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경제전망과 다시 보는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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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퍼펙트 스톰이 올 것인가? 
지난 12월7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7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발표했다. 이는 해외 투자은행들의 평균 전망치와 동일한 것이며, KDI의 기존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낮은 것이다. 필자가 듣기로는 사실 이것도 정부의 눈치를 보아 0.2%포인트 정도 올려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KDI가 2.4%는 “최근의 정치 불확실성을 배제한 것으로, 혼란이 지속될 경우 2%대 초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사실상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2017년에는 경제성장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0.7%를 기록한 2009년 이후 최저로 내려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정국 혼란과 경제 불안 때문에 소비심리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으며, 서민경제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국은행이 11월25일 발표한 ‘2016년 1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소비자심리지수는 11월 중 95.8로 전월 대비 6.1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2009년 4월의 94.2 이후 최저치이며, 하락 폭도 지난해 6월 메르스 사태 이후 가장 컸다. 통계청이 발표한 3분기 가계 동향에 따르면 국민 평균 소비성향이 71.5%로 사상 최저 수준을 보였고, 실질 소비지출은 0.1% 줄어 3분기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소비심리가 얼어붙기 이전에도 이런 정도였으니, 앞으로 내수위축은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전분기 대비 4분기 성장률은 0%로 예상된다.
수출은 하락세가 진정되었고, 최근 유가 상승 등으로 내년에 조금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출의 최대 시장인 중국경제의 성장 둔화가 계속되고 수입구조 또한 변화하고 있다는 점, 두 번째로 큰 시장인 미국이 트럼프 당선 이후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전망이 결코 밝다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이 사드 배치와 관련한 보복 조치를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점도 우려된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여파를 주목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고, 내년에도 수차례에 걸친 추가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우리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고, 일부 신흥국은 금융위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어쨌건 국내의 시장금리 상승은 이미 시작되었고, 추가적인 상승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계부채가 1,300조 원을 넘었고, 다중채무자가 150만 명을 넘은 상황에서 만약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되면 그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이 상승하면서 소비수요가 더욱 위축되고, 급매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집값이 폭락하여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자산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도 있다.
국내의 정치적 위기와 불확실성의 지속, 중국경제의 하강, 국제무역 환경의 악화, 미국 금리인상 이후 신흥국 금융위기로 세계경제의 둔화, 국내 금리 상승에 따른 가계부채 뇌관 점화 등이 동시에 닥쳐오면 그야말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 될 것이다. KDI도 해외충격이 더해지면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퍼펙트 스톰은 이보다도 더 심각한 IMF 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 위기관리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성장체제 전환의 지체와 한국경제의 현주소 
어쩌다가 한국경제가 현재와 같은 나락에 빠지게 되었는지 짚어보자. 
과거 개발연대에 한국경제는 급속한 자본축적과 선진국 기술 모방으로 손쉽게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를 추격형 성장이라고 한다. 관치금융과 재벌체제는 ‘선택과 집중’ 원칙에 의거한 정부주도 추격형 성장 정책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추격형 성장체제는 1980년대 말 ‘3저호황’을 끝으로 수명이 다했다. 이미 상당한 자본축적이 이루어져 더 이상의 자본축적이 가져오는 성장효과가 급격하게 작아지는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자본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산과정에서 자본을 도와주는 노동력의 증대나 기술의 고도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높은 투자율에 비해 노동력 증가율은 현저하게 감소하고 선진기술의 모방과 응용도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이루어져서 기술 고도화도 과거에 비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한국경제는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성장체제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었다. 곧 자본축적 극대화에서 자본의 생산성 제고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기업이윤을 늘려서 투자를 확대하는 정책에서 인구의 재생산과 이들의 숙련도 및 지식수준의 제고에 역점을 두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분배를 골고루 하고 복지를 제대로 하며 사람에 투자하고, 선진기술의 모방과 습득을 넘어선 내생적 혁신을 고취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주입식, 습득형 교육에서 토론식, 창의형 교육으로 변화하고, 목전의 이익만을 좇는 응용연구에 치중하는 풍토에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를 고취하는 풍토로 전환해야 했다. ‘선택과 집중’이 아닌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을, 재벌중심 독점구조에서 중소기업과 혁신적 창업기업 활성화로 전환해야 했다. 한마디로, 경제민주화가 요구되었다. 
성장체제 전환이 어려운 것은 구체제에서 형성된 사고방식과 관행 및 제도가 좀처럼 변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이미 강고해진 기득권이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관치경제에 맛을 들인 관료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재벌은 경영권을 세습해가며 한국경제와 사회에 대한 지배를 강화해 나갔다. 1990년대에 재벌은 규제완화와 자본자유화의 축복 속에서 투자율을 끌어올리며 고도성장을 이어가는 듯했으나, 이는 사실상 과잉중복 투자였고 IMF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말았다. 자본축적 극대화의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이후로 성장률은 속절없이 하락을 거듭하였다. 1990년대 7%대에서 2000년대 5% 그리고 2010년대에는 3% 이하로 주저앉았다. 내생적인 성장 동력을 소진하고 갈수록 수출의존도를 높여가던 한국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무역이 침체되면서 장기침체국면에 접어들고 말았다.
 
이렇게 추락을 거듭하면서도 성장체제 전환은 더디고 더뎠다. 오히려 급한 마음에 단기적인 부양책을 일삼았지만, 이는 더 큰 화를 자초하기 일쑤였다. 역대정부를 거치며 IMF 위기, 카드채 위기, 부동산 광풍과 가계부채 폭등, 제2의 외환위기와 저축은행 사태를 겪었다. 지금도 대규모 기업 부실 사태가 벌어지고 있으며, 시한폭탄 같은 가계부채는 마냥 부풀어가고 있다.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분배도 악화되었다. 고도성장이 가져오는 낙수효과가 사라지자 중산층이 붕괴하고 빈곤층이 늘어났다. 성장률의 하락은 또한 기회의 감소를 초래했고, 기득권층이 아니면 그나마 남아있는 기회를 잡기가 너무나 어려워졌다. 국민의 80% 이상이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상승은 어렵다고 느끼게 되었고, 젊은이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는 한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되고 말았다고 한탄하고 있다. 
사실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성장체제 전환은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했다. 과거의 방식으로 더 이상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며 성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국민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요구했고, 이를 간파해 대선공약으로 가장 먼저 앞세운 이가 박근혜 후보였다. 하지만 박근혜는 대통령이 된 후 공약을 파기하고 오히려 최순실의 조종을 받아가며 재벌과 뒷거래를 하고 경제정책을 자본축적 극대화 시대의 친재벌 정책으로 선회했다. 빚내서 집사라는 부동산 정책을 주축으로 단기적인 경기부양에만 매달렸고, 규제완화와 노동개악 등 재벌 소원수리에 앞장섰다. 또 다시 정경유착이 성장체제 전환의 지체를 초래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실패와 다시 보는 경제민주화
박근혜 정부는 왜 경제민주화에 실패했을까? 최순실 때문일까? 필자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부터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할 것으로 예견했다. 문재인, 안철수 등 야권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만약 최순실이 없었다면, 만약 야권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과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무산되었을까? 과연 철저한 재벌개혁과 공정한 경쟁, 과감한 재분배와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졌을까? 필자가 이에 대해 회의적인 판단을 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재벌의 구조적 힘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재벌의 구조적 힘은 재벌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청와대의 주인은 누구라도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벌의 협조를 구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사실, 많은 국민이 경제성장의 주축은 재벌일 수밖에 없다고 인식한다는 사실, 그리고 재벌은 정치권과 관료사회, 법원과 검찰, 언론과 학계 등에 광범위한 장학생과 지원군을 확보해놓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막강한 영향력을 일컫는다. 이러한 재벌의 구조적 힘 앞에서는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둘째, 지도자의 인식과 의지, 그리고 전략이 재벌의 강고한 저항을 돌파하고 경제민주화를 성공시키기에는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경제민주화가 경제성장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되고 활기찬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인 성장체제 전환의 열쇠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또한 지도자는 경제민주화를 향한 밑으로부터의 열정을 끌어내어 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정교한 전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민주화를 하향식으로 한다는 것은 형용모순이다. 그런데 박근혜 등 2012년의 대권후보들에게서 이러한 인식도, 이에 합당한 추진전략도 보이지 않았다. 필자가 김종인 씨의 경제민주화론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셋째, 경제민주화를 뒷받침할 강력한 정치세력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사실 2012년 대선 당시의 거대여당이나 거대야당 모두 겉으로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했지만 속으로는 친재벌 정당이었다. 이들은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수혜자로서 지역할거주의를 활용하여 정치시장을 독점했고,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 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투쟁 중심의 패거리 정치를 해왔다. 이런 식의 정치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경제 권력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었다. 패거리 정치는 반드시 정파의 이권집단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 유력 정치인들은 재벌에 기대거나 조종당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87년 체제’ 하에서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으나, 재벌공화국은 변함이 없었다. 국가는 뒤로 물러나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긴다고 하는 정책, 즉 경제 권력이 마음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장화 일변도의 정책은 거의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여야 간에 정책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지적한 사실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경제민주화는 다시 핵심 개혁과제로 전면에 부상했다. 게이트의 표면이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문란이라면 이면은 재벌과의 정경유착이었다. 박근혜 퇴진과 탄핵을 요구하던 촛불시민들은 “재벌들도 공범이다”라는 구호도 소리 높여 외쳤다. 최근 대권주자들은 다시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재벌해체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논거를 생각해보면 여전히 긍정적인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선거제도, 정당제도, 권력구조 등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는 또다시 시늉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희망의 근거는 있다. 군부독재를 끝장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했으나 시민주권을 확립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던 6.10 민주항쟁과는 달리, 2016년 겨울의 위대한 촛불혁명은 시민주권을 제대로 세우는 진정한 시민혁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광장의 대중은 이념과 정파, 계층과 세대, 성별과 학벌, 그리고 지역주의의 벽까지도 일거에 허물어뜨리고 정의를 밝히는 촛불로 하나가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권자인 시민으로 재탄생하였다. 승리의 체험으로 무장한 주권적 시민의 탄생은 시민혁명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4월 혁명은 박정희의 쿠데타로, 6월 항쟁은 노태우의 집권으로 귀결된 쓰라린 경험을 되새기며 촛불시민들은 이번에는 결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배신과 무능으로 점철된 대의민주주의에 기대기보다는 주권을 스스로 행사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수단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우리 국민의 각성된 주권의식, 높은 교육수준, 그리고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탁월한 소통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설계하려는 욕망이 불타고 있다. 주권자의 뜻이 온전하게 반영되는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이를 기초로 경제민주화와 성장체제 전환을 확실하게 이루어낼 때 촛불시민혁명은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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