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와 흙수저의 세상에서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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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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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 (지은이), 이경아 (옮긴이) | 모티브북 | 2008
 

 

유행어는 항상 시대의 정서와 맥락을 반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와 언론 등에서 즐겨 쓰는 유행어를 보건대, 2015년 한국 사회를 관통한 키워드는 ‘불평등’과 ‘분노’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바로 이곳이 지옥이라는 의미의 ‘헬조선’, 물고 태어난 수저의 색이 삶을 결정한다는 ‘수저계급론’의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유행어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분노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특히 부자든 서민이든 죽창 앞에서는 평등하다는 내용의 만화 <죽창맨>에서 파생된 ‘죽창 드립(애드리브)’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서민들의 분노와 무력감을 보여준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불평등 앞에서 가상의 죽창을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속화하는 계급 사회에 대한 반어
『벨 훅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벨 훅스, 이경아 역, 모티브북, 2008)는 미국의 학자가 쓴 미국 사회 이야기지만, 불평등이 가속화하고 있는 계급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 사회와 잘 맞아떨어진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제목은 일종의 반어법이자, 계급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이른바 ‘물타기’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략을 고발하는 셈이다. 
책의 내용은 노동 계급에서 특권 계급으로 이동한 벨 훅스의 개인적인 경험들로 채워져 있다. 덕분에 책장은 쉬이 넘어간다. 특히 저자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중‧상류층 동급생들과 조우하며 ‘계급 차이’를 절절하게 느끼게 되고, 젊은 시절 더 예쁘고 좋은 옷을 사기 위해 과소비를 했다고 고백하는 부분 등이 그렇다. 
하지만 결코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다. ‘노동계급 출신의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로서 겪은 젠더(gender, 사회적인 성별)와 인종, 그리고 계급의 문제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 스민 계급 문제
벨 훅스가 풀어내는 미국 사회는 낯설지만 친숙하다. 미국 사회는 계급의 문제를 젠더 문제나 인종 문제만으로 치환하는 등 문제를 은근슬쩍 흘려버리고, 사람들은 소비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쿨’하고 평등하리라는 소비주의 문화에 흠뻑 젖어 있다. 그리고 이 소비주의 문화는 계급의식을 흐리게 할 뿐 아니라, 더 소비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채찍질 하게 한다. 
이를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데이트 더치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서비스‧저임금 직종에 더 많이 종사하며 비정규직 비율마저 높은 현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거나 외면당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보여주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일상을 보며 더 좋은 상품들을 욕망하지만,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박탈감을 느끼고 그 상품을 소비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된다. 
계급 문제는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모든 문제가 계급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계급과 관련되어 있다.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가 들려주는 날카롭고 솔직한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계급 문제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야말로 원 제목인 “Where we stand: Class matters(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계급 문제)”에 충실하게 부합한다. 
 
계급 문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아쉬운 점은, 계급 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반면 벨 훅스가 제시하는 대안은 지나치게 순진하다는 점이다. 벨 훅스는 서문에서 “계급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미국 사회는 계급투쟁의 장으로 변할 것”이라며 “계급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면 제일 먼저 공정한 경제체제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막상 책에는 어떻게, 어떤 경제체제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다만 계급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자신의 계급 정체성과 위치에 대한 인지, 노동계급과의 연대, “돈은 우리의 행복을 높여주는 만큼만 쓸모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의 연대,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제안할 뿐이다. 
공정한 경제체제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그럼에도 계급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돌파구의 모색을 개인 차원으로 남기는 듯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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