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의 과거와 미래

섹션:

부 제목: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사교섭의 쟁점과 과제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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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5년 10월 15일 오후4시
○ 장소: 서울 마포구 공덕동 국민서관빌딩 105호  
○ 사회: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발표: 최병승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 
○ 토론: 김철식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전문연구원
○ 주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 후원: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한국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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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제122차 노동포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사교섭의 쟁점과 과제’를 시작하겠습니다. 발표를 위해 울산에서 오신 현대자동차의 최병승 조합원과 토론을 맡아주신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의 김철식 박사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우선 최병승 조합원의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최병승) 반갑습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 최병승입니다. 현대차가 2017년 말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2천여 명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기로 한 9월14일 잠정합의안이 최근 합의 직전까지 갔다가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됐고, 오늘은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이하 지회) 임원선거의 후보등록 마감일입니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의 갈무리는 새로 구성되는 집행부에 따라 그 방향이 정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발표자로 나서긴 했지만 지회의 투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좀 난감합니다. 각 투쟁마다의 쟁점이 워낙 많고, 아주 미세하게 설명해야 할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소 부족하겠지만 2010년도 대법원 판결 이후의 경과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의 세 시기
우선 불법파견 투쟁을 시기별로 나눠 설명하겠습니다. 2004년부터 투쟁을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12년차입니다. 이 기간을 거칠게 세 시기로 구분해보면, 1시기는 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하고,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2004~06년입니다. 2시기는 공백기 후 2010년 7월22일 대법원 판결, CTS 25일 점거 파업, 75일 양재동 본사상경투쟁, 296일 철탑농성, 희망버스 등이 진행됐던 2013년까지입니다. 마지막으로 3시기는 지회 5기 집행부 구성 이후 8.18합의, 9월18~19일 서울중앙지법 판결, 금속노조 점거농성, 9.14 잠정합의와 부결까지입니다. 
지난 9월14일 울산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사내하도급 관련 잠정합의안이 나왔습니다. 합의안이 부결되긴 했지만 9.14 합의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주장하며, 원청에 대해 직접 교섭 및 투쟁을 전개한 2003년부터의 초기 ‘사내하청 운동’의 한 시기를 마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지회의 불법파견 투쟁을 사내하청 운동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합의로 인해 사내하청 운동이 원청에 직접 교섭과 사용자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이를 형식적으로 요구하고, 운동 자체가 제도적인 노조운동으로 변해가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것 같습니다. 아울러 이번 현대차 합의를 끝으로 사내하청 노조의 존립 방식은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나 희망연대노조처럼 일정 정도의 조직 구조를 통해 사내하청 노사 간의 안정적인 협의 구조와 제도화된 틀을 만들어 가는 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해봅니다. 즉 원청을 상대로 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격한 투쟁, 원청 노조와의 대립적인 투쟁의 한 시대가 일정 정도 마감했다는 것입니다. 
 
1시기: 노동부의 불법파견 인정
각각의 시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시기에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들은 처음으로 노동부에 불법파견에 대한 진정을 합니다. 2001년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 2004년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조가 불법파견 투쟁을 통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뤄낸 바 있습니다. 당시 금속연맹에서는 500인 이하 사업장에 대한 불법파견 릴레이 진정을 사업계획으로 내세웠고, 이에 따라 현대차지회도 진정을 넣었습니다. 
2004년도 집단진정에서 그나마 불법파견 투쟁의 고리를 갖고 간 사례는 현대차지회가 유일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단진정을 넣는 과정에서 논란도 있었습니다. 지회는 진정을 빨리 넣자는 입장이었고, 현대차지부는 진정을 넣었을 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문제가 생기니까 준비를 한 뒤 진정을 넣자며 서로 입장이 갈렸습니다. 결국 비정규직은 먼저 진정을 넣어버렸고, 현대차지부는 이를 불편해 했습니다. 노동조합 건설 초기부터 정규직노조와 갈등이 있었는데 이 경우도 큰 갈등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이 진정한 현대차 울산‧아산 21개 업체 모두(총 22개 업체를 진정했고, 모비스 1개 업체는 기각됨)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받자, 정규직노조도 127개 업체에 대해 진정을 넣었습니다. 노동부는 2004년 11월 전주공장을 시작으로, 현대차 127개 업체(울산 101개, 전주 14개, 아산 12개)의 9,234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임을 인정했습니다. 
당시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공장에 각각 노조가 있었습니다. 전주공장의 노조가 2005년에 마지막으로 만들어졌죠. 이 3개 노조가 어떻게 투쟁을 할 것인가에 대해 내부 논의를 하다가 울산공장이 2005년 1월18일 제일 먼저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원래 노조의 계획은 잔업거부였는데, 5공장 동지들이 중심이 되어 작업을 하지 말자고 선동했습니다. 당시 조합원, 비조합원 모두 있었는데 이 호소에 비정규 노동자들이 먼저 동의하면서 5공장의 상황은 자연스럽게 파업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1~3공장은 노조의 전체 지침, 방침에 따라 잔업 거부를 시작했고요. 뒤돌아보니 당시 저희가 굉장히 순진했더라고요. 투쟁계획에 대해 논의할 때 ‘3일 정도 투쟁하면 회사가 어떤 반응이라도 보이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고, 실제 3일 정도 투쟁했습니다. 회사가 투쟁 참여 전원을 징계하겠다며 반응을 보이긴 했죠. 
그런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쟁에 돌입한 탓에 회사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았고, 집단 파업한 5공장을 제외하고는 대오가 떨어져나가 결국에는 전체가 복귀했습니다. 5공장의 파업농성과 관련해서는 복귀 여부를 놓고 내부 논쟁이 이뤄졌습니다. 당시 집행부는 유지, 저는 복귀를 주장했는데, 유지로 결론이 나서 5공장의 동지들은 9월쯤까지 농성을 이어갔습니다. 이 파업으로 인해 2005년 2월에 5공장 89명이 해고됐고, 5공장을 제외한 공장에서는 핵심간부들이 모두 해고됐습니다. 2005년 1월 투쟁으로 총 101명이 해고됐습니다. 그리고 3~4월 무렵 89명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그게 현대차 불법파견 소송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류기혁 열사가 자결했는데, 현대차노조 내부에서는 열사로 인정할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비정규직노조는 철탑농성도 진행했지만 태풍 나비로 인해 22시간 만에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현대차노조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없이 2005년 임금·단체협상 투쟁에서 불법파견 문제에 관한 특별교섭에 합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임단투 종료 한 달 내에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당시 노조 3자가 특별교섭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별도 회의록을 만들었고, 10월 중순에 사실상 첫 특별교섭이 개최됐습니다. 특별교섭은 정규직 노사의 별도회의록을 통해 제도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2005년 투쟁은 이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지회가 처음으로 라인을 세우다
이후 지회는 노조 임원선거에 돌입했고 2기 집행부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2기 집행부의 사무국장을 맡았습니다. 2기 집행부의 고민은 2005년 투쟁을 바탕으로 합법적인 쟁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회는 2005년 투쟁까지만 해도 법이 정한 형태의 쟁의절차를 밟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2003년에 128명의 발기인으로 지회가 출범했는데, 노조에 가입하면 탄압을 워낙 심하게 받으니 조합원을 공개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간간부, 대의원이 없었죠. 
특히 2005년 투쟁 당시 조합원은 250명이었는데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은 180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조합원 총회 방식에 대해 논의하다가, 전체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으니 전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쟁의 찬반투표를 하자고 했습니다. 법이 정한 쟁의절차, 조정절차를 사실상 밟지 않은 거죠. 그래서 2006년에는 노조, 조합원이 파업에 따른 불법 시비로 위축된다는 판단을 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투쟁하기 위해 쟁의조정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러려면 노조의 기본 역할인 임단투를 해야 했기에 지회는 원·하청을 상대로 직접 임단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차지부에 비정규직에 대한 별도 요구안을 삭제해달라고 요구했죠. 이후 지회는 48개 사내하청 업체를 대상으로 교섭을 진행했으며, 교섭의 방식은 개별업체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지회는 정상적인 쟁의절차를 밟고 조합원 투표를 통해 노동위원회가 인정하는 합법적인 쟁의권을 획득했습니다. 이 쟁의권을 갖고 처음으로 집단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48개 업체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쟁의권이 순차적으로 나와서 쟁의권 확보업체부터 불법파견 정규직화 임단협 체결을 위한 파상파업을 전개해 2006년 7월 시작한 파업은 9월에 정점을 이뤘습니다.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조가 집단의 힘으로 라인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자동차 공장은 그 생산 특수성으로 인해 한 라인이 멈추면 전체가 멈춥니다. 그래서 일부 라인을 세우다가 2공장 전체를 세웠습니다. 2공장은 당시 잘나가던 차량인 싼타페를 생산하는 공장이었습니다. 그러자 원청이 처음으로 지회에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지회는 원청에 직접 교섭을 요구했는데, 결국에는 4자 특별교섭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직권조인 논란이 일어나면서 집행부가 사퇴를 하고,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비대위는 3일 만에 사퇴했고, 노조에 공백기가 생기자 대의원대회 소집지명권자를 인정받아서 대대 결정사항으로 조합원 총회를 진행했습니다. 합의안은 통과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부결되었습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라인을 세웠는데 합의안 자체가 너무 부족했다는 판단을 한거죠. 그래서 노조 선거에 들어갔고, 금속노조가 2006년에 산별전환을 했기에 1기 지회장을 뽑았습니다. 지회 1기 집행부는 해고자 복직안을 추가해서 총회에 이를 붙였고, 이것이 통과되어 2007년에 기본협약 수준의 안이 만들어졌습니다. 
 
2시기: 25일간의 CTS 점거 파업
그런데 이 2년간의 파업, 투쟁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은 탓에 노조에게는 새로운 투쟁을 할 힘이 없었습니다. 2007년부터는 그냥 노조가 유지되는 상태로 별다른 투쟁 없이 2년이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9년부터는 원청 노사가 실무교섭을 해서 안이 나오면, 현대차지부가 지회에게 이 안의 수용 여부를 묻는 식으로 협의구조가 바뀌었습니다. 지회가 투쟁을 하지 않으니 원청 노사가 지회와 얼굴을 맞대고 협의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운동이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내부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10년에는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3개 공장이 공동 요구를 걸고 투쟁할 것을 고민했습니다. 마침 그해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한 부당노동행위 사건에서 대법원이 원청을 노조법상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3지회는 이 판결에 근거해서 처음으로 공동 요구안을 만들고, 공동 교섭단을 구성해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요청 투쟁을 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7월22일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 파견계약이라고 판결했습니다. 갑작스러운 판결이었지만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회는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11월에 투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7월22일 판결 직후에는 전주에서 3지회 공동 쟁대위를 열고, 2가지를 결정했습니다. 모든 사내하청 업체와의 교섭 중단을 결정하고 어떤 협의도 하지 않을 것과 집단 조직화에 들어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집단 조직화를 통해 울산공장의 경우 조합원 수가 600명에서 1,800명으로 2005년 수준을 회복했습니다. 전주와 아산 역시 각각 350여 명, 300명 정도로 조합원이 늘었습니다.
이러한 지회의 투쟁에 회사는 폐업으로 맞섰습니다. 현대차는 핵심 사내하청 업체 3개에 대해 폐업 공고를 내고, 실제 1곳을 폐업했습니다. 지회는 파업으로 대응했고요. 시트공장에서 먼저 파업에 돌입했는데, 엄청난 수의 회사 관리자들이 동원되어 조합원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를 목도한 지회는 긴급대책으로 생산공정에 4시간 긴급 파업지침을 내렸고, 이 와중에 적극적인 파업을 고민했던 1공장 조합원들이 자신이 일하는 공정을 세우면 전체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006년 첫 파업에서도 손종현 부위원장이 자시공정(엔진데킹공정)을 세워서 라인이 처음으로 정지됐었습니다. 조합원들의 자발적 고민이 바로 1공장 동지들이 일하는 도어착탈(CTS) 공정이었고, 조합원들을 동원해 대체인력을 밀어낸 끝에 지회는 1공장의 라인을 세웠습니다. 라인이 서니까 이를 막기 위해 관리자들이 오고, 그러다 보니 노동자와 관리자가 뒤엉키고 몸싸움이 벌어지며 자연스럽게 CTS 공정이 점거된 것입니다. 
이처럼 CTS 점거 파업은 우연적인 계기로 시작되어 25일간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이 회사로부터 받은 자신들의 간식과 방한복을 농성장으로 보내주어 먹을거리와 방한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또한 조합원들이 자발적인 모금 운동을 벌여 2천만 원의 투쟁기금을 지회에 보내주었습니다. 당시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간의 갈등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우애를 통해 노동자는 하나이며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금속노조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 승리를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금속노조는 파업에 돌입하지 못했으며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야4당이 중재를 압박했고, 현대차지부는 연대단절을 선언하는 등 총체적 압박으로 인해 결국은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교섭을 진행하기로 하고, 조합원 총회를 통해 CTS 점검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점거 투쟁 결과 울산 공장에서만 9명의 조합원이 구속되고, 회사는 213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논란의 불씨가 된 현대차의 신규채용 안
이후 회사와의 교섭중단을 겪고 2차 파업을 준비하다가, 2011년 2월 조합비 횡령 사건으로 집행부가 사퇴했습니다. 2010년 CTS 점거파업 당시의 집행부였기에 모든 사람들이 큰 충격에 빠졌고 도덕적으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2차 파업은 당연히 중단되었죠. 집행부 사퇴에 따라 비대위를 구성, 지회임원 보궐선거를 진행했습니다. 오랜 기간 등록하는 후보가 없다가 장병윤, 이진환, 정용주 후보조가 단독 출마했는데, 정용주 후보의 비리의혹이 퍼지면서 단독후보가 낙선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누구도 책임을 지지 못하자, 임원이 없는 비대위의 상황이 14개월간 이어졌습니다. 25일이라는 거대한 점거 투쟁을 하고 난 뒤의 공백기로, 사실상 저희가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쳐버린 것입니다.
 
 
이후 2006년의 라인 점거 파업을 이끌었던 박현제 동지가 직권조인 문제에 대해 부족했다는 인정과 사과를 하고 2012년 4월 선거에 나와 당선되면서 3기 집행부가 구성됩니다. 반성과 성찰의 모범을 보인 거죠. 잘 할 거라는 믿음도 있었는데 자기반성까지 하니 지회의 지도력이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이 집행부의 기조는 2010년 파업 당시 8대 요구를 승계하고 투쟁으로 돌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현대차지부에서 소위 민주파 집행부가 당선되면서 특별교섭이 열리게 됐고, 여기서 8대 요구를 승계한 6대 요구안을 제시했습니다. 
이 요구안은 현대차지부와의 공동 합의 속에서 만들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교섭이 진행되는 가운데 회사가 2012년 8월 현대차지부와의 교섭장에서 처음으로 안을 제시했습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여 3천명을 신규채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차지부는 진전된 안이라며 합의를 주장했고, 지회는 현대차지부의 교섭장을 봉쇄하면서까지 이 안에 반대했습니다. 지회는 결국 현대차지부장으로부터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합의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 농성을 풀었습니다. 이후 재개된 특별교섭에서 회사는 3천명 신규채용 안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분노한 지회 조합원들은 8월20일 다시 생산을 멈추겠다며 1공장 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회사의 방어와 현대차지부의 중재에 따라 점거는 실패했고, 조합원들은 굉장히 위축되었습니다. 그러자 조합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모든 사내하청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맞느냐’, ‘회사 신규채용 안의 실익을 비조합원들이 받고 있는데 이런 구조는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면서 현장의 여론은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에 지회는 8월26일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요구안을 수정해 △사측의 신규채용 제시안을 폐기하고 특별교섭을 진행한다, △투쟁하는 조합원의 정규직 전환을 우선 쟁취한다는 등의 2가지 안을 결정했습니다. 이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대 ‘조합원 우선 전환’이라는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저는 확대간부회의를 지지했습니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단계적 정규직 전환을 수용한 것이라는 입장이었습니다. 반면 다른 입장의 동지들은 ‘우선 전환’은 조합원만 전환하는 것과 동일하다며, ‘학출’들이 이러한 논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후자의 주장이 맞았습니다. 조합원만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게 된 현실에 대해 오류를 인정하고, 반성합니다. 문제는 당시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는지, 대안은 무엇이어야 했는가 입니다. 이는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2012년 10월17일 저와 천의봉 당시 지회 사무국장이 철탑에서의 고공농성을 결정하고, 296일간 농성을 했습니다. 철탑농성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신규채용을 거부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며, 라인을 세우는 파상 파업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지회는 교섭력을 향상시켰고, 2013년 9월에 7일간의 노사 집중 교섭을 진행하였습니다. 집중교섭에서 지회는 △조합원이 배제되어서는 안 되고, △판결에 따른 근속의 100% 보장, △임금과 관련된 사안의 100% 보장 등 3가지는 포기할 수 없으며, 공정 재배치 또한 논의할 수 없다는 4가지 기본 방침을 내세웠습니다. 반면 회사는 지회가 수용할 만한 안을 내지 않아서 결국 집중교섭은 중단됐습니다. 그럼에도 지회는 여러 가지 양보안을 제시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안들이 2014년 8월18일 합의로 구체화된 겁니다. 정리하면 8.18 합의는 단순하게 그 해의 집행부가 진행한 것이 아니라, 2013년도 막바지 교섭에서의 내용들이 형식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2013년 집중교섭 중단 후 5기 집행부가 새롭게 구성되었습니다. 
 
3시기: 뜻밖의 판결과 8.18 합의
새 집행부는 투쟁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고민했고, 현대차지부에서는 현재의 이경훈 지부장이 당선되었습니다. 새 집행부 선출 이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비정규직 지회는 2014년 1월9일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논의했습니다. 지회는 선결 조건이 필요하다며 3대 조건을 냈고, 금속노조는 ‘조건 없는 교섭을 해야 한다’, 현대차지부는 ‘그러면 어떻게 교섭을 하느냐’며 주체 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이후 교섭 과정에서 울산지회는 ‘신규채용에서 조합원이 단 한명이라도 배제되면 더 이상 교섭을 할 수 없다’며 퇴장을 했고, 아산·전주공장 지회는 계속 교섭을 요구해 결국 8.18 ‘사내하도급 합의’에 두 지회가 서명을 합니다. 울산지회는 ‘우리 지회의 규모가 제일 크고 투쟁에 있어 전통과 역사성도 있으며 울산공장이라는 지위가 있는데, 설마 두 지회가 우리를 제외한 채 교섭을 하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산·전주지회가 최후에 교섭에서 나오더라도 회사가 내놓는 안에 대해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느냐며 교섭을 밀고 가는 사태가 일어난 거죠. 결국 8.18 합의는 전주 71.6%(268명 중 192명 찬성), 아산 57.1%(161명 중 92명 찬성)의 찬성률로 가결이 되었습니다. 이 합의는 울산지회 조합원에게도 적용됐고, 신규채용에 울산지회 조합원도 원서를 접수하면서 조직력은 계속 약화되었습니다. 울산지회에게 남은 것은 현대차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결과 밖에 없었습니다. 이윽고 9월18일 1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법원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깬 채 소송을 낸 모든 노동자에 대해 “현대차 근로자 지위에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불법파견임을 확인시켜주는 판결이 나온 거죠. 
 
‘판결을 받은 자’ 대 ‘받지 못한 자’
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불법파견 확인 판결 이후 비조합원들의 조합 가입 문의가 많아졌습니다. 반면 조합원들은 무임승차를 용납할 수 없다며 비조합원을 받으면 안 된다고 해서 지회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판결 이후 조직화 문제에 대해 4주간 논쟁을 했습니다. 제일 좋은 시기에 내부 논쟁을 한 겁니다. 결국 대의원대회에서 4차례 조합원 교육을 이수하고, 해고자기금 및 조합발전기금 등의 투쟁 기금을 납부하는 조건 등을 달아서 조합원을 받는 것으로 결정했고, 실제 100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울산지회는 이런 식으로나마 조합원을 받기라도 했는데, 아산·전주지회의 경우 8.18 합의는 판결 전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하고, 새 조합원을 책임질 수 없다며 노조 가입을 받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인 판결에도 불구하고 한 명도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거죠.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현장은 조합원, 비조합원과 판결을 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로 갈렸습니다. 회사는 사내소식지인 ‘함께 가는 길’을 통해 ‘판결을 받지 않아도 된다, 최종심이 나오면 모든 이에게 준용하겠다’며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습니다. 그러자 비조합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적대감은 더 높아졌습니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지회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회사를 강제할 수 없기에 8.18 합의를 현실에서 무력화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38차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8.18 합의안의 폐기를 상정했는데,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의 예상과 달리 대대에서 폐기안이 통과됐습니다. 새로운 국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이후 금속노조가 45차 중앙집행위에서 폐기안 통과가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지회는 이 문제가 흐트러지면 현장 전체가 흐트러질 것이라고 판단해 올해 1월13일 금속노조 점거 항의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사내소식지에 ‘금속노조도 8.18 합의를 인정하는데, 울산지회만 이를 부정한 채 투쟁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며 지회를 고립시켰습니다. 심지어 운동 진영으로부터 ‘지회의 농성이 민주노총의 4.24 총파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압력까지 받으면서 지회의 고립은 극한으로 치달았습니다. 
 
9.14 잠정합의, 그리고 다시 부결
울산지회는 단독으로 상황을 돌파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회사와의 직접 교섭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조정신청을 해서 조합원들에게 투쟁에 대해 신임을 받고 정면투쟁에 나설 것을 기본방침으로 세웠습니다. 올해 4월21일 단체교섭 결렬에 따른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했는데 재적대비 46.4%의 반대로 부결됐습니다. 그러고 난 상태에서 2개월간 아무것도 못한 채 내부논쟁만 하다가 다시 교섭을 하기로 결정했고, 결국 9월14일 잠정합의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9월20일 열린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60.1%의 반대로 다시 부결이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기에 12년간 헛된 싸움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올해 2월26일 대법원은 아산지회의 해고자 4인에 대해 ‘현대차의 근로자가 맞다’며 지위확인 판결을 내렸습니다. 저까지 포함해 5명의 대법원 승소자가 생긴 겁니다. 이에 승소자들끼리 이 투쟁을 어떻게 이끌어나갈지를 논의했는데, 입장이 갈렸습니다. 저와 오지환 동지는 지회 조합원들이 투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협을 인정받지 못하고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송은 지회를 대표한 소송이었고, 지회 투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또 ‘회사의 합의가 법보다 못한데 우리가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고 복직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한 반면, 나머지 3명은 ‘일단 현장에 복귀하는 것이 조합원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정규직 전환의 샘플이 있어야 한다’며 복귀를 택했습니다. 이 3명의 동지는 근속 등의 문제에 대해 회사와 구두 합의를 하고 복귀했는데, 현재 회사는 이를 어긴 채 신입사원 수준의 호봉을 적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는 또한 저와 오지환 동지의 공장 출입까지 막고 있습니다. 
 
미리 그려보는 4시기의 투쟁
추가 쟁점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이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리전이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9.14 합의 이후 한 조합원은 저에게 “손해배상도, 형사처분도, 벌금도, 해고자 생계비도, 투쟁도, 동지끼리 주고받은 상처도 모두 우리가 감수하며 싸워왔는데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책임졌느냐, 도대체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묻더라고요. 실제 저희가 투쟁 과정에서 욕을 엄청 많이 먹었습니다. 혹자는 우리의 투쟁에 대해 “정규직 상승운동이었느냐는 물음을 던져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그리고 9.14 잠정합의에 따라 8.18 합의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만간 새 집행부가 당선되면 4시기라는 새 형태가 만들어질 텐데 이를 전망해보면, 하나는 재교섭을 해서 ‘9.14 잠정합의안+알파’로 마무리 하거나 혹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의 새로운 불씨를 살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불씨를 살린다 해도 상승기처럼 투쟁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못하고 법원 판결에 의지해야 할지도 모르고, 사측의 탄압으로 인해 의지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조합원들의 정규직 전환의 희망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2012년의 ‘6대 요구’를 주장하고, 실제로는 처우조건 개선을 위한 교섭을 진행한다면 새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부결한 합의안’보다 조금 더 나은 조건으로 투쟁이 마무리 될 것입니다. 
또한 신규 조합원을 받지도 않고, 촉탁직 노동자의 가입을 거부한 조합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야 12년간의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이 무엇이라도 남길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합니다. 모든 사내하청노동자를 조직하고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만들겠다는 전망과 함께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없애겠다는 회사의 명확한 답변을 얻어내는 투쟁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포함해서 3천명이 넘은 촉탁계약직까지 조직해야겠죠. 이것이 현재와 같은 합의를 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일 겁니다. 
 
 
 
김철식) 오늘 토론에 대해 고민하다가,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가 한국 자본주의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내하청의 정규직 전환은 왜 필요한가?
우선 현대차의 입장에서 많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갑작스런 비용증가로 경영이 어려워지는지를 살펴보죠. 지난 2012년 10월 심상정 의원실과 금속노조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비용을 산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8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시 연 2,859억 원의 추가비용이 듭니다. 이는 2011년 현대차의 당기순익 4조 7천억 원의 약 6%에 불과합니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약 0.6%입니다. 그렇게 부담되는 비용은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현대차는 생산직 인원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현대차의 생산규모는 해외를 포함해 국내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는데, 정규직 생산직 인원은 2000년대 들어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대차의 국내 인원 규모를 비교하면 2000년 보다 1만 명 정도 늘었습니다. 주로 연구직에서 증가했고, 생산직의 인원 증가는 거의 없습니다. 수치로는 국내자동차 생산대수는 2000년 152만 5천대에서 2011년 189만 2천대로 24% 증가했는데, 인원은 거의 증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비용 측면에서도 회사에 큰 타격 없이 가능하며, 나아가 정규직 전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런 맥락 속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신규채용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차는 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가?
이번에는 왜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는가를 보죠. 사실 현대차뿐만 아니라 대기업 수익 전략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외주화와 중층적 하도급구조 구축과 함께 현대차 수익전략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현대차는 모듈화 등을 통해 외주화를 확대했고, 계열사인 모비스가 현대차의 핵심을 장악한 가운데 모듈화를 계기로 중층적 하도급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이에 따라 비용과 위험은 하도급의 하위단계로 전가하는 동시에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함으로서 내부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저성장기 국내 대기업들의 수익 확대의 핵심이었습니다. 
현대차는 이를 위해 직접생산과정의 중요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생산방식을 바꿔왔습니다. 우선 제품설계 및 선행생기 단계를 강화하여 생산 이전 단계에서 제품의 품질을 거의 결정합니다. 생산과정은 노동에 의한 불량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단순화했고, 노동의 숙련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자동화를 진행해 왔습니다. 즉 정규직을 언제든 투입되어 일할 수 있는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만들어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런 조건에서 오늘날 현대차의 사내하청은 단순히 정규직의 고용안정판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을 대체하는 수단입니다. 현대차는 1998년 대규모 정리해고의 경험 이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는 급격한 정리해고를 하기보다는 정규직의 자연감소분을 충원하지 않거나 비정규직으로 충원했습니다. 현대차의 내부 노동시장은 실제 진입이 폐쇄됐다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한 생산, 판매규모의 엄청난 성장에도 불구하고 늘어나야 하는 정규직 인원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함으로써 단위노동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수익 증대의 핵심이었죠. 
 
회사의 노동자 분할 전략은 계속될 것
앞서 최병승 동지가 총노동 대 총자본의 대리전이었느냐는 표현을 했는데, 현대차 노사가 현재 한국의 자본주의, 더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에 있어 노자 간의 핵심쟁점을 갖고 격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중요한 쟁점입니다. 실제 회사가 비정규직을 통제하기 위한 노노 갈등을 유발했고, 지회는 중요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마다 내부 논쟁을 벌이며 시간을 허비한 일이 많았습니다. 이는 갈등을 조장하는 회사로부터의 분할 통제에 따른 효과입니다. 그 중 하나가 회사가 제시한 신규채용 문제였죠. 
현대차의 계획은 2013년에 3,500명을 신규채용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업무분리 등을 통해 진성도급화를 하겠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법파견에 대한 인정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사회적 비판이 심해지니 일부 신규채용의 형식으로 회사의 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노동 내부의 갈등과 분할을 유발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 효과를 내고 있잖아요. 향후에도 비정규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회사는 정규직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면서 비정규직을 꾸준히 확대할 겁니다. 그리고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때, ‘선별적 신규채용’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시함으로써 노동자 분할을 조장하는 전략을 계속 사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편, 크게 주목받지 않고 있는데 진성도급화 문제도 살펴봐야 합니다. 정규-비정규 혼성작업에 대해 업무를 분리하면서 진성도급화하겠다는 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대체를 본격화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더 나아가 현대차는 사내하도급법 등을 통해 생산공정의 파견의 합법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겁니다.
 
사내하청 문제를 지역·산업으로 확장시켜야 
그런 측면에서 보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민과 고통을 수반한 투쟁은 끊임없는 불법파견, 원청의 사용자성, 비용 증가 중심의 수익추구 전략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슈화 과정이었습니다. 지회가 수많은 부침을 거듭하면서 이 문제의식을 끌고 간 것은 참 대단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문제는 여전히 핵심 쟁점이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 끌고 가야 합니다. 함부로 얘기하기 조심스럽지만, 모든 것을 교섭을 통해 얻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교섭의 의미가 주고받는 것이라면 원칙을 유지하고 교섭을 진행해야 합니다. 그 원칙은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이 아닌가 합니다. 실리적인 부분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불법파견에 대한 원청의 인정을 받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과 노동 간의 대척점에서 나타나는 쟁점이라고 접근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법원 판결과 같은 일시적인 문제의 봉합은 있을 수 있지만, 향후 동일한 문제들이 지속 반복될 겁니다. 회사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처해나가겠지만, 노조는 대처 방안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질 겁니다. 
또한 미래전망과 관련해 원청의 사용자성 문제가 사내하청 문제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됐지만, 여기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닙니다. 더 크게 생각하면 원청의 산업 전반에 대한, 또한 사내하도급 구조 전반에 대한 원청 책임의 문제가 제기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기할 문제는 아니겠죠. 산업 전반에서의 대기업의 책임을 이슈화하고, 문제제기하며 이를 쟁점화 할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모색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내하청 문제가 정규직 전환이나 회사 내부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지역이나 산업 전체로 확장될 수 있도록 안으로부터의 연대를 확장하는 계기들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질의응답

참석자1) 9.14 잠정합의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최병승) 핵심 내용은 회사가 2017년 말까지 2012년 2월 이전에 직접생산공정 사내하도급업체에 입사한 2천명을 추가로 더 뽑겠다는 것입니다. 8.18 합의는 2016년까지 4천명을 뽑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9.14 잠정합의안은 근속과 관련해 2년에 1년 정도는 근속을 인정했습니다. 8.18 합의는 최고 근속인정이 4년인 반면, 9.14 합의는 최고 8년의 근속을 인정하는 겁니다. 부수적으로는 비공식적인 합의로 2005년 류기혁 열사의 죽음 이후 사망조합원에 대한 대체 입사를 논의하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상황이 정리되면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 회사가 입장을 표명하겠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 밖에 8.18 합의안의 골자에 몇 가지 내용들이 변경되어 있고, 5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저는 9.14 잠정합의안이 8.18 합의보다 못한 합의라고 주장합니다. 첫째, 이 합의서는 금속노조와 지회가 현대차에 대해 탄원서를 쓸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8.18 합의 이후에도 현대차를 처벌하지 말라고 탄원서를 썼지만 합의서에 명시된 사항은 아니었고 음성적으로 썼습니다. 반면 이번 합의안은 탄원서를 쓸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금속노조가 기아차를 포함해 여러 사업장에서 불법파견 투쟁을 하고 있는데 특정 기업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하라는 것은, 전체 전선을 흐리는 문제인 동시에 그것을 명시했기에 후퇴한 합의입니다.
둘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에 채용됐을 때 소송을 취하하는 것이 8.18 합의의 기본인 반면 이번 합의는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 향후 어떤 것도 요구할 수 없게 해놓았습니다.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 노사 간에 요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문서에 명시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8.18 합의안은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안을 만들고, 회사에 처리를 요구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데 이번 합의는 이 문제와 관련해 노사 간에 논의를 할 수 없게 봉쇄를 한 것입니다. 저는 다음 투쟁을 봉쇄한 합의서는 합의서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이 8.18 합의와 9.14 합의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고, 저는 이 차이점으로 인해 8.18보다 후퇴한 합의라고 보고 이번 합의를 반대합니다. 
 
참석자2) 신규채용 대상자들은 현재 하도급업체 소속인가요?
최병승) 네, 직접생산공정 하도급업체 소속입니다. 현대차의 기본 전략은 현재 사내하청 노동자 중 3,500명을 남겨서 이들을 진성도급으로 쓰겠다는 겁니다. 불법파견이면 근무 기간에 관계없이 원청이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2012년의 개정파견법으로 인해 1,600명이었던 촉탁계약직의 수가 현재 3천여 명으로 늘었습니다. 회사의 구상은 노동자를 촉탁계약직으로 2년간 고용하고, 회사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하청업체로 넘기는 겁니다. 그리고 진성도급인 하청업체에 위탁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고과가 좋은 사람을 발탁채용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선순환 구조 프로그램입니다. 사실상 기간제 노동자, 하청노동자라는 이중의 완충장치를 마련해 놓겠다는 것입니다. 
 
참석자3) 현대차 공장 생산 라인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 근무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최병승) 기존의 혼재 근무 형태가 이번에 많이 바뀌었습니다. 기간제 노동자인 촉탁계약직 노동자는 현대차 직원이니까요. 현대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뽑고 이 자리를 촉탁계약직으로 채웠습니다. 그리고 이 사내하청 노동자는 다시 사내하청 공정으로 갈 수도 있고, 촉탁계약직 공정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배치가 되면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하청은 하청대로 근무 라인이 분리되는 겁니다. 실제 하청업체가 특정공정 전체를 수행하는 공정 블록화가 상당히 진행됐습니다. 
 
참석자4) 현재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옛 인권위 청사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사실상 불법파견 투쟁의 선두에 서 있는데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병승) 우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고공농성 중인 기아차 동지들과 간혹 통화하는데 저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줍니다. 질문하신대로 기아차 불법파견 투쟁을 하는 동지들에게 우리가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못된 짓을 많이 한 겁니다. 8.18 합의가 소송취하, 사내하청 노동자 대상 신규채용의 형태를 띠잖아요. 합의안의 골자는 불법파견임을 인정받지 못하고 공정 전환배치를 통해 회사의 합법도급을 용인해주는 것입니다. 이 합의서가 현대차그룹의 다른 사업장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거죠. 
실제 기아차도 5월에 열린 특별교섭에서 현대차 합의안의 골격에 맞춰 인원만 적되 같은 내용으로 기아차지부 및 소하분회와 합의했습니다. 현대차는 4천명을 신규채용하겠다고 했는데 기아차 신규채용의 규모는 465명입니다. 저는 불법파견 투쟁이 얼마나 치열했느냐에 대한 상대적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지엠은 발탁 채용과 최종심을 인정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 불법파견 문제가 있는 기업들이 소송취하를 전제로 한 현대차의 신규채용 방안을 차용하고 있는 거죠. 쌍용차의 경우 교섭 막바지에 있다고 하던데, 쌍용차 사장이 단식하는 지부장을 찾아와서 ‘현대차 합의의 기준을 넘어설 수 없다, 이것은 경총의 방침’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총자본은 기본적으로 ‘자기 설계’를 가지고 있고, 통일된 방식으로 대응하는 반면 노동의 통일성은 총자본보다 약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참석자5) 현대차가 정규직, 비정규직에 대해 분할 통제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급단체 혹은 외부로부터의 연대가 있었다면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최병승) 저는 일단 간부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은 간부들의 의지와 선택을 믿어주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면 임원들, 대의원들이 제일 먼저 흔들리고, 조합원들은 제일 마지막에 흔들립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우리 조합원들의 선택을 보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9.14 합의안 부결도 그런 의미입니다. 
아까 지회가 촉탁계약직의 노조가입을 거부했다고 했는데, 실제 한 촉탁직 노동자가 23개월 동안 16번의 쪼개기 계약 뒤 해고 통지를 받았습니다. 억울한 마음에 노조 가입을 결심하고 금속노조에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현대차지부 연락처를 알려주더랍니다. 그래서 지부에 전화를 했더니 이번에는 지회 전화번호를 알려주더래요. 지회에 전화했더니 울산지역본부 전화번호를 알려줬고, 지역본부는 다시 지회에 전화하라고 하더랍니다. 결국 지회장이 너무 답답하다면서 제게 이 노동자를 만나보라고 하더군요.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이 동지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회에 가입시켜줄 것을 임원들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임원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쟁대위에서 논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대의원들이 촉탁계약직을 신규 조합원으로 받으면 대의원 전체가 사퇴하겠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모두가 반대했습니다. 내 머리도 못 깎는데 남의 머리를 어떻게 깎느냐는 거죠. 지회는 이걸 모두 반대하는 것이라고 결정할 수 없어서 대대에서 재논의한다고 했지만 이후 실제로 논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지노위 판결을 앞두고 언론사에 이 동지의 기사가 나기 하루 전 금속노조 지역지부에 개별가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울산의 사례인데 이 동지가 중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으니 전주공장에서도 촉탁계약직들이 조직됐습니다. 그런데 전북지부는 끝내 이들을 신규 조합원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진입장벽이 단위사업장 뿐만 아니라 금속노조 지역 지부 내에서도 비일비재합니다. 체질 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는 노조 간부들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간부들이 조합원들의 눈치를 보게 될지, 운동 진영의 눈치를 보게 만들지 않으면 이런 상황은 훨씬 심화될 겁니다. 누군가는 내부의 잘못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이러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렇게 투쟁하는 동지들이 더 많아진다면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요. 
 
참석자6) 지회 조합원들이 9.14 합의안을 부결한 근본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병승) 조합원들의 자존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은 다양한 기준과 형태로 나타납니다. 저희 조합원이 합의안에 반대한 이유는 우선 대의적 차원보다는 회사가 근속을 너무 적게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위로금 500만원에 대해서도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8.18 신규채용에 따라 먼저 입사한 사람들에게 안을 동일하게 적용했다는 것도 한 이유입니다. 실제 조합원 중에는 ‘난 8.18 합의도 거부하고 배신하지 않은 채 의리를 지켰는데, 먼저 입사한 사람들보다는 10원이라도 더 받아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문제 하나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규채용으로 입사하더라도 ‘최소한 난 근속 문제는 해결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거죠. 우리 투쟁의 정당성을 기존 입사자들에게 인정받아야 하는데 조합원들이 보기에 그렇게 할 수 있는 내용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합의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신규채용 원서는 쓰겠다는 조합원들이 꽤 많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합의안에 반대하여 자존감을 지켰지만, 현실적으로는 합의안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그런 요소들이 많이 작용했습니다.
 
사회) 시간 관계상 이제 포럼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최근의 노사정 대타협 문제 때문에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가 가려진 측면이 있습니다. 노사관계 현안 중 핵심문제인데 난제들만 깔려 있는 탓에 현장에 계신 분들이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포럼이 현대차 사내하청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사내하청 문제 해결에 발전이 있길 기대하며 박수로 포럼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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