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원회가 민주적이라고?

섹션:

글쓴이 :

joungke@nodong.org

닫힌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은 재미있다. 여기서 '재미'란 즐겁다는 뜻도 되고 '보람'으로 풀이해도 된다. 닫힌 곳에서 긴장감이 감돌았는지 헛웃음이 터졌는지 목격하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이를 관찰하고 외부에다 전달하는 것은 즐겁다. 게다가 이 현장이 수백만 명의 이해가 엇갈리는 곳임에도 이들이 참여할 수 없는 공간일 때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여졌는지 이해당사자들이 이 글을 퉁해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면 노동조합 일꾼으로서 일종의 재미를 보는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 '닫힌 공간'

노 동조합이 없는 수백만 노동자의 임금은 해마다 4∼6월 사이에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라는 닫힌 공간에서 결정된다. 노사단체 대표자와 공익위원, 일부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이 공간 안에 들어올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관을 요구했으나 '닫힌 회의'라는 이유로 거부됐다. 최저임금제도가 한국에서 1988년에 처음 시행됐으나 지난해까지 회의록조차 없었다. 올해는 처음으로 회의록이 작성됐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한 결과다. 그러나 이마저도 참가자 전원의 합의가 없을 경우 외부로 공개할 수 없다. 해마다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보호와 노동내 차별을 완화시킨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정된다. 이런 거창한 취지와 참관도 회의록 공개도 되지 않는 회의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모르겠다. 닫힌 공간 내부는 바깥과 소통의 단절로 답답할 뿐이다.

최임위 위원장은 공익위원 중 나이가 많고 최임위 활동을 오래한 순으로 맡는다거나 사용자위원들이 "30만원만 줘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왜 최저임금제도로 시장의 법칙을 왜곡하느냐"고 제기할 만큼 천박한 말을 늘어놓는다는 것이 이 글의 관심대상은 아니다. 오히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각종 지표는 원천적으로 노동계의 실질적인 참여가 배제된 가운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출하는 '닫힌' 내용이라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이로써 사회적 파트너쉽에 기반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이룩하겠다는 포부를 내걸고 참여정부가 출범한 첫 해에 왜 최임위에 참여하던 노동자위원이 전원 사퇴하고 공익위원 일부마저 동반 사임했는지 독자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민주노총 여성연맹 소속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70만원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 출처:참세상 ]

생계비 기준연령이 18세?

현 행법에 따르면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생계비, 유사노동자의 임금, 생산성이다. 물론 일본 최저임금법을 베낀 것이다. 최임위는 이 가운데 생계비 수준을 검토하기 위해 생계비전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회의는 노·사·공익위원 각 3명으로 구성되며 보통 위원장은 최임위 부위원장이자 9명의 공익위원 가운데 노동부 관료출신의 상임위원이 맡는다. 올해는 5월2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열렸다. 구체적으로 최임위 사무국이 지난해 10월 조사한 29세 미혼단신노동자의 생계비와 한국노동연구원이 제출한 생계비를 검토한다.

생 계비전문위원회도 이만저만 '닫힌' 회의가 아니다. 한 노동자위원은 이 회의에 앞서 4월25일 제1차 전원회의에서 "최임위 사무국이 조사한 생계비실태조사 원자료를 달라. 올해는 우리도 분석해서 참여하고 싶다"고 요구하자 최임위 부위원장은 "적극 검토하겠다"는 말로 회피했다. 노동계쪽이 재차 이를 요구하자 참관하고 있던 근로기준국장의 대답인즉 "통계법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쪽이 다시 "통계법상 개인신상에 관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신상을 분석할 것도 아니고) 노동부에서 주관하는 통계는 노동부가 결정하면 된다"고 재촉하자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결국 이 원자료는 생계비전문위원회가 끝나고 한 달도 더 지난 6월20일께 노동계에 전달됐다. 최저임금 결정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받은 이 원자료를 어디다 쓰겠는가. 따라서 노동자들은 생계비전문위원회에 참여하고도 최임위 사무국이 제출하는 생계비가 제대로 분석됐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생계비 기준연령도 닫혀 있었다. 최임위 사무국과 한국노동연구원은 각각 18세를 기준으로 생계비를 제출해 왔다. 올해 최임위 사무국이 제시한 생계비는 624,819원, 한국노동연구원의 생계비는 579,793원이었다. 물론 당시 법정 최저임금 514,150원은 이마저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노동계에서 비판의 대상이었다. 노동계는 5월2일 제1차 생계비전문위원회에서 57만9천원을 제시한 한국노동연구원쪽의 설명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취직할 연령대도 아닌 18세를 기준으로 생계비를 내는 저의가 무엇이냐", "18세 기준을 폐기하고 29세 미만 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만 제출하라"하면서 쏘아 부쳤다. 이때 참가한 사용자위원의 말이 최저임금 결정기준 가운데 첫째 사항인 생계비의 현실을 웅변해준다. "생계비 때문에 이러니 저러니 해봐도 나중에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재계가 낸 생계비도 아니고 정부가 낸 생계비가 이 모양이냐"는 노동계의 항의 끝에 내년 생계비 기준 연령은 29세로 조정되기는 했다.

그러나 최임위는 그간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해 온 것일까. 법에 명시된 최저임금 결정기준이면서도 최저임금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생계비라니 오랫동안 입맛이 썼다. 최임위 사무국과 한국노동연구원의 생계비 인상률이 전년 대비 각각 '11.2%', '8.2%'라는 사실을 눈여겨보지 못한 것은 민주노총이 최임위에 참여한지 얼마 안 되는 데다 전원위원이 올해 모두 바뀐 탓이었다.

등산 가야하니 회의는 나중에

생 계비전문위원회에 이어 열린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노사 양쪽은 최저임금 요구안을 제출하고 설명한다. 이 회의는 노·사·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되며 올해는 5월16일, 30일 두 차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노사의 최저임금안 말고도 정부가 제출하는 각종 경제지표, 임금실태 분석결과가 검토된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지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방법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또한 철저히 닫힌 구조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제2차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또 한 차례 의미있는 수치를 제공했다. 2003년 타결임금인상률이 전년도와 비슷하고 정액급여 상승률의 둔화를 고려하면 2002년 6월∼2003년 8월 비농민간전산업 정액급여 상승률이 '9.3%'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숫자 세 개, 11.2%, 8.2%, 9.3%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 정도다'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처럼 닫힌 내용을 검토해야 하는 임금수준전문위원회는 올해는 그야말로 진정한 '임금수준접수위원회'로만 기능했다. 5월16일 열린 제1차 회의는 아침 식사만 들고 끝났다. 이날 최저임금 요구안을 발표해야 할 한 사용자위원이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아침을 들자마자 자리를 일찍 뜬 탓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일정이란 자사 사원 등반대회였다.

이어 5월30일 열린 제2차 회의에서 노사가 각각 최저임금 요구안을 설명했다. 노동계의 요구안은 지난해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절반인 700,600원(시급 3,100원)이었다. 사용자 쪽은 두 개의 요구안을 제출했다. 경총의 요구안은 한계·저임금 업종 3년간 생산성 평균치인 3.5% 인상으로 532,230원(시급 2,355원)이었고 중소기업을 실제로 운영하는 한상원 위원이 용감무쌍하게도 '동결안'을 제출했다.

이 에 따라 이날 회의는 공익위원들한테서조차 사용자들이 씹히는 분위기였다. "한계업종이라니 무슨 뜻인가. 당장 망할 업종에 조립금속도 해당되면 삼성전자말고 망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는가",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빼라니 우리도 60년대에 독일로 일하러 가면서 그런 대우를 받은 적은 없다. 기업이 세계화를 하자면서 그런 주장을 하면 어떡하나", "재계가 단일안을 내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보나 회의운영의 효율성으로 보나 문제가 된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재계가 경총안으로 단일안을 제출한 것은 6월13일 제3차 전원회의에 이르러서다.

아무튼 이번 임금수준전문위원회는 첫날은 사용자위원이 바빠서, 둘째 날은 재계가 단일안을 내지 않아서 토론다운 토론 한번 진행하지 못한 채 임금요구안만 접수받고 끝났다.

현지실정 조사의 의미 퇴색

최 임위는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현지실정 방문조사를 나간다. 조사결과는 80쪽 가까운 분량의 보고서로 제출돼 각 위원들의 책상에 올라온다. 노동계와 재계는 사업체 방문 경험이 이후 공익위원들의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사업체 노사대표한테서 보다 그럴듯한 대답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상 노사의 힘 겨루기가 '장외'로 이어지는 셈이다.

올해는 두 차례 열린 임금수준전문위원회 중간인 5월19일 성남·안양지역에 있는 업체 각각 두 곳, 22∼23일 원주·강릉지역에 있는 업체 각각 두 곳이 선정됐다. 필자가 지적할 대목은 이 현지실정 방문조사 역시 노동계가 관여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첫째 사업장 선정 문제다. 8개 사업장 중 7곳은 노동부 추천이고 1곳은 민주노총 추천 업체다. 조사대상 지역과 조사시점은 4월25일 제1차 전원회의에서나 알게 됐다. 사업체를 방문하려면 선정대상은 적어도 5월 중순 이전에 결정돼야 한다. '추천할 사업체가 있으면 하라'는 것은 정말 '예의상' 한 제안이 아니었을까. 민주노총은 그만 눈치도 없이 의왕에 있는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로템 청소용역업체를 최임위에 추천했다.

둘째 사용자 편향적인 면접대상 선정문제다. 이번 방문업체 여덟 곳 중 그나마 노동자를 면접할 수 있었던 사업장은 다섯 곳밖에 안 된다. 그러나 사용자를 면접한 시간에 견주어 절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할애해 현행 최저임금액 인지여부, 적정한 최저임금 수준을 묻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강릉에 있는 한 업체의 경우 노동부가 노동자도 조사한다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아 조사당일 노동자 면담을 요청하자 사업주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셋 째 사업체 노동자대표를 만나더라도 정작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들은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사업체에서 용역이나 파견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방문업체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접조차 할 수 없었다. 넷째 면접내용의 진위성조차 확인하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앞서 밝혔듯이 민주노총이 추천한 로템 청소용역업체는 최저임금 위반여부가 확실시되는 사업장이었으나 현지실사 결과 위반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후 다시 방문해 한 청소용역 노동자를 면접한 결과 사업주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체의 연장노동시간이 없다더니 주당 49시간 이상 일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4대 사회보험이 다 적용된다더니 노동계약서에는 "산재발생시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버젓이 적혀 있었다.

이상의 현지실정 방문조사에는 전원위원 27명 가운데 성남·안양은 14명, 원주는 4명, 강릉은 2명이 참여했다. 노동자의 생활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가정방문까지 하는 어떤 나라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사업주 어렵다는 소리나 듣는 현지실정 방문조사는 하루 속히 탈피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 요구 논의도 할 수 없어

공 익위원들이 비공개로 자체 회의를 열어 노사 모두에 대해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이란 이름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노사가 제출한 최저임금 요구안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된다. 올해 공익위원은 최저임금 교섭이 막바지에 이르던 6월20일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비공개로 논의했다. 공익위원들은 그 결과를 6월24일 제5차 전원회의에 알렸다. 회의장은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고 한 공익위원은 "논의된 기준은 세 가지"라고 말했다. 첫째 생산성임금제에 따른 7.4%, 둘째 최임위 사무국이 분석한 생계비인상률인 11.2%, 셋째 분배율을 고려한 15.1%로, 7∼15% 범위라는 것이다. 또 다른 공익위원은 "경기전망 업무를 하는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국민경제생산성 증가율을 반영한 인상률을 계산해 보니 6.7% 더라"고 말했다.

최종태 최임위 위원장은 이어서 "공익적인 입장에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걸 감안해서 심도있게 논의했다"면서 "참고사항일 뿐이고 어디까지나 암묵적이다"라고 비껴갔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해마다 이처럼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범위 안에서 결정돼 왔다. 지난해에는 7.5∼10.5% 인상범위가 나왔다. 노동계는 이를 조금 벗어난 11.4%를, 재계는 8.3% 인상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했고 결국 공익위원들은 재계쪽에 손을 들어줬다.

7∼15% 범위라….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는 청와대 태스크포스팀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얘기가 나왔다고 알려진다. 문제는 현행 법정 최저임금이 1백만 원이나 2백만 원이 아니라 고작 51만원이라는 데 있다.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에 관해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절반을 요구하는데 공익위원들은 이 요구가 맞는지, 맞으면 어느 정도 단계를 거쳐 도달할 수 있는지 견해를 밝혀달라"는 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그건 당신네들의 주장일 뿐이다"라고 일축하더니 겨우 55∼59만원 사이에서 한 달을 살아보라고 결정한 것이다. 이 액수와 '공익'과는 어떤 관계를 갖는 걸까.

앞 서 제기했듯이 그 경제지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아닌지 노동계로서는 확인할 길도 없다. 다 결정해 놓고 어디 주장이나 한번 해보라는 뜻에서 노사단체에 대해 요구안을 내라고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최저임금은 이처럼 경제논리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대다수 공익위원들과 정부가 제시하는 인상범위 안에서 결정돼온 것이다.

'참여'는 오케이, 논의는 노!

1987 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이익집단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각종 위원회를 만들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 가운데 노사 모두에게서 중요도가 높은 위원회로 꼽힌다. 최종태 위원장은 회의석상에서도 연신 "우리 위원회처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으며 재계 관계자들도 비슷한 소리를 한다.
그러나 도대체 뭐가 민주적이라는 건가.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을 밝히는 것은 가치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교수사회에서는 금기다", "토론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사람들과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절차와 순서에 따라 회의만 진행하면 민주적으로 운영됐다고 좋아할 일인지 궁금하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범위는 어느 선이라고 정해놓고서 노사단체를 형식적으로 참여시키는 것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되물음이다.

군사정권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정책결정에 견주어 이익집단을 참여시키는 구조는 분명 '열린' 구조이긴 하다. 그러나 '참여'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것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열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노동계와 일부 공익위원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제작년도:

통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