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금융대란과 노동조합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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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엘지카드의 유동성 위기로 불거진 '금융대란'때문에 카드사의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지난 6월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 합병된 데 이어, 최근 외환카드와 우리카드의 은행 합병이 발표된 바 있다. 특히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는 외환카드에게 현재 660명에 이르는 정규 직원의 절반 가량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은 카드사의 몰락에 대해 정부 정책의 실패와 카드사간의 과당경쟁을 그 원인으로 지적했다. 한국노총 금융노조와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은 2003년 11월27일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잘못된 신용카드 정책에 대한 정부의 실정 인정 및 대책마련과 인력감축 중단을 촉구했다. 

현재 신용카드 회원수는 5천만을 넘어섰다. 그리고 카드 돌려막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은 1백만이 넘어 카드사의 위기는 서민 가계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소득이 없는 실업자나 소득이 낮은 비정규직노동자, 자금 융통이 어려운 영세 상인들이다. '카드대란'이 미칠 사회적 파장의 심각성에 대해서 우려될 수밖에 없다. 과연 신용카드사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 금융감독위원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카드부실 책임전가 중단과 카드채 관련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2천만원까지 올라간 현금서비스

정부는 IMF 이후 내수경기 진작을 통한 경제 부양과 세원 투명화를 통한 세수를 증대하기 위해 각종 신용카드 사용 장려책을 실시하였다. 이 가운데서도 현금서비스 한도의 폐지가 카드 대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 받는다. 현금서비스 한도가 폐지되자 카드사들은 한도를 일거에 수백만원으로 올렸다. 엘지카드의 경우 현금서비스 한도를 2천만원까지 올리기도 하였다. 그 결과, 신용카드 시장은 1999년 96조원에서 2001년에는 481조원, 2002년에는 600조원으로 고성장을 할 수 있었다. 김길영 국민카드노조위원장은 "신용카드의 수익은 두 가지로 나뉜다. 신용결제와 현금서비스인데 IMF 전까지만 해도 그 비율이 6:4 였다면 규제완화와 더불어 이 비율이 역전되어 버렸다"며 정부의 소비증진을 통한 내수부양 정책이 카드사 부실의 계기가 되었음을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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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신용카드 장려책 추진 일지
1999. 3 신용카드 가맹점 확대 추진
1999. 4 공공부문의 세출 예산 지출시 신용카드 영수증 수취 의무화
1999. 5 규제개혁위원회에 의해 현금서비스 한도(70만원) 폐지
1999. 9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 시행
1999.12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제도 시행 발표
2000. 4 신용카드 및 인터넷 등에 의한 국세 납부 제도 도입
2000. 5 신용카드 의무 가맹점 확대
2001. 1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 확대 시행
2001. 5 신용카드 의무 가맹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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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을 감시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는 카드사의 무제한에 가까운 카드 발급 남발을 감독해야 할 위치였지만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았다. 2001년 초 카드 빚으로 인한 사회범죄가 꼬리를 물자 뒤늦게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 규제조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규제마저도 '영업자율 침해'란 이유로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결국 1년여 세월을 허비한 다음인 2002년 5월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금지 조치가 단행됐고(신용카드 종합대책), 11월 연체율이 10%를 웃돌면서 카드사를 시장에서 경고 또는 퇴출시킬 수 있는 근거, 즉 '적기시정조치'(신용카드회사 건전성 감독 강화대책)가 마련됐다. 갑작스런 정부의 '규제 강화'(?)는 신용카드사들을 순식간에 휘청거리게 했다. 

정부 대책은 일시적으로 영업질서의 개선을 가져왔지만, 미봉책에 지나지 않았다. 급격한 규제정책으로 카드영업이 위축되고, 연체율이 상승해 '가계파산'과 '신용불량자 양산'이라는 본래의 문제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카드업계의 무더기 적자사태, 건전성 악화, 유동성 위기로 금융대란을 자초하고만 셈이었다. 금융감독원의 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는 신용불량자가 1백만9천99명이었으나, 2002년에는 2백만6천36명으로 증가했다. 카드사의 위기는 경기침체와 맞물리면서 '연체 증가 → 정부규제에 따른 카드한도 축소 → 고리의 사채시장 → 가계파산'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카드사들은 적기시정조치를 피하기 위해 카드한도 축소를 단행했고, 결국 카드빚을 얻지 못하는 서민들은 파산을 면하기 위해 사채시장으로 내몰렸다. 

카드 쓰면 돈을 주는 카드사?

정부의 신용카드 장려 정책에 힘입은 카드사들은 서비스 경쟁을 벌였다. 놀이공원에 무료로 입장하거나 미용실에서 머리 깎을 때 요금을 깎아주고 포인트를 주었다. 주유소들은 카드결제를 할 경우 포인트를 적립하여 카드 사용을 장려하였다. 영화관을 제 돈 다 주고 가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 것도 카드사들의 부가 서비스였다.

대량의 카드 사용자를 낳은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은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을 처음 시도한 LG를 필두로 삼성이 뒤를 이었다. 경쟁에서 '살기 위해서' 은행계 카드사들도 길거리 모집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카드사들은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돈경품 행사까지 벌였다. 50만원을 넘게 쓰는 회원 30명을 추첨해 2천만원 상당의 현금을 지급하거나 매일 265명에게 2천1백만 원씩을 나눠주었다. 현금서비스를 이용했을 경우에도 1등에 당첨되면 최고 1백만원까지 받을 수 있는 행사도 있었다. 2001년 카드 발급수는 6월까지 6,387만장에 달해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세 장을 갖고 있었다. 2000년 1년간 신용카드 사용금액은 1,272억 달러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10배 큰 일본의 1,143억 달러보다 더 많은 수준이다. 

당시 카드회사의 행태를 두고 낮은 시중금리를 활용해 싼 이자로 돈을 빌린 뒤 높은 수수료와 연체이자율을 받아 마치 고리대금업체처럼 돈을 쓸어 담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카드사의 이 같은 성장은 반쪽짜리였다는 것을 전문가라면 다들 알고 있었다. 우선 이용금액의 65%가 현금서비스라는 것은 은행 대출문이 높아 돈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신용카드를 대출창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또 당시에는 서서히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2001년 하반기 들어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가계 대출과 현금서비스가 함께 늘어나면서 연체율은 더욱 높아졌다. 

"지금의 부실은 장기적인 관점 없이 영업만 신경 쓴 채 리스크 관리를 하지 않은 결과"라고 임방남 외환카드노조 부위원장은 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을 비판했다.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은 은행계 카드사에게 "생존의 문제"였다고 김길영 위원장은 술회한다. "쟤들보다 한 개만 더 하자는 식의 정서가 많았다. 사실 국민 생존을 담보로 한 수익창출이었다는데 동의한다"고 그는 고백하였다. 

임방남 부위원장은 "2001년도 수익이 절정에 달했다. 삼성카드는 연봉만큼의 성과급이 지급된 것으로 안다. 은행계 카드사들도 그에 못 미치지만 연봉의 1/3 정도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카드업 종사자로서 이것이 사상누각인줄 모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릴 때 정말 불안했다. 그 역기능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고민을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고 했다.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정부의 2003년 4월3일 카드 종합대책 발표 이후의 카드사 미래에 대해 임 부위원장은 "그때 이후부터는 어디가 먼저 넘어지느냐의 게임이었다"며 카드사 금융 대란을 피할 수 없었던 사태로 파악했다. 정부 종합대책 발표와 함께 카드사들은 구조조정에 착수하였다. 노동조합도 구조조정에 동의하였다. 외환카드는 정규직의 15%가 희망퇴직의 형식으로 나갔고, 급여의 20%를 반납했다. 주5일제 반납과 복리후생급여 중단에도 동의했다. 국민카드도 정규직의 10%가 나갔고 임금의 10%를 동결했다. 정부도 개인워크아웃제를 도입해 구제에 나섰지만, 신청자는 4만6천 명, 실제 혜택을 받은 이는 2만7천명에 그치고 있다. 특히 소비를 주도하던 카드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며 2003년 내내 경제 발목을 잡았다. 3월 카드사 1차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고, 은행들이 5조원의 긴급자금을 수혈해 가까스로 파국을 면했다. 그러나 신용불량자와 연체율 증가의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지난 10월 업계 1위인 엘지카드가 부도 상황으로 내몰렸다.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국민, 외환, 우리카드는 모은행으로 흡수합병됐고, 위기의 진원지 엘지카드는 매물로 전락했다. 

모든 카드사들이 그 잘나가던 시절이 언제냐는 듯이 인원감축식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상반기 국민카드 노조의 국민은행 합병 반대 파업에 이어 외환카드 노조가 파업을 공언하고 있다. 인원감축식의 구조조정에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카드사 노동조합의 대응에 아쉬움이 남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 12월19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외환카드노조 총파업 투쟁선포식  - 출처: 사무금융연맹 ]

노동조합의 고민 

카드사가 잘 나가던 시절 카드사 종사자들이 1천%에 달하는 보너스를 챙겼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나왔었다. 고임금 직종인 카드사 노동자들이 1년 연봉에 가까운 돈을 연말에 일시불로 받았던 것이다. 모든 카드사가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신용카드 호황에 힘입은 돈잔치에 '자본가'는 물론 카드사 '노동자'들까지 즐거웠던 호시절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카드사 종사자들의 '인 마이 포켓'으로 끝났고, '추운 겨울'을 대비한 투쟁기금이나 고용안정기금 마련을 고민한 사람은 없었다. 이제 추운 겨울이 다가왔고, '계절 변화'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노동조합들의 고민은 너무나 크다. 더군다나 공적 기구라 할 수 있는 금융기관의 노동자로서 정부의 카드정책과 카드사의 영업 방식에 보다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어야 했다는 따가운 지적, '우리 등골 뽑아 돈잔치 하더니 잘 됐다'는 국민들의 조소가 아프게 다가온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아무런 사회적 발언 없이 지내던 카드사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용과 관련된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하는 것에 국민들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현재 정부의 카드사 위기 해법은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금융시장 불안증폭을 이유로 내세우며 법으로 규정된 감독 조치보다 은행들을 동원해 유동성 문제를 봉합하려 한다. 카드사들은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카드사 노동자들도 규제만 완화된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모두들 급한 불부터 끄는데 열중할 뿐 정작 불을 낸 원인을 제거하는데는 소홀한 형국이다. 정부의 카드 이용을 통한 소비증대 정책 재검토, 감독기관의 카드회사에 대한 건전성 감독과 대출서비스 비중 한도에 대한 감독과 규제, 무엇보다도 저소득층의 신용카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금융서비스 대책과 같은 근본적인 대안 마련에 신경을 쓰는 일이 더 중요한 때이다. 

이에 더해 노동조합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개별 노동자들의 단기적 이익에 발목 잡혀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이것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을 카드사의 구조조정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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