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 첫 시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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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신년 초 금속노조의 내부 토론회 주제는 ‘금속노조 산별교섭’이었다. 올해 중앙교섭을 강화할 것인지, 업종별 교섭을 할 것인지, 현대기아차그룹사 교섭을 할 것인지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결국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으로 정리되었다. 
이 글은 금속노조가 올해 산별교섭을 강화하기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했는지 그 과정을 알리는 글이다. 비록 많은 한계와 아쉬움이 있을지라도 말이다.
 
 
금속노조 투쟁의 중심인 대기업지부들
2001년 4만 명의 금속노조로 시작해 2006년 완성차노조들의 산별노조 전환 투표 성공과 산별노조 규약 마련을 위한 3차례의 금속산별완성 대의원대회, 그리고 2008년 15만 명의 첫 산별노조 위원장 선거까지 일련의 굵직한 사건들 속에서 한국형 산별노조에 대한 수많은 토론이 벌어졌다. 그러나 사실 산별노조 토론에서 나오는 안팎의 얘기들은 매우 정형화되어 있다. 외부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대기업노조 중심의 기업별 관성’을 문제 삼으면서 임금연대정책(대기업 및 중소영세 노동자 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임금수준 평준화)을 주장했고, 이를 위해 대기업지부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한결같은 주장을 아직까지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연대 강화, 최저임금 인상 혹은 원하청 불공정거래 등의 각론들을 덧붙이면서 지난 15년간 줄곧 그런 주장을 해왔다. 그러한 근거를 대며 금속노조에 ‘무늬만 산별노조’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사실 완성차지부들을 비판‧비난하는 산별노조운동론은 많은 ‘알리바이’가 있고, 그것으로 쉽게 자기 정당성을 찾기도 한다. 가령, 몇몇 사람들은 대기업노조 이기주의를 모든 금속산별운동 문제의 원인으로 몰아세우고, 노동운동의 주체성과 자주성 대신 사측과의 타협을 강조하거나 노골적으로 노조협조주의를 정당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금속노조 내부 토론의 내용은 이와는 좀 다르다. 대기업지부 노동자들의 임금을 평준화하자는 주장은 현장에서 볼 때 사실상 임금삭감으로 비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순간 엄청난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사측에게 밀리지 않는 한 기존 노동조건을 스스로 하향하는 노동조합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금속노조는 무게가 대기업지부 중심으로 쏠리는 현상에 대해 늘 경계하고 이 문제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금속노조 내부의 고민은 좀 더 다른 곳에 있다. 지난 몇 년간 외부 연구자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경향은, 금속노조 투쟁의 중심이 대기업지부들이고, 금속노조가 이들을 중심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기울이는 현상이 2010년 이후 매우 확연하게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 2010년인가? 2008~09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몰아쳤으나, 현대차그룹은 라이벌이던 도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일본의 자동차공장이 정지되는 호기를 맞이했다. 이로 인해 2011년부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 완성차뿐만 아니라 부품업체들까지 엄청난 물량 호황을 맞이했다. 이를테면 2009년에는 물량 부족으로 일부 생산부서, 조립라인에서 휴직을 하는 등 불황으로 인한 한파가 몰아치고, 휴직 시 임금산정이 중요 쟁점 중 하나였다. 반면, 2012년부터는 완성차, 부품사 모두 물량 증대로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국지엠지부의 경우도 2009년 불황으로 상당히 큰 타격을 받았지만, 내수 시장 확대와 몇몇 잘 팔리는 차종 덕분에 성과금을 얘기할 수준만큼 생산물량을 회복했다. 이것이 최근 자동차업종 ‘대공장 고임금’의 물질적 기반과 배경이었다. 물량 증가는 조합원들에게 많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과 신쌍식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장이 10월18일 2016년 중앙교섭 조인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금속노동자 신동준)
 
 
왜 그룹사 공동교섭을 택했는가
신년 초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에 관한 내부 토론회 얘기로 돌아가면, 명분상 중앙교섭 강화가 가장 유력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완성차지부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를 묶어 교섭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실현 가능해 보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물량 불균등과 같은 경제적 문제도 없었고, 특히 박유기 현대차지부장이 2006년 당시 현대차노조위원장으로 노조의 산별 전환을 이끈 데다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이었기 때문에, 현대차지부를 중심으로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다. 또한 현대기아차그룹사 교섭단위에 속하는 조합원 수가 9만 명으로,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 15만 명 중 절반을 넘어서기 때문에 잘되면 완성차업체까지 교섭을 확대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반면 한국지엠까지 묶어 내려면 외자기업 혹은 해외공장에 관한 쟁점을 포함해야 하는데, 그것은 누구를 대상으로 싸우고 무엇을 쟁취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했다. 사실상 한국 정부와 미국 지엠 본사까지 대상을 확대한 투쟁으로, 현대차‧기아차와 함께 묶어 내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런 이유에서 업종별 교섭방식은 제외되었다.
중앙교섭 사업장들의 기세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다. 지역지부들의 핵심 지회들이 노조파괴(만도, 유성, 발레오만도, 상신브레이크, KEC, 한진중공업 등)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앙교섭 사업장 중에서 리더십과 투쟁력을 갖춘 핵심 지회들이 거의 사라짐에 따라, 현장 주체 없는 중앙교섭 확대는 어렵게 됐다.
따라서 올해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은 현대차지부를 중심축으로 한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으로 결정되었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의 목표는 현대차그룹 본사가 위치한 양재동 중심의 수직‧서열화된 노무관리를 파괴하고, 자주적인 노동조합 쟁취와 재벌개혁을 통한 사회연대 실현 그리고 산별교섭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교섭 틀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현총련(현대그룹노조총연합)이 아니냐”는 조롱 섞인 비난들이 있었지만, 현총련과 현대기아차그룹사를 묶은 것은 다르다. 가령 2016년 현재 기아차와 현대차가 하나의 회사이고, 현대중공업노조가 기업별노조로 따로 있는 상황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대기아차그룹사에 포함되어 있는 기아차와 현대위아(구 기아중공업노조) 등은 현총련과 다른 조직 전통을 가진 곳이다. 게다가 현재 현대제철은 구 한보철강, 구 인천제철(혹은 INI스틸), 하이스코 등 다양한 철강회사들이 하나로 합병된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현총련과 비교할 수 없다. 반면에 현총련의 핵심인 현대자동차, 현대정공(현 현대차 5공장), 현대로템, 현대케피코 정도가 같은 뿌리를 가진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기아차그룹사의 지부‧지회는 현총련이라고 하기보다는 금속노조 내부 자동차업종, 철강업종 지부‧지회의 결합이라고 봐야 한다. 
 
 
차갑게 식은 거대한 투쟁의 기세
이렇게 묶여진 지부‧지회들은 현대차지부를 중심으로 ‘금속노조 강화, 산별교섭 강화’를 목표로 내세우고, 공동의 교섭대상인 현대기아차그룹 사측을 향해 15만 투쟁을 결의하며 양재동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시도했다. 
현대기아차 사측은 “지금 대각선 교섭으로 충분하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법적 근거가 없다”, “각 사업장별로 다른 다양성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등의 주장을 하면서 7차례의 공동교섭에 모두 불참했다. 
사측의 공동교섭 불참에 대한 노조의 반발은 7월22일 15만 명이 참여한 금속노조 총파업과 전체조합원 서울 상경투쟁에서 최고조에 올랐다. 투쟁 결과를 놓고 안팎의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단 한 번도 상경투쟁을 하지 않았던 현대차지부 조합원들까지 집회에 참여함으로써 공동교섭에 대한 현장 밑바닥의 정서를 잘 보여줬다. 한편, 금속산업사용자협의회와의 중앙교섭은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에 밀린다는 우려도 있었으나, 청년 신규채용 확대와 실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사회연대적 요구를 함으로써 존재감을 가지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현장 바닥까지 흔들었던 거대한 투쟁의 기세는 8월 말 현대차지부의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이 조합원들에 의해 78%로 부결되면서 급격하게 식었다. 현대차지부가 지난해 현대차를 선두로 민간기업에 임금피크제를 확대하려 했던 정부와 자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임금피크제 실시를 철회시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측은 대기업노조의 고임금 이데올로기에 힘입어 기존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개편(소위, 신임금체계)하려는 방안을 세게 밀어붙였고, 이를 위해 동시에 낮은 임금인상안을 제시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신임금체계 연구에 달라붙어서 회사 측 논리에 동조한 사실은 또 다른 문제로 차치하고 말이다. 
반면 현장에서는 낮은 수준의 임금인상안에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강력한 투쟁을 한 경험은 더 큰 기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어쨌건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부결은 현대차지부 집행력의 심각한 훼손으로 이어졌고, 이는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 역시 한풀 꺾이는 상황으로 다시 연결됐다. 
 
 
“오늘은 졌지만, 내일은 이긴다”
현대차의 노무관리는 현대차지부를 장악함으로써, 이를 기준으로 기아차지부 등 계열사 지부‧지회뿐만 아니라 부품사까지 한꺼번에 정리하려는 서열화 전략이다. 사측은 이를 위해 현대차지부가 일종의 패턴교섭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기아차지부는 현대차지부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임단협을 타결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현대차지부는 그룹 전체에 대한 부담을 지고 교섭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 결과 나머지 계열사 지회들은 현대차지부가 타결될 때까지 사실상 아무런 타결도 할 수 없게 된다. 실제 지난해 12월 말 현대차지부가 임단협을 타결하자, 바로 기아차지부가 임단협을 타결하고 다른 계열사들도 올해 초까지 이어서 연달아 임단협을 타결했다.
물론 현대차지부의 집중된 힘을 중심으로 하여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 투쟁을 펼친 것도 사실이다. 공동교섭을 현대차지부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대차지부 조합원들의 내부 정서를 무시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이었다. 
최근 현대차지부가 임단협을 타결함으로써 기아차지부 등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 지부‧ 지회들도 임단협 타결 국면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이 현대차노사가 임단협을 조기에 타결하도록 긴급조정권이라는 케케묵은 카드를 꺼내 압박한 것은, 정부가 산별교섭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더러 심지어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하튼 현대차의 노무관리를 타파하고자 했던 금속노조의 목표는 아직 성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대기아차그룹 공동투쟁, 공동교섭이 올해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투쟁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는 물론, 투쟁 주체들이 다시 싸울 수 있느냐의 여부이다. 아직 노조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비롯해 개별화되어 있던 각 계열사 지부‧지회는 올해 공동투쟁을 통해 내부결속을 한층 강화했다. 게다가 산별교섭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는 교섭구조는 한 번의 투쟁으로 얻어질 수 있는 성과물이 아니다. 
 
 
의미 있는 금속노조 중앙교섭 타결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은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 투쟁, 15만 총력투쟁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중앙교섭단위 사업장들은 한 번도 독자적 투쟁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실노동시간 1,800시간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목표로 한 사업장별 노사합의, △금속사업장에서 신규채용 시 만 29세 이하 청년 50% 이상 채용에 합의, △금속산업 최저임금을 시급 6,600원(법정 최저임금 6,470원)으로 타결, △정년퇴직자 발생 시 정규직 신규채용,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교대제, 퇴직금, 토요일 유급화 등에 대해 원청 정규직과 동일적용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타결을 했다.
그럼에도 올해 투쟁이 여러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아직 요원하다. 대표적인 노조파괴 사업장인 유성기업지회의 한광호 열사 투쟁이나 갑을오토텍지회의 투쟁은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 사업장을 넘어서 원청인 현대차를 압박하는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에 많은 인력과 자원이 동원되었지만 아직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 7월 말 단행된 갑을오토텍의 직장폐쇄가 90여 일 넘게 이어지고 있고, 사측에 대한 지회의 완강한 투쟁 역시 진행 중이지만 해결의 기미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지부의 강력한 지원투쟁을 통한 부품사의 투쟁 승리는 아직 요원하다.
한편, 금속노조는 조선소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공동투쟁을 기획하고 함께 했지만, 투쟁의 강력한 지렛대가 되지는 못했다. 조선소 빅3에 해당하는 현대중공업노조, 대우조선노조, 삼성중공업노동자협의회가 조선업종노조연대로 묶여 있더라도 조직 밖의 조직이라는 것은 여전히 핑계가 될 수 있다. 
 
 
여전히 유효한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은 여전히 유효하다. 투쟁하는 산별노조,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산별노조의 상도 여전히 유효하다. 금속노조가 기업별 체계를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노동자단결의 정신 아래 뭉쳐서 투쟁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포기하고 안주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금속노조는 당장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물론 한 번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모든 시도를 실패로 돌리고, 흠집을 내려는 이들이나 연구자들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실천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만들 수 있고 결국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속노조는 그저 재 뿌릴 기회만 찾는 이들보다는, 현실을 꿰뚫어 보고 산별노조 발전을 돕고자 하는 명민하고 똑똑한 연구자들이나 활동가들이 좀 더 많은 조언을 주기를 항상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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