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진보정치의 쟁점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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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의 전국순회 정치연설회  ▷ 민주노동당 강북을지구 ]

1. 2002년 진보정치를 둘러싼 정치적 조건

2002년 진보정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의 하나가 보수 양당 구조의 강화다. 이는 작년 10·25 재선거 후 뚜렷이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는 확고한 양당 구조 속에 진보정당이 휩쓸릴 가능성이 크다. 온갖 정치 사안과 선거관련 보도에서 진보정당이 철저히 배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다. 

진보정치를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신민주대연합론이다.  
무엇보다도 이회창의 당선 가능성이 민주대연합론의 꺼진 불씨를 되살릴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른바 민주당의 '쇄신'이 헛된 기대를 다시 갖게 할 위험성이 있다. 이미 '노무현 지지론'이 시민사회단체에 일정정도 혼란을 만들고 있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이회창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중 정서'를 빌미로 위력을 떨칠 것이다. 다만 과거와 다른 점은 이것이 민주진보진영 내의 조직적인 결정과 주장보다는 '대중적 정서'를 반영하는 형태로 민주당 안의 이른바 개혁파에 의해 혹은 대중 접촉면이 넓은 대중운동의 일선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개혁을 표방하는 다양한 정치세력화의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녹색당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녹색당 이외에도 개혁을 표방하는 유사 정치세력화의 움직임이 범민주진보진영의 단결을 훼손하고, 양심적이고 개혁적인 국민 층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나아가서는 보수정당 안의 분화로 또 다른 정당이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은 단일한 정당으로서 힘있는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두 개의 진보정당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운동권 내부에서는 그나마 두 정당의 차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외부에서 볼 때 차이를 알기란 어려우며, 이로 인해 대중에게 그 차이를 알릴 방법은 더욱 구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진보정당을 희화시키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선거에서 두 개의 진보정당으로 나뉘어 대응하는 상황을 대중에게 설명할 방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설사 설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는 지극히 어렵다. 

2. 2002년 진보정치의 주요 쟁점

2002년 진보정치의 가장 큰 쟁점은 양대 선거다. 양대 선거는 일반적인 선거의 의미를 넘어선다. 특히 이번 대선은 과거의 정권교체기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수십 년 동안 한국의 정치를 지배해 온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2002년은 권력교체기다.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는 그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대선은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재편 과정을 정치적으로 매듭짓는 계기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2002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로의 편입을 마무리하는 시기면서, 남북관계가 기로에 선 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재편이 선거국면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정치적으로 전개되고 매듭지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쟁점은 민중생존권의 파괴와 민족적 긴장, 그리고 이에 대한 투쟁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지배세력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이 갈수록 처참해지고 있다. 공기업의 사기업화, 해외매각과 구조조정, 대량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쌀시장 개방과 농가파탄, 월드컵을 이유로 빈민탄압을 비롯해, 여성, 교육, 환경 등 사회 전반이 신자유주의의 혹심한 희생양이 되고 있다. 또한 아프간전쟁 이후 미국은 MD정책의 연장선에서 한반도에 최첨단무기를 배치하는 등 다시금 전쟁의 먹구름을 몰아오고 있다. 

세 번째 쟁점은 진보정치대통합의 실현이다. 민주노동당은 전반적 재편기를 맞은 한국 사회에 총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주진보진영의 광범위하고 단일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재창당 방침을 정했다. 그리고 이를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지난 12월12일 중앙위원회에서 재창당 방침을 결정했다. ① 민주노동당은 민주진보진영을 중심으로 하여 광범위한 정치단체·사회단체·진보적 인사를 포괄하는 재창당에 실질적으로 나설 것임을 다시 확인한다. ② 사회당과의 통합을 적극 추진한다. ③ 2001년 12월부터 전당 차원에서 재창당 사업에 박차를 가한 후, 2002년 1월말에 재창당 시점을 결정한다. ④ 재창당을 추진함에 있어 당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열린 자세로 임한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전국연합, 한총련 등 주요 단체와 긴밀한 논의를 거쳐 진보정당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고, 사회당과의 대표 회담 등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한 직접적인 노력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곧 주요단체 대표단이 함께 전국을 순회하면서 진보정당으로의 참여를 촉구하는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3. 2002년 진보정치의 주요 과제와 방향

1) 제3의 정치세력 정립과 '진보 대 보수' 구도 형성

2002년 대선을 통해 민주진보진영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3위를 다투는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만약 권력재편기에 민주진보진영이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세력이 되지 못한다면 향후 오랫동안 한국 정치는 다시 보수정치만의 놀음판으로 굳어질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정치상황에 민주진보진영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2002년은 보수정치에 기대려는 군소정치세력이 등장하는 장이 될 것이다. 민주진보진영을 제3의 정치세력으로 정립하는 문제는 장기적으로도 진보진영의 정치적 발판을 놓는 중요한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진보 대 보수' 구도 형성을 위한 과감한 시도가 있어야 한다. 3위를 다툴 정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보정치세력의 대선 출마가 하나의 '변수'가 되어야 한다. 지난 몇 번의 대선과 같이 보수정당들의 일방적인 구도에 끌려가거나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거나, 단순히 진보적인 구호에 머무르는 방식이라면 희망을 걸기 어렵다. 물론 2002년에 전체의 정치적 대립구도를 '진보 대 보수'로 당장 바꾸어내는 것은 어렵고, 보다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차적인 지위라 하더라도 '진보 대 보수' 구도가 살아야 보수 양당에 이어 진보정당이 제3의 정치세력으로 확고히 설 수 있다. 

2) 진보정치 대통합, 지방선거 공동대응

진보정당이 권력재편기에 '진보 대 보수' 구도를 일정하게 형성하며 대중 정치세력으로 서기 위해서는 누가 봐도 민주진보진영 전체가 함께 하는 대응을 해야 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는 확고한 양당 구조에 진보정당이 가려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지방선거와 대선에 진보진영이 단일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민중에게 다시 한번 절망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진보정치세력의 대통합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실제로 대통합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특히 '두개 이상의 진보정당'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는 이른바 '노동자계급정당론'은 슬기롭게 극복해야 할 문제다. 노동자계급정당이라 하면 노동자계급만으로 구성된 정당일리는 만무하고 결국은 내용이 문제일 것이다. 단일한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이냐, 아니면 현실운동의 과제를 중심으로 하여 변혁적인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력까지를 포함하는 정당이냐의 구분일 것이다. 진보정치세력 대통합의 문제의식은 현재의 상황에서 우선 단일한 이념정당이 설 수 있는 정치적 대중적 토양을 만드는 일에 힘을 모으는 데 있다. 때문에 독자 정당으로서보다는 진보정치세력 통합정당의 활동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선거와 대선에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와 공동대응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민주노동당은 중앙위원회에서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중요한 결정을 했다. 지방선거 공동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후보를 내고자 하는 민주진보진영 단체와 공동명의 사용, 공동 정책, 후보조정 등 다양한 선거연합전술에 적극 임한다는 것이다. 또한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를 위해 개방적인 예비선거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나아가 대선에서 진보진영의 단일 후보를 내기 위해 개방 예비경선제를 하기로 했다. 이제 단일한 대응과 공동대응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각 주체의 능동적인 결단과 실천이 필요하다. 


[ 2000년 1월30일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양대 선거가 있는 2002년은 민주노동당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 출처: 민주노동당 강북을지구 ]

3) 진보정치의 혁신

신자유주의 공세와 민중생존권의 파괴, 남북관계의 악화와 전쟁 위협이라는 엄중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진보진영의 총체적인 대응 태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진보진영이 당과 전선, 대중조직으로의 신속한 재편을 이루어내고, 이에 근거한 강력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계급별·계층별 요구 투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한계와 관성을 넘어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계급·계층에 가해지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총체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변화하는 조건에 능동적으로 접근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민중의 중심성을 지키면서도 여성, 환경, 인권 등의 문제를 포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그간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로 형성된 '노동'에 더하여 녹색정당, 여성정당, 평화·통일정당 영역까지 적극 나아가야 한다. 

또한 진보운동 스스로 국가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가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그런 국가를 민주화할 수 있다는 구상 자체가 불가능한 계획임은 20세기 후반 국가사회주의의 붕괴로 여실히 드러났다. 국가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치와 분권, 공동체를 확대해 나가는 데 진보정당이 앞장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현장과 지역의 대중 속에 뿌리내리는 진보정치가 필요하다. 진보정치가 가두의 선전 집단을 넘어서 실제의 대중 속에 뿌리내릴 때 비로소 대안 정치세력으로 설 수 있다. 지역에서 일상 투쟁을 조직하는 일도 노동조합이 조합원 대중의 지지에 기초하지 않으면 한발도 전진하기 어려운 것처럼 주민과의 끈끈한 결합 없이는 대중 속의 진보정치도 허공의 메아리에 그치기 쉽다. 이는 진보정치가 선거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핵심적인 임무였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진정으로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진보정당이 '호민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현장에서는 조합주의를 넘어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진보정당의 기본 단위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당의 이름으로 직접 수행하는 지역사업 뿐만 아니라, 당과 형식적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친근함을 갖고 움직이는 지역의 주민사업 단위를 폭넓게 형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체를 대상으로 지방정치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지역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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