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오늘의 민주노조운동

섹션:

글쓴이 :

올해로 1987년 7․8․9 노동자대투쟁이 25주년을 맞았다. 25년 전 나는 지금은 울산광역시로 통합된 경남 울주군 온산면 소재 온산공단에서 기술직 노동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노동자대투쟁의 진원지였던 울산에 바로 인접한 곳이다. 87년 6월 중순에 접어들자 6월 민주화투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공업도시인 울산에서도 연일 거리시위가 이어졌고, 6월 말경 마침내 울산 시내 중심가인 주리원 백화점을 사이에 둔 공방에서, 시위대들이 경찰의 마지막 저지선을 밀어내고 관통해버렸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았고 환호성을 질렀다.

6월 민주화투쟁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노동 현장으로 스며들었다. 해방 이후 줄곧 독재권력과 자본에 짓눌려온 노동자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7월 울산의 현대엔진 노동자들이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회사 관리자들로 급조된 어용노조에 대항하여 노조민주화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노동자대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울산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소식은 삽시간에 온산공단으로 전파되었고, 7월 말에 접어들자 이곳저곳에서 임금 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어용노조 퇴진과 노조 민주화 슬로건을 내걸고 파업투쟁에 돌입하더니, 급기야 전국적으로 수천 개의 사업장에서 파업투쟁을 전개되고 거리시위에 나서는 등 노동자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87년 7월 어느 날, 울산 시청에서의 감격

7월의 어느 날인가 그 일시를 정확히는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현대 노동자들 수만 명이 대형 트럭과 온갖 중장비를 이끌고 방어진을 출발하여 경찰의 저지를 가볍게 물리친 후, 고개를 넘어 울산 시청까지 행진해 와 시청을 장악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전율스러웠다. 그리고 희망에 차 감격했다. 이제 노동자들의 세상이 오는구나, 그렇게 염원하던 노동해방의 세상이 오는구나, 자본에 종속된 노동이 아니라 자본과 대등한 노동의 세상이 오는 것이라며 감격해했다.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수천 개의 노동조합이 건설되었고, 지역협의회로 전국조직으로 단결해갔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거리로 나와 공권력에 맞장 뜰 만큼 과감해졌다. 노동자들은 나의 사업장 너의 사업장, 나의 문제 너의 문제를 가리지 않았다. 노동자들에 대한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이 있는 곳이면, 노동자들은 어디든 달려갔다. 그리고 함께 탄압하는 자들에게 맞섰다. 그것이 경찰이든 사용자의 용역청부폭력이든,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인 양 함께 대적했다. 바로 이 시기 노동운동의 기풍이었다. 

정규직도 없었고 비정규직도 없었다. 그저 노동자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회사가 만든 어용노조와 노동자들이 쟁취한 민주노조의 대결이 있을 뿐, 노동자 내부의 계층 분열은 없었다. 독재권력과 자본의 기나긴 노동 억압과 통제, 그로 인한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었다. 노예 노동으로부터 인간선언 운동이자 노동자의 자본에 대한 자주성 회복 운동이었다. 그 투쟁 기풍은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으로 명명되었고, 1990년 전노협 건설 투쟁으로, 1996년 12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맞선 노동자 총파업으로 이어졌다. 총자본에 대한 총노동의 대응이라는 성격의 투쟁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신분’으로 갈린 노동자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로 찾아온 IMF 체제는 ‘바이 코리아’로 대표되는 공기업 민영화와 자본시장의 개방, 그리고 시장 규제의 철폐, 효율성과 경쟁력을 내세운 기업 구조조정의 일상화, 그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으로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의 입법을 강요했고 관철시켰다. 시장과 자본에 대한 규제의 철폐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자본의 집중과 독점, 재벌의 공룡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청관계로의 재편으로 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총자본인 국가와 개별 자본은 노동유연성이라는 명분하에 파견 근로자와 기간제 노동자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노동을 합법화하고, 노동자계급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로 갈라 놓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리해고가 된 노동자들은 실업자나 계약직 혹은 파견 노동자로 신분이 강등되었다. 임금은 3분의 1, 4분의 1이 되었고, 생활수준은 최저생활로 떨어졌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후 빈곤층으로 전락해갔다. 자본이 필요할 때 싼값으로 사용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쉽게 내다버릴 수 있는 인력시장이 형성되었다. 소수의 정규직과 다수의 비정규직 사용은 자본이 꿈꾸는 세상이다. 

이처럼 급격한 경제구조와 경제정책의 변화, 그리고 노동 유연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이윤 극대화와 노동착취 방식은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새로운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 대응의 핵심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모두 안을 수 있는 노동조합운동이었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조합은 그것이 산별노조이든 기업단위노조이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신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주저하거나 거부했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는 투쟁을 소홀히 하거나 기피했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에도 실업자들을 조직화하지 못했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내놓지도 못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느덧 자신의 임금과 복지, 그리고 고용을 보장받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신의 ‘고용안정판’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이나 고용보장 투쟁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으로 비쳐졌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면 속에 고립되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번져갔다. 서로 깊은 불신을 남겼다. 그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정규직 노조의 방관과 계약 갱신 거부를 무기로 한 사용자의 극심한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2%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사라진 노동자대투쟁의 기풍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25년 전 노동자대투쟁의 기풍과 열정은 어느덧 사라졌다. 그저 구호로 외쳐질 뿐이다. 나의 사업장 너의 사업장, 나의 문제 너의 문제를 가리지 않고 노조탄압이 있는 곳이면 짱돌로 무장하고 득달같이 달려갔던 단결의 기풍이 사라졌다. 1996년 노동법 개악에 들불같이 일어나 노동법 재개정을 이끌어냈던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이제 정부나 자본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일종의 연례행사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국민들조차 전혀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다. 

1989, 1990년 10만 정도의 조합원에 불과했던 시절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한 인원이 3~5만 명이었던 반면, 오늘날 80만 조합원을 자랑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중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하는 인원은 그와 동일한 수준이거나 그에 못 미치는 2~3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민주노조운동의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마저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정파로 갈려 그 내부에서조차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다. 

정리해고로 인해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난 장기투쟁사업장이 넘쳐나는데도 당사자들만이 죽자고 투쟁할 뿐, 대부분의 조직된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안쓰러운 일 정도로 취급될 뿐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노동자대투쟁에서 분출되었던 노조 탄압과 비인간적인 근로조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의 정신은 쇠락해버린 것일까?

차별과 분열을 넘는 노동운동을 위하여

조직된 노동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그 자리에 새로운 기풍이 생겨났다. 희망버스, 희망텐트 등 노동자들의 문제를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고 자신의 문제, 자기 아이들의 문제로 받아들이려는 각성된 시민들과 노동문제의 중요성을 자각한 시민사회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비정형적인 연대가, ‘나 홀로’ 싸우고 있는 정리해고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끈질기게 함께하고 있다. 노동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시민의 각성을 불러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절반의 승리를 이끌어냈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진상규명 투쟁은 진행 중이다.

희망버스, 희망텐트 투쟁은 노동과 시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노동이 부문을 탈피하여 전 사회적 과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고무적이다. 그러나 투쟁의 주체가 바로 서야 하고 올바르게 조직되어야 한다. 시민과의 조우는 외연을 확대하고 사회적 정당성을 확인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투쟁 결과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투쟁의 연속성과 지구력을 가지려면 투쟁의 주체가 바로 서야 한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현 민주노조운동은 더 이상 노동자대투쟁의 정신과 그 실천을 담기엔 역부족이다. 조합원에 대한 임금 인상과 복지 향상으로 상징되는 실리적 노조운동은 차별에 둔감할 뿐만 아니라 차별의 수혜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에 둔감한 민주노조운동은 전 계급적 요구와 분노를 조직할 수 없다. 

차별과 분열을 노동자계급의 주적으로 삼아 사업장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하나의 단위로, 그리고 사업장을 뛰어넘어 초기업단위로 함께 조직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과 정서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단결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정서적 동질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투쟁이 고립되지 않도록 엄호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는 나의 사업장 너의 사업장, 나의 문제 너의 문제를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에 대한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어이기 때문이다. 유성기업 등에서의 용역청부폭력을 막지 못한 결과 SJM 용역폭력으로 이어지지 아니하였던가?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조항에 대한 입법을 막지 못한 결과 노동3권 전체가 흔들리고 있지 아니한가?

노동자들의 단결이 사라진 세상은 희망이 없는 세상이다. 25년 전 꿈꾸었던 노동해방의 희망을 위하여 한국의 노동자여 차별과 분열을 넘어 단결하자.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