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7천만을 대표하는 새 국제노조조직 ITUC 건설 의의와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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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부터 3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제회의장(메센 젠트룸)에서 국제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ration, ITUC 이하 ‘국제노련’)이 창립식을 갖고 힘차게 출범했다. 이 창립식에는 세계 각국 노총을 대표하는 1천여명의 대의원을 비롯하여 1,700여명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참석했으며, 이를 통해 세계 154개국 306개 조직과 1억6천8백만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이 탄생했다. 창립식 하루 전인 10월31일에는 동구권 붕괴 이후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온 국제자유노련(ICFTU)과 현존 국제노동조직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세계노동자총연맹(WCL)이 같은 장소에서 각각 임시총회를 열고 조직해산을 결의했다. 즉 양 조직이 통합을 결의함으로써 국제노련(ITUC)이 창립된 것이다. 

국제노동조합운동 분열과 통합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유럽, 미국, 소련 등 연합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노동조합 대표들이 파리에서 세계노동조합회의를 개최하고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신식민주의에 대한 반대와 사회진보, 민족독립, 평화수호를 슬로건으로 내걸며 세계노련(World Federation of Trade Unions, WFTU)을 창립했다. 이는 2차 대전 이전에 사상과 이념에 따라 분열을 거듭했던 국제노동조합운동이 통합을 이루게 됐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좌우냉전체제가 구축되면서 세계노련은 이념에 따라 또다시 분열을 맞게 되었다. 

사실 세계노련은 창립 직후부터 정치이념과 국제산별노련(ITS) 문제 등으로 반공주의 조직과 공산주의 조직들 간에 대립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미국 정부의 유럽부흥계획인 마샬플랜에 대한 찬반으로 내부갈등이 더욱 첨예해지면서, 급기야는 영국(TUC)과 미국(CIO)을 비롯한 서유럽의 조직들이 1949년 WFTU를 탈퇴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런던에서 51개국 67개 노총과 4,800만명 조합원을 대표하는 국제자유노련(International Confederation of Free Trade Unions, ICFTU)이 출범했다. 국제노동조합운동은 통합된 지 불과 4년 만에 이념적 차이에 따라 또 다시 분열되고 만 것이다. 

그 후 WFTU와 ICFTU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상호대립하면서 국제노동조합운동을 양분해 왔다. 그러다가 ICFTU는 1960년대 말 유럽을 휩쓴 진보적 지식인 및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반공주의를 청산하고 사회적 파트너십에 기초한 사민주의 노선을 추구하면서 성장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WFTU는 특히 1980년대 말에 소련과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가맹조직의 대거 이탈을 맞게 되었고, ICFTU와의 조직적인 격차는 갈수록 뚜렷해졌다. 앞에서 언급한 해산총회에서 보고된 ICFTU의 조직규모는 150개국 231개 조직에 조합원 1억5천만명으로서, 사실상 최대 조직으로서 국제노동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세계노동총연맹(World Confederation of Labour, WCL)은 1920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서유럽 및 라틴아메리카의 기독교계열 노동조합들이 만든 국제조직, 국제기독노조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Christian Trade Unions. IFCTU)을 그 전신으로 하고 있다. 이 조직이 유럽의 울타리와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범세계적 노조운동으로 발전하고자 1968년 명칭에서 기독교를 삭제하면서 WCL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비사회주의, 반공산주의 기조는 WCL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WCL은 아프리카와 남미국가에 상대적으로 많은 가맹조직과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ICFTU와 달리 조직 내에서 유럽 또는 서구의 거대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에 따라 재정기반이 열악하여 로마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교회로부터의 재정지원에 어느 정도 의존했고, 때문에 영향력과 활동에 있어서 일정한 제약이 있었다. 

1980년대 말 소련의 몰락으로 기독교 노동조합운동의 중요한 터전이었던 동유럽 지역이 개방되면서 세계노동총연맹은 조직 확대의 계기를 맞았다. 그러나 WFTU를 탈퇴한 동유럽 국가의 주요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ICFTU에 가입함으로써 WCL에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반공산주의 기조 속에서 공조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던 ICFTU와 WCL 사이에 긴장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특히 유럽과 남미에서 심각했으며, 질시와 반목이 끊이지 않고 불거졌다. 때문에 두 조직은 계속해서 ‘단결’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지만, 그 내용과 방향에서는 늘 이견이 존재했다. 

2001년에 발표된 조직현황에 의하면 WCL은 아프리카와 남미를 중심으로 116개국 144개 조직의 2천6백만명 조합원을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ICFTU와 통합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WCL의 실제 조직현황은 이보다 훨씬 적어서, 75개국 90개 조직에 조합원은 950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ICFTU와 WCL의 통합논의 경과와 쟁점

ICFTU와 WCL의 통합은 사실 오랜 역사를 지닌 문제다. 1949년 미국과 서유럽 노총들의 주도로 ICFTU가 창설될 당시에도 기독교 노동조합들이 참여를 요청받기도 했다. WCL의 전신인 IFCTU는 당시 노동조합운동의 다원주의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냉전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노동조합운동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합류를 거부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WCL이 종교적 색채를 걷어내면서 양 조직의 이념과 정책이 유사해진 데다가, 1974년에 WCL의 유럽지역 가맹조직들이 ICFTU 가맹조직들이 창설한 유럽노련(ETUC)에 가입하면서 통합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1980년대 말에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WFTU를 탈퇴한 동유럽과 남미지역 조직들의 가맹을 둘러싸고 ICFTU와 WCL간에 경쟁과 갈등이 생겨나면서 양 조직 통합논의는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후 ICFTU와 WCL은 ETUC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 노동조합자문위원회(OECD-TUAC), 국제노동기구(ILO), 세계사회포럼(WSF) 등에서 협력을 강화해왔다. 그러는 가운데 2000년 양조직 지도부 간에 통합논의가 시작된 데 이어, 2003년부터는 양조직의 집행기구 단위에서도 통합문제가 보고·논의 되었다. 

이번에도 ICFTU와 WCL의 통합을 추진은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통합조직의 기조와 원칙, 정책과 조직 등 제반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협상이 진행되면서 적지 않은 논란과 쟁점이 제기되었다. 첫째, 국제노련은 단순히 기존조직들이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 통합을 통해 새롭게 창설되는 것, 즉 ICFTU와 WCL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창설되는 조직이라는 원칙이 확인됐다. 이와 관련 WCL이 적극 제기했던 다원주의(pluralism) 원칙에 대해서 일부 ICFTU 가맹조직들은 이것이 새로운 조직 내에서 과거 WCL 조직들의 블록형성을 통한 분파적 활동을 정당화할 수 있다며 비판했다. 

둘째, WCL이 갖고 있던 참관조직(Associated Membership)제도를 ITUC에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ICFTU 쪽에서는 참관조직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문제제기와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논의 결과 망명조직들처럼 ITUC에 당장 가맹하기 어려운 조직들을 포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이를 받아들이되, 정기적인 심사를 통해서 가맹·비가맹조직으로 정리해나가기로 했다. 이와 함께 ICFTU 가맹조직들은 WCL의 기존 조직 가운데 실체가 없는 유령조직들이 적지 않고 조직 규모도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새로운 조직의 지도부 선출이나 집행기구 의석배정에 있어서 “맹비를 납부한 조합원수”라는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ICFTU와 WCL의 통합과정에는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으며, 양조직 모두 통합에 대해 소극적,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가맹조직들의 반발로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에 접어들면서 양조직의 통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 결과 2004년 말에 일본에서 개최된 ICFTU 제18차 세계대회에서 WCL과의 조직통합이 결의된 데 이어, WCL도 지난해 11월 말에 브뤼셀에서 개최된 제26차 세계대회에서 ICFTU와의 조직통합을 정식으로 결의하였고, 이번에 비엔나에서 그 결실을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새로운 국제노동조합연맹의 현황과 과제

ITUC의 최고의결기구인 세계총회는 4년마다 개최된다. 대의원 배정은 상대적으로 소규모 조직이 많은 WCL의 요구에 의해 규모가 작은 조직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금번 창립총회에는 ICFTU 가맹조직에 787명의 대의원이, WCL 가맹조직에 157명의 대의원이 각각 배정되어 총 944명의 대의원이 참석하였다. 창립총회에서는 ITUC의 규약(Constitution) 및 강령(Programme)을 채택했고, 단독 추대된 가이 라이더(Guy Ryder) ICFTU 사무총장을 초대 사무총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ITUC의 최고집행기구는 78명(지역별 배정에 의해 선출되는 70명, 여성위원회 대표 6명, 청년위원회 대표 2명)으로 구성된 일반이사회(General Council)로서 세계총회 중간년도에 매년 1회 이상 개최되어 일상적인 사업들을 심의, 의결하게 된다. 지역별로 배정된 70명의 일반이사회 위원은 총회에서 지역별 전형방식에 의해 일괄적으로 선출하였는데, 금번의 창립총회에서는 기존의 ICFTU 조직에 50석을 배정하였고 ICFTU에 비해 조직규모가 10분의 1에 불과한 WCL 조직에 15석, 신규 가맹조직 몫으로 5석이 각각 배정되었다. 

아시아 지역에는 기존 ICFTU 조직에 13석, WCL 조직에 2석 등 모두 15석이 배정되었다. 창립대회가 폐막된 직후인 11월3일 오후에 개최된 일반이사회는 샤란 버로우(Sharan Burrow) 호주노총(ACTU) 및 ICFTU 위원장을 초대 위원장으로, 미하엘 좀머(Michael Sommer) 독일노총(DGB) 위원장과 룩 코트빅(Luc Cortebeeck) 벨기에 기독교노총(CSC) 위원장을 부위원장으로 각각 선출함으로써 지도부구성을 완료하였다. 

한편, ICFTU와 WCL은 각각 대륙별 지역기구를 두고 있었는데, 금번에 양조직이 통합하여 ITUC를 창립하면서 각 지역조직들도 향후 1년 이내에 통합작업을 완료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를 들면, ICFTU의 지역조직들은 재정의 대부분을 본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재정집행과정이 상대적으로 투명한 반면, WCL의 지역조직들은 본부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적이다. 이런 구조를 한 조직 안에 소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아시아 지역의 경우에는 ICFTU 아태지역기구(Asia Pacific Regional Office)와 WCL의 아시아지역기구인 BATU(Brotherhood of Asian Trade Unionists) 간에 조직통합을 위한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으며, 예정대로라면 내년 10월경에 인도에서 통합대회가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노동운동에서 각국 노총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국제조직과 각국의 산별노조들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국제산별노련 사이의 관계는 오랫동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금번 ITUC 창립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가장 첨예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는데, 논란 끝에 양자 간에 조직적인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상호 협력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또한 ICFTU와 WCL의 통합논의 과정에서는 산업별로 하나의 조직만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산업별 국제조직의 통합문제는 ICFTU와 WCL의 통합과는 별개의 사안인 만큼, ICFTU 계열의 10개 국제산업별조직(Global Union Federations, GUFs)과 WCL 계열의 8개 국제산별조직(International Trade Federation, ITFs)의 향후 통합과정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노련 출범이 한국 노동운동에게 주는 시사점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유럽 노동운동진영의 극심했던 이념대립에 이어 1949년 ICFTU가 설립되면서, 20세기의 국제노동조합운동은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 등 정치이념과 종교에 따른 분열과 대립으로 특징된다. 하지만 그동안 WFTU, ICFTU, WCL 이라는 차이가 뚜렷한 3개의 조직으로 분열되었던 국제노동조합운동의 판도는 이미 1960년대 말에 WCL이 종교적인 색채를 완화하고 ICFTU가 종전의 반공주의를 폐기하면서 각 조직간 이념적 차이가 좁혀진 데 이어, 1989년 소련에서부터 시작된 동구권의 몰락으로 WFTU 가맹조직들이 대거 ICFTU와 WCL로 옮겨가는 등 변화를 지속해왔다. 그런 가운데 이뤄진 ICFTU와 WCL의 통합은 국제노동운동의 변화를 더욱 가속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새로 출범한 ITUC가 날로 거세지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서기 위하여 중장기적으로는 WFTU와의 조직통합을 통한 노동운동 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고, WFTU 내에서도 조직을 해산하고 새로운 국제노동조직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제노동운동의 대통합이 생각보다는 빨리 가시화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ICFTU와 WCL이 많은 논란과 어려움에도 통합을 결정하게 된 데는 급속하게 확산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기 위한 국제노동운동의 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즉, 노동자 단결권과 노동기본권 약화를 통해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노동조합운동의 침체와 약화현상이 세계적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노동조합운동의 통일단결을 통한 역량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90년대 들어 국제교원노련(EI, 1993년),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 1995년), 국제통신사무금융노련(UNI, 2000년) 등의 건설에서 보듯 기존 2개 이상의 국제산별조직들이 합병을 통해 거대조직으로 재편되고 있는 흐름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국제노동운동에서 조직 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상호 협력과 조직적 통합을 추진해나가고 있지만,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그러한 국제노동운동의 흐름에서 아직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노동조직이 양분된 지가 10여년이 지났건만 재통합을 위한 노력은 고사하고 최근 노사관계로드맵을 둘러싸고 양노총은 그동안 느슨하게 유지해오던 공조마저 파기되어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으며, 제3노총 출범도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양노총은 금번에 ICFTU와 WCL의 통합으로 이루어진 ITUC 창립총회에서도 상대방 조직에 대한 비판에 몰두하여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국제사회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급기야는 일반이사회 선출과정에서 양노총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여 공석으로 두는 뼈아픈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요 통합을 전략으로 하고 있는 국제노동운동의 흐름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념과 정책에 따라 분열을 거듭해왔으나 자본의 무차별적인 공세 앞에서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통합과 단결을 도모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우리나라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하루빨리 깨닫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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