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한미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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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차 노동포럼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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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 2006년 7월13일 (목요일)
장소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장
발표 :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 : 홍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
정리 : 『노동사회』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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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제46차 노동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한미 FTA와 관련해서 주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오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모시고, 간단하게 한미 FTA의 전개과정과 문제점을 중심으로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대략적인 내용은 다들 알고 계실 테지만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여하셨던 분의 얘기를 듣는다는 게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작해주시죠.  

정태인: 지난 2월26일 대통령과 면담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려고 하는 이야기를 대통령에게 했고, 나름의 한미 FTA를 추진하는 근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중국이 제조업에서 곧 한국을 추월할 거다, 그래서 서비스업을 확장해야 하는데 국내에서 개혁은 잘 안 된다, 따라서 미국기업이 들어와서 서비스업 생산성을 늘리고 이를 제조업 생산성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대체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청와대는 중국이 한국 제조업을 따라잡는 기간을 3년으로 보고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는 어떻게 가겠다는 경로에 대한 고민, 즉 정책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시행정책이 없는 매우 비대칭적이고 모호한 것이었습니다. 워낙 급하게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준비되어 있을 리가 없는 거죠.

대체로 요즘은 한미 FTA와 관련해서 여론조사를 하면 60대 40 정도로 반대가 더 많은 것으로 나옵니다만, 제가 처음 문제제기 했을 때는 최소한 70대 30 정도로 찬성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국민들이 한미 FTA가 뭔지도 몰랐죠. 지금도 국민 대다수는 한미 FTA를 관세 떨어뜨려서 수출 좀 더 많이 하자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의 홍보도 이런 논리에 초점을 두고, 미국 시장을 선점하자 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또 정부는 지금 전 세계적으로 FTA가 200여개가 체결되어 있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데, 이 흐름에서 뒤처지면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기는커녕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70%가 넘고 수출로 먹고 살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이거 반대하는 사람들은 쇄국론자다 하는 논리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한미 FTA가 결코 ‘윈윈 게임’이 못 되는 이유

정부 말대로 FTA가 200여개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FTA들은 각각 천차만별이죠. 지금 한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높은 수준의 FTA’를 하겠다고 하고 있고, 미국 정부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FTA, 즉 ‘나프타 플러스’ 또는 ‘골드 스탠더드’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FTA란 명확하게 정의된 것은 아니지만 실무자들 수준에서 보자면, 대체로 1만2천개 품목을 협상하는 FTA에서 1만2천개 모두 개방하고 각 품목의 개방 수준을 90% 이상으로 한다, 즉 관세율을 10% 이내로 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높은 수준의 FTA라고 하더라도 실제 내용은 각 국가별로 천차만별입니다. 어쨌건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FTA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김양희 박사에 따르면 200여개 중 16개 정도입니다. FTA가 대세라서 한미 FTA를 추진한다는 논리에는 허점이 있는 거죠.

또한 FTA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나라의 수출이 늘어나거나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2004년까지 통계를 보면 중남미가 평균 7개의 FTA를 하고 있고, 아프리카는 5~6개, 유럽은 3~4개, 그리고 동아시아는 2개입니다. 아시다시피 동아시아는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곳입니다.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빼더라도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또 지난 OECD 국자 중에서 10년간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한국입니다. 그것도 2위와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1위입니다. 따라서 좀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은 독일이나 스웨덴 등 북유럽의 경제시스템을 지향했던 참여정부가 갑자기 저성장의 중남미 모델로 경제시스템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FTA와 경제성장률은 전혀 관계가 없고, 현재까지 진행된 것을 토대로 굳이 따지자면 역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FTA와 미국식 FTA는 많이 다릅니다. 보통 FTA는 경제협력협정에 가깝고 사실 하기에 따라서는 그야말로 윈-윈 게임(win-win game)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보통 FTA에서는 협상을 하다가 보면 높은 수준에서 낮은 수준으로 협상 내용이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각자 취약한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4년 12월 중단된 한일 FTA의 경우에도 일본의 농수산 품목에 대한 우려와 우리의 기계 부품산업의 우려가 부딪쳤던 거고, 중국과 FTA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 제조업이 굉장히 빨리 발전하고 있다지만 아직도 한국보다 뒤쳐져 있기 때문에 관세가 굉장히 많이 붙어 있습니다. 이걸 한꺼번에 개방한다고 하면 중국 입장에서도 타격이 갈 수 있고, 한국도 중국을 협상하다 보면 취약한 농업경쟁력과 맞물려 서로 요구를 낮춰갈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나 미국과의 FTA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10여년 전에 맺어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FTA로 평가받는 데서 잘 나타납니다.

미국의 FTA가 질적으로 다른 이유는 간단합니다. 미국은 농업, 서비스업, 제조업 모두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양보할 게 별로 없는 겁니다. 국정 브리핑이 미국이 경쟁력이 약한 분야라고 선전하고 있는 게 기껏해야 설탕인데, NAFTA 때도 미국은 행정부끼리 협상에서는 설탕을 개방하기로 해놓고서 의회 인준 과정에서 이를 빼버렸습니다. 협상의 깡패국가(Rogue State)인 거죠. 한미 FTA가 체결되더라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무역촉진권한(TPA)은 의회 인준을 받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미국 의회는 충분히 이를 무시할 수 있고 미국에게는 실제 비슷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습니다. 어쨌든 토론회 같은 데서 보면 공무원들이 제조업은 한국의 경쟁력이 강하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실제 우리가 미국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분야는 중소형 자동차, 반도체 D램 분야, 철강 중에서 일반철강, 조선 분야에서도 잠수함 같은 특수선이 아닌 벌크 정도입니다. 협상품목 1만2천여 개 중에서 10여개 품목만 우리 경쟁력이 강하고 나머지는 미국이 더 강한 거죠. 미국은 양보할 게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제조업의 미국 관세는 3% 정도밖에 안되고 우리는 10% 가까이 되기 때문에 동시에 낮춰 가면 미국이 훨씬 이익을 보게 됩니다.      
   
한국사회 휘저어놓을 투자·지적재산권·서비스 협정

그러나 사실 미국이 협상에서 신경을 쓰는 분야는 섬유산업에 대한 방어문제를 제외하면 제조업이 아니라 주로 서비스업입니다. 특히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TRIPs), 무연관련 투자협정(TRIMs), 서비스무역협정(GATS)입니다. 지적재산권, 투자, 서비스 이 세 분야에서 미국이 갖고 있는 경쟁력이 다른 분야에서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지적재산권 분야를 보면, 제가 최근 통계를 못 보긴 했는데, 미국이 갖고 있는 특허 수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갖고 있는 것보다 더 많습니다. 특허권이 많은 나라는 당연히 지적재산권을 강하고 길게 보호하자 할 테고, 적은 나라는 짧고 약하게 보호하자고 주장하겠죠. 둘 다 가능한 경제논리이고, 결국 힘의 우열에 의해서 결정이 될 겁니다. 그런데 미국은 2004년 만료되는 미키마우스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일명 ‘미키마우스법’이란 걸 만들어서 20년을 연장시킨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많은 조항은 NAFTA의 제11장, KORUS(한미 FTA)에서는 7장인 ‘투자’입니다. 원래 FTA에 투자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이른바 ‘몰수(confiscation)’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1979년 이란혁명이 일어났을 때 4대 석유메이저 회사가 유전의 소유권을 빼앗기는 일이 있었는데,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였던 거죠. 그런데 이게 점점 확대되면서 이후에는 협정문에 몰수 대신에 ‘수용(expropri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즉 협정의 내용이 단순히 소유권 이전 문제를 넘어서 이윤을 확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예를 들어 환경규제 같은 것들에게까지 확대된 겁니다. 이러한 투자협정의 대상은 NAFTA에 오면 이른바 ‘간접적 수용(tantamount to expropriation)’으로까지 넓어집니다. 이 정도면 이윤을 확보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이 포함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간접적 수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는 법적 다툼의 대상인데, NAFTA에서 그때 판단의 기준이 되는 법조문은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최소기준대우’ 등입니다. 내국민대우는 FTA 협정국의 기업을 자국 기업과 동등하게 대우했느냐 하는 것을, 최소기준대우는 국제기준에 맞춰 대우했느냐 하는 것을 따지는 겁니다. 이게 웃기는 게, 미국 기업을 내국민대우에 의거해서 국내기업과 동등하게 처우했어도 국제기준에 비춰 한국의 규제가 더 엄격하다면 최소기준대우 때문에 간접적 수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법적 다툼이 발생하면 누가 판단하는가가 무척 중요할 텐데, NAFTA에서는 이를 해당국 사법부가 아니라 세계은행의 국제분쟁해결센터(ISCID)나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같은 제3의 민간기관이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디가 승소율이 높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다가 NAFTA에서는 이렇게 간접적 수용을 둘러싼 분쟁이 오래가게 되면 해당국가 정부에게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투자에 저해가 된다는 논리죠. 이렇듯 NAFTA는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는데, 정부가 지금 내용을 공개하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미 FTA의 투자관련 조항은 이것보다 더 강력하리라 예상됩니다. 다양한 무역협정들 중에서 투자자의 이해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조항들은 모아놓은 나프타 플러스(NAFTA PLUS)가 거의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협상초안문의 쟁점이라고 정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투자에 관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 얘기는 결국 미국이 요구한 것을 다 받아들였다는 의미죠. 굉장히 위험합니다. 첫째,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제소를 당하기도 합니다만, 어쨌건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아주 중요한 사항을 국가 밖에 제3의 민간기구가 처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둘째, 그 민간기구들은 비밀주의를 유지하고 있어서 각 제소가 어떻게 처리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ISCID가 현재까지 몇 건을 처리했는지조차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시민사회단체나 법과대학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대략 85건 정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그 중에서 공개된 것은 43건뿐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정부가 ISCID나 UNCITRAL에 가기 전에 법 바깥에서, 즉 돈으로 해결하려 들게 되는 거죠. 셋째, 정부가 알아서 미리 규제를 약화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새로 법을 만들 때 투자협정에 의한 제소를 신경 쓰다 보니 되려, 초국적기업에게  물어보고 법을 만드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투자에 관한 조항은 국가의 사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건강권이나 환경권 같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위헌의 소지가 있고, 실제 캐나다에서는 위헌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에서 위헌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한 사항들이 국민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식 FTA는 국경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는 과정이 아니라, 국경 안의 문제 즉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 관행을 변경시킬 것을 목표로 하는 과정입니다. 지난 5월25일 미국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발표됐는데, 거길 보면 한미 FTA는 한국의 법과 제도, 관행을 변경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분명하게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인 서비스, 투자 같은 분야에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관세를 어떻게 조절하는 것보다는 미국 기업이 들어와서 뭔가를 할 때 문제가 되는 사항들, 즉 내부 규제를 어떻게 바꾸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경쟁적 자유화론’과 한미 FTA 추진의 불건전한 만남 

한편 2003년, 2004년을 거치면서 미국의 대외통상전략이 바뀝니다. 이전에는 다자간 협상이 중심이었는데 그게 유보된 거죠. 사실 미국 FTA 전략의 핵심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주자유무역협정(FTAA)으로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2000년대 초반 중남미에서 좌파 정권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이게 좌절됐습니다. 또 미국은 다자간 협정에서 투자 분야만 떼어낸 다자간 투자협정(MAI)을 추진했는데, 이것도 ‘투자자-정부 제소권’에 반대한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에 막혔죠. 이런 과정을 거쳐 미국은 다자간 협정 대신 양자 협정으로 전략방향을 수정하고, 그 처음을 장식할 ‘대표선수’를 찾고 있었습니다. 즉 NAFTA보다 더 강력한 양자간 협정을 맺고 이를 모델로 삼아, 협정 대상국이 받아들인 조건을 다른 나라에게도 강요하겠다는 것이었죠. 이를 ‘경쟁적 자유화’, 또는 ‘경쟁적 자유주의’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전략의 기본 틀을 짠 사람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죌릭입니다. 이 인간은 앞으로도 주목해서 봐야 하는데, 죌릭은 경쟁적 자유화를 미국 통상교섭 원리로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해서 소위 ‘이해당사자론’이라는 것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중국도 세계문제의 이해당사자(stake holder)이므로 자기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다시 말해서, 미국의 세계전략에 조응한다면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방치하겠지만 거스르는 경우에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로, 간접적인 ‘중국포위론’인 셈입니다. 그런데 아주 재밌게도 우리 참여정부는 죌릭의 이 두 가지 이론, 경쟁적 자유화론과 이해당사자론을 2005년부터 11월에 걸쳐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것들의 제도적 구체화가 바로 한미 FTA와 전략적 유연성 합의라고 할 수 있죠. 외교와 안보, 경제에서 미국을 충실히 따라가겠다는 겁니다.    

NAFTA 협정문을 보면 이게 외교문서, 법정문서라 직접적으로 공기업 민영화를 강요한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아주 우회적으로 표현하죠. 그런데 죌릭이 제시한 경쟁적 자유화론은, 상대국의 공기업 민영화를 지지한다, 규제 완화를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한다, 국가 독점을 폐지한다 등 표현이 아주 명쾌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은 아시다시피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그대롭니다. 경쟁적 자유화 전략을 통해 이제 미국은 경제협상에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요하기 위해 IMF와 FTA라는 두 개의 칼을 휘두를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한국은 이러한 전략변화가 찾는 대표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한국이 IMF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 재무부 관료들이 한미 BIT(양자간 투자협정)을 추진했는데, 미국이 요구한 스크린쿼터 축소를 내부 반발로 추진하지 못 하면서 협정이 깨진 경험이 미국에게 신뢰를 주지 못 했던 거죠.       
 
뭣도 모르는 한국정부가 협상에 들어서기까지 
      
그러나 미국에 매달려서 결국 지금 협정을 체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통상교섭본부의 역할이 컸습니다. ‘거대경제권과의 동시다발적 FTA’를 한국의 전략이라고 내세웠던 통상교섭본부는 2004년 12월에 일본과 FTA가 깨지니까 이를 대체할 것을 찾았고, 그 결과가 미국과의 FTA 추진입니다. 지난 2005년 2월에서 5월까지, 통상교섭본부와 미국 사이에서 한국 정부는 내부협상능력이 없다, 스크린쿼터 하나 해결 못 하지 않았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갑니다. 지금은 이게 한미 FTA 추진을 위한 사전 실무협의였던 것처럼 보도·홍보되고 있지만, 사실 이는 한미 FTA를 전제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도됐었죠. 어쨌든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것이 스크린 쿼터 축소,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기량 기준 완화, 약가 재조정 양보 등 이른바 미국이 요구한 ‘4대 선결요건’입니다. 그리고 우리정부는 이걸 2005년 11월부터 2006년 2월까지 모두 들어줍니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재경부가 아무리 압박을 가해도 대통령이 중립을 지키는 한 문화부가 양보할 이유가 없는 사항입니다. 농림부의 쇠고기 수입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자동차 배기량 기준 완화 문제는 산업자원부와 환경부가 동시에 걸려 있는 사안이고, 약가 재조정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직결되어 있는 사안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그나마 유시민 장관이 현재 제도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 협상에서 밀리면 국장들 다 자른다는 소리까지 할 정도니 지금 협상에서 안 밀리고 있는 거죠. 어쨌든 그러한 것들이 한꺼번에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압력을 가했다는 얘기예요. 김선종이 2005년 6월부터 9월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그 때 한 일이 이 4가지 선결요건 받아들고 미국의 의원들, 로버트 죌릭 만나고 다니면서 한미 FTA 협력 약속을 받아낸 거죠. 그리고 그 약속을 들고 와서 코스타리카를 방문 중인 대통령을 독대해 설득했고, 결국 2005년 11월 청와대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한덕수 경제부총리,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노무현 대통령이 이렇게 4명이 모여서 사실상 한미 FTA 추진을 결정합니다. 정말 졸속으로 진행된 거죠.  

결정이 됐을 당시만 해도 미국과의 FTA를 이렇게 빨리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도 한미 FTA 관련 연구물은 2권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한일 FTA 관련 연구물은 100여권 정도였습니다. 즉 ‘100대 2’입니다. 일본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강한 미국하고 FTA를 시작하는데 100대 2니, 졸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죠. 졸속의 증거는 너무나 많습니다. 가령 큰 경제권과 중요한 협상을 하게 되면 일반적으로 민·관·학 연구를 1년 반, 산·관·학 연구를 1년 반 가량 한 후에 진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미 FTA에서는 이게 다 생략되었어요. 바로 정부 협상으로 들어간 거죠. 그러니까 미국이 뭘 요구하는 건지도 실제로 모르는 상태에서 협상을 시작했다고 봐도 되는 거죠.      
     
나프타 12년의 그림자, 양극화와 국내산업 몰락

한미 FTA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보기 위해서는 12년이 된 NAFTA를 검토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에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 중에 외교안보적인 이유 때문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비교할만한 경제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미국과 NAFTA를 맺은 캐나다와 멕시코의 공통점은 양극화가 매우 심화되었다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공기업 민영화하고, 규제완화하고, 미국식 시스템 이식시키면 양극화 심화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그리고 NAFTA 이후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처음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멕시코 사례를 갖고 선전했어요. 사실 정부 말대로 NAFTA 이후 멕시코의 수출과 투자는 매우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NAFTA 12년 동안 수출은 연간 500억 달러에서 연간 2,000억 달러 이상으로 무려 400%가 치솟았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12년 동안 연 평균 185억 달러였습니다. 우리나라가 30~40년 만에 달성한 연간 수출 2,800억 달러와 현재 연 평균 외국인 직접투자가 60여억 달러인 것과 비교해도 대단한 겁니다. 비밀은 마킬라도라에 있습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위치한 이 산업단지에 자동차, 전기·전자, 섬유 등의 분야 세계적인 초국적기업들이 모두 들어왔어요. 그렇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엔클레이브(enclave, 국가 본토에서 분리되어 있는 영토)’입니다. 미국에서 95%의 부품을 수입해서, 생산한 상품의 90%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죠. 멕시코 국내기업이 마킬라도라에 공급하는 부품의 비중은 3% 밖에 되질 않습니다. 멕시코 입장에서 보면 전혀 산업연관이 없는 것이죠. 실제 마킬라도라의 성장으로 수출은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이것이 멕시코의 1인당 GDP나 실질임금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멕시코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이 몰락했죠. 당연한 것이, 마킬라도라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 노동에 대략 월 20~40원 정도를 받고 있는데, 이는 멕시코 제조업 평균임금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정부가 계속 그렇게 유도를 했죠. 이런 저임금에 기반한 초국적기업의 상품들이 멕시코 내수시장에 쏟아져 나오니까 국내 기업들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게다가 1995년 페소화 위기를 맞으면서 실시된 긴축정책으로, 멕시코에서는 30%의 이자율이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이는 본국이나 기타 선진국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초국적기업에게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국내 은행에서 돈을 조달하는 멕시코 기업들은 30%의 이자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죠. 당연히 망하죠. 그리고 미국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멕시코 농촌도 몰락했습니다. 농민들에게 남는 선택은 싸빠띠스따, 즉 농민반란군이 되거나, 도시 빈민이 되거나 아니면 국경을 넘어 미국에서 불법을 체류하는 것뿐이었죠.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만 대략 매년 50만명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캐나다의 경우도 멕시코와 비슷합니다. 물론 1인당 GDP가 3만 달러에 달하는 캐나다에서 마킬라도라 같은 것이 생기지는 않죠. 그렇지만 거기서는 우리정부가 그토록 바라는 ‘서비스업 진출’이 일어나 양극화를 부채질했습니다. 미국에서 진출한 서비스 자본의 97%가 인수합병에 의한 것이었죠. 결국 캐나다의 고급서비스 업종에서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이어 대량해고사태가 발생하면서, 비정규직이 확 늘어납니다. 물론 이렇게 인수합병 후 대량해고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서비스업 생산성이 올라갑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결국 NAFTA 이후 미국과 캐나다의 생산성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한미 FTA 체결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열 것인가

그렇다면 한미 FTA를 맺었을 때 한국의 경우에는 어떤 일일 벌어질 것인가, 우리나라 1인당 GDP가 멕시코와 캐나다의 중간 쯤 되니 딱 중간 쯤 되는 일이 일어나겠죠. 우선 마킬라도라 같은 산업단지가 조성되지는 않을 터이니 수출과 투자는 늘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NAFTA에서처럼 투자자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조항이 있으면 투자가 늘 거라고 주장을 하지만 이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세계은행이나 국제금융기구조차도 강력한 투자자 보호조항이 투자를 늘렸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형편입니다. 수출은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 제가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일도 조금 해봤는데, 경험해보니 세금 낮춰주고 인센티브 늘려주고 하는 일은 자본에게는 결국 부차적인 겁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 투자했을 때 수익성이 확실하다는 전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달려들질 않습니다.

둘째, 한미 FTA로 미국 서비스업의 진출이 확장되지만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인수합병을 중심으로 이뤄져 변호사, 회계사 시장이 양극화되리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게 국내 제조업 생산성 제고와 연결되는 그림은 전혀 그려지질 않네요. 이미 대기업들은 외국 유수의 컨설팅회사, 법무법인을 활용하고 있는 상태이고, 변호사, 회계사 시장이 양극화된다고 그게 중소기업에게 얼마나 활용 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변호사나 회계사 같은 전문직종은 일종의 공급제한 업종이기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한정적일 겁니다.   

셋째, 다시 투자에 관련된 문제로 돌아와서, 멕시코와 캐나다에 동시에 일어났던 일들은 한미 FTA 이후 한국에서도 똑같이 진행될 겁니다. 그런 일들 중에서 제일 겁나는 게 바로 ‘공기업 민영화’입니다. NAFTA에서 ‘국가독점’에 관련된 장을 보면 래칫(ratchet) 조항이라고 아주 재미있는 게 있습니다. 래칫은 낚시의 미늘을 말하는 건데, 래칫 조항은 미늘처럼 후퇴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국가독점을 인정하는 사항들의 목록이 양국 사이에서 이미 합의된 이후에는, 국가독점을 강화하는 게 허용이 되질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미 FTA가 합의된 이후에 한국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려고 하는 노력은 래칫 조항을 위반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건강보험을 강화하려다가 건강보험과 경쟁하는 미국의 민간보험회사들에게도 보상금을 줘야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한미 FTA 투자에 관한 장 속에는, 이렇게 공공성의 틈새를 키우고 민영화의 흐름을 거세게 만드는 조항들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사례가 바로 캐나다 우체국과 초국적 운송업체인 UPS와의 다툼입니다. 이 사례는 아직 ISCID에 계류 중인데, UPS가 캐나다 우체국이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도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활용하는 ‘교차보조(cross-subsidize)’를 반경쟁적이라고 제소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교차보조는 모든 망(network) 산업에 있는 겁니다. 즉 산골에 전기, 철도, 수도가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정부가 보조금을 줘서 그런 것인데, UPS는 정확히 이러한 교차보조를 대상으로 제소한 것이죠. 만약 이 다툼에서 UPS가 승리한다면 정말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겁니다. 철도, 전기, 가스 등 모든 국가 기간망 산업에서 비슷한 제소가 들어갈 테고 이는 곧 공공성의 파괴로 직결될 테니까요. 이런 판국에 지금 한국 정부는 미국이 협상장에서 교육과 의료를 민영화하라고 직접 요구하지 않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지금 미국은 SAT와 원격 교육 시장을 개방하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원래 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시작하게 되는 겁니다. 문제는 어느 나라 정부에나 있는 민영화의 확신범들이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죠.  

넷째, 투자자-국가 제소권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주로 환경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ISCID 제소 사건 중 공개된 것들의 3분의 1이 환경과 관련된 것이었죠. 멕시코에서 쓰레기처리장 침출수 유출로 상수원을 오염시켜 놓고도, 이를 근거로 쓰레기처리장 허가를 거부한 지방정부를 ISCID에 제소해서 오히려 1,65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아간 메틸 클래드가 대표적인 사례죠. 메틸 클래드에 항의했던 농민들은 지금도 감옥에 갇혀 있고, 이들이 오염시켜 놓은 지역에 가면 지금도 멕시코 공무원들이 방독면 쓰고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엑틸은 엠엠피라는 신경유독물질을 갖고 사업을 하는 회사인데, 캐나다가 NAFTA가 체결된 지 좀 지나서 ‘엠엠피 반입금지법’을 만들었습니다. 엑틸 역시 ISCID에 캐나다 정부를 제소해서 수천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 아래에서는 새로운 물질에 대해 새로운 위협정보가 밝혀져도 이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거나 만들려면 벌금을 내야 될 겁니다. 이 외에도 미국식 FTA 하에서는 법과 제도가 달라서 생기는 가격 차이, 엄격한 검역 규제 등이 모두 제소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반덤핑 상계관세는 예외죠. 지금 한국 정부는 이걸 줄이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NAFTA 이후에도 반덤핑 상계관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을 뿐더러, 무역촉진권한법(TPA)에는 아예 상계관세를 손댈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한국과 협상에서 반덤핑 관세를 줄이겠다고 약속을 하면 미국법에 의해서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죠.

이처럼 미국하고 통상협상을 체결한다는 것은 사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줬다는 의미입니다. 요구하는 것을 하나라도 안 들어주면 협상이 깨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죠. 올해만 하더라도 스위스, 카타르, 에콰도르, 아랍에미리트 등 4개 국가가 미국과 FTA를 중단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들 아무 문제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한미 FTA도 깨진다고 큰 문제 생길 것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협상단은 ‘체결’이 목표입니다. ‘결렬’은 협상카드에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4대 선결요건을 들어준 지금은 결렬의 비용이 너무 커져버렸죠. 지금 중단하면 정말 국민들에게 그야말로 ‘순수’하게 욕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협상단은 결렬가능성이 좀 더 커지더라도 차라리 체결하는 쪽을 택할 겁니다. 부작용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협상이 끝나고 좀 더 미래의 일이 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미국 시스템은  미국에서만 가능합니다. 가령 달러가 기축통화가 아니었다면 미국은 외환위기 열 번은 넘게 겪었을 겁니다. 그렇게 무역적자, 재정적자가 심한 구가 외환위기를 겪지 않은 이유는 달러가 기축통화고, 군사최강국이고, 세계 각지의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히 ‘삼종 신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삼종 신기가 없는 나라에 미국식 시스템을 이식시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죠. 시장을 제어하는 제도를 되도록 없애는 게 미국 방식입니다. 한국이 따라 하다가는 경제가 후진하거나 파산하겠죠.

막을 수 있다, 국민의 힘으로, 생각보다 쉽게! 

한미 FTA는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대단히 잘못된 선택입니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동북아공동체 구상이란 한마디로 캐스팅보트를 쥐겠다는 것,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중국이 성장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미국과 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다투게 될 텐데, 그 때 한국의 위치가 둘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실리도 챙기고 한국을 무시 못 하게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한미 FTA를 체결하고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를 했다는 것은 둘 사이에서 완전하게 미국 편에 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외교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선택입니다. 이런 구도가 고착되서 이후에 한·미·일 남방 삼각형과 북·중·러 북방 삼각형이 대립하게 된다면, 전쟁까지는 안 갈지라도, 남과 북은 각각 미국과 중국을 대신해서 또 다시 대립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을 위해 그동안 투자했던 것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죠.

한미 FTA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제적으로 실익이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서 시나리오를 그려봐도 없더군요.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주권의 위협이며, 외교안보적으로는 대단히 위험성을 높이는 선택입니다. 결론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막는 것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습니다. 유전자 표시 농산물 문제, 건강보험 지키기, 약값 재조정 등 직접 와 닿는 문제들을 국민에게 널리 알려내고, 국민의 요구를 모아서 완강하게 버티기만 하면 됩니다. 정보공개를 요구해서 깨는 방법, 확실한 마지노선을 정해서 깨는 방법 한미 FTA를 깨는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만큼 미국의 경제협상은 유연성이 없습니다.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도 제대로 알리기만 하면 낙관적이리라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 KDI 대학원에서 통제된 실험을 했습니다. 확실한 이유를 가진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을 가진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고루 모아놓고, 반대측 저하고 이해영 교수, 찬성측 이혜민 단장과 정인교 교수가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한 뒤 의견변화를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찬성의 40%가 반대 의견으로 돌아섰더군요. 그러니까 국민에게 제대로 알릴 기회만 있으면 반대의견이 70%는 너끈히 넘어서리라 봅니다. 거기서부터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토론 ]

질문: 발제자께서 미국의 통상협상 대표들은 거의 양보를 안 하고 그래서 협상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협상대표들이 융통성이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정: 미국 협상단이 애초 협상에 들고 나가는 것이 의회에서 수렴한 이해당사자들의 요구인데, 이걸 협상과정에서 미국 무역대표부가 자의적으로 축소할 경우 의회에 돌아가서 엄청 깨지고 다시 교섭하러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 협상 대표들은 최상의 카드를 들이 밀어붙이는 겁니다. 물론 양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호주와의 FTA에서 대폭 양보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미국은 자국의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투자’를 협정문에서 뺐습니다. 그러나 그 밑에 한마디가 붙어있죠. ‘필요한 경우에는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어쨌거나 이는 호주가 농업분야에서 미국보다 경쟁력이 우위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분야가 없습니다. 쇠고기 수입 문제나 스크린쿼터 같은 것들을 쥐고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이미 4대 선결요건으로 알아서 해결해줬죠. 미국 협상단이야 자기네 입장을 강하게 요구하는 게 당연하고, 문제는 한국의 재경부와 통상교섭본부 관료들이 이런 일방적인 요구를 기꺼이 들어줄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물론 한국 협상단들도 ‘쌀 수입 문제’처럼 생색을 낼만한 몇 가지가 있긴 합니다. 그러나 쌀 문제는 FTA에서 다뤄지기 힘든 사안입니다. 이미 WTO체제에서 시간을 두고 쿼터 늘려 개방하기로 결정났는데, FTA한다고 미국에게만 특혜를 주는 게 오히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미국이 요구를 안 하니까 교육과 의료 분야 개방 막겠다고 주장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공공영역의 개방과 민영화는 미국식 FTA를 체결하게 되면 결국 진행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 투자자-국가 제소권은 현재 NAFTA 즉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개국에만 적용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되는 겁니까?

답변: 미국이 맺은 FTA에는 다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가 다른 나라와 FTA를 맺을 때도 들어갑니다. 싱가포르가 다른 나라와 맺은 FTA에도 들어있고, 칠레가 한국과 맺은 FTA도 들어있습니다. ‘뱀파이어 효과(Vampire Effect)’라고 표현하는데, 흡혈귀한테 물리고 나니까 물린 국가도 흡혈귀가 되더라는 것이죠.

ISCID에 제소된 것 중 공개된 43건 가운데 미국기업이 제소자인 경우가 24건이고 캐나다 기업이 10여건 정도입니다. 싱가포르나 멕시코 기업이 제소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힘의 비대칭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거죠. 생각해보십시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초국적기업이지만 감히 미국 정부를 상대로 환경규제를 문제제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러한 투자 조항은 EU 국가들이 맺는 FTA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3세계 국가끼리 맺는 FTA에서는 들어 있더라도 의미를 갖지 못 합니다. 초국적기업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질문: 노무현 정부의 초기 기조가 이런 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런 방향으로 계속해서 돌아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대통령 자신이 늘 시스템을 강조하고 실제 시스템을 중시하는 내부개혁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달랑 보고서 두 개 나온 정책이 어떻게 이렇게 급격하게 추진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첫 번째 질문은 제가 지금까지 40여 차례 강연을 하는 과정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 같습니다. 답변은 늘 같습니다. 정확한 건 모릅니다. 사실 저도 궁금합니다. 다만 몇 가지 생각은 듭니다. 원래 재경부와 통상교섭본부의 성향은 지금과 별 다를 게 없죠. 재경부의 서비스업 육성론, 개방론이 정부 내에서 뜨고 있긴 했지만 참여정부 초기에는 이게 어느 정도 제어가 됐는데, 작년 여름을 거치면서 견제가 모두 풀려버립니다. 이정우 전 정책위원장이 금산법(금융산업의구조개선에관한법률) 갖고 삼성자본과 마찰을 빚고 정부에서 나오면서 견제장치가 없어져 버린 거죠. 여담입니다만, 삼성한테 찍히면 정말 죽습니다.  
  
지금 청와대 보좌관 등으로 정부에 참여했던 ‘386’들은 솔직히 경제를 정말 모릅니다. 모를뿐더러 청와대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삼성자본과 재경부 관료들에게 완전히 포섭됐죠. 처음에 대통령의 구상은 각종 위원회를 확대해서 정부부처와 균형을 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만, 이처럼 경제문제를 재경부 관료와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청와대 내의 팀이 모두 잘려나가면서 재경부 일색이 된 거죠. 지금 경제정책 관련 비서관들을 재경부 출신들이 모두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편협한 자료들이 올라가는 거고 그 안에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죠.      

두 번째 질문에 답변 드리겠습니다. 이미 2004년 말쯤 되면 386 청와대에서 외부쇼크에 의한 내부개혁론이 이야기됩니다. 내부개혁이라는 게 사회적 대타협 모델일 텐데, 그런 시도들이 잘 안되니까 ‘외부쇼크’를 통해 개혁하자는 겁니다. 그 중심에 이광재 실장이 있죠. 이런 생각은 재경부 관료들과 아주 죽이 맞는 겁니다. 재경부 관료들은 IMF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IMF 아니었으면 금융 구조조정 안 됐을 거라는 거죠. 그런 기초적인 토대에다가 김현종이 코스타리카에서 대통령 독대하면서 자기가 마치 엄청난 일을 하고 온 것처럼 부풀려 보고한 게 먹힌 거죠. 미국이 지금 FTA 대상국을 찾고 있는데 우리가 열심히 해서 그거 따냈다고, 4대 선결 조건 내줘놓고 우리가 따낸 거라고 우긴 겁니다. 이게 먹혀서 대통령이 적극으로 나서고, 거기다가 한미 FTA와 관련해서 ‘대연정’이 이루어진 게 이렇게 급속도로 한미 FTA를 추진하게 하는 힘이 아닌가 합니다. 한미 FTA 관련해서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이 전혀 비판 안 합니다. 같은 편, 대연정이 이뤄진 겁니다.        

질문: 만약 한미 FTA 협상이 결렬되고 깨진다면 우리에게 어떤 불이익이 올 수 있을까요?

답변: 사실 보복 당할 수 있습니다. 제가 파병반대 문제 갖고 수석들 열심히 설득하고 다니면서 하고 다녔던 이야기가, 우리가 파병 한다고 미국이 무역 잘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파병 안 한다고 보복 안 당한다, 이 두 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는 대충 맞았는데 두 번째 이야기는 조금 틀렸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파병을 거부한 캐나다는 무역보복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FTA가 결렬된 스위스나 카타르 같은 경우엔 보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질문: 죄송한 표현이지만 정태인 전 비서관께서도 ‘밀려난 거’ 아닙니까. 이런 일이 이번 정부만이 아니라 이른바 민주화 이후 소위 개혁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정부에 참여한 ‘개혁세력’이 밀려나는 일이 반복되는 문제에서 대해서 평가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답변: 다행히 그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성공회대학교 엔지오대학원에서 다음 학기에 ‘경제정책론’을 강의하는데, 이정우, 박철규, 이동걸 등 참여정부에 소위 개혁세력으로 참여했던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들이 어떤 정책을 만들려했고, 그것이 어떻게 좌절되었는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질문하신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경험을 통해 제 생각을 조금 말씀드리면, 위원회 구조는 많이 취약한 것 같습니다. 법적 근거가 취약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급격하게 무력화기 쉬웠죠. 개인적인 견해로는 과거에 있었던 경제기획원과 비슷한 구조의 사회기획원 같은 것을 설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구성원들을 재경부 말고 다른 부처에서도 골고루 뽑아오고, 외부 민간조직이 결합하는 거죠. 정부 내에서 개혁 세력이 ‘부처’를 갖지 못하면 입지가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기본적인 개혁정책은 정말 빨리 만들어서 집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예 재경부 1급 이상을 모두 자르던, 그렇게 못하더라도 이들이 눈치 채지 못 할 정도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식 FTA는 한번 체결되면 뒤집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진보적인 노동당이 들어서도 FTA와 관련해서는 거꾸로 못 갑니다. 미국식 FTA는 그 나라의 법과 제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진보정권이 들어서든 보수정권이 들어서든 역진 불가능입니다. 이번에 선거 내홍을 앓고 있는 멕시코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민들은 불만이 그렇게 많이 쌓였지만 NAFTA를 깬다는 것 자체에는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 멕시코 선거결과를 보면 물론 선거부정이 있었겠지만 오브라도르 후보와 집권당의 칼데론 후보가 박빙으로 나왔는데, 이는 NAFTA 12년 결과를 보면서도 그것을 뒤집는 것은 국민들의 무척 두려워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다시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오브라도르 후보도 처음에는 강력하게 NAFTA 재협상을 주장했지만 선거 막판에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죠.

마찬가지로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기조가 역진 불가능해집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시작해 김대중 정부 때 확산된 신자유주의 기조가 국제협정으로 아예 굳어지는 겁니다. 한미 FTA를 반드시 막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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