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화 위 피운 민족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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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천 참사’와 남북관계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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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il@tongilnews.com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있다. “화를 바꾸어 오히려 복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지난 4월22일 북한에서는 뜻하지 않게 룡천역 폭발사고가 났다. 북측은 ‘룡천 참사’라는 ‘화’를 입었는데, 남북한 우리 민족이 힘을 합해 이를 ‘복’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냉전시대 때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고 또 향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 냉전논리에 의한 언론 보도가 룡천폭발사고 보도에서도 여전히 드러났다.   - 출처:통일뉴스 ]

룡천 참사 원인과 피해 상황

‘사고 원인’과 관련,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는 “지난 4월22일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질안비료를 적재한 화차들과 유조차들을 ‘갈이’하던 중 부주의로 인해 전기선에 접촉하여 폭발사고가 발생하였다”고 4월24일 보도하였다. 조선말 대사전은 ‘갈이’를 “낡거나 못쓰게 된 부분을 떼어내고 새 것으로 갈아대는 일”로 표기하고 있다. 

북한말로 ‘차갈이’는 “(운수분야에서) 짐실이(상차)와 짐부리기(하차) 및 그 밖의 작업을 위하여 역 또는 공장, 기업소 구내선들에서 차량을 옮기는 일”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이번 룡천역 폭발사고의 원인은 운행을 앞두고 차량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느슨해진 전선에 차량이 닿아 스파크를 일으키면서 연쇄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피해 상황’과 관련, 북측은 26일 “인명피해 중에서 사망자수는 150여명, 부상자수는 1,300여명이며 행방불명자 수는 현재 조사중에 있다”면서 건물 30여 동과 8,100여 세대의 살림집이 파괴되었으며, 피해반경은 2㎞이며 가장 심한 피해반경은 1.5㎞, 화차들이 폭발한 지점의 구덩이 깊이는 15m라고 발표했다. 특히 인명피해 중에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피해가 커 듣는 이의 가슴을 쓸게 했다.

북한은 다음날인 27일 “열차 폭발사고에 대한 피해조사가 심화되면서 피해영역이 예상보다 점점 확대되고 있다”면서 “1톤 짜리 폭탄 100여개가 순간에 한 지점에 떨어진 것과 같은 폭발위력”이라면서, 이 사고로 “초보적으로 조사장악된 총 손실액은 480여억원(3억유로)”에 달하며 “매일 2만여명이 구조작업에 동원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한 북측의 복구사업은 눈부시다. 북한은 박봉주 총리가 말했듯이 국가적 차원에서 복구사업에 임하고 있다. 북한은 4월27일 “지금 공화국 정부에서는 룡천역에서의 열차폭발 피해를 하루 빨리 가시고 주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부총리를 총책임자로 하여 ‘룡천피해복구중앙지휘부’를 꾸렸으며 평안북도 “도당위원회에서는 도(道)안의 모든 시·군과 공장·기업소들의 전체 노동계급이 총동원되어 3개월 안에 모든 피해를 기본적으로 가시고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달라진 남과 북

어떤 사고가 터지면 그와 연관된 많은 다른 사건, 사고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룡천역 폭발사고가 났을 때 1977년 남측 이리역 폭발사고가 생각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또한 지원사업을 생각하면 1984년 9월 남측 수해 때 북측의 조건 없는 원조와 1990년대 중반 큰물과 가뭄 등 자연재해를 입은 북측을 위한 남측의 북녘동포돕기운동이 떠오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복구사업을 생각하면 북측의 1950년대 ‘전후복구사업’과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가 떠오른다. 이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자력갱생과 동포애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 같은 대형 참사를 알리고 지원하는 가운데 북과 남에서 각각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이 나타났다. 하나는 북측의 태도다. 북측은 이번 사고를 매우 신속하게 발표했다.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 존립에 부정적인 사건사고는 보도하지 않는다”는 보도원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북한은 국내 사고일 경우 자력으로 복구할 수가 있다면 외부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룡천 참사의 경우 북한은 이틀만에 사고 소식을 신속하게 공개했으며 또한 나흘째부터 피해 상황을 상세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예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신속한 보도를 한 것은 이번 사고가 북한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초대형 참사여서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우리는 여러 나라 정부들과 국제기구 및 단체들에서 인도주의 지원 용의를 표시하고 있는데 대하여 평가한다”고 말해 외부의 지원을 간접적으로 요청했고 또 외부 지원에 대해 감사 표시를 했다. 남측의 지원단체에 대해 일일이 고마움을 표시한 것은 물론이다.

다른 하나는 남측의 대대적인 지원이다. 사고가 나자 4월23일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건 국무총리는 “매우 불행한 사고로서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면서 ”인도적 차원의 지원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도록 하라”고 지시했으며, 대한적십자사는 북측으로부터 구호요청이 온다면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으며,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정부는 동포애와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도 국제기아대책기구, 국제옥수수재단,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새마을운동중앙회,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월드비전, 한민족복지재단, 환경운동연합 등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소속 단체들과 55개 시민단체(5월6일 현재)가 모여 범국민 운동조직인 ‘북한룡천역폭발사고피해동포돕기운동본부’를 결성해 대대적인 범국민모금운동을 벌이고 재계, 정계, 의료계 등에 협조를 요청했다. 


[ 4월 28일 민간단체들이 참여해 100억원 이상의 룡천 지원물품이 인천항을 떠나 중국 단동항으로 향했다. - 출처:통일뉴스 ]

‘남남갈등’이 발 못 붙인 이유?

특히 놀라운 일은 그간 북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여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들도 이번 룡천참사에 대해서는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에 적대적인 한나라당과 조선일보조차 “정치적 입장을 떠난 동포애적 접근” 또는 “조건없는 인도주의적 도움”이라는 표현을 쓰며 대북지원 입장을 표명했다. 한 마디로 외견상으로는 전민족적 차원에서의 대북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가능해졌는가? 민족화해 입장을 띠는 단체가 북을 지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시도 때도 없이 ‘북한 발목잡기’에만 혈안이 되어온 수구우익 세력조차 대북지원에 나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한마디로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 부응하지 않는 세력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존재가치를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는 먼저, 6·15 남북공동선언 4년의 성과로 이해할 수 있다. 6·15 공동선언 발표 이후 4년에 걸쳐 남북간에 이루어진 교류와 협력, 단합과 단결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국간 차원에서 장관급, 경제, 스포츠, 문화 등 각 영역과 함께 민간 차원에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단 등 각계각층에 이르기까지 전방면적으로 남북 교류가 이뤄졌다. 이 흐름이 남북에 음양으로 영향을 줌으로써 “민족은 하나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민족의식’이 싹텄고, 북측의 재난이 곧 남측의 재난으로 와 닿은 것이다.

둘째, 이른바 ‘북핵문제’를 둘러싼 지리한 북미대결에서 남측 국민의 민족적 입장이 서서히 구체화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핵문제 해법을 둘러싼 북미간 대립과 6자회담에서 북미간 입장을 보면서 남측 국민들은 어느 쪽이 더 성의 있게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를 판단하게 되었다. 북측이 새로운 제안을 내옴에 비해 미국측은 오직 ‘선핵포기’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북미대결 과정에서, 남측 국민들이 북측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 4·15 총선에서의 개혁·진보세력의 승리를 들 수 있다. 3·12 탄핵정국과의 연관성 속에서 치러진 4·15 총선은 그간 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던 숱한 모순들과의 대결이었다. 금권 정치와 깨끗한 정치, 지역주의와 탈지역주의, 민주와 반민주,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등이 쟁패했는데, 이를 남북 사이의 차원으로까지 연장하면 ‘민족화해 대 민족대립’, ‘통일 대 반통일’ 더 나아가 ‘민족 대 반민족’, ‘민족자주와 외세의존’이라는 구도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 그런데 4·15 총선에서 개혁·진보세력과 민족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세력이 승리했기에 민족화해를 원하지 않는 세력의 입지가 현저히 좁아진 것이다.

힘 못 쓴 보수언론의 추측성 보도

물론 일부 수구 언론들에서 이러한 변화에 역행하려는 몇 가지 시도들도 나타났다. 먼저, 사고 원인을 둘러싸고 나타났다. 즉 단순사고가 아닌 ‘의도적인 사고’로서 테러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북중 정상회담을 마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행이 탄 특별열차가 룡천역을 통과한지 8~9시간이 지난 뒤에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김 위원장을 겨냥한 음모설이 제기됐긴 했으나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추측성 보도임이 곧 밝혀졌다.

역행하려는 시도는 지원복구사업 과정에서도 또한 나왔다. 미국과 남측의 일부 언론들에서 북측이 “룡천역 폭발사고에 대해 한국과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의사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치료인력이 부족하고 부상자 치료에 무관심하다”, “룡천역 사고현장 취재를 봉쇄하고 있다”고 악의적 보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수구 언론들의 이러한 추측성 보도와 악의적 보도들이 이번에는 전혀 힘을 못쓰고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이제 남북교류 질적 전환을 이뤄야 

룡천 참화가 한달이 넘으면서 북측의 국가적 차원과, 국제사회와 재외동포 그리고 남측의 지원에 힘입어 착실히 복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속도전’의 명수이자 이보다 더한 어려움도 극복한 전례가 많기에 “3개월 안에 모든 피해를 기본적으로 가시고 정상적인 생활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해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면서 “매일 2만여명을 구조작업에 동원”하는 등 피해복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복구사업에는 특히 남측의 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인 지원이 컸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에 있어 몇 가지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먼저, 남과 북은 좋은 전통을 갖게 된다. 남과 북은 어려울 때 서로 원하고 돕는 전통, 더 나아가 이기고 성공한 전통을 갖게 된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에서 외세침입이나 자연재해에 맞서 힘을 합쳐 슬기롭게 헤쳐온 자랑스런 전통을 갖고 있다. 룡천 참화가 복구된다면 이는 우리민족이 합심협력해 극복했던 민족적 재난을 상기시키며 그 전통을 잇게 된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민족적 재난이 닥칠 경우 남북은 조건 없이 상호 도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북간 성공한 전통이 ‘민족공조’의 단초로 나타날 공산이 크다. 즉 어려운 일에 합심협력 했기에 다른 차원에서 외부의 압력이 있을 경우 이에 함께 공조해 대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한반도의 모순구조가 ‘남북한 우리민족 대 외세’라는 것이 명백해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대결구도가 심화될수록 남측 국민들은 민족적 입장에 서서 남북간 민족공조 입장을 취할 것이다.

또한, 남북관계가 한 단계 높게 변화, 발전하는데 밑바탕이 될 것이다. 6·15 공동선언 4년이 지나면서 남북간에 숱한 교류와 발전이 있어왔다. 이제는 이러한 양적인 축적에 맞게 한 단계 높은 질적인 변화를 이룰 때다. 이를테면 당국간 차원에서 남북 장관급회담 외에도 국회회담이 이뤄질 수도 있으며, 민간차원에서 개별적인 각계각층 연대사업의 차원을 넘어 전민족적 차원의 ‘정당사회단체회담’으로 나아가는데, 이번 남측의 대북지원이 이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 

북측이 입은 민족적 재난을 남측이 조건 없이 동포애적 지원을 함으로써, 룡천 참사가 민족적 차원에서 순조롭게 복구된다면, 이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룡천 참사는 하나의 ‘사고’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단결과 남북관계 발전에 기여한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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