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는 추수감사절을 즐거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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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Turkey's Enjo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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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1월16일부터 21일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열렸던 세계사회포럼(WSF) 개막 연설 중 하나이다. 글을 쓴 아룬다티 로이는 『작은 것들의 신』이란 소설을 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소설가이자 활동가이다. 그녀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략을 비롯한 폭력적 오만함을 폭로하는 기고와 연설을 통해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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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윤영모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국제정보센터 추진위원)

글의 원문은 WSF 국제사무국(www.forumsocialmundial.org.br)에서 볼 수 있으며 본문 속의 소제목은 원문에 없으며 편집자에 의해 추가되었다.  

작년 수천 수만에 이르는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브라질 포르토알레그레에 모여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고 선언하며 새롭게 다짐하였다. 같은 시점에 수천 마일 북쪽에 있는 워싱턴에서는 조지 부시와 그의 참모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추구했던 프로젝트는 세계사회포럼이었다. 반면 그들이 추구한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아메리카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유럽과 미국의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속삭임으로만 이야기되던 것, 즉 "제국주의도 좋은 측면들을 가지고 있고, 걷잡을 수 없는 세계를 단속하기 위해서 강력한 제국이 필요하다"는 말을 이제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선교사들은 정의를 희생하더라도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끔씩 우리 중에는 기업화된 미디어가 제공하는 '중립적인' 자리에서 쟁점들에 대해 '토론'하자는 초청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제국주의를 논하는 것은 강간의 장단점을 논의하는 것과 얼추 비슷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은 그립다고 말할 것인가?



우리 곁에 있는 신제국주의

어쨌든 '신제국주의'는 이미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형태를 다시 가다듬고 보다 능률적으로 격상된 모습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반나절이면 세계를 흔적도 없이 파괴해 버릴 수 있는 무기를 갖춘 단일한 제국이 완전한 경제·군사적 헤게모니를 확보하였다. 이 제국은 다양한 무기를 사용해서 세계 곳곳의 시장을 부수어 열어제치고 있다. 신이 창조한 이 지구에는 미국의 순항 미사일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수표 통장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광고 모델이 되는 것이 꿈이라면 아르헨티나를 따라 하면 되고 천덕꾸러기가 되고 싶다면 이라크를 보면 된다.

제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가치가 있는 가난한 나라들, 또는 일정한 규모의 '시장'과 사유화될 수 있는 사회간접자본을 갖추고 있거나 석유, 금, 다이아몬드, 코발트, 석탄 등 가치 있는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라면 시키는 대로 하든가 아니면 군사적 목표물이 되던가를 선택해야 한다. 천연자원 보유량이 가장 풍부한 나라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자원을 초국적 자본에 자발적으로 헌납하지 않으면 소요 사태가 유발되던가 전쟁을 겪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제국의 시대에, 모든 것이 겉모습과는 다른 이때 어떤 기업의 임원들은 대외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특혜를 부여받는다. 워싱턴의 '공공정직성센터'(Center for Public Integrity)는 부시 행정부의 국방정책자문위원회에 참여하는 30명의 위원들 가운데 9명이 2001∼2002년 기간 동안 760억 달러에 달하는 국방관련 계약을 체결한 기업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냈다.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은 이라크해방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는 벡텔그룹의 이사회에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이해 상충의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벡텔이 특별히 무슨 이득을 취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해야 할 사업이 있다면 벡텔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기업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것을 이득을 취하는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쟁이 '끝난' 뒤 벡텔은 재건 관련 사업으로 6억8천만 달러의 사업을 수주하였다.

이러한 잔인한 청사진은 남미,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었다. 제국이 전개하는 모든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으로 규정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는 상당 부분 기업화된 미디어의 역할에서 기인한다. 기업화된 미디어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단지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바로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이다. 이것은 이들이 선택을 통해 설정한 도덕적 입장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이것은 대중 미디어를 가동하고 있는 경제학에 내재되어 있다.

대부분의 나라는 끔찍한 비밀을 충분히 많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가 꼭 거짓말을 꾸며낼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은 편집 기술에서, 즉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무시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인도가 '의로운 전쟁'의 목표물로 선정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1989년부터 캐시미르에서 약 8만명이 (이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주로 인도의 보안 부대에 의해 살해되었다(즉 매년 6천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는 사실, 2002년 2월부터 3월까지 2천명 이상의 무슬림이 구자라트(Gujarat) 지역의 거리에서 살해당했고 수많은 여성이 집단 강간을 당했고 어린이들이 산 채로 불에 타 죽었고 15만명이 집을 잃었다는 사실, 이 와중에 경찰과 정부는 그냥 지켜보고 있던가 적극 가담했다는 사실, 이러한 범죄와 관련하여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으며 이러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정부가 재선출되었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들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국제 언론의 일면 톱을 장식하고 남을 것이다.



'완전한 동맹'이 되기 위한 아귀다툼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은 순항 미사일로 가루가 될 것이고 우리 마을들은 철조망으로 둘러 쌓이게 되고, 미국 군인들이 우리 거리를 순찰할 것이다. 그리고 나렌드라 모디, 프라빈 토가디아 그리고 그 외 '편견조장자들'은 사담 후세인처럼 미국에 의해 감금되어 황금시간대의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머리에 이가 있는지 치아를 땜질했는지를 검사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시장'이 열려있는 한, 엔론, 벡텔, 핼리버튼, 아서 앤더슨과 같은 기업들이 우리의 사회간접자본을 차지하고 우리의 일자리를 파괴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하게만 한다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우리의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다수결주의, 그리고 파시즘의 경계를 아무런 걱정 없이 뭉개버리고 오갈 수 있을 것이다.

인도의 자랑스러운 비동맹 전통을 거리낌없이 포기한 우리 정부는 '완전한 동맹'으로 늘어선 줄의 제일 앞에 서려고 아귀다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하자면 '자연적인 동맹'이다. 언제부턴가 인도, 이스라엘, 미국은 '자연적 동맹'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정부는 정통성의 위기를 걱정하지 않고 탄압적인 정권으로 변신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였다. 

정부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은 사망자와 투옥된 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집을 잃고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 모든 것을 박탈당한 사람들, 평생 빈곤에 허덕여야만 하는 사람들도 정부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각종 '개발' 사업으로 생활을 박탈당했다. 지난 55년 동안 대규모 댐 건설로 인도에서 3,300만에서 5,500만 명의 인구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다. 이들은 어떠한 정의나 구제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지난 2년 동안 경찰이 평화적인 시위를 전개하는 사람들을 향해 발포를 한 사례가 줄이어 발생했는데, 그 대상은 주로 아디바시(선주민)와 달릿(불가촉천민)이었다. 가난한 자들, 특히 달릿과 아디바시 사람들은 녹지대에 무단 침입했다고 살해되고, 녹지대를 댐 건설, 광산 개발, 철강 공장 등 각종 개발 사업의 무단 침입으로부터 막으려다가 살해당하고 있다. 경찰은 항의하는 시위대에 발포한 대부분의 경우를 시위대의 폭력 행위에 의해 촉발된 것이라고 둘러대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총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전투적 시위대로 덧칠되어 버린다.

인도 전역에서 수천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여기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되어 있다- '테러방지법'에 의해 연행되고 재판도 없이 무기한 구금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 시대에는 빈곤이 감쪽같이 테러로 둔갑되어 버린다. 자본의 지구화 시대에 빈곤은 범죄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빈곤의 악화에 대한 항의는 테러로 규정된다. 이제 인도의 대법원은 파업을 범죄라고 보고 있다. 물론 법원을 비판하는 것도 범죄가 된다. 이들은 탈퇴의 문들을 다 막아버리고 있다.

신제국주의는 구제국주의처럼 자신의 목표 달성을 위해 대리인들의 제국에 복무하는 부패한 현지 엘리트들의 네트워크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 모두 인도에서 전개된 엔론의 지저분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당시 마하라쉬트라 정부는 엔론과 전력구매 계획에 합의했는데, 이 계약으로 엔론은 인도의 농촌개발 예산의 60%에 육박하는 이익을 확보하였다. 단 하나의 미국 기업이 5억 인구의 사회간접자본 개발자금의 규모와 맞먹는 이익을 보장받은 것이다!



새로운 인종주의

그러나 신제국주의는 옛날처럼 말라리아나 설사 또는 조기 사망과 같은 위험이 가득한 열대 지방을 헤집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신제국주의는 이메일로 자신의 일을 다 처리할 수 있다. 구제국주의의 천박한 직접적인 인종주의는 시류에 맞지 않다. 새로운 인종주의가 신제국주의의 주춧돌이다. 

새로운 인종주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우화로 미국에서 볼 수 있는 '칠면조 사면' 전통을 들 수 있다. 1947년부터 매해 전국칠면조양식협회는 추수감사절을 맞아 미국 대통령에게 칠면조를 선물해 왔다. 대통령은 의례적 관대함의 표시로 선물로 받은 그 칠면조를 살려준다(그리고 다른 칠면조를 먹는다). 이렇게 대통령의 사면을 받은 선택받은 칠면조는 버지니아 주에 있는 프라잉팬파크 공원에 보내져서 나머지 생애를 살다 죽게 된다. 양식된 나머지 5천만 마리의 칠면조는 모두 도살되어 추수감사절에 요리되어 식탁에 오른다. 대통령에게 받쳐지는 칠면조를 납품할 수 있는 계약을 딴 '콘아그라 식품'이라는 회사는 선택될 칠면조를 유명 인사들, 어린 학생들, 그리고 언론과 잘 지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킨다고 한다 (어쩌면 이들 칠면조는 곧 영어를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초국적 자본과 초국적 기업의 시대 새로운 인종주의는 바로 이런 모습을 띄고 있다. 몇몇 소수의 잘 길러진 칠면조들, 세계 각국의 현지 엘리트, 돈 많은 이민자 공동체, 투자 은행 임원, 간혹 콜린 파웰 또는 콘돌리자 라이스와 같은 사람들, 몇몇 가수 그리고 몇몇 (본인과 같은) 작가들은 사면을 받고 프라잉팬파크로 가는 표를 건네 받는다. 그 외 수백만의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철거를 당하고, 단수 단전을 당하고 에이즈로 죽게 된다. 이들은 냄비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프라잉팬파크로 간 행운의 새들은 모두 잘 살고 있다. 이들 중에 몇몇은 IMF와 WTO에서 일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이러한 기구들을 반칠면조 기구라고 욕할 수 있으랴! 몇몇은 칠면조선정위원회의 위원으로 활약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한데 어떻게 칠면조가 추수감사절을 반대한다고 할 수 있으랴! 이들은 추수감사절에 참여하고 있는 것 아닌가! 누가 가난한 사람들이 자본의 지구화에 반대한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프라잉팬파크에 들어가려고 몰려오는 행렬이 세를 더해 가고 있다. 그 와중에 몇몇이 도태된다면 그게 무슨 큰 문제가 된단 말인가?

새로운 인종주의 프로젝트의 일부로 새로운 인종청소도 고안되었다. 새로운 경제적 상호의존성 시대의 새로운 인종청소는 경제 제재를 통해 이루어진다. 새로운 인종청소는 실제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죽이지는 않지만 대량의 죽음을 초래하는 조건을 창출하는 것을 뜻한다. 1997∼98년 이라크에 파견된 유엔 인도주의 사업 코디네이터인 데니스 할리데이(그 후 그는 그 사업에 혐오를 느끼고 사임했다)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를 설명하면서 인종청소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는 50만명의 어린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음으로써 사담 후세인의 최대 노력을 능가하는 결과를 창출했다. 

이 새로운 시대에 공식 정책으로서 인종분리주의(아파르트헤이트)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무역과 재정에 관한 각종 국제협약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반투스탄(남아공에서 인종분리정책의 산물로 확립된 흑인(주거)지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복잡한 다자간 무역법과 재정협정들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유일한 목표는 불평등을 제도화하는 데 있다. 이것이 아니라면 왜 미국은 방글라데시 제조업자가 만든 옷에 대해 영국에서 만든 옷에 부과하는 관세의 20배에 해당하는 세금을 부과하겠는가? 이것이 아니라면 왜 아이보리코스트와 가나처럼 코코아 콩을 재배하는 나라에서 초콜릿을 만들어 수출하려면 과다한 관세로 인해 시장에서 발을 딛을 수도 없겠는가? 이것이 아니라면 왜 세계에서 생산되는 코코아 콩의 90%를 재배하는 나라들이 세계 초콜릿의 5%밖에 생산하지 못하겠는가? 이것이 아니라면 왜 자국 농민에 대한 보조금으로 수십억 달러를 지급하는 부자 나라들이 인도와 같은 가난한 나라에게 값싼 전기를 포함한 모든 농업 보조금을 폐기하라고 요구한단 말인가? 이것이 아니라면 왜 반세기 이상 식민지 체제로 인해 수탈당했던 나라들이 아직도 이들 똑같은 식민 제국에게 빚을 지고서 매년 3,82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 상환 때문에 허덕이고 있단 말인가?

실제 대상을 향한 실질적인 전투를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칸쿤에서 무역협상을 탈선시키는 일은 우리의 사활이 달려있는 것이었다. 몇몇 정부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치적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지만 우리는 잘 안다, 그것이 수많은 나라의 수백만 민중이 수년에 걸쳐 투쟁한 결과라는 것을. 칸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실질적인 타격을 가하고 급진적인 변화를 강제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현장에서 분출, 전개되는 저항운동이 국제연대를 구축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칸쿤에서 우리는 저항을 지구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어떠한 나라도 혼자서 자본의 지구화 프로젝트에 맞설 수는 없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갑자기 움츠러들어 버리는 것을 거듭 보아왔다. 특출한, 카리스마 넘치는 저항운동의 거인들이 권력을 잡고 국가 수반이 되면 국제무대에서 갑자기 무력해지는 것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지금 나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생각하고 있다. 룰라는 작년 세계사회포럼의 영웅이었다. 올해 들어 그는 IMF의 지침을 시행하느라 바쁘다. 연금 지급 규모를 삭감하고 노동자당에서 급진파를 쫓아내고 있다. 나는 또 남아공의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를 생각하고 있다. 1994년 집권한 지 2년 동안 그가 이끄는 정부는 거의 아무런 설명도 없이 시장의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규모 사유화 정책과 구조조정 정책으로 인해 수백만의 민중이 집을 잃었고, 일자리를 잃고 수도와 전기를 박탈당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가슴을 치며 배신감으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룰라와 만델라는 그 어떠한 기준을 갖다 대더라도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은 저항의 진영에서 정부의 진영으로 위치를 옮기는 순간 다양한 위협의 포로가 된다. 그 중에서 정부를 하룻밤에 무너뜨릴 수 있는 자본 철수라는 위협은 가장 악질적이다. 지도자의 개인적 카리스마와 투쟁의 이력서가 자본 카르텔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나아가 힘·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급진적인 변화는 정부가 나서서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민중에 의해 강제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에는 세계의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생각을 교류한다. 이러한 대화는 우리가 싸워서 실현하려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보다 정교화시킨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실제 정치적 행동을 뒷전으로 하고 이러한 과정에 우리의 에너지를 모두 쏟는다면 세계 정의운동을 이끌어 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세계사회포럼은 오히려 우리의 적들이 소중하게 여길 자산으로 변할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우리는 저항의 전략을 시급하게 논의해야만 한다. 우리는 실제적인 대상을 목표를 삼아 실제적인 전투를 전개해야 하고 실제적인 타격을 가해야만 한다. 간디가 이끌었던 소금 행진은 단지 정치적 연극이 아니었다. 단순한 저항의 행동으로서 수천명의 인도 민중이 바다로 행진해 가서 직접 소금을 만들었을 때, 그들은 소금 세법을 어겼다. 이것은 대영제국의 경제적 기반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이었다. 그것은 실질적이었다. 우리의 운동이 몇몇 중요한 승리를 일구어냈지만 우리는 비폭력 저항이 무기력한, 기분 좋은 정치적 연극으로 쇠퇴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비폭력 저항은 매우 소중한 무기로서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날카로움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그냥 구경거리로, 미디어의 사진 촬영 기회로 전락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옳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작년 2월15일 거대한 공공도덕의 표출로서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1,000만명이 넘는 민중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행진하는 모습은 모든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진정 가슴 뭉클한 순간들이었지만 그것은 충분하지 못했다. 2월15일은 주말이었다. 아무도 직장에 결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휴가 때 진행하는 항의 행동은 전쟁을 멈추지 못한다. 조지 부시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엄청난 사회여론을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무시한 것을 우리 모두 큰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할 수 있고 아프가니스탄이 그랬던 것처럼, 티벳이 그랬던 것처럼, 체첸이 그렇게 되었던 것처럼, 동티모르가 한 때 그랬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이 아직 그런 것처럼 식민화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위기를 쫓아다니는 언론이 위기에서 국물을 다 빨아먹고 남은 뼈다귀를 내버리고 다른 위기를 찾아갈 때까지 움츠리고 있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시체가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미끄러져 사라질 것이고, 분개하던 우리 모두도 관심을 잃게 될 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 운동은 중대한 지구적 승리를 필요로 한다. 옳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종종, 단지 우리의 결의를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뭔가에서 이기는 것이,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뭔가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는 뭔가에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그 '뭔가'는 즐겁게도 분열적이고 논쟁적인 우리 모두를 구겨 집어넣을 수 있는, 총괄적이고 운명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어떤 이데올로기일 필요는 없다. 다른 모든 것을 배격하는 어떤 하나 또는 두 가지 저항의 형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일 필요도 없다.

우리 모든 진짜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면,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면 우리 시선을 이라크로 돌려보자. 이라크는 이 두 힘의 불가피한 결정체이다. 사담 후세인이 체포된 후 많은 반전 활동가들이 혼란 속에 후퇴하고 있다. 그들은 머뭇거리며 사담 후세인이 없는 세상이 낫지 않으냐고 묻는다. 

이제 서성대지 말고 이 문제를 한 번 똑바로 쳐다보자. 미군이 사담 후세인을 체포한 것에 박수를 치는 것, 즉 이라크 침공과 점령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보스턴 교살자"의 배를 갈랐다는 이유로 "잭더립퍼"를 신격화하는 것과 같다. 사실 교살과 찢어 죽이기는 거의 25년 동안 동업자간의 합작 사업으로 진행되었던 것 아닌가. 그것은 집안 다툼일 뿐이었다. 이들은 서로 뒤통수를 치다가 갈라선 동업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잭이 CEO였다. 

우리가 제국주의에 반대한다면 그럼 우리는 미국의 점령에 대해 반대한다고,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그리고 전쟁으로 가해진 피해에 대해 이라크 민중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동의해도 되지 않을까?

이라크 파괴로 돈 버는 기업 문닫게 하자

우리의 저항을 어떻게 전개해 나가기 시작할 것인가? 우선 작은 것부터 시작하도록 하자. 이것은 이라크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점령에 대한 저항을 지지한다거나 정확하게 누가 저항 세력인지 논의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옛 살인집단 바트당 잔존 세력이냐 아니면 이슬람 근본주의자냐?).

우리의 행동은 점령에 대한 지구적 저항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저항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을 수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는 제국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는 군인들이 전투에 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예비군이 동원령을 거부하는 것, 노동자들이 선박과 비행기에 무기를 싣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인도와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에서 미국 정부가 인도와 파키스탄 군인을 이라크로 보내 뒤치다꺼리를 하게 하려는 계획을 막아내는 것을 뜻한다. 

이라크의 파괴에서 돈을 버는 두 개의 주요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든 선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 다음 이들 기업이 시행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를 파악하고 세계 각국에 설치되어 있는 이들 기업의 현지 본부를 파악해서 집중 타격을 하는 것이다. 문을 닫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집단적 지혜와 지금까지의 투쟁의 경험을 다 모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승리하겠다는 의지와 의욕의 문제이다.

새로운 아메리카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는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것이 비록 묵시록적 재앙이 될지라도, 불평등을 영속화시키고 미국의 패권을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은 정의와 생존을 요구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라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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