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지회의 6년, 무슨 일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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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지회 6년의 투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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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은 1960년 설립된 자동차 부품회사다. 피스톤링과 함께 실린더라이너, 캠샤프트, 에어 컴프레서 등을 생산해 현대자동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와 중장비업체 등에 공급하고 있다. 유성기업을 포함한 완성차 업체 협력업체는 B2B(기업간 거래) 중심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업체명이 알려질 일이 드물다. 하지만 유성기업은 2011년 이후 미디어에 끊임없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것도 ‘노조 파괴’라는 부정적인 문구와 함께 말이다.
 
(금속노조가 1월28일 국회 정론관에서 '유성기업 노조파괴 증거 추가 폭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금속노동자 김경훈)
 
노사갈등의 시작, 주간연속 2교대제 
유성기업이 여론의 주목을 집중적으로 받은 시기는 2011년이었다. 유성기업 노사는 2009년 임단협에서 ‘경제상황 및 제반 조건들을 감안해 2011년 1월1일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목표로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의서를 체결했다. “밤에는 잠 좀 자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이 된 것이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암연구소는 생체리듬을 교란하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이라고 보고할 정도로 밤샘노동은 노동자 건강에 치명적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지회는 이 합의서를 근거로 2011년 1월부터 5월까지 10차례 넘게 회사 측과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유성기업은 어떤 안도 내놓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결국 지회는 5월3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열흘 뒤 충남지노위는 조정중지를 결정했다. 이후 지회는 파업 찬반투표를 거쳐 5월18일 2시간가량 부분파업을 진행했다. 회사는 이날 “저녁 8시부로 직장폐쇄(조합원에 한해 직장폐쇄)에 돌입한다”는 공고문을 게시하고 아산공장에 대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용역경비와 회사 관리자들을 동원해 정문을 봉쇄하고 근무를 위해 출근하던 야간조 조합원들의 출입을 저지한 것이다. 5월19일 직장폐쇄에 항의하며 아산공장으로 진입하려던 조합원들을 사측 용역업체 직원이 운전하는 차량이 덮치면서 10여 명이 다치는 일도 벌어졌다. 5월23일엔 영동공장에 대한 직장폐쇄까지 이뤄졌다. 경찰은 지회 파업 7일째인 5월24일 30개 중대 2,500명의 병력을 투입해 노조원 500명 전원을 연행했고, 회사는 생산라인을 재가동하기 시작했다.
유성기업은 이후 노동자 선별복귀 원칙을 내세우면서 직장폐쇄를 유지했다. 공권력 투입 이후 공장 밖으로 쫓겨난 조합원들은 비닐 하우스를 거처로 삼고 투쟁을 이어갔다. 지회는 6~7월 이후 현장 일괄복귀 의사를 밝혔지만 회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8월 법원의 조정이 있고 나서야 조합원들은 회사로 복귀할 수 있게 됐다.
 
 
현대차·유성기업·창조컨설팅의 노조 파괴
유성기업은 2011년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갈등이 빚어지자, 그해 4월부터 노조 파괴로 악명을 떨친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보낸 ‘노사관계 안정화 컨설팅 제안서’에는 회사의 대응 전략으로 ‘온건·합리적인 2노조 출범’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창조컨설팅은 “2011년 7월 이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된다. 7월1일 노조설립 총회를 개최한 뒤 노조 설립 결의, 규약 제정, 임원 선출, 노조설립 신고 등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제안했다. 회사가 주도해 세운 2노조를 교섭대표노조로 만들어 금속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전략인 셈이다.
유성기업은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7월14일 유성기업 노조 설립총회를 진행했다. 이후 유성기업 노조는 노조 설립신고서, 노조 규약 등을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제출했는데 이는 회사가 작성해준 것이었다. 유성기업은 유성기업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도록 노동자들을 면담하면서 해당 노조 가입을 권유 내지 종용했다.
노조 파괴와 ‘어용노조’ 설립은 유성기업과 창조컨설팅만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수면 위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주연 배우’는 현대차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속속 나왔다. 2011년 5월18일 현대차 임원의 승용차 안에서 발견된 ‘주간연속 2교대 도입 관련 문제점 및 추진방향’ 문건에는 “유성기업 노사 간 주간연속 2교대 시행 합의 시, 현대·기아차 본교섭에 일부 변수 발생 우려”되므로 “현대·기아차 시행 전 ‘선(先)시행’ 노사합의 방지”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시 현대·기아차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을 위한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부품사가 상대적으로 노조에 유리한 내용으로 먼저 시행을 하면 원청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기아차엔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눈엣가시였다.
올해 1월 금속노조가 국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선 현대차의 유성기업 노사관계 개입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가 나왔다. 이 자료는 검찰·고용노동부가 2012년 11월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 서울사무소 등을 압수수색한 뒤 정리한 수사기록 중 일부다.
금속노조가 당시 공개한 이메일을 보면 현대차는 유성기업에 구체적 목표치까지 제시하면서 노조 파괴를 주도했다. 현대차 구동부품개발실 최모 이사대우는 2011년 9월20일 황모 차장 등 부하 직원 3명에게 ‘유성 동향 일일보고(9월19일)’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 금속노조에서 탈퇴해 기업노조로 가입하는 노동자가 적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성기업에) 9월20일까지 220명, 9월30일 250명, 10월10일 290명 목표로 줬는데도 1명도 없는 이유가 뭔지 강하게 전달하라”고 적었다. 이어 “매주 1회 회사(유성기업), 창조(컨설팅)를 불러서 주간 실적 및 차주 계획, 동향을 면밀히 파악하라”고 주문했다.
유성기업 최모 전무가 2011년 11월1일 심종두 창조컨설팅 대표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현대차가 유성기업의 노무관리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최 전무는 “(현대차) 요구사항 중 핵심은 유성노조(기업노조) 신규 가입자를 70~80% 선까지 확보하라는 것”이라고 적었다.
‘유성기업 노조 지원비용 지출내역’ 문건을 보면 유성기업 영동공장 최모 이사는 2011년 7월19일 기업노조 발기인 모임의 식대 16만 7,000원을 계산했다. 회사가 특정 노조를 지원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다. 금속노조 탈퇴 유도를 위해 회사가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까지 현장 노동자들에게 단란주점 등에서 향응을 제공한 내역도 확인됐다.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이 증거들을 확보하고도 2013년 말 유성기업의 노조 파괴 혐의 대부분을 사실 확인 불가,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2011년 노조 파괴와 2노조 설립 이후에도 현대차가 상황을 지속적으로 관리했다는 정황도 있다. 최 전무는 2012년 2월15일 현대차 권모 대리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회사는 2011년 12월2일 이후 유성지회(금속노조)와 8차례의 임금교섭을 진행하고 있으나, 협약체결에 따른 급여지급 여부 및 시기에 유성노조(기업별 노조)와 차이를 두기 위해 회사 측 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유현석 유성기업 기획실장은 그해 4월18일 노무 담당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현대 측으로 보고된 조합원 수는 유성노조 287명 + 관리조합원 50명 = 337명으로 돼 있다”고 적었다. 현대차에 지속적으로 노조 인원현황을 보고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4월16일 '현대차 정몽구 회장 처벌, 한광호 열사 정신 계승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한광호 열사 영정을 앞세우고 행진 중이다. ⓒ금속노동자 김경훈)
 
6년째 이어지고 있는 현장 탄압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를 대리하는 김차곤 변호사가 정리한 ‘유성기업 현장탄압 사례’를 보면, 회사는 2011년 8월 직장폐쇄 종료 직후 5차례에 걸쳐 징계를 진행했는데 총 대상 544명 중 지회 소속 노동자는 334명, 2노조인 유성기업 노조 소속 노동자는 210명이었다. 해고나 출근정지, 정직 등 중징계를 받은 노동자는 대부분 지회 소속이고 유성기업 노조 소속 노동자들은 2명이 정직, 1명이 견책을 받았을 뿐 나머지는 서면경고, 구두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지회 소속 노동자 100명 이상에 대해 해고, 출근정지 등의 중징계가 내려졌다. 김 변호사는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대규모 징계는 법원에 의해 대부분 부당징계 판단을 받았다”며 “유성기업은 사후적으로 부당징계가 될 개연성이 높은 사안이라 해도 노조 파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징계권을 남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속노조 조합원에 대한 무차별적 고소·고발도 이뤄졌다. 1차례 고소·고발 경험이 31명(10.7%), 2차례 고소·고발 경험이 24명(8.2%), 3차례 이상 고소·고발 경험이 24명(8.2%)이었다. 2번 이상 고소·고발을 경험한 조합원들의 90% 이상이 임원, 상집, 대의원 활동을 했던 간부들이다. 고소·고발은 상당 부분 불기소 처분되거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현장에서의 감시·통제 역시 심각한 상황이다. 아산공장, 영동공장에는 각각 19대, 11대의 CCTV가 설치돼 있는데 일부는 유성기업지회 사무실을 향하고 있다. 회사는 CCTV 이외에도 휴대용 촬영기와 녹음기 등을 이용해 조합원의 조합활동, 쟁의행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콘센트 등으로 위장한 몰래 카메라가 발견되기도 했다. 플래카드, 깃발, 피켓 등 조합물품이 손괴·절도당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2011년 이후 6년째 이어지고 있는 현장탄압은 조합원들의 정신질환, 자살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유성기업 아산공장 노동자 김모 씨(39·지회 조합원)는 입사 10년째인 2013년 중순쯤부터 속이 울렁거리며 머리가 아파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어느 순간 제어를 못할 정도로 관리자들과 말다툼을 했고, 2014년 여름쯤부터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에까지 사로잡혔다. 김 씨는 지난해 1월 ‘중증의 우울증 및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고 한 달가량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4월 병원에서 퇴원한 뒤 회사에 들어가려 했으나 머리·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 때문에 회사 정문에서 다시 집으로 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산재 승인을 신청했지만 근로복지공단 천안지사는 지난해 10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불승인 처분 취소 청구를 맡은 공단 산재심사실은 지난 3월21일 산재를 승인했다. 산재심사실은 “김 씨는 유성기업의 극심한 노사 분규 및 금속노조와 기업노조 간 갈등 등의 상황으로 고통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김 씨뿐만 아니라 2012~2015년 유성기업 노동자 4명의 정신질환이 산재로 인정받았다. 충남노동인권센터가 지난해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 노동자 26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3.3%가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3월17일에는 영동지회 조합원 한광호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한 씨는 11건의 고소·고발을 겪었는데 2건에 대해서만 기소됐고, 나머지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는 2014년 충남노동인권센터 심리치유사업단이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우울증이 의심돼 상담치료를 받기도 했다.
 
(2013년 철탑 고공농성 당시의 홍종인 전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장과 이정훈 전 영동지회장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고공농성과 유성범시민대책위 구
홍종인 전 아산지회장은 2012년 10월21일부터 2013년 3월20일까지 151일간 아산공장 앞 굴다리에 매달려 고공농성을 벌였다. 홍 전 지회장은 이듬해 10월에도 “창조컨설팅을 통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실행하고 용역 폭력을 동원한 사업주를 처벌하라”며 이정훈 전 영동지회장과 함께 충북 옥천의 22m 높이의 철탑에 올라 129일을 보냈다. 혼자 남게 된 이 전 지회장은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259일 만인 2014년 6월28일 건강 악화로 땅을 밟았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의 투쟁은 한 씨의 자살 이후 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72개 시민사회단체는 4월4일 한 씨의 시민분향소가 있는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현대차 자본 처벌! 한광호열사 투쟁 승리! 범시민대책위원회’(유성범대위) 출범을 선언했다. 유성범대위는 4월18일부터 23일까지를 한 씨 집중 추모기간으로 선정하고 검찰에 현대차와 유성기업에 대한 신속한 기소와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전달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제3노조까지 설립 신고…끝나지 않는 싸움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에서 제3노조가 조직돼 4월19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3노조 출범 움직임은 “2노조 설립이 무효”라는 판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4월14일 “유성기업 노조는 설립 자체가 유성기업이 계획해 그 주도하에 이뤄졌다”며 “설립 이후 조합원 확보나 조직의 홍보, 안정화 등 운영도 모두 유성기업의 계획하에 이뤄져 노조 설립·운영에 있어 회사에 대한 자주성·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아산·영동지회와 2노조는 조합원 수가 각각 300명 내외로 비슷한데 2노조 조합원 중 110명가량이 3노조에 합류했다. 3노조의 위원장, 사무국장은 2노조의 위원장, 사무국장과 동일 인물이다. 이 때문에 “이미 법원에서 설립 무효 판정을 받은 2노조를 이름만 바꿔 다시 만들려는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노조 파괴를 둘러싼 6년의 싸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현대차와 유성기업은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또 유성기업은 “한 씨의 죽음은 노조 파괴와 가학적 노무관리 등과 무관하다”며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더해 2노조는 3노조 설립이라는 전략으로 설립 무효 판결을 피해가려 한다. 언제쯤 유성기업 노동자들에게 일터가 전쟁터 아닌 곳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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