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울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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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집에서 키우든 개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았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어미 개가 집밖으로 놀러간 틈을 타 강아지들을 먼 데 사는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돌아온 어미 개는 집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아무리 찾아도 새끼들이 보이지 않자, 어미 개는 새끼들의 체취가 묻어 있는 개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어미 개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 날 밤 우리 가족은 그 놈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이웃 사람들의 귀에는 달밤에 개 짖는 소리로 들렸으리라. 

붉은 노을을 감상하는 침팬지 

인간만 의식과 정신을 갖고 있을까? 종교에서 말하는 영혼은 인간만 갖고 있을까? 동물은 감정이나 정신, 의식이나 영혼을 갖고 있지 않을까? 어린 아이 시절 왕눈을 꿈벅거리며 여물을 먹는 소를 보면서, 또는 양지에 자빠져 누워 따스한 햇빛을 즐기는 개나 고양이를 보면서 동물도 감정과 영혼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러다가 제도 교육을 받으면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동물은 개발과 이용의 대상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머리 속에 주입되었다. 20대 들어 접하기 시작한 이른바 급진 이론도 다를 게 없었다. "인간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는 명제는 "인간만(!)이 주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았다. 

80년대 영화 중에 미남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인 배우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 풍광 좋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남자 주인공의 무덤이 나온다. 풍광 좋은 산자락을 인간만이 알고 느낄 수 있을까? 
동물을 연구하는 한 젊은이가 장엄한 저녁 노을 풍경을 보기 위해 아프리카의 어느 언덕에 올랐다. 언덕에서 그가 본 것은 불그스레 물들기 시작하는 노을과 더불어, 그보다 먼저 와서 넋 놓고 노을을 바라보는 침팬지 한 마리였다. 얼마 후 언덕 다른 편에서 또 다른 침팬지가 올라와 저녁 노을을 구경했다. 저녁 노을을 보면서 침팬지들이 느낀 것과 동물연구가가 느낀 것은 얼마나 달랐을까? 

채식주의자는 못돼도 

"코끼리를 부리는 사람들은 코끼리의 눈에 물이 많이 고인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눈의 수분 유지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 그러나 코끼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눈물과 혼동하지 않는다. … 코끼리들이 슬플 때에 종종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의 한 대목이다. 사냥꾼들이 곤봉으로 새끼 물개들을 때리는 것을 본 어른 물개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 방어수단도 없고 사람에게 해도 끼치지 않는 죄 없는 동물들을 추적하여 살해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참담한 기분이 든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달아나던 수사슴이 기력이 쇠진해지고 달리 위기를 모면할 방도도 없게 되자 몸을 돌려 자신을 추적하는 인간들에게 항복하면서 눈물로 자비를 구하는 모습은 나로서는 언제 보아도 역겨운 광경이다"고「잔인함에 관하여」에서 몽테뉴는 썼다. 

『노동사회』에 '우리말 바로 쓰기'를 연재했던 현대중공업 노동자 이재관 씨가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을 보았는데, '채식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회, 경제, 건강 등 여러 이유를 댔지만, 이 씨의 맘속에 자리잡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한 몫 했으리라. 요즘 TV 광고 가운데 나무에 청진기를 갖다대고서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려주는 게 있다.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나무지만, 사실은 씨를 퍼트려 멀리멀리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도 있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좋은 집에 좋은 차 갖고 살면서 기름진 음식 먹고 비싼 옷 입고 사는 건가? 그런 건 아닐거다. 이웃과 함께 나누며 같이 웃고 같이 울며 사는 거다. 그 이웃의 목록에 인간만이 아닌 동물과 식물도 넣어보면 어떨까? 이 책은 모두가 함께 살자고 말한다. 

메이슨과 매카시 쓰고, 오성환 옮기고, 까치 냄. 9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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