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어떤 임금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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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에 대한 관심이 높다. 최근에는 스위스가 ‘월 300만 원 기본소득’ 도입을 놓고 국민투표(찬성 23%)를 실시해 기본소득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검색사이트 구글(google)에 ‘living wage(생활임금)’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관련 내용이 약 352만개 나오며, ‘basic income(기본소득)’은 약 1,540만개, ‘minimum wage(최저임금)’는 약 3,630만개 정도가 검색된다. 이는 최저임금 등이 국가의 사회정책 차원에서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 모두 100년 이상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제도들이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최저임금 인상이나 생활임금 논의는 유사한 시장경제와 노사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에게 더 큰 관심 사안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1만 7천 원)로 인상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고, 영국도 최저임금을 9파운드(1만 5천 원)로 인상할 예정이다. 또한 미국과 영국은 1990년대 이후 생활임금제도를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들이다. 
우리나라도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의 공식 요구안으로 최저임금 1만원이 정해진 상태이며,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여론의 호응도 꽤나 높다. 그러나 생활임금은 일부 지자체에서만 도입됐고, 인지도도 최저임금만큼 높지는 않다. 2016년 5월 서울시민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저임금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알고 있다(99.1%, 매우 잘 알고 있음 49.3%)”라고 답했다. 반면, 서울시의 생활임금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절반 수준(49.9%, 매우 잘 알고 있음 8.3%)에 불과했다. 
 
 
 
Ⅱ.  ‘시장임금’ 아닌 ‘사회적 임금’ 필요성과 논의 배경
전 세계적으로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과 관련된 사회적 쟁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0여 년간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이 결합하여 이룬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성과는 과소평가될 수 없다. ILO나 EU는 저임금 해소 정책으로 법정 최저임금제도를 소개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생활임금이나 기본소득 그리고 최저임금과 같은 사회적 임금(social wage)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노동시장 내 비정규직의 비율이 취업자 수의 절반에 가깝고, OECD 국가 중 1년 미만의 단기근속자(30.6%)가 가장 많으며, 저임금계층 비율(23.5%)은 두 번째로 높고, 임금 불평등(상·하위 10%의 임금 격차 5.63배)은 가장 심하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는 많지만 시급 7천 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의 수는 39만 명(32.0%)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2016년 5월의 설문조사 결과, 서울시민들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수준이 낮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 중 76.2%가 최저임금(2016년 시급 6,030원)에 대해 “낮다”고 답했고, 48%는 서울시 생활임금(2016년 시급 7,145원)에 대해 “낮다”고 응답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생활임금 논의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정부 주도로 시행된 정책이 아니라, 각 나라별로 해당 지역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운동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수준으로서 생활임금은 보통명사였다. 생활임금이 처음으로 시작된 미국이나 영국을 보면 논의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본격화되었지만, 그 역사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 초기 저임금과 착취노동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고, 생활임금은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영국은 1870년대 광산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과정에서 표면화되었고, 미국은 1886년 미국노동총연맹(AFL) 설립 시기부터 생활임금을 강조했다.
그 후 생활임금운동은 최저임금운동을 태동시켰고 이후 두 운동은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에서 연계되었다. 미국에서는 1912년부터 제정된 각 주별 최저임금법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최저임금법은 미국 노동자들의 의도와 달리 노동자 권리로서 생활임금을 충족시키기에는 미흡했다. 때문에 1920년대를 지나면서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연계는 약화되었고, 최저임금운동은 생활임금이 아니라 공정임금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생활임금은 더 이상 효과적인 담론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초기 노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생활임금에 대한 요구와 목소리들이 높았으나, 최저임금법이 제정된 1990년대 이후부터는 생활임금보다는 최저임금이 주요 임금제도로 인식되었다. 
 
(2016년 영국과 런던의 생활임금 현황 ⓒ영국 생활임금재단)
 
 
경제적 변화에 따른 생활임금의 부각
생활임금이 20세기와 21세기를 지나오면서 다시 새롭게 부각된 것은 1980년대 초반의 경제적 변화 때문이다. 영국과 미국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최저임금 수준이 소비자물가 수준을 넘었으며, 이는 3인 가족이 기초적인 생활(빈곤선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각국에서 점차 최저임금 상승이 물가상승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근로빈곤 계층(working poor)’이 증가하면서 법정최저임금과 생활임금 향상을 위한 움직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또한 IMF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불안정 저임금 일자리들이 증가했고, 소득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최저임금의 중요성이 전 사회적으로 커졌다. 
현재의 생활임금 논의는 1994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에서 지역 내 다양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 등을 운영하는 발티모리안(BUILD)이라는 커뮤니티 연합단체가 공무원노조(ASCME)와 연대하면서 사회운동의 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미국의 생활임금운동은 연방과 주의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으로, 새로운 대안이라는 의미에서 ‘생활임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현재는 생활임금계산기(Living Wage Calculator)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각 지역별 생활임금 상황과 수치를 공유하고 있다.
영국의 생활임금 논의는 2001년 런던에서 활동하는 시민, 종교, 이주, 노동단체 등이 참가한 런던 시티즌(London Citizen)이라는 연합단체가 미국 발티모리안과 자매단체가 되면서 본격화되었고, 버밍엄, 뉴캐슬, 카디프와 같은 지역에서도 생활임금을 책정하고 있다. 2005년부터 런던시는 생활임금을 도입했고, 시 산하 기구(GLA)에서 이를 발표하고 있다. 특히 런던은 생활임금 정책을 지지하기 위해 런던 시티즌이 설립한 생활임금재단(LWF)과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한 위원회(LWC)를 통해 자문회의를 개최하며, 생활임금 기업인증제, 생활임금 주간 지정 활동 등 생활임금운동이 활성화되어 있다. 현재 영국은 지난 4월1일부터 법정 최저임금을 대체하는 생활임금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6년 1월 기준으로 57개 지자체에서 생활임금 조례가 제정되어 시행 중이다. 부천시에서 2013년 12월 최초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했고, 경기도(2014년 8월), 서울(2015년 2월) 등도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임금이 이슈화된 것은 지난 2007~08년 노동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생활임금운동 기획단이 생활임금 캠페인을 벌이면서부터다. 이어 2012년 참여연대가 생활임금을 핵심과제로 선정했고, 이 시기에 한국노총이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당시 시장 후보 박원순)와 2012년 총선에서 당시 민주통합당과 노동복지 공약을 공동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활임금을 첫 번째 실행과제로 제기하면서 도입 가능성이 커졌다. 
 
 
 
Ⅲ.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사회적 형성과 특징
최저임금제는 1894년 뉴질랜드에서 시작하여 현재 많은 선진국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로, 국가가 노사 간의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하여 임금의 최하 수준을 정하고, 사용자에게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저임금 피고용인 보호제도다. 미국은 1938년, 프랑스는 1950년에 제도를 도입했고, 우리나라는 198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 구조 등은 각 나라별로 상이하나, 대체로 국가 기관이 조사·심의하여 결정하며 법률로 강제한다. 
현행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목적은 3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 사회정책적인 목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을 증대시켜 빈곤을 퇴치하고, 교섭력이 미약한 미숙련·미조직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를 방지하고자 한다. 둘째, 경제정책적인 목적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구매력을 증대시켜 유효수요를 확대하고자 한다. 셋째, 산업정책적인 목적으로 저임금에 의존하는 산업과 기업의 경쟁을 지양하고, 기술개발 및 생산성 향상을 통한 기업 간 공정 경쟁을 유도(고성과작업장 구축)하려는 취지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 제도의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를 더 강조하는 경영계의 목소리 때문에 최저임금은 매번 매우 낮은 수준으로 결정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논의에서도 경영계 측의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리 때문에 최저임금 목표나 수준은 사실상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몇몇 지자체의 생활임금 논의 과정에서도 일부 보수적 성향의 의원이나 공무원들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격차 문제를 이유로 생활임금 도입이나 확대에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쟁점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쟁점은 무엇일까. 그간의 다양한 논의들을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의식이 확인된다. 첫째,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근본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즉 보편적 인권을 향유할 정도로 기본 욕구 실현을 보장하는 ‘적절한 수준의 임금(decent wage)’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의 목적은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향상시켜 빈곤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낮은 최저임금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는 문제인식이 있었다. 이에 공공부문에서부터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 즉,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수준의 생활임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둘째,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적용대상은 누구이며,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최저임금의 적용대상은 보편적이지만, 생활임금의 적용대상은 공공부문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공공부문에 적용되고 있는 생활임금이 민간으로 확산되어 최저임금 인상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인가의 여부가 생활임금에 거는 또 다른 기대일 것이다. 생활임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몇몇 나라의 사례를 보면 한계도 있고, 각 나라별 상황과 맥락에 따른 차이나 공통점도 확인된다.
셋째,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그 사회의 안정과 빈곤 완화, 그리고 저임금 해소에 기여했는가? 또한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의 질 향상이나 소득불평등을 완화했는가?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혜율(영향율)이 185만 명(9.6%)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저임금 해소에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의 수준이 보편적 인권을 향유할 정도, 그리고 1인 노동자가 아닌 가구원들이 생활을 유지할 정도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다. 게다가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10명 중 1명이 넘는다는 것 또한 문제다. 
결국 오늘날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은 ‘우리 사회에 어떤 임금이 필요한가?’라는 사회적 논쟁 주제이며, 생활임금은 시장 중심의 임금제도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최저임금제도의 불충분함에 대한 문제제기다. 최저임금이 적절한 생활수준의 보장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활임금이 제기된 것이다. 아울러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생활임금운동이 정부가 보장하는 적정 수준의 임금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유발했고,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전했다. 
 
 
Ⅳ. 맺음말:사회적 임금의 확장 필요성
현재 최저임금 인상이나 생활임금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국가들은 노조조직률이 높고 사회 안전망이 잘 형성된 유럽식 조정된 시장경제(CMEs) 국가들이 아닌, 임금불평등이 심각한 영미식 자유시장경제(LMEs) 국가들이다. 과거 영미식 국가에서 생활임금이 논의된 이유는 국가와 사회의 힘의 균형이 자본 중심으로 이동함에 따라 임금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최저임금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을 갖게 되어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도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을 통해 “사회에서 어떤 임금이 필요한가?”라는 근본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은 시장에 맡겨진 임금이 아니라, 지역 사회 이해당사자의 참여와 논의를 통해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지향하는 임금이다. 또한 생활임금이나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시장 결정적 임금제도의 사회적 재구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미국보다 생활임금 논의를 늦게 시작했지만, 현재 영국에서 1천개 이상의 사업장이 생활임금제에 참여하는 것은 제도의 확장성 측면에서 볼 때 우리에게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물론 핵심 쟁점은 남아있다.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이 인간다운 삶, 즉 안정된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수준(just pay)에 관한 것이다. 이 쟁점은 논의 초기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1948년에 만들어진 세계인권선언에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공정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 그리고 기본소득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을 향유할 수 있는 정도의 적정한 임금’ 지급으로, 혹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사회제도의 마련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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