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적 자주국방이 아니라 군비축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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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현대화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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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vil@peacekorea.org

한미동맹 재조정을 계기로 한국은 새로운 안보 환경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한마디로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주한미군의 안정적인 주둔과 한미동맹의 유지·강화를 위해서는 미국의 요구 사항을 적지 않게 수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몰고 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 미국의 요구사항 목록에는 용산기지 이전을 비롯한 주한미군 재배치 비용의 한국 부담, 한미동맹의 ‘지역적 역할' 강화, 한국 방어작전에서 한국군의 역할 확대, 한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등이 있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비용 부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강한데다가 후보지역으로 확정된 평택 주민들의 반발은 날로 커지고 있다. 또한 명확한 제한 규정을 두지 않고 한미동맹의 지역적 역할을 강화할 경우 한국은 불필요한 지역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적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리고 특히 한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여부는 미래의 동북아에서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곤혹스러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지난 2월17일 참여정부 들어 처음 열린 한미 4자 고위협의회. 왼쪽부터 라포트 사령관, 반기문 장관, 허버드 대사, 조영길 장관   - 출처: 통일뉴스 ]

곤혹스런 딜레마에 처한 한미동맹

그렇다고 이와 같은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한미동맹의 불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무현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 ‘협력적 자주국방'이다. 그런데 이 ’협력적 자주국방‘은 독립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 주한미군의 변형과 함께 한미동맹 현대화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협력적 자주국방을 통해 한국의 자주성이 증진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사실 힘들다. 더구나 군비증강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협력적 자주국방은 ‘돈 먹는 하마'처럼 국방비 증가를 불러와,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데 필요한 예산을 상당 부분 잠식하고 말 것이다.

주한미군은 육군의 비중을 줄이고 해·공군력과 정보력을 강화하고, 한국군이 미 육군의 역할을 대체하는 ‘한미동맹의 현대화'가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한국군은 육군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이러한 한국군의 재편은 군사력에 있어서 미국에 대한 종속을 심화시킬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미동맹이 대규모로 군비증강에 나서고 이에 따라 미국의 대북한 선제공격 능력이 강화될수록, 북한과 군사적 적대 관계 청산 및 군비축소, 그리고 평화협정 체결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의 내용을 면밀히 보면, 현재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가 21세기 새로운 안보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을 비롯한 신안보 전략 속에 1차적인 고려 대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깡패 국가 북한을 염두에 둔 부시 독트린

부시 독트린은 이른바 '예방전쟁' 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테러 집단이나 깡패 국가에 먼저 행동할 수 있다는 ‘선제공격론’과 “어느 국가가 미국과 대등해지려는 것을 사전에 좌절시킨다”는 ‘수위(primacy) 전략’을 두 축으로 삼고 있다. 그 중 전자가 주로 부시 행정부가 지목한 “악의 축” 국가들을, 후자가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선제공격 전략’과 ‘수위 전략’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는 부시 독트린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이다. 부시 대통령이 2003년 11월25일 GPR 추진을 천명하면서, “냉전 해체 이후, 우리나라와 우방 및 동맹국들이 직면했던 (소련 등 공산국가의) 위협은 깡패 국가와 글로벌 테러리즘, 그리고 대량살상무기와 연계된 예상치 못한 위험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말한 사실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 의해 대표적인 ‘깡패 국가’이자 테러 지원국, 그리고 대량살상무기 확산의 주범으로 규정되어 온 북한이 미국의 GPR 구상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는 것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 새로운 불확실성 앞에 서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주한미군 재배치 구상을 “한반도 방어는 한국에게 맡기고 미국은 지역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친 평가다.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재배치’는 주한미군의 '변형' 가운데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근거 없이 보수언론 등을 통해 ‘안보공백론’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주한미군의 ‘변형’을 ‘감축’과 동일시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류이다. 

지난 3월31일 레온 라포테 주한미군 사령관이 미국 상원에서 증언한 내용을 보면 주한민군 재배치 구상의 본질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라포테 사령관은 이 증언에서 ‘주한미군의 변형(transformation of USFK)’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주한미군의 재편 방향으로 세 가지를 설명했다. 

첫째는 장비 현대화와 새로운 작전 개념 실행을 통해 전투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년 간에 걸쳐 110억달러를 투입해 해·공군력과 정보력, 그리고 미사일방어체제(MD) 등을 중심으로 주한미군의 군사력을 대폭 강화시키겠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또,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에 ‘대북한 선제공격 작전’을 포함시킨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둘째, 전력 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를 재정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의 해외 차출을 비롯한 ‘지역적 역할’ 강화가 핵심적인 내용으로 포함된다. 셋째, 지속적인 주둔을 위해 기지와 병력을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용산기지와 2사단의 후방 배치 및 일부 병력의 감축이 여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러한 방향으로 주한미군의 ‘변형’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미국은 북한의 보복 능력을 크게 약화시키면서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게 돼, 부시 독트린을 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군사적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전방 배치된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후방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주한미군이 북한의 장사정포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최신형인 PAC-3의 한국 및 일본 배치, 이지스함의 동해 배치,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지상요격체제 배치 등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이 이뤄지면, 북한의 탄도미사일도 상당 부분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MD 구상은 공격 작전을 통해 상대방의 미사일을 대부분 파괴하고 살아남은 미사일을 MD로 요격한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한반도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난 6월8일 평택청소년문화센터에서 열린 '파병철회! 미군기지 평택이전 저지를 위한 평택안성노동자 토론회'  - 출처:참세상 ]

군비축소가 자주국방이다

지금 노무현 정부에게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협력적 자주국방’과 ‘주한미군 변형’을 두 축으로 하는 한미동맹 현대화보다는 ‘군축’이 자주성을 증진시키고 안보를 튼튼히 하는데 더 효율적이고 핵심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군축을 단행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밀집도가 높고 군사적 경계태세가 강하다는 이유로 관철될 수 있었던 미국의 과도한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축소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반대로 이미 넘칠 만큼 군사력이 집중된 상황에서, 남한에 의해서든 북한에 의해서든 군사력이 추가로 강화되는 것은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 지독한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정한 자주국방도 공고한 평화체제의 구축도 ‘정치적 구호’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가 군축을 한다는 것은 “우리만 무장해제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대대적인 양적인 군축과 부분적인 질적 군비증강이 어우러질 때만이 주변 강대국을 상대로 한 ‘최소한의 자위력’을 확보할 수 있고, 숨통을 틀 수 있는 것이다. 

군축은 평화체제 시대의 ‘자주성 증진’에도 큰 의의가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해 가장 중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남북한 양측의 엄청난 군사력을 어떻게 관리해 ‘우발적인 충돌’을 방지하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단히 역설적으로 평화체제 관리 국면에서 남북한 양측의 과도한 군사력은 미국 등 주변 국가들의 개입 수준과 무장 수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에 군사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평화체제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안정적인 관리를 명분으로 미국 등 주변국가들이 개입하려고 할 것이다. ‘자위'를 명분으로 ’중무장‘한 상태로 말이다. 미국이 남북 평화체제의 관리자로 나서려고 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도 개입하려고 할 것이고, 일본 역시 자신의 지분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평화체제 시대의 한반도가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을 앞당기고 평화체제의 안정성과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군비증강에 의존하는 한미동맹 현대화는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즉, '국방'뿐만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 및 관리'에 있어서도, '자주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도 한반도 군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말이다.

평화체제 구축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

지금 한반도는 분명 중대한 갈림길에 들어서고 있다. 길을 잘못 들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방향을 잘 잡으면 20세기와는 전혀 다른 21세기를 열어갈 수도 있다. 불안과 기대, 기회와 도전이 공존하고 있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주한미군의 감축에 대해서 또 다른 군사력으로 메우겠다는 어설픈 자주국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한반도 군축과 평화체제 구축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만 진정한 자주국방과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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