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상위 0.1%가 만드는 불평등의 세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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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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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1998년 IMF 구제금융을 겪을 당시 한 권의 책이 유행했다.『세계화의 덫』으로, 이 책에는 당시의 사회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개념이 있었다. 바로 ‘20 대 80의 사회’였다. 경제의 세계화가 만들어 낸 그늘은 20%의 승자를 위해 80%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불합리를 표현할 만큼 강력한 말이었다. 물론 20%에 속한 사람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세상을 어지럽히는 불온한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발생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신조어가 등장했다. 더 간결하고, 더 충격적이고, 더 위험하다. ‘상위 0.1%의 슈퍼엘리트’.
『플루토크라트-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그 나머지』(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열린책들, 2013)는 바로 그 상위 0.1% 계층에 대한 얘기다. 우선 플루토크라트의 뜻을 알아보면, 그리스어로 부를 뜻하는 ‘플루토스’와 권력을 뜻하는 ‘크라토스’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계층을 뜻한다. 상위 0.1%에 대한 신조어는 또 있다. 씨티그룹 전략가들은 2005년에 발표한 한 자료에서 “세상은 두 블록으로 갈라지고 있다. 플루토노미와 그 나머지로”라고 지적했다. 플루토노미는 ‘플루토크라트’와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의 합성어로 소수의 부유층에게 부가 집중된 상태를 일컫는다. 플루토노미 계층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국가·국적·조국과 같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보다, 전 세계 0.1% 계층에 대한 소속감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의 주범은 사치스러운 99% 계층?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 미국에서 계급불평등은 매우 불편한 단어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2008년 이후 미국에서는 이 불편한 단어가 언론과 출판물에서 빈번히 등장하면서, 불평등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런데 왜 0.1%인가? 몇 가지 숫자들로 얘기를 풀어보자. 1920년대 중반에서 1940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 정도였다. 이 수치는 제2차 세계대전 동안 33%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1970년대까지 큰 변화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2006년에 상위 10%는 미국 전체 소득의 50%를 차지했다. 더 놀라운 것은 상위 1%의 소득 분배 변화다. 2002~2006년에 걸쳐 이 계층은 미국 전체 소득성장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상위 0.1% 중에서도 0.1% 계층에 속하는 투자자 워렌 버핏은 “계급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도발한 쪽은 나의 계급, 즉 부자 계급이며 우리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며 현재 미국 내 계급불평등 상황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조지 소로스나 워렌 버핏, 빌 게이츠와 같은 플루토크라트들은 미국 내 불평등을 우려하고,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에 따르면 대부분의 플루토크라트들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책의 6장 ‘플루토크라트와 우리들 나머지’를 읽고 있노라면 저절로 “너, 어느 별에서 왔니?”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다. 지은이가 미국 금융위기의 책임에 대해 월스트리트의 한 투자은행 CEO에게 질문을 하자, 그는 ‘분수에 맞지 않게 차를 세 대씩이나 몰고 함부로 집을 샀던’ 자신의 사촌을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거나, 거품이 절정일 무렵 투자 목적으로 콘도를 세 채나 산, 자신이 즐겨 찾는 애리조나 골프장의 캐디를 지목했다. 이 CEO의 얘기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다소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99.9%의 계층이 능력도 없으면서 과다한 소비를 일삼아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식의 태도에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이들에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반기업적 성향’의 지도자이거나, 심지어 ‘사회주의자’이기도 하다.
 
“제너럴 모터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
그렇다면 0.1% 계층은 어떻게 부를 쌓아올렸는가? 지은이는 지대추구와 인지포획 이론을 빌려 0.1% 슈퍼엘리트들의 전략을 설명한다. 슈퍼엘리트들은 시장에서 부를 창출하여 파이의 크기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여 기존의 파이에서 그들의 몫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를 얻는다. 이러한 방식은 러시아의 민영화 과정에서 커다란 부를 쌓은 올리가르히나 중국의 강도 귀족에서부터 미국 금융기관의 과잉규제를 규탄하는 CEO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인다. 특히, 2007년 불붙었던 규제 완화를 향한 미국 월스트리트와 영국 시티 오브 런던의 치열한 경쟁, 그리고 그들의 삐뚤어진 공모가 2008년 금융위기를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지적은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다. 또한 규제 완화의 배경이 ‘시장에 대한 성스러운 믿음’이라기보다는 0.1% 슈퍼엘리트의 지대추구에 기인한다는 분석은 후련하기까지 하다. 0.1% 슈퍼엘리트들은 주요 규제 기관에 뇌물을 바치는 하급의 방식을 쓰지는 않는 대신,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를 내면화하는 정부 고위층 인사들을 통해 목적을 달성한다. 그리고 대표적 인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을 꼽는다.
1950년대 제너럴 모터스(GM)의 CEO인 찰리 존슨은 “제너럴 모터스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라고 함으로써,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 논쟁은 “제이피(JP)에 나쁜 것은 국가 전체에도 나쁘다”는 식으로 부활하였다. 0.1% 슈퍼엘리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한 국가 혹은 전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애플과 구글이 만들어 내는 세상
구글의 CEO였던 에릭 슈미트는 “많은 기술 기업들이 저임금 근로자들을 직접 채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파견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죠. 기업은 직접 고용하지 않은 근로자들을 얼마든지 차별 대우할 수 있습니다. 화장실 청소부는 우리들과 같은 부류가 아닙니다.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그게 사실이죠”라고 했다. 하지만 난 오늘도 ‘구글링’을 통해서 노동기본권에 도움이 되는 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은 노동시장에 무슨 영향을 미쳤는가? 한마디로 “일자리의 양극화, 멋진 일자리와 형편없는 일자리” 현상을 가져왔다. 2006년 아이팟은 해외(2만 7250명)에 미국(1만 3920명)에 비해 두 배 가량 많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자국보다 해외에 일자리를 더 만든 것이다. 그러나 소득을 보면 얘기는 약간 달라진다. 6천여 명 정도의 미국 기술자 및 전문가들은 5억 2,5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벌었고, 나머지 7,800명의 미국 내 비전문직 종사자들은 2억 2,500만달러를, 그리고 2만 7250명의 해외 노동자들은 3억 2,000만 달러를 벌었다. 각각 1인당 8만 7,500 달러, 2만 8,000 달러, 1만 1,000 달러를 번 것이다. 미국에서 연간 소득 2만 5,000 달러는 상위 25% 정도의 임금에 해당한다.  
 
이기심에 기반하는 사회시스템에 주목해야
세상의 0.1% 계층이 촉발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악한’ 플루토크라트와 ‘선한’ 플루토크라트를 구분할 기준은 없다. 다만, 낮은 세금과 솜방망이 규제, 형식적인 노동조합과 아무런 제약이 없는 정치 후원 제도는 플루토크라트에게 최고의 이익을 갖다 준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이러한 것은 0.1% 슈퍼엘리트를 양산해 낸 현 경제시스템을 유지시킬 뿐이다. 지은이는 선한 플루토크라트인 워렌 버핏에 대해 “자본주의의 창조적 파괴(열린 경제)는 투자의 확실성에 걸림돌이 되므로 해자(垓子)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짚고 올라간 그 사다리를 걷어 차 버리고 싶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지은이의 해법은 근시안적 이기심에 눈 먼 0.1% 계층에게 ‘장기적 탐욕’의 수련을 제안하는 것이다. 
여기부터는 다르게 생각해 보자. 어떤 사회시스템 혹은 제도가 인간으로 하여금 이기심을 추동한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즉 이기심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기 보다 이기심을 형성해 내는 사회시스템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시스템은 필연 혹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구호가 보다 선명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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