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 뒤에 가려진 노동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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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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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연구소에서는 커피를 직접 볶고, 갈고, 내려서 마십니다. 덕분에 신선한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제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로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커피를 마십니다. ‘피베리’라는 돌연변이 종인데, 보통 콩같이 생긴 커피입니다. 멀리서도 왔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하였지만, 수확량이 매우 적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거의 모두 수입품인 셈입니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이 커피도 농부들과 노동자들의 손길을 거쳐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들의 노고가 없이는 한모금도 마실 수 없는 커피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커피를 사서 마실 때 돈과 커피의 교환 또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거래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생활에 대해서 무관심할 때가 많습니다. 커피 한잔의 가격에만 생각이 미치곤 하니까요. 물론 커피를 사 마실 때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커피밭 사람들: 라틴아메리카 커피노동자, 그들 삶의 기록』(임수진, 그린비, 2011)은 우리가 마시는 커피를 직접 손으로 따는 일을 하는 남아메리카 농업노동자들의 생활상을 들려줍니다. 대규모 커피농장들이 있는 브라질 같은 나라들에서는 농기계로 커피를 수확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커피 농장들은 소규모로 운영되고 또 커피나무가 자라는 곳에 기계가 들어가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커피를 따야 한다고 합니다. 드는 수고에 비해 받는 임금도 쥐꼬리만큼 밖에 되지 않고요. 그런데 농산물인 커피도 한 해에 한두 번 정도만 수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조차 항상 있는 것은 아닙니다. 커피를 수확하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계절노동자인 셈입니다. 그러니 생활이 안정적이지 못하지요.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잔 값을 벌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일해도 모자란다고 하니까요. 이런 생활을 하는 남아메리카 커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내려간 책입니다. 
 
 
조금 길긴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까요.
새벽 4시면 일을 나서니 이들이 게으른 것도 아닌데, 휘황찬란한 물질세상에서 한켠에 비켜 있으니 이들의 삶이 허황된 것도 아닌데, 커피밭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또 남은 생을 커피밭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앞날이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해가 뜨기 전 커피밭에 올라가 하루 종일 커피를 따지만 그들의 삶 가운데 단 한 번도 고급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 사먹지 못할 이들의 삶이 마음에 슬프게 걸렸다. 이 세상 곳곳에서 수많은 종류의 커피들이 팔린다는데, 정작 그 커피를 따는 사람들은 이 세상 가장 구석진 곳에서 가난과 함께 평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저 멀리 북쪽 어딘가엔 한 시간만 일해도 이곳에서 하루 버는 것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다지만, 그 사실을 고스란히 알면서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커피를 따야 하는 이들의 삶에 마음이 아렸다. 이들이 나고 자란 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대를 이을 가난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란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조금이라도 더 낫게 살아 보겠다 발버둥을 치지만 거대이론 속에 혹은 통계 속에 한 부분으로, 추상적으로 묻혀 버리는 그들의 삶을 생각하니, 그 밤 어둠 가운데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커피가 어지간히 유행인 모양인지, 커피에 관해 쓴 온갖 글들이 많은데, 정작 커피를 따는 사람들에 대한 글은 없었다. 엘레나, 얀시, 기예르모, 플로르, 아우구스팅, 하이메, 에드윈, 프레디, 안토니아, 둘리아……, 이 세상에 태어나 비록 가난하지만 진솔하게 삶을 꾸리며 살아갔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해 남기고 싶었다. 모든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 포스트모던한 시대에 코스타리카 커피밭에서 100년 전, 200년 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이 일일이 손으로 붉은 커피열매를 따며 살아가는 그들의 이름을 이 세상에 남겨 주고 싶었다. 그들의 이름이라도 그들이 딴 커피와 함께 다른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책머리에 중에서)
 
 
이렇게 귀한 커피…….『커피밭 사람들』은 흔하디흔한 ‘커피’의 흔하디흔한 ‘소비자’로 사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커피를 맛볼 수 있게 해 주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세계화에 관한 거창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노동자들이 커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커피의 맛과 향과 색에 가려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동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커피숍 알바노동자들의 수고를 돌아보게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여러 번 콧잔등이 시큰해지곤 합니다. 책을 다 읽을 때쯤 눈물을 흘리셔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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