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주노동자 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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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자 송출국에서 수신국으로 
1874년 조선의 개항 이후 식민 지배와 광복, 그리고 근대화를 거치며 수많은 한국인들이 독립, 혹은 생계나 생존을 위해 해외로 이주했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터를 잡고 사는 한국 동포들의 수는 약 760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인력 송출국이었던 한국이 이주노동자 수신국으로 전환된 지는 채 30년이 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의 국내 유입 계기는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해 자본과 노동력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요인은 1980년대 후반 맞이한 3저 호황과 제조업 분야의 노동력 부족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오는 노동자들이 증가했고, 한국 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타자를 맞이한다. 
 
‘산업연수생’, 계급 이하의 계급 
이주노동자의 수가 늘어가며 정부는 1991년 산업연수생 제도를 만들지만 이는 이주노동자를 ‘연수생’이라 명명하며 노동자로 보지 않는 제도였다. ‘연수생’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던 중 열악한 근로조건을 견디다 못한 13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보상과 체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는데, 이들은 모두 산업재해의 피해자였다. 농성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농성 1년 후 출신국으로 강제 송환되었지만 1994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강당에서 있었던 농성은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알린 최초의 계기가 됐다. 또한 경실련 강당 농성은 불법체류자에게는 산재 보상을 인정하지 않던 정부의 산재 정책을 변화시키는 성과를 낳기도 했다. 
경실련 농성이 마무리 되고 불과 열 달 후, 저임금‧장시간 노동‧임금체불‧욕설과 구타에 시달리던 네팔 출신 산업연수생들이 회사에서 탈출하여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노총과 ‘외국인근로자 피난처’도 함께 했던 1995년 명동성당 농성은, 이전 해의 농성보다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 파장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단순한 정부 정책의 변화가 아닌,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 문제를 인식한 데 이어 조직적인 대응의 필요성까지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 성과는 바로 명동성당 지원 단체들과 이주노동자 커뮤니티가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이하 외노협)’를 결성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이주노동자 연대조직인 외노협은 이주노동자를 시혜적인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정치적으로 보수성을 띠는 한계를 가졌으나, 산업연수생제도가 고용허가제로 전환되기까지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도개선 투쟁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해냈다. 
 
한국에 불어 닥친 세계화 열풍, 그리고 고용허가제 
IMF 이후 한국에 불어 닥친 ‘세계화’ 열풍과 노동시장 유연화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 하나의 배경이 됐다. 산업연수생이라는 틀 안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이주노동자들은 노무현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도입함으로써 법제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 받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정책 추진은 많은 반발을 낳았다. 그 단적인 예가 2003년의 명동성당 농성이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에 앞서 장기체류 미등록 노동자(미등록 기간 4년 이상)에 대한 단속과 추방을 강행했는데, 이로 인해서 자진 출국을 할 수도, 갈 곳도 없어진 이주노동자들이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나 쉼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장기 미등록 체류자 강제 송환에 반대하며, 명동성당과 구로 그리고 안산에서 각각 농성 시위를 전개했다. 
농성 시위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강제 연행이 있었고,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농성은 점차 계급성을 띠며, 이주노동자 간 ‘노동자’로서의 연대 의식을 싹트게 함으로써 각각의 농성장에서 연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1년이 넘게 계속된 농성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농성장에서의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이주노조(MTU: Migrant Trade Union)를 탄생시켰다. 
 
고용허가제: ‘착한’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억압 장치 
2004년부터 전면 시행된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 제도에 비해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자’임을 인정하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가 되어, 노동3권과 최저임금 그리고 산재보상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판받던 산업연수생 제도의 대안으로 나온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같은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입국 전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의 사업장에서 근로를 개시해야 하며, 다른 사업장으로의 이동은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이 된다. 근로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는 이주노동자를 ‘착한’ 노동자를 만들기 위한 억압 장치와 다름이 없다.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기 위해 ‘착한’ 노동자가 돼야 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업장 내에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을 감내하고 있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사업장을 이탈하면 곧바로 ‘불법 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주노동자 운동의 과제 
2015년 현재 이주노조는 여전히 법외노조로써 합법화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주노조는 설립 직후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반려 당했다. “미등록 체류자는 노조를 만들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주노조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2007년 고등법원에서 “불법체류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현실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면서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이상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판결을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노조의 합법성을 둘러싼 법적 공방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은 이주노조 합법화 외에도 커다란 과제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주노동자들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두 가지 덫, ‘임시체류자’라는 신분과 ‘미등록체류자’의 모순이다. 현재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정주를 막기 위해 최장 체류기간을 4년 1개월로 제한하고 있다. 사용주나 자본에 저항할 경우, 곧바로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현실은 이주노동자 운동이 겪는 커다란 어려움이다. 제도 자체에 이주노동자를 손쉽게 사용하고 통제하려는 자본의 논리가 너무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금속노조와 건설노조 등 일부 산별노조의 지회 및 지부에서 이주노동자 조합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국가별 이주노동자 공동체들은 노조라는 울타리 밖에서 서로 연대하며 활동해 나가고 있다.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공세와 노동시장 유연화가 노동자를 어떤 방식으로 억압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있는 자본의 논리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저항하고 있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본의 총공세가 나날이 거세지는 현 시점에 이주노동자들의 운동에 ‘촉’을 세우고 서로 연대해야 할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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