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진짜 '귀족'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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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때리기'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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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노무현 대통령은 포항의 포스코를 방문해 현지 경제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협력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두 배, 세 배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 뭉쳐 최근 노동운동을 밀고 나가고 있다"고 노동운동을 비판했다. 또한 9월 중순에도 중소·벤처기업 대표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오늘날 노동운동은 귀족화·권력화 된 부분이 있으며 소수의 대기업 노동자 권익 중심의 운동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약자로 칭해지던 노동자들이 순식간에 대통령의 발언으로 "귀족"의 반열에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옛날 같으면 혁명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던 일이 지금 한국에서는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처럼 정말 한국에서 "귀족"의 자리를 노동자들이 차지하고 있는가. 


[ 현대차 임단현타결 이후 보수언론의 '노조때리기'가 더욱 심해졌다. ]

"덜 일하고 더 받는다"고?

대기업 노조원들의 "귀족"성이 언론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차의 임단협이 타결된 8월5일 이후이다. 8월6일자 『동아일보』와 『문화일보』는 각각 "근로자 평균연봉 5천만원으로", "직원 1인 연봉 1천만원 안팎 올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며 노동자들의 고임금을 부각시켰다. 현대차 사측의 보도자료를 인용한 듯 일부 문단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두 기사를 시작으로 "현대차 실제 임금 지엠 앞질러"(8월8일자 『조선일보』), "평균연봉 6천만원, 휴일·휴무 세계최고 수준"(8월7일자 『국민일보』) 등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을 제외한 모든 신문방송이 "6천만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또한 현대차 노사가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에 합의한 데 대해서는 "덜 일하고 더 받는" 등의 딱지를 붙이며 노동자에게 "귀족"의 굴레를 덧씌우기에 바빴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인가. 정말 "연간 160일 이상 놀면서 6천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 현대차노조에 따르면, 근속연수 14.4년인 생산직 노동자가 연봉 6천만원을 받기 위해서는, 165일을 쉬기는커녕, 일요일을 포함해 단 하루도 놀지 않고 무려 500일을 일해야 한다고 한다. 

ILO가 2003년 발표한 「세계노동시장 주요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001년 2,447시간으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길었다. 이것은 미국보다 26%,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보다 46%가 긴 시간이다. 2,447시간을 법정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으로 계산하면 306일을 일하는 셈이다. 현대차노조에 따르면, 현대차 생산직 노동자가 평균적으로 일한 시간이 2,776시간이며, 작년에 3,000시간을 넘긴 노동자가 1,642명이다. 다시 말해 현대차 노동자는 하루 8시간 기준으로 347일을 일했으며, 그 중에서 1,642명은 375일 동안 일한 셈이다. 2002년 1월 작업도중 쓰러져 죽은 현대차 김태동 조합원(43세)은 생산직으로 연봉 5천만 원을 받았지만, 그의 2001년 근무기록을 보면 365일 중 362일을 출근해서 일했다. 도대체 누가 언제 166일을 쉰단 말인가? 누가 그토록 쉬면서 6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 사회의 어느 생산직 노동자가 이틀 일하고 하루 쉬면서 5,6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생산성 증가율을 앞지르는 지나친 임금인상"이라는 노동연구원의 주장(『매월노동동향』2003년 8월호)도 사실과는 다르다. 우리 연구소 김유선 부소장의 연구(『노동사회』2003년 9월호)에 따르면, 2002년 명목임금 증가율은 3.0%로 명목생산성 증가율 5.2%에 못 미치고, 실질임금 증가율은 0.3%로 실질생산성 증가율 3.5%에 못 미쳐 사실과 다름이 드러났다.

"생산성보다 더 가져간다"는 주장이 허구라는 점은 '노동소득분배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노동소득분배율은 한 나라의 경제가 창출해 낸 모든 소득 중 노동자들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았다면 노동소득분배율이 계속 높아져야 하는데, 1996년 64.2%를 정점으로 2000년 59.4%까지 계속 하락했고, 2001년 62.0%로 상승했으나 2002년 다시 60.9%로 하락하였다.

한국의 평균적인 노동자가 한 해 2,447시간, 하루 8시간씩 306일을 뼈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고 있는데도 노동자들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이 해를 거듭할수록 작아지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임원과 직원 임금 격차 100배도 나

"귀족 노동자, 강성 노조" 때문에 국내에서 영업할 의욕을 잃어버렸다는 잘 나가는 최고경영자와 이사들은 얼마를 받고 있을까. 없는 돈에 노동자들 배불리랴 투자하랴 나라 경제를 위해 밤낮으로 애쓴다는 이들의 연봉은 줄어들었을까. 

이른바 '자본가'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소득과 자산은 그 규모를 알기가 불가능하다. 국가가 봉급 생활자의 소득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데 반해, 진짜 귀족들의 부는 관련 자료를 찾기가 너무나 힘들다. 당연히 이들의 연봉도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 임원의 연봉을 공개하는 방안이 2002년부터 논의되고 있지만,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전혀 진척이 없다. 

더욱 기가 차는 것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공개하는 데 열을 올려야 할 재경부가 미온적이다 못해 아예 뒷짐을 지고 나몰라라하고 있는 현실이다. 봉급 생활자의 프라이버시는 내팽개쳐도 되지만, 사장이나 이사진의 프라이버시는 건들 수 없다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는 성명을 통해 임원의 연봉 공개를 반대하면서 "보수가 공개되면 임원 연봉의 많고 적음을 둘러싼 소모적인 갈등이 일어날 수 있으며, 특히 노사간의 대립을 키우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유난을 떨었다. 임원 연봉의 많고 적음을 논하는 것은 "소모적인 갈등"이고, 노조원의 임금이 "많고 적음"을 논하는 것은 "생산적인" 논의라는 이야긴가. 

지난 4월 경영잡지인 『월간 CEO』는 국내 상장 100대 기업의 임원과 직원의 평균 연봉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 따르면, 국내 100대 기업 임원 평균 연봉은 2002년에 2억8,413만원으로 전년의 2억1,765만원에 비해 6,648만원 올라 30.5%의 상승률을 보였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다고 비난받으며 "귀족"의 반열에 든 현대차 노조원들은 지난 8월 노사합의로 기본급 대비 8.63%의 임금 인상을 얻어냈을 따름이다. 

임원 연봉이 가장 높은 기업은 삼성전자였는데, 임원 7명의 평균 연봉이 52억1,400만원에 달했다. 연봉 6천만원의 "귀족" 노동자가 한푼 안 쓰고 100년 가까이 벌어야 하는 거금을 임원이라는 이유로 1년만에 벌어간다. 삼성전자보다 적게 받는다는 기업들도 "귀족" 노동자들의 입장에선 입이 딱 벌어지는 수준의 연봉이 지급되고 있었다. 삼성 SDI 15억8,100만원, CJ 13억8,980만원, 삼성물산 12억4,500원, 삼성중공업 9억6,200만원 등 상위 10대 기업 임원의 평균 연봉은 13억 1,584만원이었다. 노사 합의로 나라 경제 망친다는 비난을 받은 현대자동차의 임원은 4억 원을 받았다. 삼성전자 사장이었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경우 연봉 1백억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드러난 게 이 정도니, 드러나지 않은 옵션같은 자산을 따지면 그 규모는 얼마나 거대할까. 대기업에 다니는 "귀족" 노동자들이라고 해도 은행을 털거나 로또에 당첨되지 않고는 만질 수 없는 천문학 규모의 돈을 진 장관은 한 해에 받은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100대 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은 3,784만원으로 전년의 3,391만원보다 393만원 올라, 100대 기업의 임원과 직원의 연봉 격차는 7.6배로 드러났다. 역시 한국의 초일류기업인 삼성은 다르긴 다르다. 삼성전자의 경우, 임원과 직원의 연봉 격차가 100배를 넘었다. 

임원급 연봉 3배 가까이 증가

경제지인 『헤럴드경제』 5월20일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20개 기업의 사업보고서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최고경영자급 임원과 일반 직원과의 연봉 격차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2001년 임원들의 평균 보수가 1998년 보다 277% 뛰어오른 반면, 직원의 평균 보수는 157%가 오르는 데 그쳤다. 비율로도 100% 포인트가 넘고, 액수로 따지면 비율 차이보다 훨씬 크다. 

월드워치연구소가 매년 내놓는 보고서 『바이탈 사인 2003』을 보면, 최고경영자와 일반 직원의 임금 격차를 국제 비교한 자료가 있다(이 자료는 2001년 기준으로 다국적 인사관리컨설팅업체인 타워스페린이 조사한 CEO의 연봉과 미국 노동성의 노동자 임금조사 그리고 『비즈니스위크』의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격차가 가장 높은 나라는 단연 미국으로 스톡옵션을 포함하면 350배에 달한다. 다음은 멕시코 233배, 브라질 110배, 캐나다 30배, 스페인 27배 순이며, 한국은 18배로 스웨덴과 일본의 14배, 독일 14배, 스위스 12배보다 높았다. 앞서 『월간 CEO』가 조사한 격차 7.6배보다 무려 2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양극화되는 소득 격차는 결과적으로 계급·계층 사이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2인 이상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 지니계수를 보면 1997년에는 0.283, 1998년 0.316, 1999년 0.320, 2000년 0.317, 2001년 0.310, 2002년 0.312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0.408, 영국 0.369, 프랑스 0.327에 비해 한국은 비교적 평등한 국가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부동산과 금융 자산을 포함시킬 경우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운 불평등에 달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2002년 국민은행 경제연구원에서 국내 1,5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상위 20% 가구의 평균 금융자산은 2억1,575만원으로 하위 20% 가구의 346만원에 비해 62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상위 20%가 개인금융자산 총액의 71%를, 상위 5%가 38%를 독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의 불평등을 더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부동산의 불평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격차에 대한 통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은 다 공개하고 있는 보유세 납세실적 자료를 행정자치부가 움켜쥐고 공개하지 않아 자료가 전무하다. 

부동산 격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는 조세연구원이 1993년 종합토지세 납부실적을 토대로 분석한 것을 참조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국내 개인 토지보유분의 51%를 상위 5%가, 28%를 상위 1%가 차지하여 이 지니계수가 완전불평등에 가까운 0.861이나 된다. 그런데 이 자료가 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소득분배가 개선되던 때의 것임을 감안한다면, 오늘의 현실은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나아질 여지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추석 명절에 서울시내 백화점에 진열되었던 이른바 '명품'에 관한 소식은 우리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얼마나 심각한 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추석맞이 선물세트로 1천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 세트를, 갤러리아백화점은 은으로 제작한 함에 육포, 마른 새우를 담은 5백만 원짜리 선물을 선보였다.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보통사람이 보기에 광적인 소비 행태를 보이는 이들 부유층에 대해 "귀족·권력층" 운운한 언론이나 정치집단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개의 국민'으로 분열된 한국 사회

8월18일자 『조선일보』엔 "과외비에 평생고용까지 노조 무리한 요구 많아"란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사측의 직원 자녀 과외비 지원은 조선일보사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사안이다. 조선일보사는 올해부터 인근 교회의 부설 어린이집에 사원 자녀를 위탁해 그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자녀의 유아 보육비를 1년에 한해 60만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연간 10억원 정도의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녀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선일보사의 1인당 인건비는 9천6백만원이고, 중앙일보사와 동아일보사는 각각 7천3백만원, 6천1백만원이었다. 대한민국 일류기업을 만들어낸 고졸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6천만 원 받게 됐다고 "귀족"으로 몰아붙이며 "펜에 거품을 물었던" 언론사와 기자들의 연봉이 그보다 훨씬 많은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수구언론과 기득권층의 포로가 되었는지, "누구보다 노동자의 형편과 사정을 잘 안다"고 뻐기던 노무현 대통령이 '노동귀족'이란 말을 써가며 노동운동을 비판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기회만 생기면 노동자,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대기업 노조가 주도하는 노조운동을 적대시하고 "귀족"이니 "권력층"이니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언사를 남발하고 있다. 

"귀족"이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신분과 재산의 특권을 지닌 가장 높은 계급"이다. 말 그대로 호의호식하며 백성을 수탈한 거대한 부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누가 귀족인가. 일년 내내 휴일 없이 일해야 6천만 원을 버는 현대차 노조원이 "귀족"이라면, 연봉이니 판공비니 옵션이니 하면서 수십 수백 억 원을 챙기는 자들은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하는가. 우리나라 땅의 절반을 갖고 있으면서도 신상명세가 대중에게 전혀 드러나지 않는 국민 5%의 땅부자들을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하는가. 목 좋은 곳에 아파트를 사두었다는 이유로 며칠만에 앉아서 수억 원을 챙기고도 세금은 수십만 원도 안 내는 투기꾼들을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하는가. 도대체 누가 "귀족"이란 말인가.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귀족 사회"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천한 것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천박한 차별주의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다. "명품이 아니면 안 산다"는 허세가 부유층에 확산된 지 오래다. 강남으로 대표되는 "귀족"만을 위한 특별 구역이 생긴 지도 오래다. 이제 각종 광고의 컨셉은 "귀족주의"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는 민주공화국이 아닌 지 오래다. 헌법이 금지한 "특권층"은 이미 "창설"되었다. 법 앞의 평등이 "뻥"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국민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지고 있으며, "2개의 국민"(two nations)으로 분열되고 있다. 

물론 현대자동차로 대표되는 대기업 노조원들이 "못 가진 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20 대 80의 사회"에서 말하는 20에는 못 끼더라도 나머지 80 가운데 20에는 속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귀족"이라고 부른다면, 그들보다 부의 피라미드 위에 자리한 자들은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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