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노동자도 이주노동자도 차별 없는 세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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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들
작년 10월 말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고 불린 초대형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시작된 광화문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29일 1차 당시 5만 명으로 시작했다. 그 이후 참석인원은 2주차에 30만 명, 3주차에 100만 명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지난 4월15일 열린 ‘세월호 3주기 22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까지 투쟁은 반년 넘게 이어졌다.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깃발을 들고 나왔는데 ‘전견련(전국 견주 연합회‧전경련 패러디)’, ‘민주묘총(고양이 키우는 사람들 총회‧민주노총 패러디)’처럼 유쾌한 패러디 깃발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비견될 만큼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대규모 군중집회를 보면서 이주노동자들 역시 소수지만 촛불을 들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이주노조 깃발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들은 ‘적폐청산!’, ‘박근혜 퇴진!’ 등의 구호를 함께 외치며 밤새 청와대까지 행진을 하기도 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이주노동자들 중에는 22번의 집회가 열리는 동안 천안, 평택, 오산, 의정부 등지에서 두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오가면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모범조합원도 있었다. 어떤 조합원은 SNS를 통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집회소식을 계속 알리기도 했다. 또한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하진 못하더라도 촛불집회 관련 뉴스나 집회에 큰 관심을 보이는 이주노동자들도 많았다. 특히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를 의결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탄핵을 결정하는 순간 등 중요한 국면에서는 각국어로 번역된 촛불집회 관련 뉴스가 각자의 SNS를 도배했다. 한국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3월 말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 이후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정권이 바뀌면 이주노동자들의 바람과 목소리가 정책에 조금이라도 더 반영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3D산업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바꾸고 싶은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2016년 12월18일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이하여 광화문역 인근에서 열린 이주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들. ⓒ이주노조)
 
 
이주민 200만‧이주노동자 100만 시대, 그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2017년 2월 기준으로 한국 내 체류하고 있는 이주민은 총 198만 6,353명으로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이다. 출입국관리사무소 통계월보에 따르면 58만여 명의 등록 이주노동자들과 20여만 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국내 체류 중인 것으로 나온다. 실질적으로는 난민, 이주여성, 유학생들 중에서도 상당수가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이주운동진영에서는 100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체류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008년에 체류 이주민이 총 100만 명이었는데 불과 10여 년 사이에 그 수가 2배로 급증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른바 고령화‧저출산 시대에 접어든 한국 사회의 총인구는 2030년을 기점으로 하락해서 2060년에는 2015년 인구의 약 87%인 4,400만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렇게 총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잠재성장률 1%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민자의 숫자가 상당히 또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미 국내 총인구 중 생산가능인구 숫자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가 계속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필요로 인해 흔히 말하는 3D산업인 제조업, 농축산업, 어업 등의 분야에서 일을 하기 위해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의 대체적인 현황은 다음과 같다. 
 
▲ 한국어시험 합격 후 대기 기간 1년 이상 비율: 40.2%
▲ 입국 후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근로조건 위반율: 58.3%
▲ 평균 노동시간: 12시간 이상, 임금: 최저임금 수준
▲ 사업장 변경을 원하는 노동자 비율: 61.6%
▲ 이해할 수 있는 안전교육을 받는 노동자 비율: 26.8%
▲ 산업안전교육 부재 비율: 57.5%, 산재치료 본인부담 비율: 47.5%
▲ 차별대우 경험 비율: 언어폭력 경험 78%, 문화차별 43.9%, 성희롱 13.5%
▲ 공장 내 방이나 가건물에서 생활하는 비율: 60% 이상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위와 같이 장시간‧고강도로 저임금을 받으며 사실상 노예노동을 하고 있는 반인권적인 상황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03년에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이후 거의 매해 제도 개악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2년의 사업장 변경제도 개악과 2014년의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이다. 사업장 변경제도 개악의 경우 기존에는 이주노동자들이 제한적인 상황에서나마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던 반면, 개악 이후에는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들을 선택하는 제도로 바뀌면서 사실상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선택의 자유가 박탈되었다. 출국 후 퇴직금 수령제도의 경우 기존에는 이주노동자도 한국인 노동자와 동일하게 퇴직 후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수령하였으나, 개악 이후에는 출국 후 14일 이내에 퇴직금을 수령하도록 바뀌었다. 한국에서 일을 하더라도 본국에 돌아가지 않으면 온전한 퇴직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것으로, 인종차별적 개악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통상임금의 20%까지를 숙식비로 사전 공제할 수 있는 지침을 발표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임금이 삭감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 사회의 필요로 초청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은 해가 지날수록 더욱 후퇴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와 언론에서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강제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는 사건은 거의 매해 발생했다. 언론을 통해서 파악‧정리한 사례만 해도 다음과 같다. 게다가 출입국관리사무소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 과정 중에 발생한 사상 사고에 대해 정확한 공식 통계를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의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2004년 
11월 부천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이 쏜 ‘마취총’에 맞아 기절한 채 연행됨.
2005년 
10월 수원 출입국관리사무소 4층에서 중국 여성노동자가 떨어져 사망함. 
2006년
2월 수원 출입국관리사무소 6층에서 터키 노동자 코스쿤 셀림 씨가 떨어져 사망함. 
4월 부천에서 인도네시아 노동자 누르 푸아트 씨가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던 중 추락사함. 
5월 중국 동포 장풍 씨가 창원의 한 공장에서 단속을 피하려다 2층에서 떨어져 뇌사 상태에 빠짐.
2007년
1월 전남 해남에서 중국 노동자 여풍산 씨(32)가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다 심장마비로 사망함.
2월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함(여수화재참사).
11월 화성시 발안의 외국인교회에 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난입하여 이주노동자 2명이 중상 입음. 
2008년
1월 중국 노동자 권 씨가 단속 과정 중 8층 높이에서 추락사함.
4월 남양주에서 단속 과정 중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3층에서 추락함. 
8월 부산에서 중국 노동자 작홍근 씨가 단속 중 추락하여 중상 입음.
11월 마석 성생가구공단과 연천 청상농장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 경찰의 합동단속 과정 중 13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연행당하고 수십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음.
2010년
10월 서울 가산동에서 베트남 노동자 T씨가 출입국 단속 과정에서 추락사함.
2011년
11월 김포시에서 단속 과정 중 중국인 노동자 H씨가 심장마비로 사망함. 
2012년
3월 동해시에서 단속 과정 중 중국인 노동자 허 씨가 단속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어 사망함.
11월 부산 기장군에서 단속 과정 중 옹벽에서 추락한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중상을 입은 후 사망함.
2013년 
10월 대구 출입국관리사무소가 구미의 한 업체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여성 이주노동자 한 명이 실명하고, 골절상 등을 입음.
2016년
3월 경북 경주시 내남면 A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던 중국 여성노동자가 합동단속반을 피하다 높이 5m 담벼락에서 추락해 발목뼈가 부러져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음.
 
 
올해 초에도 경북 경주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인간사냥’이 벌어져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다리뼈 골절이라는 중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다. 3월6일 출입국관리사무소 합동단속팀 직원들이 현장으로 통하는 회사 앞뒷문을 막은 채 공장 내로 들이닥친 것이다. 깜짝 놀란 이주노동자들은 반대쪽으로 도망치다가 공장 뒤편 4m 높이의 옹벽 아래로 뛰어내렸고, 이 과정에서 이집트 국적의 이주노동자가 종아리뼈와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21세기에 공권력을 이유로 이렇게 인간사냥을 버젓이 자행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공무집행인 것인가?
 
 
이주노동자들의 바람, 모두가 차별 없는 세상
19대 대선을 맞이하여 최근 이주노동조합을 포함한 여러 이주 제 단체들은 공동으로 각 당의 대선후보들에게 출입국관리법, 고용허가제 등 이주노동자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대선질의서를 발송하였다. 질의서에 대한 답변을 받는 대로 이주단체들과의 포럼 등을 통해 차기 정부의 이주운동에 관한 입장 및 실천방향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아직 투표권이 없고, 출입국 관리법상 이주노동자들의 정치활동에는 제한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이들의 집회 참여나 노조활동이 활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2015년 이주노동조합의 합법화 이후 조합원이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고, 촛불 집회 등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가 보다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이주노동자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노동권이 하루아침에 나아질 것이라고는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주노동자들은 끈질긴 투쟁을 통해 불가능해보이던 이주노조 합법화를 쟁취해냈다. 이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꾸준히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면 향후 10년에도 반드시 소기의 성과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5월1일은 노동절로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이다. 하지만 100만 이주노동자 가운데 노동절에 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5월1일 전주 일요일에 별도로 노동절 집회를 하고 있다. 10년 안에 이주노동자도 한국인 노동자도 노동절만큼은 쉬면서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 한국인 노동자도 이주노동자도 모두 차별 없이 당당한 이 땅의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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