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사회적 합의주의’ 무엇을 이뤄낼 것인가

부 제목: 
국회와 민주노총 겨냥한 한국노총 하반기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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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의 긴장감이 드높다. 지난해 한국노총의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열사투쟁(고 김태환 충주지부장) 때와 비슷한 기운들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여름,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과 사무총국 간부 대다수는 충주에서 한 달여를 머무르며 투쟁을 해왔다.
 
각 산별위원장들과 지역본부 의장들의 삭발과 철야농성도 이어졌다. 그리고 총파업을 선언했던 한국노총은 2005년 7월7일, 평일(목)임에도 불구하고 3만여명의 조합원들이 광화문에 모인 것으로 그 ‘긴장감’의 실체를 보여줬다.


[ 2006년 11월25일 열린 한국노총 노동자대회 ]

인정투쟁으로 받아들여졌던 장관퇴진투쟁

올해도 그 긴장감의 실체는 6만여명의 조합원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것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긴장감은 더 높았고 한국노총의 결의는 한층 고조됐다. 그러나 올해, 뭔가 다르다. 동지의 죽음에 울부짖으며 세상을 향해 내지르던 ‘분노’는 사라졌다. 대신 ‘합리’와 ‘국민’, ‘평화’가 자리 잡았다. 지난해 “학생들일지라도 한국노총 집회에 와서 쇠파이프를 들어줄 사람들 없냐”고 농담을 건넸던 한 간부는 올해 “한국노총은 전투경찰 없이 평화집회를 열었다”고 선전하기에 바쁘다. 

노동조합이 전투적이냐 아니냐를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가름 내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한국노총은, 아니 더 정확하게는 한국노총을 둘러싼 정세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래야만 지난해와 다른 ‘올해 한국노총’임에도 왜 긴장감이 높은지, 왜 하반기 투쟁 승리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옛날이야기부터 해 보자. 지난해 이용득 위원장은 고 김태환 충주지부장 투쟁에 대해 “정부의 반노동자적 실체를 드러낸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노동운동진영 연대의 중요성 또한 새삼 깨달았다”고도 밝혔다. 지난해 한국노총의 투쟁은 잠시였을 뿐이라도 노동계에서는 최초로 노무현 정권 퇴진이라는 구호를 걸었듯, 대정부 투쟁임을 분명히 했다. 그 핵심에는 당시 김대환 노동부 장관 퇴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시 김대환 장관은 한국노총의 이러한 투쟁을 ‘인정투쟁’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김 장관은 버텼다. 그러나 그 다음해 초, 결국 물러났다. 정치인이었던 이상수 장관이 새롭게 등장했다. 법과 원칙은 옅어지고 대화와 타협이 시작됐다. 그것은 정부(청와대)의 의지였으나 한국노총 투쟁의 성과기도 했다. 물론 민주노총의 힘도 매우 컸다.

‘퇴진’에서 ‘합리’로? 바뀐 건 없다?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다. 한국노총 입장에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노사정 5자 합의와 의미,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야합이니, 합의니 하는 논쟁은 제쳐두겠다는 점을 밝혀 둔다. 어쨌든 한국노총은 ‘그 합의’를 ‘투쟁을 통한 성과’라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노총은 “우리가 부산 ILO아태지역 총회에서 철수하고 이용득 위원장이 단식선언을 할 때 민주노총은 뭐하고 있었느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그 합의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을 하겠다고 한다. 지난해와 비슷한, 아니 오히려 한층 더 높아진 긴장감을 갖고. 분노, 저항, 퇴진이라는 말 대신 대화, 타협, 합리, 국민이라는 단어들을 동원하면서.

변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투쟁의 목소리를 높이던 고 김태환 투쟁 당시에도 이용득 위원장은 그 이유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었으나 정부가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온건합리적 노동운동노선”을 갖고 있었고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상당히 적대적”이기 때문에 “협력적, 협조적 관계로 바꿔내야 한다”는 게 이 위원장의 신념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도(심지어 정부보다도) 사회적 대화, 사회적 합의주의를 간절히 바랬다. 세간에서 ‘혹시 진짜 한국노총이 변하는 것이냐’는 궁금증을 낳게 했던 지난해와, ‘역시 한국노총은…’(표현 그대로 말 줄임)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고 있는 지금이나 그 노선에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리고 한국노총은 지난해(고 김태환)와 올해(로드맵 합의) 투쟁을 통해서 이 같은 노선을 쟁취해 왔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쟁취한 것을 지켜내려 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바로 이때가, 대세를 점할 수 있는 적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대로 여기서 실패했을 때 한국노총 노선은 그 자체로 흔들릴 수도 있다. 그것이 올해 ‘노사관계 로드맵 합의 관철’이라는 하반기 투쟁을 앞둔 한국노총이 갖고 있는 긴장감의 실체인 것이다.

사무총국 모든 간부가 발로 뛰며 준비한 노동자대회

이미 한국노총 관계자들은 노사정 합의의 관철과 한국노총의 위상 제고라는 두 가지를 이번 하반기 투쟁의 핵심으로 짚고 있다. 복수노조 도입과 전임자임금지급금지 유예라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합의 관철’은 한국노총으로서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다. 더구나 이미 사회적 합의주의를 노선으로 잡고 있는 한국노총이 노사정이 합의한 사항마저 법으로 제정시켜내지 못한다면, 노사정 대화를 통한 노조의 사회적 개입이란 명제는 그 자체로 한국사회에서는 사실상 성립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새로운 노동운동을 강조하고 있는 한국노총으로서는 자신의 이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투쟁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아울러 ‘한국노총의 위상 제고’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한국노총은 일반적으로 “대화만 강조하지 투쟁력은 없는 조직”으로 치부돼 왔다. 이 같은 일반적 평가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노조연합체로서의 한국노총은 그 위상을 사회적으로 쉽게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노총이 11~12월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응하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점도 한국노총에게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전국노동자대회를 준비하던 한국노총 사무총국 사무실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오히려 분주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이를 관철하기 위해 역사상 거의 최초로 사무총국 전간부들이 동원돼 약 3주간에 걸쳐 수도권을 중심으로 200여개가 넘는 단위노조와 전국 지역조직들을 방문했다. 그리고 하반기 투쟁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 그 결과, 6만여명의 조합원들이 한 곳에 모여 한 뜻을 이뤘다. 한국노총의 투쟁은 그렇게 긴장감 있게 준비돼 왔고, 준비되고 있다. 

사회적 주체로 서기 위해

물론 여기가 끝이 아니다. 한국노총의 목표는 민주노총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회에서의 논란을 꺾고서라도, ‘노사관계 로드맵 합의 사항’을 관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노총은 대국회 투쟁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골몰하고 있다. 일단 전국노동자대회의 성공적으로 성사된 만큼 이 힘을 바탕으로 향후 투쟁을 더욱 바짝 죄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대국회 중심의 한국노총 투쟁은 ‘강온양면의 전술’을 동원하면서 국회 회기가 계속되는 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달라진 것은 한국노총을 둘러싼 정치적 정세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보자던 정부는 로드맵 협상 끝에 명분은 잃더라도 한국노총을 택했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도 노사정 합의 이전 ‘선 노·경총 합의’로 한국노총과 뜻을 같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것으로 한국노총은 나름대로 바라던 바, ‘사회적 합의주의’의 일부분을 실현했다. 또한 그것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그것은 대화와 타협이었기에 이미 일정부분의 ‘양보’를 전제로 한 것이다. 

반면 그것은 한국노총의 투쟁의 성과기도 하다. 이제 ‘9·11 합의’를 통해 한국노총은 꿈꿔오던 것들의 일정부분을 실현했고 ‘같은 편’도 얻었다. 걸림돌로 남은 것은 국회와 민주노총이다. 때문에 이번 한국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는 민주노총과 국회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총을 겨냥한 투쟁은 전국노동자대회를 기점으로 옅어지고 있는 기세다. 어차피 승부는 상호 비난보다는 국회에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하반기 투쟁 목표는 바로 로드맵 합의 관철이다. 그것은 곧 사회적 합의주의의 관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한국노총의 생존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돌아보면 김태환 열사투쟁 당시 김 전 장관의 인정투쟁이라는 말이 썩 틀린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올해 초 청와대 노동라인을 새롭게 재편하고 이상수 장관을 신임장관으로 임명하면서 노동계를 대화상대로는 ‘인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정’이라는 말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느낌이 강하다. 한국노총은 단지 ‘정부에게 인정을 받겠다’가 아닌, 적극적인 정부에 대한 투쟁(고 김태환), 혹은 정부를 배제하고서라도(노사발전재단) ‘사회적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사발전재단’과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이면 

이같이 한국노총은 한편에서는 ‘노사발전재단’이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실험을 통해, 다른 한편에서는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를 비판하며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라는 합리성을 통해, 자신의 노선을 관철하려는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동안 ‘어용’이라고 불렸던 ‘정부(혹은 자본) 협조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고, 힘 있는(혹은 투쟁력 있는) 민주노총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체적인 생존전략이기도 하며, 노동이라는 것이 정부나 자본과 동등해져 사회적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관철되기까지는 아직 험난한 길들이 많다. 한국노총은 일면에서 변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내용들은 중앙을 중심으로 기술한 한국노총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역과 현장에서는 아직도 과거의 구태의연한 협조주의 혹은 순종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직들이 한국노총에 많다. 그 모습들도 한국노총의 일부분이 틀림없다. 한국노총은 아직 자신의 노선을 사회에서 온전히 관철시키지도 못했으며 조직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노선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해질 것이다(이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를 갖는 다른 글이 될 것이다).

때문에 한국노총은 스스로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아직 장담하기 힘들다. 또한 한국노총이 “사회적 억압에 저항할 당시의 전투적인 투쟁방식이 관성적으로 남아있다”고 민주노총을 비판하듯, ‘합리성’을 내세운 한국노총 역시 그 관성에 젖어 또 다시 협조주의적으로 바뀌지 않으리라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그 같은 힘은 여전히 한국노총 조직 내에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이라고 해도 지난해 한국노총의 주요 화두는 ‘투쟁과 대화’였지만, 올해는 ‘대화와 타협’이 됐다. 그만큼 정세가 변했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것들(한국사회에는 없었던)을 모색해 나가는 한국노총의 좌충우돌은 여전히 불안하다.

좌충우돌의 힘, 어디까지 이뤄낼 것인가

한국노총의 ‘사회적 합의주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이라는 노선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의 모색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은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리적인 힘을 형성하고 있다. 이 힘은 한국노총 조직 자체가 불안하고 새로운 모색에 대한 좌충우돌을 겪는다 하더라도 한동안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용득’이라는 강력한 힘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물리적 힘은 한국노총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낸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실제 법률로 제정시켜 낼 가능성도 갖고 있다. 그것이 노동계가 한국노총의 움직임, 하반기 투쟁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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