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정당'을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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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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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을 넘어 '건설'로 

"1기 지도부는 97년, 98년, 99년의 창당 준비 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2000년 1월 창당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여러 세력이 통합해 만든 정당에서 여러 일들을 큰 과오 없이 해냈습니다. 처음 당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4·13 총선과 지방선거, 보궐선거 등을 거치면서 정당으로서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1기에서 부대표를 맡았기에 평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의 평가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이번 당대표 선거에는 권영길 대표와 더불어 정윤광 노원을지구당 위원장이 후보로 나섰다. 정 위원장은 1989년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을 지낸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결과는 권영길 294표, 정윤광 131표. '대중정치투쟁의 당 중심사업 배치'를 일번 공약으로 내건 정 위원장의 출마는 1기 지도부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성격이 짙다. 노 사무총장은 1기 지도부의 한계를 이렇게 지적했다. 

"정당다운 활동을 했는가, 진보정치의 실제 내용이 뭐냐, 지도력이 충분히 발휘되었느냐 등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했어요. 무엇보다 당의 대중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만들어내는 작업이 미흡했습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등 조직 대중을 당으로 견인하는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2004년 2월까지가 임기인 2기 지도부는 '선거' 지도부다. 임기는 올 6월 지방선거, 12월 대통령선거, 2004년 4월 총선으로 이어진다. 정당 활동의 꽃이 선거임을 감안할 때, 2기 지도부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당을 이끈다.  

"임기가 끝나고 곧 닥치는 2004년 총선은 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측정 받는 중요한 시기이며, 올해 양대 선거와 2003년 활동이 알차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이 점에서 2기 지도부는 2002년과 2003년에 당의 질적 발전을 이뤄내야 하고, 2004년을 위한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그리고, 1기가 창당기였다면, 2기는 건설기입니다. 당 시스템, 당원 관리, 조직 운영을 획기적으로 혁신해 당의 조직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해요." 

소수파 운동을 넘어서 

2001년 3월에 1만4천이었던 당원 수는 2002년 3월에 2만2천으로 늘었다. 1년 사이에 8천명이 는 것이다. 하지만, 활동 방식과 조직 운영에서 민주노동당이 정당이기보다는 운동단체 같다는 지적이 여전하고, 민주노동당원이나 간부도 대부분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있다. 당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과 경험의 부족은 이런 경향을 지속시키는 토양이 되어 왔다. 노 총장의 지적대로 당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당 활동은 민주노동당이 처음이다. 따라서 경험 부족에 따른 좌충우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수 있다. 이 때문일까. 당에서 뭘 바꿔야 하냐는 질문에 우선 견지할 게 많다고 그는 답한다. 

"진보정당을 향한 신념과 철학, 사회에 대한 태도, 인간과 노동에 대한 소중한 가치 등 버리지 않고 계속 가져나가야 할 게 많다고 봅니다. 물론, 바꿔야 할 것도 많죠. 우선 권력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정당에게 집권은 처음이자 끝입니다. 사회적 소수파로 오래 활동하면서 이걸 운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태도는 패배주의이며, 창의적 활동의 장애물입니다." 민주노동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운동권' 관성을 벗어나야 한다는 대목에서 노 총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양대 선거는 실험대가 될 것 

2001년 10월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재창당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고, 사회당과의 통합 문제와 더불어 전농, 전국연합 등 대중운동단체의 당 참여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당 안팎에서 '진보진영 대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양대 선거에서의 공조와 선거연합이 대통합의 바탕입니다. 후보단일화, 공동선거대책본부 구성 등 선거 영역에서의 공조를 넓혀감으로써 실질적인 재창당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죠. 진보진영 대통합은 선거라는 대중적 실천을 통해 후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진보진영의 단일 선거본부를 구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진보진영 단일선거본부를 구성할 계획이라면,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노동당이 대선 후보를 내지 않을 수도 있는지 물었다. "민주노동당은 반드시 후보를 냅니다. 후보는 당의 존립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당 안팎의 폭넓은 참여와 지지를 통해 대선 후보를 결정할 것입니다."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의원 투표는 1인2표제로 치러진다. 한 표는 후보에, 한 표는 당에 던져 전체 광역의원 수의 10%를 득표 결과에 따른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동당은 울산에서 기초자치단체 2곳을 장악하고 있으며, 지방의원 16명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2000년 4·13 총선 당시 울산북구에서 의회진출이 유력했으나, 좌절되고 말았다. 내부 분열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것이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변이 없는 한 당선이 유력시되는 울산시장후보 선출을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 갈등이 심각하다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고 있다. 

"이번에 그런 일은 재연되지 않습니다. 울산의 경우, 중앙당이 초기부터 적극 개입하고 있습니다. 원만하게 해결될 것입니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지금 전국적으로 노풍(盧風)이 뜨겁다. 노무현은 민주당 국민경선제를 거치면서 국민의 정치 무관심을 일거에 깨뜨리며 대권 경쟁의 선두주자로 나섰다. 노무현은 말 그대로 완전히 떴고, 민주당이 선택한 국민경선제는 언론의 각광을 받고 있다. 노무현의 급부상은 '대세론'에 안주해왔던 이회창과 이인제를 하루아침에 코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노풍으로 어려움에 처한 정치세력은 비단 보수 정객들만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역시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노무현이 내세우는 정책들은 '메이드인 민주당'보다는 '메이드인 민주노동당'에 어울린다. 노무현은 국가보안법 철폐, 민영화 반대, 재벌개혁을 강조해왔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울렁임이 감지되는 상황이다. 

"시련의 시기임은 틀림없습니다만, 동시에 진보정당의 정착을 위해서는 언젠가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고 봅니다. '3김의 정치'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세력들끼리의 각축이었다면, 지금의 대선 경쟁은 세력 갈등이 아니라, 개인들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미지의 정치인 것이죠. 따라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돌풍과 몰락이 급격히 이뤄지고, 지지도의 등락이 어느 때보다 심할 것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노풍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안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 자신이 강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성정당과의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감동을 못 주는 운동권 후보, 특징 없는 약체 후보가 돼서는 안됩니다. 이번 대선은 다시금 진보정당의 실험대가 될 것입니다."

노동계 통합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에 앞장설 것임을 결의했으나, 조합원의 당원 비율은 2%에도 못 미친다(민주노동당 당원 2만2천명 가운데 노동자는 1만4천명 정도로 전체 당원의 60%에 이른다). 민주노총은 조합원의 당원 비율을 5%대로 끌어올릴 방침을 세워놓고 있지만, 짧은 시일 안에 달성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과의 관계도 금융노조를 빼면 아직 서먹하다. 게다가 금융노조는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노무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이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을 표방하지만, 조직 노동자들의 참여도 활발하지 못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노동조합이 정당을 만든 나라들은 대부분 조합원의 낮은 당 참가율과 충분치 못한 자원 지원 등 초창기에 민주노동당과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게 아니라, 태생적인 한계일 따름입니다. 현시기 노동조합운동이 마주한 어려움도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민주노동당의 경우 노조와 정당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대선에서 민주노총은 '국민승리21'을 통해 권영길 초대위원장을 독자후보로 냈지만, 한국노총은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와 '정책연합'을 맺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김대중을 지지했다. 지금도 한국노총의 정치방침은 민주노동당에 우호적이지 않다. 
"같이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양대 노총의 조속한 통합은 필수적입니다. 이건 시대적·역사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진보정당의 미래뿐만 아니라 노동운동의 활로를 개척하는 과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양대 노총의 통합은 운동 수준을 높이고, 노동운동의 영향력을 강화하는데도 기여할 것입니다."

해바라기 정치를 향해 

'진보정당운동은 권세를 좇아 어둠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고 광명천지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이다. 어둠을 몰아내는 해바라기 정치를 추구하는 운동'이라고 노 총장은 어느 글에서 썼다. 해바라기 정치…. 그가 감옥 한켠에 해바라기를 키우며 알게 된 것은 해바라기 꽃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태양을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두워진 후에 해바라기 얼굴은 빛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서쪽을 향했고, 다음날 오전이면 해는 중천을 향하고 있어도 해바라기 얼굴은 해가 뜨는 동쪽을 향했다. 감옥에서는 '따뜻한 봄날 좁고 어두운 감방을 나와 양지바른 곳에서 볕을 쬐는 일을 해바라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런 정치를 그는 꿈꾼다고 썼다. 

6월 지방선거에 민주노동당은 서울, 인천, 울산, 광주, 부산, 경기 등 6곳에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고, 기초단체장은 20군데 정도 후보를 낸다. 또한 4월 초까지 집계된 바로는 50여 명의 광역의원 후보와 90여 명의 기초의원 후보를 낸다. 척박한 한국 정치의 들판에서 민주노동당이 해바라기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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