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그들은 어떻게 협동조합으로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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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 역사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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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이제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썬키스트, FC 바로셀로나, 몬드라곤 등의 해외 협동조합 사례가 한창 소개되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 우리 사회에도 ‘협동조합 시대’로 불릴 만큼 많은 협동조합이 설립되고 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신고 또는 인가된 협동조합의 개수는 4,823개로(2014년 5월 기준) 한 달 평균 268개의 협동조합이 설립된 꼴이다. 
짧은 기간 동안 협동조합의 수가 급증한 것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있지만, 그만큼 경제적 사회적으로 ‘협동’이 절실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회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 또는 집단의 ‘필요’에서 출발한 협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자본 중심의 우리 사회에 의미있는 변화가 야기될 것이다. 하지만 필요가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협동조합의 수많은 성공사례가 소개되었고 누군가는 협동조합의 성공전략을 정리해 놓고 있지만, 여전히 협동조합을 건실하게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최초로 성공한 협동조합, 로치데일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 역사와 사람들』(원제: Self-help by the people: The History of the Rochdale Pioneers)은 170년 전 직공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협동조합의 이야기이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최초로 성공한 협동조합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 책을 쓴 홀리요크(George Jacob Holyoake)는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성공을 결과론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과정상에 있었던 일화와 어려움을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영국 맨체스터 북동쪽에 위치한 로치데일은 직물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해당 지역 노동자들 역시 1840년대 영국 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의 억압과 횡포로 삶이 피폐한 상태였다. 당시 노동자들은 1파운드의 고기를 사고 나서 집에서 무게를 다시 달아보면 그것에 못 미쳤지만 외상 빚 때문에 가게 주인에게 항의 한번 제대로 못했다. 임금의 일부는 현금이 아닌 공장주가 운영하는 가게의 상품권(token)으로 받아 질 나쁜 물건을 강매당하기도 했다. 
로치데일 직공들은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차티스트 운동, 금주운동, 사업주와의 교섭 및 투쟁 등을 벌여온 가운데, 1843년 직물제조업의 호황을 맞아 대대적인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로치데일 직공들은 파업 실패 이후 ‘민중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다시 토론을 시작했고, 협동운동으로 결론을 내렸다. 
 
“인내가 승리를 거두었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다른 방식의 운동을 주장하는 일부 구성원들의 우려와 소규모 자본으로 초라한 출발을 보였지만, 이 책의 저자 홀리요크는 이 조직이 모범적이고 발전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음을 역설한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핵심 운영규칙 중 ‘조합 이용액에 기초한 이윤배당 방식’은 과거 다른 협동조합에서도 사용되었고, ‘현금거래 원칙’은 로치데일 협동조합 이후 다른 많은 협동조합에 전파되었지만 그들이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만큼의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였음을 지적한다. 결국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의 성공은 몇 개의 운영원칙이 아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서 비롯되었음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로치데일 선구자들은 사업 측면에서 매우 헌신적이고 감각적인 활동을 보였고, 이는 로치데일 협동조합 발전의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로치데일 선구자들의 모습을 절반만 드러낸 것일 뿐 운영의 측면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을 협동으로 묶기 위해 보여주었던 인내는 더욱 크다.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1850년 신규 사업으로 제분조합을 설립하기 위해 출자를 했는데, 약 1년 반 동안 적자에 허덕였다. 일부 조합원은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제분조합 파산으로 이어지기 전에 사업을 포기하라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다른 조합원은 돈을 갹출해서 적자를 메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로치데일 선구자는 제분조합을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이후 사업을 정비하며 빚을 조금씩 갚아 갔지만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다. 제분소 건물 주인이 땅값을 내지 않아 법원이 제분조합의 재산을 차압한 것이다. 다시 일부 조합원들은 실패를 예언했단 듯이 조합의 시련에 쾌재를 부르기도 했으나, 마침내 제분조합의 적자는 청산됐고 책의 표현대로 “인내가 승리를 거두었다.” 로치데일 선구자들은 불만과 트집을 일삼고, 불안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비난으로 맞서지 않고 조합의 성공으로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협동조합의 길잡이 될 로치데일 
물론 로치데일 협동조합 내의 관용과 인내는 좋은 미덕이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사안을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하지는 않았다. 1849년 조합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일요일에 조합원실을 운영하지 말아야 하고, 종교적인 논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상대방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조합원으로 인해 협동조합의 중요한 가치가 훼손되고 조직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1850년 2월 총회를 통해 “조합원은 정당한 절차에 따라 회의에 제출된 모든 안건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점과 “새로 가입한 조합원은 다음 총회 후 6개월이 지나야만 안건을 낼 수 있다”는 내용을 결의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로치데일 공정선구자 협동조합: 역사와 사람들』은 아주 오래된 다른 나라 협동조합의 경험이지만, 주도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거나 또는 조직설립의 초동 주체가 될 사람이라면 그들이 겪은 문제, 사람들의 태도, 해결방식 등을 짚어보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우리 사회에 늘어나고 있는 노동조합이 중심이 된 협동조합에게 170년 전의 역사를 통해서 노동조합 내 논쟁을 발전적으로 전개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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