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정 양립의 올가미

섹션:

부 제목: 
여성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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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 일·가정 양립의 올가미: 여성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 일시: 2016년 9월 30일(금) 오후 3시
○ 장소: 골든브릿지빌딩 1층 교육장(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50)
○ 사회: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발표: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토론: 조주은 국회 입법조사관, 박찬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 위원장, 김수경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 국장, 황수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주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후원: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 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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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129차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연구소가 서대문구로 이전한 후에 처음 열리는 포럼인데, 많이 참석해주셨네요. 모두 고맙습니다. 포럼의 주제는 ‘일·가정 양립의 올가미: 여성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입니다. 올해 초 야심을 갖고 노동포럼 연간 기획으로 노동시간을 선정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노동시간 문제에 천착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일·삶 균형, 정부가 추진하는 일‧가정 양립 정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정책이 여성의 노동시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함께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오늘 포럼을 준비했습니다. 우선 신경아 교수님으로부터 발제를 듣고, 토론자들의 토론을 들은 뒤 마지막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신경아) 이전에 여성의 노동시간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일하는 여성의 시간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 살펴보니, 가장 큰 구조적 요인은 노동시간과 관련한 정부 정책이었고 그 중에서도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로서 일·가정 양립 문제와 관련한 제 고민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가정 양립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작년에 여성노동문제를 다룬 토론회에 갔는데, 여성단체 활동가 한 분이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여성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정책인가? 이제 그 얘기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여성계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고 시행 중인데, 오히려 페미니스트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인 겁니다. 왜 그러냐면, 그 정책을 쓰는 여성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출산휴가 등 여성이 쓰는 제도를 제외하고 자녀양육을 위한 돌봄 지원정책은 여성과 남성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데, 현재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여성정책으로 낙인찍힌 탓에 결과적으로 그 정책을 쓰는 여성들이 계속 불이익을 받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실제 육아휴직을 쓰면서 동시에 퇴직하는 경우도 있고, 육아휴직을 쓰다가 점점 퇴직으로 내몰리는 등 부정적인 효과가 굉장히 큽니다. 둘째, 일·가정 양립은 여성의 책임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과 관행을 지속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일터에서는 주변인이 되고, 집에서는 돌봄 책임자가 됩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약화됐음에도, 여전히 지배적인 규범으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또한 확대되고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정책 없이는 돌봄의 책임을 지닌 여성들이 현재와 같은 장시간 노동체제 속에서 노동시장에 남는 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절실히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 정책을 사용하는 여성들에게 덫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오는 정책인데, 여성들은 왜 확대를 요구할까요. 또한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내려면 정책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오늘 포럼에서 이러한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성정책의 범주로 규정되는 일․가정 양립 정책
오늘 포럼을 계기로 관련법을 다시 봤는데, 황당한 내용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2007년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일·가정 양립조항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면서 제1조 목적에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겠다”는 표현이 추가됐습니다. 정책을 제도화하겠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지만, 그 표현이 애매합니다. 여성, 남성으로 명시하지 않았고, 우리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남녀근로자’라는 표현도 아니고, 애매하게 ‘근로자’라고 썼죠. 그럼에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일과 가족생활의 양립을 여성노동자의 과제로만 한정하지는 않겠다는 의식표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실제 조항에서는 제3장 ‘모성보호’ 장이 있고, 그 안에 ‘일·가정의 양립 지원’ 규정이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일·가정 양립은 모성보호라는 여성정책의 한 범주로 규정되는 것입니다.  
또한 ‘일·가정 양립 지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법적 정의가 없습니다. 저는 ‘일‧ 가정’, ‘일‧가족’의 의미를 다르게 봅니다. 일·가족 양립 지원정책은 대개 노동시간, 휴가와 휴직, 보육시설, 조세제도의 4가지 영역을 포함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우선 정책에 대한 정의가 없고, 영역도 없이 단지 ‘일·가정의 양립’이라는 표현을 당위적 진술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책이 지향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떠한 상태를 가리키는지,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조치가 일·가정 양립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법에 따라 2008년부터 매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2015년)』(김영옥 외, 한국여성정책연구원)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보니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고 표현하고, 영어로는 ‘워크 패밀리 밸런스(Work-Family Balance)’라고 나옵니다. 정확한 표현은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여야 합니다. 그리고 “일․가정 양립 지원이란 근로자가 직장생활과 임신·출산·육아를 포함한 가정생활을 병행할 수 있게 돕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병행의 상태에 대해 명기하지 않았기에, 여기서 일·가정 양립의 의미를 출산과 육아로 한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뒤이어 “일·가정 양립 조치의 포괄 범위는 일차적으로는 자녀양육의 책임을 갖는 남녀근로자의 일과 가족생활을 지원하는 것으로, 더 넓게는 노인돌봄 등의 가족책임, 여가 향유를 지원하는 조치 등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부연함으로써 여가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나 정확히 여성노동자의 임신과 출산보호, 가족의 자녀양육과 가족돌봄 지원, 여가생활 지원 등이 어떤 체계 속에서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하는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명확한 개념 정의와 정책 프레임이 존재하지 않은 채 법체계 속에서 모성보호 정책의 하위 범주에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성노동자 출산과 돌봄 지원에 갇힌 정책
이번에는 제도 설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남녀고용평등법 및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제3장에 모성보호 조항이 있습니다. 그 중 제3장의 2 조항을 보면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육아지원을 위한 그 밖의 조치, △직장복귀를 위한 사업주의 지원, △직장어린이집 설치 및 지원 등, △근로자의 가족 돌봄 등을 위한 지원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님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을 묶어서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구체적인 조사 대상은 모성보호(90일 출산전휴휴가, 태아검진시간 등), 육아휴직과 가족돌봄휴직, 유연근무제 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도로서의 프레임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해당 법·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하물며 아무도 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실태조사는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임신과 출산 등 자녀출산과 양육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제도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규정은 결국 임신과 출산의 주체인 여성을 1차 지원 대상으로 삼게 되며, 그 결과 양육 역시 여성의 역할로 전제하는 제도 설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한국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굉장히 강한 사회이기 때문에,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양육과 돌봄을 남녀 모두의 책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특별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여성노동자의 출산과 돌봄 지원정책으로 사실상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책 실행과 관련한 자료가 별로 없습니다. 현재 이 정책은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에서 관장하고 있습니다. 두 부처의 업무를 들여다보니, 부처 간의 분업과 협력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대략 정책의 방향이나 목표 설정은 주로 여성가족부가 하고, 각 기업과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전달체계는 고용노동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명확한 경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도 일부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 집행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또 고용노동부를 통해 대부분의 예산 집행이 이뤄짐에도, 이 업무를 자신의 주요 업무로 삼고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2016년 1월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등 5개 부처가 낸 ‘국민행복 분야 합동 업무보고’를 보면 여성가족부의 핵심 사업은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인 반면, 고용노동부는 관련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가족부의 정책 지원 계획은 주로 홍보, 계몽 등의 수단에 의존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예산 집행과 체계적으로 연결되지도 않습니다.  
올해 1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업무계획 ‘2016년 국민행복 분야 일·가정 양립’을 살펴보면, 정부 정책의 프레임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여성가족부는 ‘일·가정 양립 확산’이라는 목표 아래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 ‘육아부담 해소를 위한 양육친화적 환경 조성’, ‘여성 인재 양성 및 경력단절여성 지원’의 3가지 세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각 영역별로 과제를 내세웠습니다. 대표적으로 사각지대 해소 분야의 세부과제를 보면, △모성보호 사각지대 해소, △일·가정 양립 직장문화 확산, △육아휴직 및 근로시간 단축제도 활성화,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현장 착근 유도, △남성의 육아 참여 확대 등입니다. 이런 정책 프레임은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을 여성정책의 하위 범주로 설정하는 것은 물론, 이 정책 자체를 주변화 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특히 ‘사각지대’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일과 가족의 양립 문제를 노동자가족의 필수과제로 설정하기보다는 어려움을 겪는 일부 집단의 문제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모성보호나 육아휴직 등이 얼마나 보편적으로 시행되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발상은 노동자가족이 겪고 있는 일과 가족생활 갈등의 심각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채 이 갈등을 주변 집단의 문제로 보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 자체가 주변화 되고, 그 제도를 쓰는 사람을 주변화 시키는 이중의 주변화 효과를 낳게 됩니다. 
이어 고용노동부가 일․양립 지원 프로그램의 실질 집행기관으로, 사업을 제대로 집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최근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에 문제가 생기자, 고용노동부는 채용형 시간선택제가 아닌, 전환형 시간선택제를 확산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전향적인 자세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현재 고용노동부가 진행 중인 여성 경력유지 및 경력단절 예방 정책을 보면 △모성보호 육아지원, △출산육아기 고용안정지원금, △대체인력 채용지원 서비스, △직장어린이집 지원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책들의 연계성이 떨어지는데다가, 실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따로 있더라고요. 2016년 9월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보니 일·가정 양립과 관련해 ‘일家양득’이라는 이름의 지원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5대 핵심 분야로 △생산성과 효율성 제고, △유연근무 활용도 높이기, △회식·야근 줄이기, △육아부담 나누기, △자기계발 및 알찬휴가 지원 등을 제시하고 있는데, 문제는 그 방법이 다 캠페인뿐입니다. 이러한 홍보성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죠. 
한국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으며, 그동안 체계를 갖추고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정책으로 한정됨으로써 정책과 정책 대상의 주변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 ‘여성정책’으로 분류되면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정부부처에서 힘을 갖기 어렵습니다. 아직까지 정책의 성 주류화가 제대로 진전되지 않은 탓에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라고 해도 ‘주변 집단을 위한 정책’으로 주변화 되고, 결국 그것을 쓰는 사람을 주변화 시킵니다. 
 
 
일․가정 양립 정책, 낮은 실효성에 개선 여지도 적어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의 낮은 실효성도 문제입니다. 2011년부터 5인 이상 사업체 1천개 업체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몇 가지 문제가 발견됩니다. 제도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보입니다.  
첫째, 제도의 인지도를 보면 각 규정 간 차이가 매우 큽니다. 예를 들어 모성보호규정의 경우 출산휴가, 육아휴직에 대한 인식은 90%가 넘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임신근로자에 대한 보호나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인지도가 낮습니다. 나아가 자녀양육이나 가족돌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관련 규정은 각각 33.3%, 24.8%로 인지도가 더 낮습니다. 
둘째, 각 제도들의 인지도와 제도 구축, 실제 시행 여부에서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내 임산부 보호 규정, 출산전후휴가, 수유시설 및 수유시간, 배우자 출산휴가 등의 제도의 인지도, 제도 구축, 시행 여부를 살펴보면, 인지도가 높은 정책임에도 제도 구축 수준은 낮으며 시행 여부는 더 낮습니다. 앞서 ‘사각지대’ 해소 정책이 많이 언급됐는데, 사각지대는 실제 시행이 제대로 되고 있는 상황에서 안 되는 곳을 찾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처럼 시행여부 자체가 낮으면, 모두가 사각지대인 거예요.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 모성보호나 일‧가정 양립 제도가 실효성을 갖는지 보려면, 시행여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 법정 근로시간 단축제도나 법정 휴가․휴직제도가 있어도 기업에서 준수하지 않거나, 형식적인 제도만 만들었을 뿐 실질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셋째, 기업 규모 간 격차가 매우 큽니다. 인지도, 제도 구축, 시행 여부 모두에서 10인 미만, 또는 30인 미만 기업의 상황과 그 이상 규모 기업의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특히 영세 기업들의 시행수준은 극히 저조한 상태로, 5~9인 기업의 경우 기본적인 제도조차 “모른다”는 응답이 3분의 1을 넘습니다. 여성노동자의 60% 이상이 10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영세 기업의 인식 개선과 제도 구축, 시행 확대를 위한 노력이 중요합니다. 
넷째, 앞서 본 지표들을 통해 정책의 실효성은 결국 시행 여부까지 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실질적 시행 수준은 출산휴가를 제외하면 20% 안팎에 머물고 있습니다. 물론 해당 사업장에 대상자가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정책의 목적이 노동자가족의 일과 일상생활의 적절한 양립이라고 한다면 현행 시행 수준인 20%는 너무 낮습니다. 따라서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다섯째, 제도의 실질적 시행 수준이 낮은 것은 한국의 기업조직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크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더 많기 때문이죠. 또한 출산휴가나 육아휴직과 같은 지원정책은 정규직 여성노동자들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법규상 비정규직 여성도 일‧가정 양립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실제 사용률도 극히 낮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법규의 강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본 정부의 ‘업무보고’에서도 일‧가정 양립 직장문화 확산 사업의 경우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모니터링, 협력 증진 등만 있을 뿐, 처벌이나 시정을 위한 노력은 없습니다. 특히 노동시간이 줄어야 양육이 가능할 텐데,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범부처 합동홍보’ 정도로만 다루고 있습니다. 정부의 태도 전환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정책 개선 위해 노동정책 프레임부터 바꿔야 
저는 기본적으로 노동정책의 프레임이 바뀌어야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도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 플릿우드(Fleetwood)는 일․삶의 균형 정책을 다룬 논문에서 “일․삶 균형이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할지를 결정하는 통제력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은 임금노동의 안과 밖에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한 개인의 권리가 수용되고 규범으로 존중될 때 성취되며, 개인과 기업․사회 모두에 이익을 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플릿우드는 유럽에서조차 일‧삶 균형 정책에서 풀리지 않는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고 보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시합니다. “일‧삶 균형 의제를 제기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고용주인가? 노동자인가? 가족들인가? 자녀를 둔 여성들인가? 정부부처인가? 노동조합인가? 연구자들인가? 시민단체인가?” 정책을 추진해나가는 주체가 여기서도 불분명한 거죠. 그래서 유럽도 2000년대 이래로 일‧삶 균형 정책에서의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특히 지속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둘째, 일․삶 균형 정책은 여성정책일까요? 서구에서도 삶의 영역은 돌봄, 특히 유럽사회가 보수화되면서 돌봄을 자녀양육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일‧삶의 균형 문제는 여성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남성을 포함하는 프레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셋째, 일‧삶 균형이란 일과 일상생활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은 임금 노동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겠는데, ‘생활’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따라서 ‘일’이 아닌 ‘생활’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합니다. 
넷째, 서구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확대되면서 일․삶 균형 정책 역시 노동유연화와 같은 맥락에서 시행됐습니다. 그 결과 여성들은 시간제노동으로 내몰렸고,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저임금과 불완전․불안정 고용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한국 사회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훨씬 더 보수적이고, 오랜 기간 동안 노동배제적인 정책이 시행되어 왔으며, 장시간 노동체제 속에서 일 중심적인 생활이 규범이 되어 왔기 때문에 훨씬 더 문제가 되겠죠. 
 
 
일․가정 아닌 일․삶의 양립으로 나아가야
이런 조건에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첫째, 한국 사회의 맥락에 맞게끔 일‧삶 균형 정책의 의미와 내용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방금 제 표현이 ‘가정’에서 ‘삶’으로 달라진 것처럼, 정책의 명칭도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외국의 ‘일(work)과 가족(family)의 양립’이라는 표기를 보면, 한국의 명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고 할 때, ‘가정’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합니다. 일‧삶 균형 정책에서 일과 가족의 양립은 일과 가족돌봄을 적절히 병행하기 위한 조건을 가리킵니다. 모든 정책의 목표와 대상은 구체적이어야 하므로, ‘일과 가족돌봄의 양립 지원정책’이 맞으며, 정확히 말하면 ‘일과 돌봄의 양립’으로 명칭을 바꿔야 합니다. 
둘째, 일‧삶 균형 정책은 일과 가족돌봄을 넘어서는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개인의 자기돌봄(self-care)까지 포함합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임금노동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며,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입니다. 그래서 일‧삶의 균형 정책인 거죠. 그런데 현재 한국 법규에는 개인의 자기돌봄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책의 초점을 자녀양육에만 둠으로써 여성의 양육책임을 강조하고 정책과 정책 대상을 주변화 시키는 효과를 낳는 것입니다. 
셋째, 일‧삶 균형 정책이 일과 가족돌봄, 개인의 자기돌봄을 양립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할 때, ‘돌봄(care)’의 개념이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노동중심적, 노동중독적인 한국 사회에서 돌봄은 아직까지 낯선 용어이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대신 ‘육아’, ‘보호’ 등의 용어에 훨씬 익숙하며, ‘돌보미’라는 용어가 있지만 주변적 서비스 제공자 정도의 의미만을 지닙니다. 따라서 개인적․사회적․국가적 차원에서 돌봄의 필요와 의미, 그것을 위한 정책의 내용을 구성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넷째, 일․삶의 균형 정책을 제대로 정의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젠더레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여성 역시 노동자가 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남으로써 일과 돌봄의 문제는 젠더 갈등의 핵심이자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도 돌봄의 영역으로 들어옴으로써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가족체제로 변화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삶의 균형 정책의 핵심은 시간입니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가족이든 자신이든 돌봄시간을 늘려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요구는 임금문제에 걸려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일을 덜하면 임금이 줄어들 테니, 그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죠. 여기서 젠더관점이 필요합니다. 여성의 관점에 서면 시간자원만큼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하고 아이도 키우며 자신도 돌봐야 하는 여성들에게 시간은 임금만큼, 때론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물론, 임금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현재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 때문에 우리의 삶은 엉망이잖아요. 또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 외에는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늘 임금 앞에서 시간에 대한 요구는 위축되지만, 그것이 지닌 사회적 중요성과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여성의 시간, 양적․질적 측면 모두 고려해야
조주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출산전후휴가, 배우자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단축제도, 근로자의 가족돌봄휴직제도, 직장어린이집 등 6가지가 있습니다. 앞서 신경아 교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이 제도들은 초기 양육기에 집중된 제도들입니다. 어제 군에 입대한 큰 아이와 대입재수를 준비하는 둘째 아이를 키우는 제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책을 입안할 때 좀 더 촘촘하게, 그리고 세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신 교수님의 문제의식에 대부분 동의합니다. 따라서 저는 발제문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두 가지만 얘기하려 합니다. 우선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에 여러 문제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정책의 대상을 여성으로 한정하는 측면입니다. 두 번째는 육아에 있어 남성 육아휴직, ‘아빠의 달’ 등 아빠의 참여를 강조하고 있기에, 여성과 남성 그리고 어린 자녀를 둔 핵가족의 정상성, 즉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 정책이라는 점입니다. 실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 중 미혼, 무자녀 부부, 한부모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요즘 일명 ‘아빠의 달’이라고 남성 육아휴직을 촉진하는 정책이 확산 중입니다. 같은 자녀에 대해 부모가 순차적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 두 번째 사용자의 첫 3개월 육아휴직 급여를 기존의 100만 원이 아닌, 최대 150만 원까지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통상 여성이 먼저 육아휴직을 쓰는 만큼, 남성이 이어서 육아휴직을 쓰면 인센티브를 주는 거죠. 이는 양(兩)부모가 있는 가정만 쓸 수 있는, 한부모가족에게는 차별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신 교수님께서 “여성들에게 시간은 임금만큼, 때론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IMF 외환위기 당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많았는데, 노동계 내부에서 임금 손실 수용 여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논쟁적인 문제이자,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임금 수준이 낮은 여성에게 있어 시간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여성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결국 투잡(two job)을 뛸 시간에 대한 요구로 이어질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아울러 시간문제를 양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셨는데 질적 특성도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자마자 모바일뱅킹을 이용해 아이들 학원비를 내고, 아이에게 응원의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이처럼 여성들의 출근시간에는 가사 노동, 돌봄노동 등 굉장히 많은 활동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시간의 질적 특성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에게는 멀티태스킹으로 표현되는 특정시간대의 너무 많은 활동들, 시간관리로 표현되는 활동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시간과 관련한 피로감, 양립하기 어려운 양육과 직장 내 시간과 관련한 고민들이 있는 겁니다. 혹시 신 교수님께서는 시간을 양적인 측면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시간은 그 자체가 갈등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질적특성도 함께 봐야 한다는 거죠. 직장과 자녀돌봄, 가사노동을 고민하는 여성의 1시간과 남성의 1시간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저는 신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시간에 대한 요구뿐 아니라 여성들의 시간갈등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신 교수님께서는 ‘일·삶’을 강조하셨는데, 저는 거기에 마을공동체를 하나 더 보태고 싶습니다. 아무리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아이를 업어주고 달래면서 보육을 전담해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또한 자기돌봄을 강조하셨는데,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 가족, 지역공동체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자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 등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정책 효과 증진시킬 4가지 입법과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기 위한 입법과제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첫째, 육아휴직제도의 사용자를 한시적으로 남성으로 한정하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제19조의 개정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육아휴직제도를 여자들이 먼저 쓰고 있는데, 남자들이 먼저 쓰게 된다면 육아휴직 급여는 저절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직장어린이집의 설치 근거가 되는「영유아보육법」시행령 제20조 중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을 삭제해야 합니다.
둘째,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핵심은 돌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가정’ 관련한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현행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가족으로만 한정한다면, 제도자체가 협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족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이성애부부로 구성된 가족의 범위 바깥에 있는 가족을 보호해야 합니다. 따라서 가족의 범위를 정의하고 있는 민법 제799조 가족의 조항을 삭제하여, 사회복지와 관련된 개별 법률에 피부양자의 범위를 정해야 합니다. 또한 프랑스의 연대민권계약(PACS)에 준하는 공동생활자 보호법률 등을 제정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국내 통계자료는 없지만 많은 독신가구들이 반려동물 등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의 가족과 진배없이 반려동물과 사랑, 돌봄을 주고받습니다. 따라서 반려동물이 죽으면 기업이나 기관에 증빙서류를 내고 애도 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제안해봅니다. 자칫 희화화 될 수 있는 이야기라서 우려스럽지만, 돌봄의 대상을 넓혀 자연과 상생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은 욕심에서 좀 과감한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교육 강화의 전면화를 주장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가 해결해야 할 교육문제 등은 그대로 방치한 채, 노동자들에게 육아휴직을 통해 개별로 교육문제를 해결하도록 합니다. 우리 사회가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아동의 연령이 처음에는 생후 1년이었습니다. 그러다 매년 1년씩 늘어나서 지금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상향조정됐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기에 부모를 배려한 조치이긴 합니다만, 이러한 제도설계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실제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많은 부모들이 급식당번을 맡거나 아이들 하교를 돕고 있는데,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어려운 부모들은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학교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공공적 성격의 방과 후 보육․교육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가 있는 기혼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교육문제로 해결해야할 것을 노동정책으로 해결하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동시장 등의 정책만으로는 부족하고, 교육부 등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공부문의 대표 정책인 시간선택제 공무원제
박찬미) 공무원 조직은 일반기업에 비해 비교적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과 관련한 법 규정이 많으며 잘 준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며, 개선되어야 할 점도 많습니다. 우선 공공부문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에 대해 소개하고, 어떻게 실행되고 있으며 현장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공직사회에 다양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도입되어 확대된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입니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이란 통상 근무시간인 주 40시간, 일 8시간보다 짧은 주당 20시간 일하고, 최소 15시간 이상 25시간 이하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시간선택제 전환공무원과 시간선택제 임기제공무원의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저희는 구분의 편의를 위해 시간선택제 임기제공무원을 시간제 공무원이라고 부릅니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일반 공무원처럼 시험을 통해 채용하고, 원칙적으로 주 20시간 근무합니다. 시간선택제 전환공무원은 일반 공무원이 본인의 필요에 따라 시간선택제를 택해서 근무하는 유연근무제도입니다. 반면 시간제 공무원은 한시적인 사업이나 시간선택제 전환자의 업무 대체를 위해 일시적으로 채용되는 공무원으로, 주로 비정규직이 많습니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는 2014년에 도입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포럼에 토론자로 섭외된 후 이 제도에 대해 알아봤는데, 인사담당자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요. 진급과 관련해서는 9급에서 8급으로, 8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는 데 있어 일반직이 4년이 소요된다고 한다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4년 근무해도 2년 근속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저희보다 배를 일해야 승진의 기회가 오는 거죠. 부서배치의 경우에도 대개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민원부서에 배치되는 반면, 기획, 감사, 예산파트로는 잘 배치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지원자는 주로 여성입니다. 또한 저희는 공무원연금을 받는 반면, 이들은 국민연금을 받습니다. 산재보험은 적용받는데, 고용보험은 적용받지 못하고요. 그래서 ‘정규직은 아니고, 비정규직에 가깝지 않을까’라며 스스로를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신대요.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에 대한 공무원노조의 입장은 폐지입니다. 과거 기능직공무원제도가 있었는데, 2013년 12월 폐지됐습니다. 이들은 공채가 아닌 면접 등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채용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반직 공무원과 같은 업무를 함에도 승진이 되지 않았고 차별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직 공무원들과 점차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희 공무원노조는 투쟁을 벌였고 이들을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시켰습니다. 그렇게 직렬에 따른 차별을 해소했는데, 다시 시간선택제 공무원제도가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제도 폐지를 대정부요구안 10과제에 포함하여 추진 중입니다. 이와 동시에 폐지 전까지 이들의 정규직전환을 비롯한 처우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육아휴직제도는 정답이 아니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처우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실태 조사를 했습니다. 아직 조사결과 분석이 끝나지 않았지만 노조 정책연구소에 물었더니 “근무시간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라는 질문에 “자기개발을 한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다고 합니다. 즉 일반직 공무원으로의 전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 거죠. 그 다음으로 육아를 한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환 시험을 준비 중인 분들은 정규직 전환에 대해 환영하는 반면, 육아 등을 이유로 이 제도를 선택한 분들은 정규직 전환을 꺼립니다. 이 제도가 공공부분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고 정규직 비율을 줄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 제도를 필요로 해 채용된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은 신중히 고려하고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합니다. 
아무튼 설문조사를 보고 느낀 점은 일·가정 양립 지원제도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도움이 된 것은 전환공무원 제도로, 이 경우 육아휴직을 하는 것보다 유리합니다. 하루에 4시간 근무해야 하지만, 육아수당보다 급여가 높습니다. 또한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사용률은 높지 않습니다. 승진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성보호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공무원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의 급여는 상한선이 100만 원입니다. 일반기업은 육아휴직 기간에 통상임금의 75%를 주고, 직장 복귀 후 25%를 주는 반면, 공무원의 경우 육아휴직 수당 중 85%를 지급하고, 15%는 적립했다가 복직 후 7개월째 근무하는 달에 일시불로 줍니다. 왜 그런지 알아봤는데 정확한 이유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또한 맞벌이 부부인 경우에도 1년 이상의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는 경제적 손실이 큰데, 만약 한부모가정이라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더 어려울 것입니다. 
육아휴직제도가 시행되고 차츰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구청의 전체 직원 700명 중 70~80명이 육아휴직 중입니다. 문제는 적은 임금뿐만 아니라, 대체인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총액인건비제도 때문에 대체인력을 채용할 여력이 없어서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부서에서 나눠 맡습니다. 그러면 동료의 업무까지 해야 하는 탓에 일이 너무 힘들어지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이 육아휴직에 들어가는 식으로 육아휴직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노동 강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대체인력에 대한 대책 없이 육아휴직제도가 시행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육아휴직을 쓰면 제일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받는 등 여러 가지 불이익도 있습니다. 법상으로는 불이익을 줄 수 없게 되어 있지만, 성과상여금 평가 등급을 매길 때 육아휴직자, 장기교육을 받고 온 사람들이 제일 낮은 등급인 C를 받습니다. 이는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이 ‘여성정책’으로 한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더욱 발전적인 제도를 요구 할수록 돌봄 노동이 여성에만 편중되어 성역할을 고착화 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성이 일터와 가정에서의 역할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면, 여성들이 노동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와 배려가 뒷받침되었으면 합니다. 
 
 
김수경) 우리나라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대상은 여성노동자입니다. 여성정책으로만 한정되어 있어서 문제인데, 정책의 대상을 더 좁혀서 여성노동자로 정립한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일터, 학교, 공동체에 만연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정책으로 인해 여성노동자들은 사회 복지와 시혜의 대상이 되어버린 양 인식되고, 그 결과 여성노동자가 사회에서 가져야 할 지위와 교섭력은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여성, 그리고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일과 생활, 여가와 돌봄에 대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정책의 실효성도 풍부해질 것입니다.
 
 
정책 실효성 높이려면 적정인원부터 확보해야
최근 박근혜 정부가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면 해당 정책에 대해 논평해 달라는 전화문의가 오는데, 정책의 실효성이 너무 떨어지는 탓에 좋고 나쁨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화가 날 정도입니다. 육아휴직의 경우 민주노총 사업장 대부분에서 보장되고 있으나, 공무원 및 교사를 제외하고는 경력 유지와 승진 등에 있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사용률은 낮습니다. 특히 사무‧금융권의 사용률이 매우 낮습니다. 최근 금융권의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서 육아휴직 중인 여성들을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삼았습니다. 구조조정의 취지대로라면 높은 직급의 고임금 남성을 자르는 것이 맞는데, 낮은 직급의 여성을 대상으로 삼은 거죠. 금융권에서 구조조정이 항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더 이상 육아휴직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건의료분야 사업장도 임신기․육아기 동안에 근무시간 단축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동료들이 청구자의 일을 나눠서 해야 하는 탓에 서로 눈치를 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순번을 정해 임신하도록 하는 ‘임신순번제’를 쓴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지기도 했죠. 육아휴직, 근무시간 단축 청구권 등 관련 제도의 핵심은 노동시장 내 적정인원의 유지입니다. 그런데 출산․양육기 여성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노동시장을 구성해 놓으니, 인력 공백이 발생하면 다른 여성의 희생을 통해 공백을 채워야 합니다. 대체 인력을 채용한다 해도 숙련도, 조직 내 낮은 결합력으로 인해 결국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적정인원으로 노동시장을 구성해야 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한 번 시간의 문제와 연관됩니다. 
 
 
정책 프레임 넓힐 직장어린이집 확대
육아휴직제도가 여성노동자 개인에 대한 정책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직장어린이집 확대야말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프레임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민주노총 내 여성이 많은 보건의료‧공무원‧전교조‧서비스연맹 사업장에 직장어린이집이 있긴 한데 저마다 상황이 다릅니다. 반면 남성들이 대부분인 제조부문 사업장에는 직장어린이집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외국계 기업의 경우 제조업 사업장임에도 직장어린이집이 잘 운영되고 있어서 아빠들이 아이를 데리고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아이를 키울 때 윗집 남편이 모토로라사에 다녔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 직장어린이집에서 하루 3끼 다 먹이고, 함께 집에 돌아와 저녁시간은 온전히 아이를 위해 쓰더라고요. 상당히 부러웠습니다. 그럼에도 직장어린이집이 확대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여성에게 돌봄이 전가된다는 우려가 존재하고, 불평등한 일터 문화가 아이들의 양육과정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오해와 영‧유아의 경우 조부모 등의 가족 돌봄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어려움은 도심에서는 직장과 주거 공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도권 거주자들에게 있어 일과 주거 공간의 일치는 쉽지 않겠지만, 요새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직장어린이집을 만드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공동 직장어린이집을 만드는 등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육의 공공성을 확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민주노총 사업장 중 단체협약으로 육아휴직 등을 보장하지 않는 사업장들이 시정 지도를 받았습니다. 남성노동자 밖에 없거나 육아휴직을 사용할만한 해당 노동자가 없었던 사업장이 대부분이지만, 이는 대상의 유무 여부를 떠나 노동현장에서 여성노동자의 모성권을 포함한 노동자 부모권의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결국 노동시간 단축
현재 유연근무제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의 대상자는 여성입니다. 2014년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대상자의 77.9%는 여성이었고, 연령은 30대가 38.5%, 40대가 21.7%를 차지했습니다. 2015년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사업 중 전환형은 거의 없었고 신규창출형이 72%로 가장 많았습니다. 여성의 경력단절을 예방하기 위한 전환형 일자리가 아닌 질 낮은 일자리 창출, 일자리 쪼개기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현장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퇴직자가 생기면 그 공백을 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제 노동자를 채용합니다. 이는 노동 현장 내 소통과 권력구성에 영향을 끼치고 현장 내 민주주의의 훼손으로 이어집니다. 
제일 큰 문제는 총노동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책인 것처럼, 여성들에게 시혜를 주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동조합을 통한 현장 권력과 인식의 확대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과 관련해 대응한 방식은 육아휴직 확대, 단협 보완, 보육수당 확대, 보육시설의 확대 정도였습니다. 우리 안의 상상력이 부족했던 거죠. 따라서 총노동의 문제로 보고, 여성정책을 주변부에서 중심 정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핵심은 결국 노동시간 단축입니다. 노동시간 단축 문제는 일자리 나누기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시간을 나눠서 함께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성평등 정의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은 한계가 많지만 노동시장과 삶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이므로, 노조가 정책 입안의 주체로 참여하고 감시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현재 고용노동부와 여성가족부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는데, 여태까지 노동조합은 이 협의체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처음으로 노동조합의 참여를 요청하더라고요. 정부와 사용자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참여를 고민 중이지만, 어떤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지 흐름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준비하고 적극 대응해나가려고 합니다. 
 
 
황수옥)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낮은 출산율로 인한 고령화 문제에 직면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정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탄력적 노동시간제 도입, 시간제 근무 확대, 보육·돌봄 수당 확충 등의 정책들을 시행 중입니다. 그러나 2013년 조사 결과 출산율은 1.41명으로, EU 회원국 평균인 1.7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그 성과가 매우 미미합니다. 최근 독일에서 일·가족 양립 정책과 관련해 논의하는 주제는 ‘엄마는 시간제 근로를 하고, 아빠는 전일제 근로에 더해 연장근로를 하는 통상적인 가정경제모델은 실패했다, 그러니 새로운 대안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정부가 시행하는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들은 이미 독일에서 시행된 것으로, 실패한 제도들입니다. 이에 우리나라에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독일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양육․돌봄에 매여 시간제로 일하는 독일 여성들
그동안 독일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은 계속 증가하였고 여성 고용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근무형태는 남녀 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자녀가 없는 독일 여성의 77%는 전일제로 근무하지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전일제 근무 비율은 22%로 급격하게 하락합니다. 남성의 경우는 80%가 전일제로 근무하다가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 그 비율이 90%로 오히려 증가합니다. 또 다른 통계를 보면 2013년 기준 자녀가 있는 여성노동자는 시간제로 근무하는 비율이 70%인 반면, 자녀가 있는 남성 노동자의 시간제 근무 비율은 6%에 불과합니다. 시간제 근무를 하는 이유 중 약 80%는 가사와 육아, 가족 내 돌봄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간제 근무를 하는 여성에게 만족도를 물어봤습니다. 응답자의 11.5%는 노동시간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노동시간 단축을 원한다는 응답자는 2.1%에 불과했습니다. 즉, 2백만 명의 독일 여성들은 더 많이 일하고 싶어 하고, 이 숫자에는 80만 명의 유자녀 여성들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노동시간의 증가를 원하는 여성들이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법을 찾거나 전일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가사와 양육, 가정 내 돌봄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전문 지식과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에 상관없이 미성년 자녀가 있는 여성들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젊은 부모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녀 모두 ‘기존의 가정경제모델은 원하지 않는다’며 응답자의 60%가 “부모 모두 동일한 조건의 근무형태를 갖고, 동일하게 가정을 돌보기를 원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약 14%의 가정만이 일과 가정생활을 동일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시간제 근무에 따른 가장 큰 문제는 불충분한 노후소득 보장입니다. 독일에서는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남성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여성들이 노동력을 제공했습니다. 종전 이후에는 1990년대까지 익숙한 가부장제도의 틀로 돌아갔습니다. 그 결과는 가정에서 아이를 돌봤던 여성 세대의 빈곤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은 공적연금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65세에 퇴직하면 연금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주부에 대한 배려는 없어서 직업이 없던 기혼 여성이 이혼하거나 연금 수혜자인 남편이 사망하면 연금을 전혀 받을 수 없거나, 아주 적은 액수의 연금만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2013년 소득이 없어서 공공부조로 생활하는 독일 여성의 비율은 17%에 달할 정도이며, 가장 빈곤한 층은 노년기의 여성입니다. 독일 언론은 이런 상황에 대해 “여성들은 양육의 대가로 가난의 벌을 받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독일이 찾은 해답, 동등한 임금보장․여성임원할당제
독일도 동일가치노동이나 동일노동을 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임금 수준은 80% 정도입니다. 이러한 남녀의 임금격차는 가정 내 양육이 필요한 경우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여성들이 시간제 근무를 선택하게 만듭니다. 여성들이 더 이상 원하지 않아도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전통적인 성역할을 감수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남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 이 문제의 근본 해결책일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전히 여성들은 경력을 쌓아도 남성들에 비해 승진 기회가 현저히 낮습니다. 그 결과 여성노동자의 77%가 시간제 근무 또는 승진과 관련 없는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다시 사회에서 성역할에 있어 고정관념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정당과 노동계, 여성계는 500인 이상 기업에서 남녀의 동등한 임금보장과 여성임원할당제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동등한 임금보장의 핵심은 모든 노동자들이 임금에 관한 정보청구권을 가짐으로써 임금체계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구의 전제는 공공보육의 전면 확대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이 3세 이하 어린이를 돌볼 수 있는 보육시설의 확충입니다. 그동안 독일 정부는 돌봄 시스템을 확충하는 대신 부모들이 육아휴직을 쓰도록 유도했습니다. 또한 보육기관의 운영시간이 통상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로 짧은 편입니다. 따라서 보육시설 운영시간을 늘리는 등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노동자들이 일․삶의 균형 찾으려면
기존 일·가족 양립 정책이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것은 정․재계도 다르지 않습니다. 특히 재계는 저출산으로 인한 전문인력 감소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여성이 어떠한 전문성이 있더라도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시간제 근무로 전환하기 때문입니다. 독일 재계는 기업들이 젊은 세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가정경제모델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들은 도태될 것이라며 문제 해결의 키워드가 여성에게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독일의 정당과 노동계가 요구하는 남녀 동일노동 동일임금 현실화 정책과 여성임원할당제도 어디까지나 과정에 불과합니다. 남성들을 돌봄노동으로 끌어들여서 사회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저성장과 견고한 가부장제도가 결합되어 있고, 기존 남성외벌이 모델로는 가정 경제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인 성역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변화가 필요한데, 시간제일자리를 제공하는 식의 정책들은 실질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녀 모두에게 육아에 대한 부담 없이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정책 목표를 바꿔야 합니다. 또한 가족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개개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복지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일․삶의 균형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질의응답>
참석자) 시간제일자리와 관련한 OECD 통계를 보니 남부 유럽 국가를 제외하고, 유럽 여성 대부분은 시간제노동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고 나옵니다. 시간제일자리를 택한 이유로 육아를 꼽는다면, 왜 자발적 선택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황수옥) 독일은 남녀 임금격차로 인해 이성적, 합리적인 판단으로 임금이 적은 사람 즉, 여성들이 육아를 도맡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들에게 굉장히 불리한데 한 가정으로 축소하면 합리적인 거죠. 독일 역시 90년대까지는 남성외벌이 모델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고 돈이 필요하니 여성들이 일을 하게 되었고, 육아휴직 사용 문제 앞에서 당연히 자발적으로 임금이 적은 사람,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육아휴직을 쓰는 겁니다. 이것이 사회 전반에 걸친 현상입니다. 또한 독일은 유럽 내에서 보수적인 편이기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발성, 비자발성 여부를 따질 때 자발적으로 시간제일자리를 택했다고 답한 사람이 많은 겁니다. 
 
사회) 발제자로부터 토론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과 마무리 발언을 듣고 마치겠습니다. 
 
신경아) 현재 일‧가정 양립 지원정책에 많은 문제가 있으므로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데 다들 동의해주셨습니다. 또한 정책을 좀 더 현실화시키고, 실제 노동자가족들이 쓸 수 있어야 한다는 정책 방향에도 동의해주셨고요. 
한부모가정에 대해서는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빠가 없는 한부모가정도 있고, 별거하는 가정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가정형태를 고려해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또한 지역공동체의 돌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돌봄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의식이 필요합니다. 
적정인원의 문제 역시 중요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여성의 80% 이상이 노동시장에 있는데, 이는 육아휴직, 가족돌봄, 자기 돌봄 휴직에 들어갈 사람을 고려해서 인원을 책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노동자들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왜 제대로 쓰지 못하냐면, 사용자가 휴가를 쓰라고 해도 내가 휴가를 쓰면 동료들의 업무가 과중해져 직장 내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아진대요. 심지어 둘째 아이를 낳는 여성은 “또 낳느냐, 우리는 어쩌라는 거냐”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직장 내에서 왕따가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적정인원 개념이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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