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노사관계를 읽는 열쇠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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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시작과 함께 정치,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온갖 전망들이 쏟아져 나온다. 달력의 숫자하나 바뀌었다고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바람이 담겨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한국사회의 2015년 전망은 녹록하지 않다. 2015년 노사관계를 둘러싼 외부 환경은 불투명성 그 자체이다. 장기 불황의 지속과 고용불안의 어두운 그림자는 확산되고, 고령화와 저출산에 조응하지 못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은 지속가능성조차 의문시된다. 사회과학적 정치(精緻)한 분석보다 비극적 현실이 앞서 나타난다.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 불평등과 저임금노동의 확산은 사회적 빈곤층을 양산하며, 그들을 죽음의 끝으로 몰아세운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발만 삐끗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사회적 공포가 우리를 짓누른다. 
신자유주의의 주류화와 재벌 지배체제의 공고화 속에서 대안적 경제시스템의 구현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론에 기반하여 사회 불평등을 완화하고 조세 개혁을 통해 사회보장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합의였지만, 박근혜 정부는 대선 공약을 내팽개치고 MB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무능력한 정치 리더십과 친(親)재벌 경제정책은 사회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경제사회 정책의 산물인 노사관계도 과거의 울타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헌법상의 노동3권은 갈수록 형해화(形骸化)되어, 한국의 노동권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하고 있다. 2014년 5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이 139개국의 노동자 권리지수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중국·나이지리아·캄보디아·짐바브웨·방글라데시 등과 함께 최하위 5등급이었다. 노사관계의 제도적인 틀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은 단체교섭의 장이 아닌 고공농성장에서 그들의 요구를 주장한다. 씨앤앰 임정균·강성덕의 50일 농성, 20m 전광판 위의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의 장연의·강세웅, 70m 굴뚝 위의 쌍용차 이창근·김정욱, 구미 스타케미칼의 차광호……. 한국의 노사관계, 노동운동은 전환기적 상황에 놓여 있다. 노동조합은 존재하지만 그 혜택은 10% 남짓한 노동자들에 머무르며, 90%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보호 밖에 존재한다. 계급 연대의 구호는 외쳐지지만 현실로 외화되지 않는다. 산별노조의 전망도 노동정치의 미래도 불투명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첫 번째 열쇠말, 경제불황과 고용불안
2015년 노사관계 전망은 어떠한가? ‘경제불황과 고용불안, 노동시장 구조 개편, 공공부문(공무원연금) 개혁, 비정규직 문제, 노동운동 혁신’ 등 2015년 노사관계를 읽는 열쇠말은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노동의 약화 속에서 정부와 자본이 노사관계의 판과 의제를 짜고 있다. 
첫째, 경제불황과 고용불안이다. 한국은행과 경제연구소들은 2015년 경제성장률을 3% 중반대로 예측하고 있다. 올해 경제는 소폭 회복하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저성장·저인플레이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명목상 경제성장률은 나쁘지 않지만 그 속살을 보면 산업 간,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가계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경제지표는 성장하지만 그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사회불평등은 더욱 확대된다. 스위스의 대표 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세계 부(富) 리포트(Global Wealth Report)’에 따르면 2014년 한국 순자산 상위 10%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몫은 62.8%이다. 2000년에는 53.2%였지만 2007년 55.2%로 증가한 후 2014년 60%선을 넘어서, 부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경제불황이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의 명분으로 활용되며, 고용불안으로 연계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금융·보험업 일자리는 전년보다 2만 4,000개나 줄어, 2009년 금융위기 여파로 5만 5,000명이 줄어든 이래 감소폭이 가장 크다. 또한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를 앞두고 사무관리직에 대한 희망퇴직이 남발되고 있는데, 말이 ‘희망퇴직’이지 ‘찍퇴(찍어서 퇴직)’의 칼바람이 몰아닥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사무직 과장급 이상 1,500여 명, 삼성물산은 800명의 희망퇴직을 추진 중이다. 희망퇴직은 하이투자증권 사례에서 보듯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흑자인 기업에서 미래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노동자를 폐품 처리하듯 버리는 또 다른 정리해고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편이 만들 새 고용노동 생태계
둘째, 노동시장 구조 개편이다. 정부는 2014년 12월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하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으면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을 함께 발표했는데, 비정규직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 타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확산이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결과로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잊을만하면 반복하는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으니까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그러니까 기업들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정규직·대기업·유노조 사업장에 속한 7.4%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대책은 비정규직 양산의 진짜 주범인 재벌대기업이 아닌 ‘과보호’된 정규직에게 향하는데, 그 대책은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도입,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재량근로·탄력근로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등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망령이 다시 일터와 노동자의 삶에 엄습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 개편 논의는 3월 말까지 통상임금, 정년, 근로시간 등 3대 현안에 대한 1차 합의를 이끌어 낸 후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합의 도출을 예정하고 있다. 어쨌든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의는 노사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며, 2015년은 새로운 고용노동 생태계의 규칙 형성을 위한 일대 격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공감대나 공론화 없이 노동시장 구조개편이 졸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원인을 따지지 않고, 비정규직 남용 그리고 간접고용의 확산 등 재벌대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는 한 노동시장 구조 개편 논의는 노동의 책임 및 양보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는 조직 노동만의 저항이 아닌 사회 갈등의 뇌관이 될 것이다. 
 
공공부문 노사관계 좌우할 공무원연금 개혁
셋째, 공공부문(공무원연금) 개혁이다. 지난해 공공기관 과다 부채의 주범으로 공공기관노조들을 매도했던 정부는 올해 2단계 정상화 조치를 통해 연봉제의 전면 확대, 저성과자 퇴출제도의 도입을 통해 공공기관의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발표하였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공공기관 노사관계의 갈등은 예정된 수순이다. 한편 정부의 공공부문 개혁의 칼날은 공무원연금을 정조준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국민연금에 비해 과도한 연금혜택이라는 정부 주장에 박수를 보내다가, 나는 노후에 얼마를 받을 수 있나를 되돌아보았다. 정부의 군사작전식 연금개혁 추진은 공무원노조의 반발을 가져왔고, 국회에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대타협기구’를 구성하여 4월 말까지 논의하기로 합의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 논의의 결말을 예단하기 쉽지 않지만 현재 수준보다 부담금은 높이고, 연금급여율을 낮추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싸움의 성패는 공무원과 일반 국민이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를 공적연금 정상화 투쟁으로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공무원노조 스스로 현 공무원연금 제도의 문제점-예컨대 공무원연금의 소득 상한선 축소, 하위직의 생활임금 및 노후생활 보장-을 제시하는 한편 국민연금을 정상화하는 싸움을 전개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1998년 1월과 2007년 7월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어 소득대체율(재직 때 얻는 소득 대비 퇴직 뒤 받는 연금의 비율)이 70%에서 60%로, 다시 40%까지 낮아졌다. 공공과 민간부문의 연대 성사 여부가 상반기 노사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노사관계 핵심 이슈 된 비정규직 문제
넷째, 비정규직 문제이다. 지난 2∼3년간 비정규직, 간접고용노동자의 노조건설 및 투쟁의 확대로 노사관계의 핵심 이슈는 비정규직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통신·케이블서비스산업과 공공서비스부문의 일부 모범 사례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간접고용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의 확산은 아직 요원한 상황이다. 한편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는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노조의 차별시정 신청대리권 보장, 철도·항공·선박 등 생명·안전 핵심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 제한 등 일부 진전된 보호대책이 포함되어 있으나, 비정규직을 더 양산하는 독소조항을 곳곳에 포함하고 있다. ‘장그래 죽이기’법으로 회자되는 비정규직 사용기간(35세 이상)의 4년 연장과 고령자(55세 이상) 및 관리직·전문직 파견업종 전면 확대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상시지속적 일자리의 정규직화 원칙, 간접고용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사용자에 대한 공동 사용자책임의 부과 등 법제도적 개선과 함께 원하청 노조 간 계급 연대를 창출해야 한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간접고용 규제, 불법파견에 대한 근로감독 강화 또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과제임은 물론이다.  
 
답은 다시 노동운동 혁신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혁신이다. 무릇 정세를 추동하는 힘은 주체 역량이다. 바깥 상황의 어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 내부의 역량이다. 노동조합의 힘을 가늠하는 노조조직률은 2010년 9.8%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2013년 10.3%로 점차 상승하는 추세이다. 양대노총은 투쟁과 교섭전략에 있어 차이가 분명하나, 공공부문의 연대가 제조부문으로 확대되는 등 어느 때보다 조직 간 연대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새로운 변화는 민주노총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직선제 선거를 통해 한상균 집행부가 출범하였고, 2월12일 제61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4월 총파업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투쟁을 통해 현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다만, 지도부의 결의가 산하 조직의 투쟁동력으로 뒷받침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하루 파업도 쉽지 않아 경고파업 수준일 것으로 보이는데, 과거처럼 말만 앞선 ‘뻥 파업’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고 볼 일이다. 어쨌든 변화를 주도해야 할 노동조합운동에 있어 관건은 조직 및 투쟁전략의 재정립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의 지향점이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에 있었으나 결과는 실망스럽다. 산별노조로 전환한 지 10년이 넘었으나 산별교섭은 성사되지 않고 있으며, 계급연대는 실종되었다. 주요 대기업과 공공부문노조들은 사업장의 울타리에 갇혀있다. 정치세력화의 목표는 진보정당의 분열과 갈등으로 붕괴하였고, 새로운 꽃을 피울 싹은 너무 취약하다. 관성화된 일상 활동과 조직운영을 벗어나지 않으면 조합원 대중의 관심을 투쟁의 중심으로 불러일으킬 수 없다.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정당성 확보는 물론, 사회적 고립도 벗어나기 힘들다.
 
2015년이 노동운동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의 시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87년 체제에 갇혀 정체할지의 여부는 노동의 준비 정도에 달려 있다. 노동조합운동의 성찰과 과감한 혁신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이유이다. “오래된 것은 죽어가고 있으나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과 노사관계에서 만들어야 할 새로움은 무엇일까? 노동조합운동은 이 물음에 답해야 하고, 거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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