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없는 오늘은 인류 없는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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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재앙극 『투모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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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새를 싫어한다. 사실 싫어하기보다는 무서워한다. 갑자기 새들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히치콕 감독의 ‘새’라는 영화를 본 이후부터다. 10살쯤 됐던 때였나? 주말명화극장에서 ‘그날 이후(The Day After)’라는 영화를 방송했다.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인류문명이 파괴되고 난 후,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스러운 생존을 그린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본 이후로 나는 ‘반핵주의자’가 됐다. 겨우 10살에 무슨 반핵주의자냐 말해도 사실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 세상에 핵발전소, 핵폭탄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게 바로 영상의 힘이다. 문자로 읽는 것보다 사진을 보는 것이 더 생생하고, 사진보다는 영상이 더 실감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투모로우’의 ‘환경파괴 공포효과’는 엄청나다.

실감나게 시각화된 환경 없는 발전의 끔찍한 결과

이 영화는 미 국방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멕시코만 해류의 차단으로 북반구가 급속히 냉각, 15년 안에 전지구적인 기아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정한 것과 흡사한 주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고(古)기후학자인 잭 홀 교수는 남극에서 빙하채취를 통해, 지구 온난화로 인류에게 빙하기가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미국의 부통령은 “환경만큼이나 경제도 위기”라며 코웃음을 친다. 그러나 북극에서 거대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온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지구의 북반구에는 엄청난 속도로 빙하기가 찾아온다. 잭 홀 교수는 정부에 미국 중부 이남의 주민들을 멕시코로 대피시키길 권유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폭풍과 추위에 갇힌 아들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에머리히 감독은 이전의 작품인 ‘인디펜던스 데이’, ‘고질라’에서 주장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크기”라며 화면 가득 스펙타클한 장면을 가득 펼쳐놓는다. 유명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 ‘투모로우’는 1억2000만달러(약 1440억원)에 달하는 제작비의 대부분을 재앙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특수효과에 쏟아 부었다. 그 덕분에 21세기 최초의 초대형 재난영화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영화는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도 뭄바이에서는 눈이 쏟아지고, 일본에서는 수박 크기 만한 우박이 쏟아진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허리케인이 10여개나 발생해 고층 빌딩들을 부셔버리고, 북유럽에서는 비행하던 헬리콥터에 연료가 얼어버려 추락하고 만다. 가장 압권은 폭우로 물에 잠긴 뉴욕에 거대한 해일이 몰려와 온 거리를 쓸어버리는 장면. 2백만 리터의 물을 쏟아 부었다는 이 장면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자유의 여인상과 높게 솟은 빌딩을 덮치는 장면의 충격은 대단하다. 1초에 10도씩 온도가 떨어지며 성조기가 바람에 펄럭이다 하얗게 성에가 끼며 얼어버리고, 거대한 빌딩이 꼭대기부터 삽시간에 얼어붙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다. 덕분에 관객의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내일(tomorrow)’은 부시를 싫어한다 

이 영화는 상영 전부터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그 중의 하나가 부시정권에 대한 비판이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 에머리히 감독의 전작에서 전투기를 몰고 나가 외계인을 무찌르던 ‘대통령’이 이번 영화에서는 허무하게도 한파에 얼어죽고 만다.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노라고 큰소리치던 부통령은 남의 나라 난민텐트에서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기자회견을 한다. 불법 이민을 통제하던 멕시코와의 국경은 미국 난민으로 가득 차고, 제3세계의 채무를 탕감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따뜻한 남쪽나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현실을 뒤집어놓은 듯한 이 설정이 반드시 영화적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은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각 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규제하자는 ‘도쿄의정서’를 비준하는 것을 거부했다. 때문에 이 영화가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환경에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미국의 오만을 통렬히 비판하는 영화가 된 것이다. 반(反)부시단체에서는 이 영화보기 운동을 펼치고 있고, 민주당 외곽단체에서 는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과 영화배우 팀 로빈슨, 그리고 과학자들을 초청해 시사회를 여는 등 이 영화의 흥행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까지 등장하고 있다.



뻔한 스토리, 그러나 생생한 교훈

과학자들은 ‘투모로우’처럼 급작스럽게 기후가 변해 빙하기가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캐나다 빅토리아대학의 앤드루 위버 교수는 과학잡지 '사이언스'에서 기후에 대한 연구 결과 지구 온난화가 새로운 빙하기의 도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또 그는 1억2천500만 달러가 들어간 영화 ‘투모로우’의 예산이라면 “평생동안 내가 이끄는 연구팀 전체에 들어가는 돈의 10배는 족히 될 것”이라면서 “이 돈이라면 심지어 어떤 기후 변화 시나리오가 가장 개연성이 높은 지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어쨌건 이 영화가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지금과 같이 환경을 도외시한 발전이 계속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인류가 받게 될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거칠고 뻔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지는 미덕은 그 교훈을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화 내용 중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나온다.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붙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다 알고 있듯이 인류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은 직지심경이다. 여간 무식한 게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항의해야 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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