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도 ‘정상적인 외교’의 시대가!

부 제목: 
2·13합의 의미와 북미관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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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계환 2·13합의가 북한과 미국 간 관계정상화에 기회의 창이 될 수 있을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북한과 미국이 2·13합의를 계기로 평화공존관계로 전환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북미 간에는 숱한 위기 못지않게 적지 않은 합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2·13합의는 그 이전의 여느 합의와는 다른 희소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양자의 합의 이행 의지가 높을 뿐만 아니라 그 합의를 양자가 아닌 다자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2·13합의는 선언 넘어서는 ‘실천’ 위한 이정표”

2·13합의의 주요 내용부터 살펴보자. 2·13합의는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라는 합의문 제목에서도 보이듯 ‘이행’을 강조했다. 9·19공동성명이 말 대 말 합의라면 2·13합의는 행동 대 행동 합의이고, 전자가 공약으로 된 ‘한반도 평화의 백과전서’라면 후자는 그 실천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라 할만하다. 2·13합의 직후 한국측 정부 당국자가 “지금까지 9·19공동성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공약인데 (2·13합의는) 이 공약을 실천으로 옮기는 장치”라고 평가한 것은 손색이 없다.

2·13합의는 모두 7개 조항으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초기단계 조치를 명시한 2조는 5개의 소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안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초기단계에서 북한이 해야 할 행동(초기조치)과 미국을 비롯한 5개국이 해야 할 행동(상응조치)이 서로 연관돼 있다. 

먼저, 북한이 해야 할 조치는 크게 2단계인데, 첫째 단계는 △60일내 핵시설 폐쇄·봉인과 핵프로그램 목록 협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 초청이며, 둘째 단계는 △핵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 △현존하는 모든 핵시설의 불능화(disabling)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으로, 5개국 상응조치는 △북미 간 테러지원국 해제 및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과정 개시, △북일 양자대화 개시, △중유 5만 톤 지원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역시 북한의 초기행동 기한인 60일에 맞물려 있다. 이렇게 보면 2·13합의는 그 중요한 틀을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차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

핵시설-핵물질-핵무기 중, 우선 핵시설부터 다뤄

그렇다면 2·13합의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흔히들 2·13합의를 두고 북한과 미국 중 어느 쪽이 이겼거나 유리하다는 식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단견이다. 이러한 단견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북한의 핵시설 폐쇄(불능화)에 대해 얼마의 중유를 제공하는가”라는 식의 경제적 물질적 접근인데, 이는 북미관계의 본질인 정치·군사적 요인을 놓칠 우려가 있다. 다른 하나는 “모든 핵”과 관련된 것이다. 보수측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HEU)이 논의가 안됐기에 미국과 한국이 당했다고 저평가하는가 하면, 진보측 일부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건들지 않았기에 미국이 참패했고 북한이 이겼다는 식으로 고평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들은 모두가 이번 합의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2·13합의는 제목 그대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일 뿐이다. 이번 제5차 6자회담 3단계회의는 9·19공동성명이 내포하고 있는 방대한 내용을 한꺼번에 이행하기가 어렵기에 초기 단계에서 6자가 할 수 있는 특정 부분만을 선별해서 논의하고 합의한 것이다. 핵과 관련해 북한에는 ‘핵시설’이 있고, 그 핵시설에서 나온 ‘핵물질’이 있고, 또 그 핵물질로 만든 ‘핵무기’가 있다. 말하자면 이번 합의는 핵시설-핵물질-핵무기 중에서 핵시설, 즉 영변원자로만을 6자회담 테이블에 놓고 논의·합의한 것이다. 따라서 핵물질과 핵무기는 다른 시기에 다른 차원에서 논의될 것이다.

따라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2월28일 미 하원 외교위원회 북핵청문회에서, 영변원자로에서 북한이 추출,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은 50kg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에 대한 감시는 2·13합의 1단계인 60일 이내 이행사항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답변했던 것도 당연했다. 그는 “우리는 영변원자로를 중단시켜 재처리를 막음으로써 현재 50kg 가량인 플루토늄이 어느 날 100kg이 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핵무기와 핵물질을 논의하지 않은 이유를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이제 북미 간에는 그 여정에서 어떤 변수가 돌출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9·19공동성명 이행이라는 평화공존을 향한 머나먼 길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은 승패나 유불리가 아닌, 그간 북한측 입장을 반영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미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그간 57년간 북미가 서로 겨누고 있던 총을 이번 2·13합의를 계기로 해서 ‘동시행동원칙’에 입각해 양측이 동시에 “내려 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3불 정책’ 파탄

2·13합의가 아무리 초기단계 조치일 뿐이고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9·19공동성명에 이은 또 하나의 옥동자이고 쾌거임은 틀림없다. 북미가 함께 공정한 룰에 의해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 지상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라는 북미 간에 2·13합의가 가능했을까?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다.

2·13합의가 가능했던 하나의 이유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대결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를 요구해 왔고 미국은 북한에게 “선핵포기”만을 주장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양자에게서 변화가, 보다 정확하게는 미국측에서부터 변화가 왔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는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지난해 10·9핵실험이고 대내적으로는 11·7중간선거 참패에 기인한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정책을 추구했다. 한마디로 전임 클린턴 행정부가 했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클린턴 시절 이뤄진 1994년 제네바합의는 물론 2000년 10·12 북미 공동코뮤니케도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부시 행정부는 대북 3불(不)정책을 내놓았다. △북한과 둘이서 마주 앉지 않는다, △북한과 대화는 하되 협상은 하지 않는다, △나쁜 행동에 보상은 없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즉 북한과 양자회담을 하지 않고, 양자가 만날지라도 협상은 하지 않으며, 마침내 핵을 가진 북한에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3불정책이 어느 순간 봄눈 녹듯 사라졌다. 

다름 아닌 1월16~18일 북미 간 직접대화인 베를린회담에서였다. 베를린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힐 차관보 양자가 만났고 둘은 협상을 했다. 협상을 한 정도가 아니라 쌍방은 “일정한 합의”(베를린합의)를 이룩했다. 북한과 직접 접촉하고 협상을 함으로써 2불(不)을 깬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2·13합의에서 미국측은 북한에 대한 중유 지원부담을 “평등과 형평의 원칙에 기초하여 분담할 것에 합의”함으로써 ‘나쁜 행동’에 보상은 없다는 마지막 금도마저 넘어섰다.

베를린 북미 양자 합의의 위력

2·13합의가 가능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베를린회담에서 이뤄진 합의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베를린합의를 2·13합의의 일등공신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 6자회담이 베를린 합의에 기초해 열렸기 때문이다. <조선신보>는 이번 6자회담이 “베를린 조미회담에서 이룩된 ‘일정한 합의’(조선외무성 대변인)에 토대하여 열렸다”고 회담 기간 중에 수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사실 베를린회담 직후 북한측이 “일정한 합의가 이룩됐다”고 밝혔고 미국측이 “지금 합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제동을 걸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일정한 합의’가 갖는 위력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측 입장에 무게를 실었다. 다만 미국이 “시기상조”라고 한 것은 이제까지 반대해온 양자회담을 인정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더 나아가 6자회담 참가국들을 의식해서 북미 양자회담에서 합의를 했다고 밝히기가 꺼림칙했기 때문으로 이해됐다.

또 다른 이유는 2·13합의의 주요 내용들이 베를린합의에 기초했다는 것이다. 베를린회담에서 ‘일정한 합의’가 이룩됐다는 말은 나왔지만 그 내용은 전혀 공개되지 않아 궁금하던 터에, 6자회담이 비관과 낙관을 오가며 교착상태에 빠진 4일째인 2월11일, <조선신보>가 “미국이 베를린합의를 배신했다”며 대미 압박용으로 그 내용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조선신보>가 공개한 베를린합의의 골자는 크게 네 가지다.

즉 북한과 미국이 △첫째 미국은 30일내에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제재를 해제하고, △둘째 북미는 60일 내에 9·19공동성명 이행의 초기단계 행동조치를 취하고, △셋째 초기단계 행동조치로는 북한측이 영변의 핵시설가동을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합의한데 따라 필요한 감시와 검증을 받고 미국은 경제 및 에너지 지원을 시작하고, △넷째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무역법 적용 철폐 등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BDA문제는 해결 일보직전에 와 있고, 나머지는 모두가 2·13합의에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렇게 보면 2·13합의가 “북미 베를린회담에서 이루어진 합의의 틀이 구현된 것”이라는 <조선신보>의 지적은 빈말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2·13합의는 베를린합의의 빙산의 일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베를린합의의 내용이 많고 또 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6자회담에서도 물꼬 트인 북미 직접대화  

여기서 잠깐 핵을 지렛대로 해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노린 북한측의 의도를 짚고 넘어가자. 그 이유는 여기까지는 비교적 북한의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시기에 북미대화가 이뤄지고 관계개선을 할 수가 있다면 과연 그 원칙과 출발을 어디에 두고자 했을까?

아마도 제1차 핵위기가 대두된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이뤄진 1994년 제네바합의를 복원하고, 더 나아가 2000년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북시점에서부터 북미관계를 재출발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을 것이다. 미국과 아무런 신뢰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길은 과거에 합의했으나 파기된 원칙을 복원하고, 또 관계개선이 중단됐던 시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이라는 점은 어쩌면 당연지사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북한이 미국측에 줄곧 요구한 것은 양자 직접대화였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 들어 북미 간에는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첫  양자회담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를린회담에서 양측이 합의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그 합의에 기초해 2·13합의가 나왔고, 그 2·13합의에서 6자회담 내 △북미관계정상화, △북일관계정상화, △한반도비핵화, △경제·에너지협력, △동북아평화안보체제 등 다섯 개 실무그룹을 내기로 한 것이다. 

이제 양자는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을 통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직접대화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북미 양자관계가 갖는 파괴력으로 보아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이 다른 4개 실무그룹과 6자회담의 방향과 속도를 조율해 나갈 것이다. 이는 북미 양자회담을 창출하고자 했던 북한측의 의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첫 회담 주목해야

그러면 북한과 미국의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다행인지 이 로드맵도 베를린 회동(합의)에서 나왔다. 2월23일 <경향신문>이 북한과 미국이 2·13합의에 따라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초기조치 이행이 이뤄진다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과, 정식 국교수립 전 관계증진 조치의 하나로 연락사무소 설치 논의를 시작하기로 베를린회동에서 구두 합의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북미관계의 발전과정에 따라 양측의 신뢰구축과 관계정상화라는 차원에서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물론 이와 같은 놀라운 내용이 베를린 합의에 있느냐 없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북미 간에는 약속과 합의를 헌신짝 버리듯 한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렇게 되기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북한이 2·13합의 직후 남북장관급회담 재개와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의 평양 초청을 전격 결정하자 미국도 이에 못지않게 분위기를 띄우면서 장단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볼턴 전 유엔대사가 2·13합의에 대해 “나쁜 타결”이라고 비판하자, “이것이 좋은 타결이 아니라는 일부 평가는 절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라이스 국무장관 역시 북한의 IAEA 사무총장의 초청에 “정말로 좋은 신호다!”라고 화답했다. 게다가 17개월간 끌었던 BDA 문제 해결도 가시권에 들어왔으며 한국에서도 북측에 중유 5만 톤 제공을 위한 내부 절차가 시작됐다. 북한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던 북미관계, 남북관계, 북-IAEA관계 등이 정상적인 상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향후 북미관계는 두 개의 축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인적 교류이고 다른 하나는 법·제도적 정리이다. 전자는 라이스 장관의 평양방문이고 후자는 미국측의 대북 적성국 교역법 종료와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이다. 전자는 신뢰구축 차원이고 후자는 관계정상화 차원이다. 이 투 트랙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아갈 것이다. 물론 지난 57년간의 적대관계가 보여주듯 북미 간의 신뢰구축과 관계정상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글의 모두에서도 밝혔듯이 북미 양자의 2·13합의 이행 의지가 높고, 또 그 합의를 양자가 아닌 다자가 받쳐주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때와는 다른 특별한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시금석은 3월5~6일 뉴욕에서 김계관-힐 사이에 열리는 2·13 합의에 따른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 첫 회담이 될 것이다. 아울러 북미관계의 발전 속도에 따라 남북관계와 북일관계도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여러 형태의 대화와 교류가 앞 다퉈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한반도에 정상적인 외교시대가 오면서 이 같은 정세변화가 북미 간에는 평화공존을, 남북 우리 민족에게는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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