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을 넘어 노조로 공무원을 넘어 노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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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11월 연가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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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으로 둔갑한 공무원

11월4일∼5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정부의 '조합법' 입법안 저지를 위해 연가를 내고 서울로 상경했다. 공무원노조 자체 조사에 따르면, 3만 명이 전국에서 연가를 신청했으며, 서울 상경투쟁에 모인 공무원은 모두 1만 명에 달했다. 4일 저녁 한양대에서는 공무원 노동자대회 전야제가 벌어졌다.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에 따라 곳곳에 배치됐던 경찰들을 피해 한 무리의 공무원들이 한양대에 집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전투경찰들이 전야제가 열리고 있던 한양대 대운동장에 쳐들어 와 곤봉을 휘두르며 조합원을 해산시켰고 그 와중에 6백 명이 연행되었다.

경남 지역의 한 공무원도 6백 명 중 한 사람이었다. 경찰서에서 48시간을 꼬박 채우고 나오게 되자,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했다. 아내 또한 아이들에게 아빠가 왜 이틀이나 안 들어오는지를 설명해 줘야 했다. 경찰서에 잡혀 있는 아빠를 어떻게 이해시킬까. 궁여지책으로 요즘 잘 나간다는 모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아빠가 지금 하는 일은 독립군과 같은 일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어색한 리본 달기

지난 9월1일 열린 대의원대회는 하반기 투쟁계획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대의원대회는 전국적인 수해 때문에 대의원들의 참석률이 저조했다. 그리고 9월15일 한자리에 모인 전국의 대의원들은 하반기 투쟁 계획을 의결했다. 10월 말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하고 11월 초 연가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무원 생활은 복지부동이 정도의 길이라 했는데 정도를 벗어난 길을 걷기 위해서는 오십년이란 시간의 벽을 허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리본 달기, 배지 달기, 청사에 플래카드 걸기, 조끼 입기 등 쉬운 것에서 시작해 투쟁 수위를 올려 갔다. 가끔 달아 본 리본이지만, 지금까지 달아왔던 리본과는 차원이 달랐다. 언제 나 자신을 위해 리본을 달고 청사를 돌아다닌 적이 있던가.
 
"이것 정도는 해 줘야 하는데, 잘 안하고 다니더라고요." 본조의 김정수 단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적잖이 아쉬운 눈치다. 배지는 오히려 많이 달고 다녔다. 9월 대의원대회 이후부터 전국에서 지부 임원들을 중심으로 청사에 플래카드를 달고 인터넷 게시판에 조직력을 과시하기 시작하면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본조는 차츰 투쟁의 강도를 높였다. 10월2일 간부상경투쟁, 10월17일 전지부간부결의대회, 그리고 쟁위행위 찬반투표. 연가 투쟁의 규모는 예상 밖의 성과였다. 김정수 단장은 연가 투쟁이 국민들에게 공무원노조를 알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한다면 한다

현재 179개의 직장협의회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지부로 활동하고 있다. 조합원 수는 가입대상 공무원 43만 중 약 7만 정도이다. 노조는 올해가 가기 전에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어떤 식으로든 정부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무원들에게 노동조합 의식을 폭넓게 만들어야 했다. 

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직협 시절부터 공무원들 내부에서 물들어 갔다. 몇몇 직협이 일궈낸 작은 성과들 때문이었다. 청사에 앉아 있다보면 주민홍보지, 배너광고, 연감 등 보지도 않는데 사야 될 것이 많다. 한 두 푼도 아닌데 울며 겨자 먹기로 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직협은 과감히 이를 폐지시켰다. 시청, 군청에 있던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 실로 변경했다. 외풍으로부터 직협이 방패가 됐다. 

관료 사회의 가장 큰 폐단 중 하나가 길게 늘어서 있는 결재 라인이다. 일일보고, 업무보고, 중간보고, 월별보고, 웬 보고가 이리 많은지. 내용보다는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형식이 지적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도 늘어선 결제 라인을 따라 가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이것도 간소화시켰다. 지시문화에 길들어진 조직을 직협이 개혁시키자 공무원 내부 사회에서 직협이 필요하다는 입소문이 퍼져 나갔다.

공무원 생활을 23년 넘게 해 온 경남지역본부의 사무처장 배갑식 씨는 요즘 하는 일이 재밌다고 한다. 7급 공무원으로 매일 틀에 박힌 일만하다가 이젠 스스로 일을 찾아 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다. 그는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르고 이 일을 시작했다. 1999년도 인터넷 검색 도중 우연찮게 직장협의회 법이 공표된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창원시청 직협의 사무국장을 얼떨결에 맡게 되었다. 초창기 회원은 4백5명. 직협 가입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직책이 너무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제외고 뭐고 없이 다 받아냈다. 지금은 천백 명이 넘는 숫자가 직협에 가입돼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하자하면 질질 끌지 않고 확 해버리는 성격이 강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화끈하다는 것이다. 50%를 넘기가 힘들지 50%을 넘으면 100% 가는 것은 금방이라고 했다. 지금의 주저함은 단지 공무원노조가 합법화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합법화만 쟁취된다면 조직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노동자로 거듭나기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출범했지만, 아직 공무원 스스로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생각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취재를 위해 만나본 지역 본부 활동가들에게 조합원 의식을 물으면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나오는 말이 있다. 다들 노조 필요성에는 동감하지만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수고한다며 마음을 전하거나 재정 지원에 머무른다. 물론 뛰어난 실천력을 보여 주는 곳도 있었다. 통영 지부는 연가투쟁 이후 전 노조원이 업무시간에도 조끼를 입고 업무를 보고 있다. 

경기지역본부의 한성웅 부본부장도 처음에는 스스로를 깨기 어려웠다고 한다. 시장과의 상견례라니. 과거라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총무과에서 시장과의 자리를 준비했다.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교섭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 수평적인 자리에서 교섭을 한다. 하지만, 총무과는 시장은 상석에, 노조 간부는 손님 테이블에 자리를 배정했다. 결코 수평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모습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갈 수는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고, 지금은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지부가 이 수준은 아니다. 직협 초기엔 단체장의 성격에 따라 직협 활동이 많이 좌우됐다. 한때 어느 도청에서는 직협을 '빨갱이' 집단으로 몰아 세운 적도 있다. 지금은 직협의 조직률이 높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노조가 힘의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단체장들도 공무원 노조를 억압하거나 배제하기보다는 교섭의 대상으로 인정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경남지역본부의 운영위원회는 오후 2시에 시작해도 저녁 9시, 10시까지 한다. 회의가 길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공무원들이 모인 회의가 아니라 노동조합원들이 모인 회의라는 것을 끊임없이 자극하기 위해서 단지 한 마디라도 하게끔 배려한 것이다. 도청에서 시청, 군청 직원을 모아놓고 훈시를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부분이 초기에는 상당히 어려웠다. 공무원 생활을 다들 20년씩 했던 조합원들이라 쉽게 우리는 평등한 조합원이란 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관료 사회의 수직적 명령 관계뿐만 아니라 도청과 시청, 군청의 관계도 수직적이어서 도청 조합원이 만일 지역 본부의 임원이기라도 하면 참 난감한 일이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회의 테이블에 앉아 의견을 나누고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직된 의사결정을 민주적으로 바꿔나가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은 민주주의 운동 아니냐'던 경기지역 한성웅 부본부장의 말처럼 그들은 이제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경남 지역본부 배갑식 사무처장은 나 스스로가 변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과거 같으면 복도를 지나가면서 서로 인사도 잘 안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우리' 조합원이라는 생각에 인사도 하고 술자리에서도 조심스럽다. 노동자 의식은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깨닫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가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 11월 4일 노동사회단체 대표들이 공무원노조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 출처:전국공무원노조 ]

간부역량 강화와 교육활동의 필요

본조와 지역 간부들이 공통으로 고민하는 지점은 이제 현장 조합원들의 노동자 의식을 높이기 위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국적인 가입 대상 직협 2,400군 데 중 공무원노조에 179개만 가입된 상태라 조직 확대는 기본에 속한다. 본조 차원에서도 조직 확대보다는 조합원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합원 교육을 위해 주로 선전물과 소식지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활발한 직협의 경우 직원전체 조례시 직협에서 일정 시간을 할당받아 교육에 활용한다. 경기지역은 여덟 강의로 짜여진 교육 프로그램으로 지부마다 순회 교육을 하고 있다. 모두는 못 듣더라도 최소한 몇 강의는 꼭 듣도록 강조하고 있다. 이후에는 소모임 그룹을 활성화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경남지역본부는 매달 운영위원회에 30분씩 할애해서 노동자 의식과 단체교섭 관련 내용을 교육선전실에서 준비해 운영위원부터 교육을 했다. 이 교육 내용이 다시 지부로 전달되고, 지부 총회 때는 외부 강사를 통해 교육받는다. 시·군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련회 때도 직협이 시간을 배정 받아 교육한다. 

선전은 인터넷이 상당한 역할을 한다. 공무원은 '핸디 오피스'라는 전자 결재를 하는데 경남은 백 퍼센트 갖춰져 있다. 이것을 통해 개인에게 메일 보내기나 전 직원에게 메일 보내기가 가능하다. 좋은 글이나 긴박한 소식은 바로바로 공유한다. 공무원들에게는 정신교육시간이 있다. 아마도 예비군 훈련시간에 받는 정신 교육 수준이 아니었나 싶다. 직협 설립 후에는 정신교육 교안 작성에도 관여한다.

공무원노조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인적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본조의 상근자는 11명이다. 지역본부는 최소 1명의 상근자가 있다. 임원들은 모두 낮에는 자신의 업무를 보아야 한다. 경기지역은 회의를 주로 저녁때 한다. 집에 가면 보통 12시다. 회의가 끝난 후 고생하는 임원들끼리 소주라도 한 잔하며 못 다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집에 돌아가기 바쁘다. 보람 있는 일이지만 가족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경남은 본부체계를 튼튼히 구축하기 위해 사무처 각국의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본부 국장들은 이제 1년 동안 쓸 수 있었던 연가가 바닥이 났다. 

넘어야 할 지역간 편차

현재 전국공무원노조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산 중 하나가 지역간 조직력과 활동력의 차이다. 전국적으로 현재는 13개 지역본부가 있지만 지역별 조직력과 활동력에서 차이가 크다. 단적인 예로 11월4일과 5일의 연가투쟁에 연가원을 제출한 총 공무원은 3만 명인데 이중에서 경남 1만3천, 부산 3천5백, 강원 3천5백, 울산 3천으로 4개 지역본부에서만 2만 명을 넘는다. 

조직률과 활동력으로 볼 때 경남, 울산, 부산, 강원, 전남, 광주, 충청, 경기, 인천, 서울 순으로 활동력이 점차 낮아진다. 수도권으로 갈수록 미비한 상황이다. 본조 활동가는 수도권이 미비한 이유를 조합원들의 출신지가 다양하고, 상대적으로 근무여건이 좋은 점, 그리고 지역보다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지방에서 참여가 높고, 활동력이 활발한 이유는 뭘까. 지방의 경우 학연과 혈연 등으로 서로 얽혀 있어 노조가 단결할 수 있는 여건이 낫다고 보고 있다. 

가장 활발하다는 경남지역은 현재 시·군 지부가 20개, 도지부 1개로 100% 조직되었으며, 이외 도청 소속의 사업소 중 농업기술원도 지부를 조직해 현재 총 22개 지부로 구성되어있다. 인원은 13,900명으로 가입률이 95%다. 경남은 2000년 12월 연금법과 관련해 3천명이 모인 집회를 진주에서 가졌다. 비공식적인 공무원 집회 1호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경남이 활동력이 높은 이유를 물어 보았다. "기업체가 많아 기업노조로부터 배운 것도 많지만, 조직 관리를 잘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도청에서 먼저 설립하다보니 다른 시·군에 조직·관리하기가 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양날의 칼 같은 답변이었다. 관료사회의 위계 조직을 이용하여 직협 건설을 빠르게 할 수 있었던 점은 있지만 위험 또한 있었다. 당연히 지역본부 간부들도 이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직협 건설 이후에는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 수평적 관계를 만들어 냈다. 경기지역은 16개의 직협이 설립돼 있고 조합원수는 6천5백 정도다. 10개 정도의 직협이 올해 건설되었다. 공식적인 공무원노조 지부는 4군데에 불과하지만 직협이 지부 활동을 모두 하고 있으며 운영위원회에도 참석한다. 경기 지역은 초기에 10명 안팎의 인원이 모여 직협 설립을 추진했었다. 지금은 지역본부에서 회의를 하면 40∼50명 정도가 모인다. 전국적으로 지부 단위의 임원 10명 정도가 공무원노조의 활발한 구성원이다. 본조에서는 상시동원 가능한 인원을 전국적으로 2천으로 생각한다. 

새로운 시작

정부는 연가 투쟁 참여자들을 징계하겠다고 발표했다. 공무원노조는 지도부들이 대부분 수배중인 상황이지만, 지역별로 징계를 막기 위해 농성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조합법'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며 내년 2월 정도에 다시 논의될 것이라 한다. 축구로 치면 공무원 노조는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에 돌입하기 전 15분은 전반전을 분석하고 후반전의 전략을 구상하는 휴식시간이다. 

공무원노조는 연가 투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에 버금가는 과제들을 안고 있다.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넘어서 공공부문의 노동자로서 공직사회 개혁의 화두를 짊어져야 한다. 3월부터 숨가쁘게 달려온 공무원노조의 일정을 보고 몇 년에 걸쳐 할 일을 한 것 같아 정신이 없다는 경기지역본부 부본부장 한성웅 씨는 이제 나름의 노조 활동을 꿈꾸며 확신에 차 있다. 그는 연가 투쟁을 통해 조합원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고 임원으로써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보람 있는 활동을 후배 공무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꿈이 있다. 공무원 노조의 합법화는 그의 꿈을 실현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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