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년, 노동은 또다시 형극의 벼랑에 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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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연구소의 창>에 쓴 기고(04.01)를 수정 및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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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8월이면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0년, 남북분단 70년이 된다. 옛말대로라면 세상이 일곱 번이나 바뀌고 세대가 두 차례하고도 10년이나 지났으니 모든 것이 상전벽해일 터, 이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형용 자체가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햇수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해를 거듭하여 축적된 삶이 곧 역사라고 본다면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반추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부터 오늘을 점검해보고 미래를 다짐한다는 뜻을 내세워 나름의 분석과 전망들을 내고 다양한 행사들을 추진하고 있다. 물론 그 의도와 내용은 처지에 따라 다르고 같은 처지에서도 갈래는 여러 가지이다. 그렇다면 ‘노동’을 둘러싼 제도나 법률은 70년의 이 장구한 세월 속에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한국 자본주의는 일제 식민지하에서 타율적으로 성립 발전해왔고 이중구조와 타율성, 파행성을 속성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그로부터 노동은 치열한 투쟁 없이는 스스로의 처지를 개선할 수가 없었다. 정부 수립 후 노동은 반공 친미 우익세력의 지배 아래 철저히 통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보수세력이 만든 제헌헌법은 노동3권에 이익균점권을 더한 노동4권을 보장했고 1953년에는 전쟁 중에 노동법을 제정했다. 이러한 제헌헌법상의 노동4권 보장과 매우 선진적인 노동법제는 세계 제2차 대전 후 사상적 조류이었던 생존권 사상을 채택한 것이었고 일제 강점기 이후 전개돼온 노동운동의 성과와 당시 노동자들의 치열한 요구의 산물이었다.

 

인색한 근로조건 개선·노동기본권 봉쇄의 경제성장시대

노동자의 생존권과 기본권을 지켜야 할 노동법제가 그야말로 형극의 기나긴 역정을 걷게 된 것은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였다. 군부집단은 1962년 헌법 개정에서 이익균점권을 폐지했다. 그리고 노동기본권 보장의 목적을 근로조건의 향상에 가두고 “공무원인 근로자는 법률로 인정된 자를 제외하고는 단결권 ·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했다. 곧 공무원의 노동3권은 종래 국가 · 지방 · 교육공무원법의 실정법규를 통하여 규제되던 것을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노골적으로 제도화해버린 것이다. 이후 헌법은 7차례나 개정되었고 오늘의 헌법은 근로권 보장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노동기본권 보장은 1960년대의 것 보다 쳐진 내용을 담고 있다. 곧 헌법 32조는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고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과 최저임금제의 시행,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근로기준의 법정화, 여성에 대한 특별보호와 부당한 차별의 금지, 연소자의 특별보호, 국가유공자 · 상이군경 · 전몰군경 유가족의 우선적 기회부여를 규정했다 그리고 33조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자주적인 단결권 · 단체교섭권 · 단체행동권을 보장하는 대신 법률이 정하는 공무원에게만 노동3권을 부여하고 방위산업체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은 제한 또는 금지시킬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처럼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은 60년대의 내용에 제약이 덧붙여지는 모양으로 굴절되었고 노동법제는 숱한 수난을 겪으면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변화하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필요충분조건으로 한 불균형성장을 경제개발전략으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은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 동원의 대상으로 설정됐다. 근로기준법은 기존법의 현실화라는 미명하에 사용자가 빠져나갈 수 있는 단서조항, 예외조항 투성이로 개정되어 최저기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었다. 노사관계는 노동조합에 대한 제도적 정책적 통제로 힘의 균형을 잃었다. 그럼에도 자본은 노동조건의 저하와 노동조합의 약화를 노리고 치열한 공세를 펼쳤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펼친 노동관계법 개정 책동이 그것이었다. 자본가들의 요구조건은 노동시간의 사실상 무제한 허용, 여성보호의 삭제, 각종 휴가 휴일의 대폭 축소, 연장 휴일근로수당의 감축 등 전면적인 노예노동의 강요이었다. 당시 이 요구는 노동계의 강한 반발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하여 관철되지 못했지만 독재권력은 70년대 초 노동기본권을 원천적으로 무력화하는 국가보위법과 유신체제라는 엄청난 선물을 제공했다. 이 같은 노동탄압정책 아래 자본은 거대한 자본을 축적하여 재벌체제를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을 처절하게 짓밟고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자본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폭력수단을 총동원했다. 정권은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노동관계법의 전면 개악을 단행했다. 노동법제는 노사협조를 강제하고 노동조합법과 노동쟁의조정법은 ‘3금법’으로 지칭되는 이른바 ‘제3자개입 금지’ ‘정치활동 금지’ ‘복수노조 금지’를 규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질식시키는 기제로 적극 활용되었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의 일방적인 지배체제는 노동의 저항과 노학연대라는 새로운 상황을 불러왔고 끝내는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라는 거대한 민중적 항거에 직면한다. 정권과 자본은 온힘을 모아 제압을 시도하지만 노동은 질풍노도처럼 전진을 거듭하여 민주노조진영을 구축하며 급성장하였다. 이러한 노사관계 지형을 반영하여 노동관계법제도 큰 변화를 나타냈다. 법률상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악명높은 ‘3금제도’의 완화 또는 폐지를 통해 노동기본권의 확충이 시도되었다. 군사정권하에서 17여 년간 완강하게 유지되던 복수노조 금지의 벽도 새로운 산업별 지역별 조직과 민주노총의 등장으로 무너져 내렸다.

 

최저 근로기준 무력화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공세

1990년대 노동운동의 급성장에 직면한 정부와 자본은 경제위기론과 신경영전략 도입으로 현장지배권의 복원을 꾀하다가 실패하자 국제화 세계화를 앞세우며 이른바 ‘노사관계 개혁’을 추진했다. 정부와 자본 쪽의 노동의 유연화 요구와 노동운동진영의 노동기본권보장 요구가 격렬하게 부딪쳤고 1996년 말 정부와 집권여당은 노동유연화(정리해고제 도입)를 핵심으로 한 노동법제의 개정을 날치기로 의결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대의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정부는 석 달도 안 돼 법안을 무효화했으나 노동의 유연화제도가 폐지된 것은 아니었다. 이러는 사이 재벌경제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이 깊어졌고 마침내 1997년 말 국가부도의 외환위기가 엄습해왔다. 정권의 수평적 교체라는 역사적 변화 속에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위기극복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의 이름으로 노동의 희생을 요구했다. 그 내용은 노동기본권의 확충과 경제민주화를 대가로 한 정리해고제의 즉시 도입이었다. 이로부터 신자유주의 정책과 노동유연화가 현장을 휩쓸고 노동자와 노동운동은 위기의 늪으로 밀려들어갔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근로대중의 생활조건은 급격히 추락했다. 자본은 위기를 틈타 현장지배권을 회복하고 노동유연화체제의 기초를 확실하게 구축했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합법화로 노동운동은 재기의 기회를 맞았으나 자본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어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기본권 무력화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노동법제는 과거와 판이하게 달라졌다. 근로기준은 기업의 비용감축과 경영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유연화가 중심을 이루고 집단적 노동관계법은 단결의 자유 보장이라는 미명아래 노동조합활동을 위축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다.

이와 같이 헌법이 규정한 노동의 권리와 인간다운 생활의 권리는 경영의 효율성과 이윤의 극대화 앞에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노동사회는 분절화와 빈곤의 심화 그리고 노사관계의 극단적 파행으로 치달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양적인 성장전략 기조 위에서 이어진 자본 운동의 결과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동의 피폐화는 국가권력이 주도하는 특징을 나타냈다. 정부가 노사 간 갈등을 조정 중재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친자본의 법 제도를 제정 또는 개정함으로써 기업의 지배력을 강화시키고 노사관계의 불균형을 조성해왔던 것이다. 거대자본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한 이 같은 경제정책 및 노동정책은 안팎의 조건변화와 더불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전망을 스스로 제약하게 되었고 끝내는 만성적인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구조를 자초하게 되었다. 2012년말 대통령선거에서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의 확충 그리고 노동유연화의 폐지가 사상 처음으로 여야 모두의 공약으로 제시되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공세의 저변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회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의제로서 내세운 스스로의 공약을 일찌감치 내버렸다. 그리고 거대자본이 주도하는 경제성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른바 ‘경제살리기’였다. 정책수단은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집약되었다. 지난해 말 노사정위원회는 5대의제 및 14개 세부과제를 내용으로 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합의서를 의결하였다. 그리고 우선의제에 대해 사회적 대타협을 올 3월말까지 끝내기로 합의했다. 우선의제란 ‘노동시장 이중구조문제, 임금 · 근로시간 정년 등 현안문제, 사회안전망 정비’이었다. 여기에 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과 공무원 연금개혁이 거의 동시에 제기됨으로써 ‘개혁’과제의 무게는 가중되었다. 정부는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대통령은 번번이 3월말까지 ‘구국 결단의 자세’로 노사정 대타협을 강조했고 국무총리도 나서서 사회적 합의를 독려했다. 노동부는 16억원에 이르는 대대적인 언론광고와 지하철 홍보를 동원하여 청년 일자리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은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선전했다. 이 와중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은 느닷없이 기업의 임금인상과 최저임금 조기 대폭인상을 역설했다가 자본 쪽의 냉대를 받고 머쓱해 하는 해프닝도 보였다.

교섭과정에서 많은 과제들이 드러났고 핵심적인 의제들은 노동유연화 확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대, 그리고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의 저하를 가져올 위험성이 매우 큰 것들이었다.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하는 한국노총의 처지에서도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운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을 포함한 시민 · 사회운동세력은 맹렬한 반대의지를 드러내고 일찌감치 투쟁에 나설 기세였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사활을 걸듯이 노동개혁에 매달렸다. 무엇 때문인가? 지난 2년 동안 집권세력의 동태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사태가 추정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경제민주화, 사회복지 확충을 내팽개친 박근혜정부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경제성장률을 높여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동안 정부는 투자를 늘려 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 창출에 나서달라고 호소해왔지만 재벌들은 눈도 꿈쩍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미 재벌권력의 위력을 실감한 나머지 초조해진 정부에게 재벌들은 노동시장의 2중구조 개선을 주문했다. 경제계의 각급 연구소의 주장이나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경제부총리에게 들이댄 요구는 그 작은 부분이다. 따라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상수로 하고 자본의 투자의욕을 종속변수로 하는 투자함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기에 고도성장시대의 신화에 사로잡힌 권력의 정상과 정책브레인들의 눈에 고용없는 성장패턴론이 들어올 여지는 없다. 거기다 올해는 큰 선거가 없는 해, 거듭되는 실정으로 하방경직성을 보인 집권세력의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동요하는 자본과 보수진영의 지지를 붙들어맬 수 있는 안성맞춤의 미끼-노동의 희생-를 놓쳐서는 안된다. 거추장스러운 상대인 노동진영은 양대세력으로 양분되어 있어 사탕과 채찍을 잘 사용하면 분할통치를 통한 목표달성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은가?”

 

노동의 ‘결렬선언’에 따라 원점으로 돌아가다

아무튼 사회적 교섭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 진행되었다. 노동의 입장에서는 웬만한 대안이 아니고서는 자본 쪽에 크게 기울어져 있는 내용을 기초로 합의를 이루어내기는 지극히 어려워 보였다. 제도개선의 장으로서 사회적 교섭의 중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삶의 기초조건을 유지 개선하기 보다는 그 근저를 위협할 수 있는 조건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부와 사용자쪽은 ‘5대 불가사안’으로 집약되는 노동의 희생에 대한 어떤 보상책도 마련하지도 제시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산업역군의 나라를 살리기 위한 살신성인의 대승적 결단”만이 거듭 거듭 강조되었다.

사회적 교섭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누구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혹자는 결렬을 예상하기도 하고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으로 합의문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좀 더 시간을 들여 재교섭을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졌다. 실제 상황은 한국노총의 ‘결렬선언’과 함께 원점으로 돌려졌다. 그러나 혹자는 정부의 총력전 태세에 비추어 합의 실패와 상관없이 작년 말 노사정 합의문을 근거로 당초의 계획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노동개혁은 경제살리기를 위한 필수사항이고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할 일은 다했는데 한국노총이 빠져나갔으니 책임은 노총에 있고 우리는 논의한 내용대로 제도화해도 잘못은 없다, 논의내용을 토대로 입법화해도 절차에 있어서나 사회적 정당성에 있어서 하자는 없다고 주장하며 입법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그 계획을 천명했다. 노동계를 다시 협상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위협수단으로만 보기에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거기에 현정부가 처한 처지나 그간 취해온 오불관언의 정치행태를 보태보면 그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역시 변수는 사회적 힘의 관계이고 그 변화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노동, 철저한 준비와 실천으로 역전의 기회 마련해야

총자본이 갈망한 사회적 대타협은 일단은 실패로 끝났다. 민주노총은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막아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고 4월 24일 총파업을 강행했다. 한국노총은 교섭의 결말을 현장에 보고하고 메이데이 시위에 이은 총파업투쟁을 추진중이라 한다. 경총은 불법파업을 중지하라고 아우성이고 정부는 정치파업에 대한 엄중처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지배권력은, 세월호의 분노에 이은 ‘성완종 리스트’로 인한 권력 핵심들의 부패 회오리에 휘말려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위기의 반전을 위해서라도 노동에 대한 보복의 날을 더 날카롭게 세울 가능성은 매우 크다. 노정충돌은 필연이고 특히 노동에 대한 후폭풍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게 몰아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노동현장은 노동유연화 확장의 위협 앞에 노출되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시달려야 한다. 이미 상여금의 통상임금화를 둘러싸고 자본 측이 변칙적으로 취업규칙 변경을 이뤄낸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 서울대 병원 파업사태도 그 하나이다. 이들로 미루어 자본의 공세 앞에 피폐한 삶의 조건이 개선될 여지는 그다지 커보이지 않고 노동운동진영은 특별한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처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렇게 보면 노동에게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할 수 없는 조건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정치적 지배력의 공백이 생기면 어김없이 저항투쟁에 나선다는 역사적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거기에는 철저한 준비와 실천의 노력이 없이는 역전의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는 냉엄한 운동사의 교훈이 아울러 내포되어 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지 70년, 우리 사회가 나라안팎 거대자본의 식민지로 화하고 노동이 영혼이 없는 황국신민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면서 자본의 공세를 어디서 어떻게 멈추게 할 것인지,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 상황의 변화는 또 다시 자성의 기회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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