의 ‘완전고용 보장 합의’, 2014년 현대차지부 등의 ‘사내하도급 관련 합의’를 이번 사태와 함께 “이기적인 대공장 정규직 노조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조가) 비정규직에게 갑질하는 이기적 조직으로 인식된다면 노조운동의 미래는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기아차 출신의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대기업노조는 권력화됐고, 자본이 용인한 특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그저 비정규직을 귀찮아할 뿐”이라며 기아차지부를 비판했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 역시 싸늘하다. 특히 보수언론은 “‘귀족노조’ 폐해 확인시킨 기아차 노조”, “비정규직 떼내는 기아차 ‘귀족노조’”라는 원색적인 제목과 함께 “대기업 노조가 겉으로는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은 절대 침해받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조직과 연대로 민주노조운동 다시 세우기 
기아차지부 밖으로 밀려난 화성·소하·광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각각 별도 지회를 꾸렸다. 화성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경기지부 가입을 준비하고 있으며, 소하공장 비정규직들은 노조 서울지부에 가입해 분회를 꾸렸고, 광주공장 비정규직들은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가입을 추진 중이다. 
주목할 점은 정규직이 쫓아낸 비정규직지회는 2차 이하 하청·간접고용 노동자 등 모든 비정규직을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옛 기아차지부 화성사내하청분회 조합원들은 6월1일 조합원 총회를 열고 직접고용·간접고용 비정규직과 해고자·이주노동자들에게 조합원 자격을 주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 규칙 제정안’을 가결했다. 기아차지부가 끌어안지 못했던 단기 비정규직과 2차 이하 하청 노동자들도 조합원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1,671명 중 1,422명(85.1%)이 참여했고, 제정안은 1,258명(88.4%)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비정규직지회는 이번 규칙 제정을 계기로 일용직, 계약직, 2·3차 하청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노조로 조직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아차 1사 1조직 분리사태를 계기로 새로운 비정규직 운동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화하고 있다. 5월18일 열린 토론회에서 김혜진 활동가는 “단결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비정규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조직되어야 하고 그들 스스로가 비정규직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며 “민주노총은 잘못된 노조활동을 강제하고, 활동 의제를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구성하며, 비정규직 조직사업에 전력투구해 민주노조운동 원칙을 다시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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