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과 노동운동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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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한국 노사관계의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한국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결정적 행위자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지났으나 자율적인 노사관계의 형성은 요원하다. 정치권력의 성격에 따라 노사관계 지형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명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사회‧정치적 제도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던 노동조합이 제도권으로 진입하고 있다. 노동 배제의 정치 환경이 인정 및 포섭 관계로 바뀌고 있다.  
 
새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전망
문 대통령의 노동 공약은 개혁적이다.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상시지속적인 일자리의 정규직 고용 관행 확립,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 개 일자리 창출, 체불임금 제로 시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동 공약은 노동계가 그동안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개혁적인 노동 공약에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이 깊이 깔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아직 이르지만 출범 50여 일의 성적표는 긍정적이다. 취임 후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하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포하였고, 일자리위원회에도 양대노총이 참여하는 등 노정관계는 회복되었다. 비정규직에 대한 기본 입장만 보더라도 참여정부 당시 요지부동이었던 출구 규제에서 벗어나 입구 규제로 전환하였고, 노사정위원회를 대체하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별도로 설립할 것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7월 초순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문재인 정부 노동개혁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순항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내외적인 상황이 긍정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지배 블록이 철옹성처럼 견고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권력은 바뀌었지만 재벌, 검찰, 언론, 관료 권력 등 기득권 세력의 힘은 요지부동이다. 국회는 여소야대로, 정부가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은 심사조차 못하는 형국이다.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다. 2017년 1분기 가계부채의 규모는 1,360조 원에 달해, 통계가 나올 때마다 신기록을 경신한다. 청년실업률은 11.2%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한반도 핵 위기에 따른 지정학적 불안정성, 대·중소기업 간 격차, 사회 불평등 문제 등은 문 대통령에게 더 이상의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법과 제도 개선을 동반하지 않은 노동개혁은 그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비상한 상황인식을 통해 노동개혁의 큰 밑그림을 설계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세부 실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새 정부 노동개혁에 대한 제안
새 정부의 노동개혁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자율적 노사관계’ 확립을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잡기가 당면 과제이다. 정부는 노사관계의 평형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재벌과 경영계로 기운 노사관계의 적폐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짧게는 지난 10년 동안 망가진 노동의 사회적 시민권을 회복하는 것이며, 잘못된 법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인 ILO의 기준에 맞게 다시 손봐야 한다. 법적 미비사항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정부 스스로 탈법적 행위를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노정갈등의 핵심 요인이었던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 및 저성과자 퇴출제는 정부가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통해 법 위에 군림해 시행했던 일이다. 고용노동부는 현장 노동자들에게 묻고 확인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부처라고 생각하는가. 열에 아홉은 노동자가 아니라 재벌, 경영자라고 답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권위와 추락한 위상 회복을 위해 지난 시기 잘못된 정책을 스스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성과연봉제 폐기 방침을 선포했듯이 고용노동부는 전국교직원노조, 전국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 방침을 스스로 풀어야 한다. 그래야 노정 간 신뢰가 회복되고 사회적 대화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네 가지 과제
더 큰 과제는 노동에 있다. 노동계는 촛불항쟁을 주도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정농단의 주범인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권교체도 이뤄내고, 미약하지만 진보정당의 작은 불꽃도 지켜냈다. 이제는 사회개혁과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할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 노동운동을 포함한 진보개혁세력은 한국 사회의 개혁 과제가 다층적이고, 전선도 균일하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모든 세력은 민주주의를 원했지만, 정권 교체 이후의 사회 개혁에 대해서는 그 내용도 우선순위도 다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6월30일 민주노총의 사회적 총파업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이 상황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민주노조운동이 나갈 길은 분명하다. 노동의 시민권을 온전히 회복하고 노동인권을 모든 일터에 뿌리내리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 없는 법이다. 1층 없이 2층부터 집을 지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동운동은 무엇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나. 올해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발생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 노조는 스스로의 활동과 역할을 책임져야 하는 청장년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대투쟁 30년을 맞이하는 노동운동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 30년 동안 일구어 낸 성과만큼이나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노정하였기 때문이다. 1987년 대투쟁 당시 외쳤던 노동해방과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은 얼마나 실현되었는가. 우리 스스로 묻고 답할 때 문제 해결의 작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조직역량 강화이다. 노조의 힘과 영향력은 노동자의 노조 가입 정도인 노조조직률(union density)과 노조 조직형태의 집중성(centrality) 여하에 따라 좌우된다. 2015년 기준 조합원 수는 193만 8천 명으로 2011년의 172만 명보다 21만 8천 명 늘어났지만, 노조조직률은 2011년 10.1%에서 2015년 10.2%로 변화가 없다. 2015년 기준 초기업노조 조합원 수는 109만 9,020명으로 전체 조합원 수의 56.7%를 차지한다.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가 산별노조 등에 소속돼 기업노조에서 벗어났지만 조직운영 및 단체교섭은 아직 기업 울타리에 갇혀있다. 더 근본적인 것은 조합원의 대다수가 상대적으로 임금 및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 공공부문 소속이고, 노조 가입이 절실한 비정규직과 30인 이하 중소사업장의 노조조직률은 1%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6월22일 자 경향신문 옥중 기고문에서 ‘노조 가입률 30%, 노조 전성시대’야말로 대한민국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주장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노조조직률을 3배 높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노조조직률 15% 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자원과 인력의 집중을 통한 강력한 전략조직화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낮은 조직률과 기업별로 분산된 조직형태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정당성을 취약하게 할 뿐 아니라, 노사 대등성을 약화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둘째, 제2의 산별노조운동 추진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구조는 바뀌었고 고용형태는 다양화되었다. 87년 노동체제의 골간인 기업별노조 및 교섭은 경제 성장기에 조응하는 시스템이었다. 경제 성장률은 높았고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놓인 노동자의 투쟁은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노조의 역할은 임금 극대화와 기업 복지 향상에 집중됐고, 분배 투쟁은 사회적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그 유용성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변화된 고용 생태계는 노조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정규직노조의 책임으로 돌리고, 귀족노동자 프레임으로 노노갈등을 조장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은 심화됐고, 시민사회와의 연대는 약화됐다. 현재의 고용체제는 작업장과 공급사슬 내 격차를 다층화한다. 작업장 내 투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조건이다. 노조의 대응 전략은 분배 투쟁에서 작업장 투쟁으로 나아가야 하고, 기업 내 투쟁에서 산업정책, 원·하청 거래관계, 사회보장체제 확립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위기 돌파 전략으로 산별노조 건설을 제시하였다. 산별노조는 더 많은 임금과 복지가 아닌 평준화를 목표로 한다. 산별노조운동은 노동운동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누구는 한국의 산별노조 건설이 ‘역사를 거스르는 실패할 실험’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산별체제 확립은 노조 재생(rebuilding labor)을 위한 첫 단추이다. 제2의 산별노조운동 추진으로 노조의 중앙 집중성을 높이고 단체교섭의 집중화를 꾀해야 한다. 분산된 노조는 사용자와의 개별적인 교섭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에, 상급 노조는 정치적이고 계급적인 주체로서 국가 및 사용자에 맞서 효과적인 협상을 벌일 수 없게 된다. 
 
셋째, 노조 민주주의 확립과 온정적 집단주의와의 결별이다. 노조는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한다. 노조에서 민주주의가 중요한 이유는 노조가 자발적 결사체이고 지속적인 참여에 의해 유지될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조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노조 집행부와 현장을 연계하는 대의원 조직이 약화되고 간부 충원이 안 되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노조 공식 조직의 약화가 노조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조 민주주의의 위기가 현장조직(정파)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 현장조직은 노조운동이 경제적 이익을 뛰어 넘어 정치사회적 운동으로 발전하게 하는 순기능이 강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현장조직의 가장 큰 문제는 노조의 공식 의사결정 과정을 무력화하고, 노조 민주주의를 약화시켜 조합원들의 참여를 봉쇄한다는 점이다. 현장조직 간의 정책 차이도 희미해진 상황에서 권력 경쟁을 위한 패거리 현상만 남았다는 평가다. 노조 내 민주주의가 형식화되고, 온정적 집단주의가 조직 내 비판 기능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노조 민주주의의 강화를 위해서는 간부 학습을 촉진하고 공식 논의구조를 활성화하는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확립해야 한다. 온정적 집단주의는 조직 내 개방적인 토론을 가로막고 조직을 서서히 죽게 만드는 암적 요인이다. 노동운동 내 남아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폐쇄적인 공동체 문화는 시급히 버려야 할 과거의 유산이다. 
 
마지막으로, 리더십 혁신 및 강화이다. 조직에서 리더십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노조운동은 2000년대 이후 조합원의 무관심과 현장조직의 갈등 때문에 리더십의 효율성과 안정성이 크게 저하되었다.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많은 노조가 선거를 겨냥한 단기 업적주의, 리더십의 관료화와 권력화, 조합원의 참여 저하와 간부 기피 현상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장기적 전망이나 전략에 대한 토론 및 자원 배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주·민주·연대성의 원리에 기반을 둔 새로운 노조 리더십을 구현할 때 노조의 민주성과 효율성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권력의 집중과 분산, 조직 하위 집단들 간의 의사소통, 일상 활동의 혁신 그리고 체계적인 간부 양성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새 정부의 출범은 한국 노사관계의 정상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외부 환경의 변화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노사관계를 주도할 노동의 준비와 대응 전략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그 변화의 폭과 속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노동의 혁신이 어느 때보다 절박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업장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의 삶을 책임지는 노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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