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잠자는 산안법, 위험의 외주화 막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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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산재공화국
 
2015년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보면, 산업재해자 수는 9만 129명, 사망자 수는 1,810명으로 대한민국은 하루 평균 약 250명의 노동자가 재해를 당하고 5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산재공화국’이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정부 통계만으로도 136만 3,293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했으며 3만 5,7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한민국의 산재사망 만인률은 OECD 국가 중 1위로 일본‧독일의 4배, 영국의 14배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무려 240조 8,000여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임준 가천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의 ‘국가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작업안전연구’ 보고서(2007년) 등 일부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업장에서 은폐된 산업재해를 실질화하면 정부 통계의 13~30배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업재해의 대부분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비정규‧하청‧외국인 노동자 등 산업안전보건 취약계층 노동자의 산업재해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유해·위험 작업을 직접 수행하지 않고 도급을 주는 아웃소싱이 일반화되는 추세로, 최근 사내 하도급 증가로 인한 하청노동자의 산재사망 등 산업재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 ‘안전보건의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해 비용절감 명분으로 안전을 위해 필요한 인원을 감축할 뿐만 아니라, 업무 외주화나 비정규직화 등 노동을 차등화 함으로써 인건비를 줄이는 정책을 사용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할 노동일터에서 산재사망이 일상화되고 그 산재사망 사고가 하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것은 자본의 무한이윤 추구만을 위한 잘못된 사회·경제적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국회에서 잠자는 산안법 개정안
 
지난해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하청업체 소속의 젊은 청년이 목숨을 잃었으며, 메탄올을 취급하는 사업장의 불법 파견 노동자가 시력을 상실하고 지하철 공사현장에서는 폭발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하는 등 하청, 불법파견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과 건강을 빼앗기는 일이 연일 발생했다. 
이처럼 산업현장에서 사내하청·파견·도급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에 대한 대책은 거의 유명무실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그동안 사내하청·파견·도급 노동자의 산재사망 등 중대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노동계, 학계에서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경고와 함께 대책마련을 촉구했고, 정치권에서는 위험업무의 도급금지를 비롯하여 원청에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관련 법안들을 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처리되지 않았다. 이번 2월 국회에서는 관련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했지만, 국회는 이러한 간절한 바람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국회는 더 이상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여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노동자의 산재사망 등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해 국회에 발의된 법안 중 도급을 전면금지 하는 법안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000105)이다. 이 법안은 유해·위험한 작업으로서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사내하도급을 전면 금지하고, 유해·위험한 작업 중 일시적·간헐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도급인의 사업장 밖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도급을 줄 수 있도록 하고, 도급 사업주의 산업재해 예방조치에 안전·보건조치 등을 추가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산재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 대한 벌칙수준을 높이고 양벌규정에서 법인 등에 대한 처벌수준과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함으로써 수급인이 사용하는 노동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유해위험작업에 대한 하도급업체 근로자 보호강화 방안’(2007년) 보고서에서는 하도급 업체에 도급을 주는 이유에 대해 원청사업주의 40.8%가 유해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임금수준이 낮아서, 노사분규를 줄이기 위해서, 4대 보험료 감소 등의 다른 답변에 비해 그 응답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이처럼 원청사업주는 유해한 작업을 회피하기 위해 그리고 이로 인한 법적인 책임을 면하기 위해 유해·위험 업무를 하도급을 주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일부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 강화만을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원청사업주가 유해·위험한 작업임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하청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그것도 비용절감을 이유로 한 노동에서의 차별은 결국 생명과 안전의 차별로 이어지는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이다. 만약 노동에서의 자본의 이러한 차별을 방치한다면 유해작업에 대한 하도급 노동자의 중대 산업재해는 점차 확산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산재사망국가 세계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하청노동자들이 생명과 안전의 문제에서조차 차별받고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과 같이 유해․위험한 작업으로서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사내하도급을 전면 금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유해․위험한 작업으로서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사내하도급을 전면 금지하는 안에 대해 경영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정부 또한 사내하도급 금지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004796)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데, 정부의 개정법률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의 개정안은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 기존의 작업 외에 단지 질식 또는 붕괴의 위험이 있는 작업에 대해 원청 사업주가 하청노동자에게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는 것만으로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겠다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대응임을 떠나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또한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을 도급하는 자가 안전ㆍ보건에 관한 정보를 해당 작업 시작 전에 수급인에게 제공하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수급인이 그 도급인에게 해당 정보의 제공을 직접 요청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원·하청 관계를 고려할 때 과연 수급인이 도급인에게 정보의 제공을 직접 요청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 의문시 된다.
 
 
위험의 외주화,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위험의 외주화 관련 법안이 계류되거나 한정애 의원 법안이 아닌 정부 법안이 통과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얘기했듯이 정부의 개정법률안으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하청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안을 지속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경영계는 상시적으로 행해지는 유해․위험한 작업에 대한 사내하도급 전면 금지에 대해 위헌소송까지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상시적 유해작업에 대한 사내하도급 전면금지에 대한 법리적 검토와 함께 유해·위험작업 도급금지와 관련해 전국적인 실태조사와 연구가 수행되어야 한다. 
또한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법안처럼 사내도급 사업장에서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수급인 등의 산업재해 발생건수 및 재해율을 도급사업자의 산업재해율 등에 합산하여 공표토록 하는 안에 대해서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김동철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내용 중 영국의 ‘기업살인법’과 같이 도급사업 시 안전보건 조치를 하지 않아 수급인 또는 하수급인의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법인에 대해서는 연매출액의 5% 이하의 벌금을 병과(倂科)할 수 있도록 하는 안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사업장 내의 모든 사람에 대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사업주와 근로자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제2조 정의)에서 “근로자”란 「근로기준법」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근로자를 말하며, “사업주”란 근로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를 말한다. 이러한 정의로는 사업장 내 모든 사람의 재해를 예방할 수 없으며, 사업주 또한 자신이 고용한 근로자의 재해예방에만 신경을 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의 사업주와 근로자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기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2000109)을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심상정 의원이 발의한 안에 따르면, ‘“사업주”란 근로자와 종사자를 사용하여 사업을 하는 자를 말한다’로 정의하고 있으며, ‘“근로자”란 「근로기준법」제2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근로자’를, ‘“종사자”란 임대, 용역, 도급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주의 사업 수행을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법안대로라면 사업장 내의 모든 사람에 대한 원청의 안전보건 책임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해·위험업무의 외주화를 막고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의 적극적인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 노동의 차별화로 위험을 외주화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기업도, 사회도, 국가도 비용절감으로 인한 이윤보다는 노동자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안전하고 쾌적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인권이다. 인권이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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